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고드윈 공작이라니!’
해리스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던, 그 개쓰래기 애비 새끼가 왔다니! 제이드는 다급히 뛰어갔다.
‘아직 죽이면 안 되는데!’
최애를 너무 잘 아는 제이드는 몹시도 걱정스러웠다. 눈깔 뒤집혀서 산 채로 찢으면 어떻게 하지?
‘안 돼! 그런 범죄는 은닉 가능한 상황에서나 저질러야 한다고!’
저질러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제이드도 이 미친 이능력자들이 범람하는 세계에 어느 정도 적응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제이드는 트레이를 끌고 해리스 찾아가는 중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또라이처럼 트레이 박치기하려는 건 아니었다.
‘하녀인 척 먹을 거 내려놓다가 고드윈 공작이 개소리하면 빵 던지자.’
여전히 정상적인 대처 방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제이드가 시도하기도 전,
딸깍-
문이 열리며 해리스가 나왔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에 제이드는 멈칫했다.
‘저질렀나?!’
젠장, 늦었다. 이렇게 된 이상 현장 증거 인멸이라도…… 최애에 대한 애정은 넘쳐도 신뢰는 바닥을 치던 제이드가 각오하던 순간이었다.
툭-
지팡이가 바닥을 치는 소리. 제이드의 눈이 커다래졌다.
‘고드윈 공작?’
제대로 된 외향 묘사도 별로 나오지 않는,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실 고드윈 공작은 온갖 미친 이능력자들이 나오는 세계에서 그리 대단한 적으로 보기 어려웠다.
어쨌거나 그는 이능력자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었으니까.
‘그것도, 절름발이.’
선천적인 장애였다. 괜히 아이린 공녀가 고드윈 소공작으로 불렸던 게 아니었다.
그가 해리스에게 했듯, 몸이 온전하지 않은 것은 후계자가 되지 못할 결격 사유였으니까.
‘거기다…… 말랐어.’
해리스도 선대 공작도 아이린 공녀 모두 훤칠한 키와 두툼한 흉곽,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제이드는 여태껏 그 축복받은 몸이 고드윈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특징이라 믿어왔다.
그러나 정작 고드윈 공작은 정반대였다. 키는 크되 몸은 호리호리하고 마른, 예민하고 섬세한 인상의 미중년.
물리적으로 크게 위협이 될 작자는 아니다. 알지만,
“……!”
고드윈 공작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제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다.
‘뭐, 뭐지?’
전혀 물리적으로 위협당할 일 없는 사람인데, 독사를 마주하기라도 한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단안경 속 자주색 눈동자가 일순 확장되더니, 얇은 입술이 비틀렸다.
“너구나.”
깡마른 공작이 지팡이를 턱, 턱- 짚으며 다가오는 기세에는 왜인지 모를 섬뜩함이 있었다.
“너였던 거였어.”
자기 몸을 태워서라도 적의 발목을 끌고 갈 법한, 음침한 물귀신의 기운에 제이드는 신경이 삐쭉 섰다.
‘기분 나빠……!’
영혼부터 뒤틀린 느낌.
본능적인 거부감에 제이드는 이를 악물었다. 비록 겉모습은 평범한 사내보다도 약해 보이더라도, 고드윈 공작은 어린아이를 망가뜨릴 힘은 있는 악한(惡漢)이었다.
‘우리 해리스의 유년 시절을 망가뜨리고, 인성과 목숨까지 위협했던 개 쓰레기.’
가만두지 않겠다.
치솟는 거부감에 반발심이 타올랐다. 트레이를 쥐던 손에 힘이 들어가던 찰나,
“제이드.”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 커다란 손이 눈을 덮고 허리가 감긴다.
“숨 쉬어.”
하아, 숨통을 틔운 제이드는 그제야 자신이 턱이 아플 정도로 이 악물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는 것도.
“……라예르가의 하녀는 건방지군.”
그러든 말든, 고드윈 공작은 성큼 다가와 지팡이로 제이드를 가리켰다.
“감히 고드윈 공작에게 눈을 치켜뜨다니.”
뻔히 제이드의 정체를 알면서 거는 시비에 해리스는 간결히 답했다.
“꺼져.”
말로만 답한 건 아니었다.
우당탕, 고드윈 공작은 해리스의 힘에 순식간에 벽에 밀려나 볼품없이 쓰러졌다.
“……커헉!”
“고, 공작님!”
수행원은 일순 당황하여 그에게 달려가더니, 정신 차리고 해리스에게 항의했다.
“소공작! 아무리 그래도 각하는 그대의 아비이자 고드윈의 가주요! 그런데 어찌……!”
“……큭.”
그러나 정작 쓰러진 고드윈 공작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
기이했다. 이 자리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사내인데도, 그가 뿜어내는 기세는 지극히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한참이나 웃어대던 공작은 자줏빛 눈을 형형히 빛내며 말했다.
“기대되는구나, 아들아.”
* * *
끄응, 어쩌지.
나는 한숨을 삼켰다.
미친놈처럼 처웃던 고드윈 공작은 그냥 떠나지 않았다.
‘이번 건국제 시가 행렬에서 네가 고드윈 대표로 나서야겠구나.’
건국제 퍼레이드를 해리스에게 맡긴다니. 공작이 던진 폭탄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여러 번 말했지만, 람서스 제국은 세계를 구한 용사들이 세운 제국이다.
즉, 필연적으로 그 용사들에 대한 찬양이 곁들여지게 마련이라, 건국제 퍼레이드는 람서스 제국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정확히는 세계를 구한 용사들을 기리는 의식으로, 용사의 후손인 람서스와 고드윈, 라예르가는 물론 이사그 공작가와 신전(성녀)까지 합류한다.
