107화
“오.”
나는 감탄했다.
가이드 길드 건물은 외관부터 하얗고 깔끔했고 내부도 호화로웠다.
바닥과 기둥 모두 대리석이었고 내부 자제 하나하나 고급스럽지 않은 게 없었으니.
‘돈을 아주 발랐구나.’
라예르가의 저택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개국 공신 가문의 저택에 비견될 정도라는 게 대단했다. 황실의 지원을 받아서인가?
“황실의 전언은 들었습니다.”
맞구나. 이젠 황실의 발닦개라는 걸 숨기지도 않는 모양이군.
“부디 이쪽으로…….”
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사람은 무려 가이드 길드의 부길드장이었다.
그녀는 해리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고드윈과 라예르가라는 두 개국 공신 가문의 자제가 직접 찾아왔다는 사실에 압박감을 느낀 것인지 과도하게 공손했다.
‘흐음.’
나는 가이드 길드에 들어서며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이상한데.’
내 입으로 말하기 좀 웃기지만, 내가 요정이라서 그런 걸까? 마력의 흐름이 민감하게 느껴진다.
“왜?”
해리스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느낌뿐이니까.’
증거도 없이 뭐라 속단하긴 그렇지.
가이드 길드는 공식적으로는 가이드를 관리하는 곳이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이능력자들 또한 관리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능력자는 자고로 가이드를 필요로 하고, 가이드 길드는 이능력자와 가이드의 상성을 고려해 매칭해야 했으니.
자연히 길드는 가이드는 물론 이능력자의 등록과 감시를 겸하게 되었다.
“우선, 등급 측정부터 진행하겠습니다.”
부길드장이 측정 기계를 설명했다.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마석을 쥐고 힘을 발산하라는 건 알아들었다.
사실 난 긴장하고 있었다.
‘슬슬 개수작을 부릴 법도 한데.’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황실에서는 해리스에게 가이드 길드에 등록하라며 난리를 피웠다고 한다.
물론 미등록 이능력자들이 수도에 돌아다니게 둘 수 없다는 황실의 입장은 이해가 간다. 치안 중요하지.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긴 어려웠다. 일단 황태자부터 미등록 이능력자잖아?
‘명분은 핑계야. 본 목적은 따로 있어.’
나를 보고 불길하게 웃던 고드윈 공작과 엘워드 황태자가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내가 에이드리안(돌멩이)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던 와중이었다.
“……러니, 주십시오.”
부길드장이 내게 불쑥 손을 내민 것은.
“네?”
달라니 뭘?
부길드장은 ‘안 듣고 있을 줄 알았다’는 얼굴로 답했다.
“지금 만지신 목걸이, 풀어주셔야 합니다. 목걸이 외 다른 장신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 아니, 이건 왜……?”
“규정입니다.”
가이드는 황실에서 밀고 있는 신흥 직종이기도 했다. 그러니 비록 3D라 해도 지원자가 많았다.
가이드를 확보하길 원했던 황실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지원자 절대다수가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나중엔 아이템으로 사기 치는 것들까지 나타났지요.”
“…….”
당혹감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젠장, 정확히 나잖아!’
짭 가이드인 내가 자신만만하게 가이드 길드에 들어온 데에는 당연히 계획이 있었다.
‘에이드리안의 파장을 이용해 어떻게든 가이드로 인정받는 거야.’
접촉 가이딩으로 인정받긴 무리니, 파장 가이딩으로 승부 보겠어!
그렇게 하면 등급이 낮게 나올 수밖에 없겠지만, 의심을 산다 해도 ‘하하하 해리스 님 저흰 상성이 엄청 잘 맞나 봐요!’ 하고 우길 예정이었다.
‘일단 해주석을 얻기까지는 가이드인 척해야 할 거 아냐.’
나중에 진실 고백할 거라고!
기만이라는 건 나도 알지만, 일단은 흐린 눈 할 수밖에 없다. 겨우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쫑날 순 없잖아?
“이해하셨다면, 주십시오.”
그런데 내 사기 밑천을 내놓으라니.
머리가 새하얘졌다. 이젠 어쩌지?
* * *
제이드는 속으로 ‘망했다 망했다 망했다’ 염불을 외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이 일어날 법도 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자신이 어리석었…… 잠깐?
부길드장은 돌연 자신을 빤히 보는 시선에 갸웃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아, 아뇨.”
제이드는 천천히 목걸이를 풀었다. 그리고 내민 손에 목걸이를 얹은 순간, 손바닥 위에 무어라 끄적였다.
“……!”
부길드장의 눈이 순간 커졌지만, 다시 고개 든 얼굴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 올라가 주십시오.”
가만히 부길드장을 응시하던 제이드는 순순히 기계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등급을 측정하는 마석을 손에 쥐었다.
“후…….”
눈을 감는 모습까지 확인하자 바쁜 척 일하던 길드원들이 한둘씩 고개를 들었다.
사실,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제이드 리안.
고드윈 소공작의 가이드가 제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그녀가 받을 등급은 F급뿐일 테니.
F급, 일명 폐급(廢級) 가이드.
본래 측정은 D급까지 설정되어 있었지만, 자기도 가이드라며 패악 부리는 모 황녀 덕분에 생겨난 것이다.
그래 봤자 폐급 가이드는 실질적으로 가이드라 볼 수 없었다.
‘가이드가 아니게 만들겠다니.’
부길드장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황녀의 계략은 악독했다. 이건 단순히 등급 측정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이능력자들은 포악하다. 자신의 가이드가 가짜였다는 걸 알게 되면 분노하고 폭력적으로 나오겠지.
‘저렇게 자그마한데, 죽는 거 아니야?’
길드원들의 시선에 동정심이 감돌았다.
그러나 가이드 길드는 황실의 소유나 다름없다. 황녀의 명령을 거부할 처지가 아니었기에, F급 뜨게 하려 설정해 둔 것은 물론 말까지 이미 다 맞춰둔 뒤였다.
띠딕-
측정 완료의 소리가 들려오자 길드원들은 곧장 입을 열었다.
“-F급이군요.”
“아니, F급은 폐급 가이드 아닙니까! 그건 가이드도 아니라고요!”
“맞습니다. 고드윈 소공작의 가이드라면 최소한 B급은 되어야…….”
짜고 치는 플레이답게, 사람들은 미리 시비를 걸며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럼 어떻게 고드윈 소공작의 가이드가 된 겁니까?”
“보나마나 사기…….”
그렇게 정해진 대사를 읊던 길드원들은, 측정기로 나타난 결과에 멈칫했다.
“……?!”
공기 속에 당혹감이 퍼져나갔다. 아니, 이게 뭐야?
* * *
망했다.
제이드는 침착하게 결론을 내렸다. 완전 망했어.
나름의 계획은 있었지만. 뭘 하기도 전에 에이드리안(돌멩이)을 빼앗기니 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단 보험을 들어뒀지만…….’
그거를 믿을 수만은 없었다. 거기에 손에 측정기가 쥐어지니 별수 없이 쥐고 눈을 감았다.
아, 모르겠다. 해리스가 별종이라 내가 어쩌다 얻어걸렸다 우겨야 하나?
요행을 바라며 제이드가 눈 감고 힘을 불어넣던 와중이었다.
-……제이?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수면 아래에서 울려오는 듯한 깊은 목소리였다.
-네가 왜 거기 있지?
“……?!”
제이드는 놀라 눈을 떴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뭐, 뭐야?!’
돌연 목소리가 들려와서 놀란 것만은 아니었다.
‘왜 익숙한 거지?’
분명 처음 들은 목소리인데, 익숙했다. 언제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도.
쿵, 쿵, 쿵-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감정이 울렁거렸다.
그렇게 제이드가 심장을 움켜잡고 헐떡이던 찰나였다.
“……군요.”
“아니, 그건 가이드도 아니잖아!”
“그럼 어떻게 고드윈 소공작의 가이드가 된 거지?”
먹먹해진 귀에서 사람들이 빈정거리는 소리가 웅웅 울려온 것은.
‘……들켰구나.’
진짜 망했군. 제이드는 눈을 감았다.
이는 처음 그녀가 가이드인 척하기 시작할 때부터 걱정하던 사태였다. ‘너 가짜지!’ 하고 누군가 손가락질하는 악몽을 꾼 적도 있었다.
‘차라리 드디어 걸렸다고, 후련하다고 느껴야 하려나.’
아니, 제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끝날 수는 없어.
제이드가 부길드장을 찾으려던 순간, 우웅 하고 기계가 측정 결과를 내뱉었다.
“보나 마나 사기……!”
흥분한 듯 손가락질하던 목소리가 조용해진 것도 그때였다.
‘뭐지?’
이 패턴, 뭔가 익숙한데. 강렬한 탄산의 기운이 느껴진 웹소 덕후 제이드는 퍼뜩 눈을 떴다.
‘사실은 내가 개쩌는 가이드?!’
기대에 찬 얼굴로 결과를 확인하던 제이드는,
“……엥?”
헛바람을 터뜨렸다. 아니, 이게 뭐야.
“측정 불가?”
“……!”
나지막한 목소리.
해리스의 적안이 답을 요구하듯 가만히 제이드를 응시했다. 제이드가 말문이 막힌 사이, 모두의 시선이 해리스에게 쏠렸다.
다들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하느라 해리스의 측정이 끝났다는 것도 확인하지 못한 것이었다.
[S급.]
그쪽은 예상대로의 결과였다.
“S, S급이라니!”
“마지막으로 S급을 보았던 것은 용병왕 알루카스인데!”
“과연 고드윈 소공작……!”
길드원들은 상황도 잊고 반사적으로 감탄했다.
그러나 어디선가 날아온 살벌한 시선에, 사람들은 다급히 정해진 플레이대로 대사를 읊었다.
“F급…… 아니, 측정 불가면 가이드도 아니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야. 제이드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F급…… 아니, 측정 불가 인물이 가이드랍시고 고드윈 소공작의 곁을 자처하다니, 이건 사기입니다!”
확실히 그렇지. 제이드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기꾼을 가이드로 인정할 수 없어! 이 F급…… 이 아니라 측정 불가!”
대사가 꼬인 길드원은 빨개진 얼굴로 제이드에게 손가락질했다.
“대체 어떤 사특한 수단을 써서 고드윈 소공작의 가이드를 사칭했느냐!”
너희가 빼앗은 돌멩이(에이드리안)로……. 제이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야, 대사라도 맞추고 해라.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