‘제국에서 대대로 내려온 의식이자 절차라, 불참은 절대 불가하다.’
‘하, 지금까지 잘만 대역을 보내지 않았나?’
‘……보다시피 나는 몸이 불편한 처지지.
고드윈 공작은 해리스를 의미심장하게 보며 말했다.
‘이제까지야 고드윈의 후계가 공석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지만, 넌 소공작까지 된 몸이 아니냐?’
‘함정이야.’
고드윈 공작, 그가 아무 이유 없이 해리스를 퍼레이드에 강제로 참가시킬 리가 없다.
‘분명, 퍼레이드 동안 무슨 짓을 저지르겠지.’
문제는 함정이라는 것을 알아도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황실에서 서안을 보내면서 공식화되었고…….
“……죄송해요.”
“뭐?”
푹푹 한숨을 쉬던 나는 해리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괜히 나대서…….”
해리스가 못 참고 고드윈 공작을 죽여버릴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낄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멋대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고드윈 공작은 보험 사기단이었다. 고의로 해리스의 신경을 건드려 부상을 내고 그 이유로 해리스를 어떻게든 몰고 갈 작정이었지.
그런데 기적적으로 해리스가 고드윈 공작을 크게 공격하지도 않아 그대로 넘어갈 뻔한 일을, 내가…….
“자꾸 개소리할래?”
해리스는 단칼에 내 생각을 잘랐다.
“쓸데없이 죄책감 느끼지 마. 너하고 관계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제가 그렇게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지금 이렇게- 아야!”
나는 이마를 움켜쥐었다. 아니, 다짜고짜 딱밤 날리기야?!
“하지 말라고 경고했지.”
“보통 경고는 3번 아니에요?”
“한 번도 많아.”
“그런 게 어디 있어!”
억울해서 따지자 해리스가 씩 웃었다.
“여기.”
“…….”
나른한 중저음의 목소리.
그것만으로도 귀가 간질간질한데, 보기만 해도 황홀한 얼굴이 장난스럽게 미소를 그리자 나는 통증도 잊고 멍해졌다.
“어차피 가이드 길드도 가야 했어.”
네가 잠들어 있어서 미룰 수 있었던 거지.
그렇게 말하며 해리스가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살살 눌렀다. 걱정할 것 없다는 듯이.
“…….”
별로 대단한 스킨쉽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저릿저릿했다. 처음, 치료하겠다고 뻗어진 손길마저 매섭게 떼어내던 과거가 떠올라서일까.
‘변했어.’
해리스와 친해지길 바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최애와 긍정적인 관계를 이룩하고 싶지 않은 덕후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왜, 아직도 아파?”
“……아뇨.”
툭, 무심히 묻는 것 같은 목소리였지만, 나는 그 안에 담긴 다정함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가까워지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는데.’
어떡하지? 손바닥이 간질간질하고, 입매가 통제되지 않는다. 던전에서 그와 내가 한 여러 가지 일을 떠올라 시선을 마주하기 어려웠다.
‘싫은 건 아니야.’
오히려 좋지.
하지만 기껍게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나는 가짜니까.
그리고 해리스는 그것을 모르고 있지.
‘……밝힐 거야.’
해주석을 찾은 뒤에. 그 뒤에 진짜 가이드, 에이드리안을 데려와 진실을 고백할 것이다.
하지만, 고백한 뒤에는?
나는 마차 창문 바깥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전경이 휙휙 지나가는데 눈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고백한 뒤에도, 해리스와 나의 관계가 지금처럼 유지될까?’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제삼자였다면 ‘물론이지! 내가 한 게 얼만데!’ 하고 확답했을지도 모르지만, 이게 내 일이 되니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제이드.”
“네.”
“네 본명은 뭐야?”
“네?”
해리스는 나를 불안의 수면에서 끌어내며 물었다.
“네가 왔다는, 다른 세계에서의 이름 말이야.”
“……!”
눈이 커다래졌다. 비록 해리스가 ‘믿겠다’고 했지만, 그리고 실제로 내가 한 말들을 따라주긴 했지만,
“제…… 제이예요!”
이름을 물어볼 거라곤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쫓기기라도 하듯 조급히 말했다.
“서, 성은 이-가 아니라 안! 제 나라에서는 성을 앞에 붙여서…….”
“……안 제이.”
해리스의 나른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담자,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나, 귀가 약하구나.’
새삼 실감했다. 제이드, 라고 불릴 때도 감겨버렸는데 진짜 이름을 불리니 정신 차리기가 어려웠다.
“부분적으로라도, 네 이름을 부르고 있었군.”
해리스는 입꼬리를 깊게 휘었다.
희고 마디마디 선명한 손가락이 내 뺨을 어루만지며, 붉은 시선이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유혹하듯 짙고 농밀한 미소.
“기쁘네.”
“…….”
나는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지도 못하며 생각했다. 아니, 이 자식 설마 나 꼬시나?
“고드윈 소공작!”
마차가 덜컹이며 멈춘 건 그때였다.
* * *
가이드 길드.
그 안은 기다려온 손님으로 인해 분주했다. 최근 수도에 입성한 거물, 해리스 고드윈과 그의 가이드 때문이었다.
“준비했어?”
엘티로사 황녀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뉴리엔 백작 영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하신 대로 기계에 손 써두었습니다.”
알루카스가 고드윈 소공작의 가이드, 리안 남작에 눈독을 들인 것은 그녀가 ‘가이드’기 때문이다.
‘가이드, 빌어처먹을 가이드-!’
하나같이 더럽고 역겨운 것들. 황녀는 이를 으득 갈았다.
“더는 가이드가 아니게 만들어 주지!”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