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제이드의 눈이 커다래졌다.
갑작스러운 입맞춤 때문만은 아니었다.
끈덕지게 삼키고 빨아당기는 입술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다쳤나?!’
키스보다도 해리스가 내상 입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놀라 바둥거렸지만, 턱을 쥔 손아귀가 관절을 눌러왔다. 자동으로 입이 벌려지며 뜨거운 혀가 밀려 들어왔다.
“……!”
질척이는 입맞춤이 길어지며 눈앞이 점점 아득해졌다. 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뜨거운 물을 끼얹은 것처럼 몸이 훅 달아올랐다.
반사적으로 밀어내려던 손이 해리스를 붙잡았다.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 거부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감각은 물론이고 접촉과 타액을 통해 곧장 밀려오는 해리스의 마력 때문이었다.
제이드를 허겁지겁 그 마력을 들이켰다. 이것은 단순히 좋다는 감각 이상의 무언가였다. 말라 죽어가던 물고기가 물속에 다시 들어온 것처럼 먹먹하고 절실했다.
흡성대법을 인지한 뒤라서일까, 제이드는 이전보다도 더욱 자연스럽게 해리스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숨이……!’
마력은 충만한데 공기가 부족했다.
제이드는 고개를 피하려 했지만, 커다란 손이 턱을 쥐어 각도를 맞췄다.
‘숨! 숨 막힌다고-!’
이젠 눈물까지 난다!
그제야 상태를 알아챈 건지 해리스는 잠시 입술을 떨어뜨렸다.
“허억, 헉-”
제이드는 헐떡였다. 얼굴이 터질 듯 뜨거웠고 심장은 갈비뼈를 부술 기세로 날뛰었다.
‘뭐지? 이거 뭐지?!’
듀크에 이어 드래곤의 원념체가 으깨지고, 미친놈처럼 등장한 해리스가 이토록 격하게 키스하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더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
잠시 떨어졌던 혓바닥이 끈덕지게 핥아오던 입술을 지나 귓가로 파고들었다. 귓바퀴가 뜨거워지고 귓불이 깨물렸다.
감당할 수 없는 자극에 제이드는 얼굴이 빨개진 채 버둥거렸다.
“그, 그만-”
“제이드.”
귀에 달라붙은 입술이 중저음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살짝 갈라져 있는 해리스의 목소리는 닿아오는 열기 때문에 색정적이기까지 했다.
읏, 제이드는 정신이 해롱해롱해지는 것 같아 혀를 깨물었다.
“싫어?”
해리스가 코끝을 물며 물었다.
“아, 아니요…….”
습하고 달아오른 공기. 눈이 반쯤 풀린 제이드는 생각도 전에 대답했다.
싫은 건 아니었다. 마구 달린 것처럼 심장이 터질 듯 펄떡거리고 숨이 가빴지만, 절대 싫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아…….’
……흡성대법 때문이야. 마력을 충전해서 그래. 제이드는 그렇게 합리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마냥 좋다고 흐물흐물 녹아내릴 수만은 없었다.
‘지금 해리스가 맛이 많이 간 상태인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스킨쉽을 했을 때는 과거 언노운 던전, 광폭화 위기였을 때 말고는 없었다.
하지만 난 가이드가 아닌데, 본능적인 반박과 동시에 불안함이 치솟았다.
가이드도 아닌 내가 이렇게 즐겨도 되는 건가?
‘문제 생기는 거 아니야?’
이를테면 나만 즐기고 해리스는 하나도 해소(?) 안 되는 상태로 끝난다든지. 가짜 진정제는 찔리는 게 많았다.
‘아니야. 에이드리안이 말했잖아.’
해리스는 마력이 지나치게 많아서 문제가 생기는 케이스라고, 그러니까 가끔은 자신의 흡성대법이 도움될 수도 있다고.
에이드리안의 요지는 ‘그러니까 네가 가이딩했다고 착각하지 마라’였지만, 당장 몸과 마음이 흐물흐물해진 제이드는 ‘그러니까 가이딩인 척 더 해도 되지 않나?’ 같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럼, 제이드.”
라즈베리처럼 달콤하고 황홀한 색감의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꿰뚫을 듯 응시하고 있었다.
시선이 너무 가까워.
제이드는 홀린 듯 해리스의 젖은 입술을 바라보았다. 휘어진 입술이 그녀의 볼을 눌러오며 물었다.
“좋아?”
빨개진 제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언제나 뻔뻔하리만치 당당한 자신이었지만, 그래도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밝히는 건 부끄러웠다.
해리스는 눈을 곱게 접어 웃었다.
“거짓말.”
앗, 귓바퀴가 세게 깨물린 제이드는 앓는 소리를 냈다. 들러붙어 있는 그의 움직임이 더 노골적으로 되어갔다.
놀란 제이드는 몸을 뒤틀려 했지만, 어느덧 다리마저 얽힌 상태라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
이어진 손길에 제이드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움켜쥐었다.
“자, 잠깐……!”
연이은 사태에 제이드는 자신이 미친 드래곤에게 죽을 뻔했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목이 타듯 마르고 맥박이 튀어 오를 듯 날뛰었다.
쿵, 쿵-
그러나 정신 차렸을 땐 몸이 바닥에 눕혀진 뒤였다. 해리스의 그림자가 제이드에게 드리워졌다.
“거짓말쟁이.”
“거, 거짓말쟁이까진 아니…….”
“나 가지고 놀면 재미있어?”
말하는 사이사이에 입술을 깨물고 혀를 내어 뺨을 핥아댔다.
“응?”
숨이 막혔다. 그와 자신 사이의 공기가 너무 후덥지근해서 어지러웠다.
이러면 안 돼.
녹아내리는 이성 속에서 간신히 남은 본능이 경고했다. 해리스는 가이딩을 원하는 거고, 그건 이렇게 해결할 수 없다고.
‘진정제 포션!’
퍼뜩 정신이 든 제이드는 상시 구비 중이던 포션을 꺼내려 버둥거렸다.
하지만,
“해, 해리스 님-”
“왜.”
포션을 꺼내기도 전에, 제이드의 가느다란 두 손목은 해리스의 한 손에 틀어쥐었다.
그대로 손목을 머리 위로 올린 해리스가 다시 몸을 붙여왔다.
“왜 자꾸 도망가려 해, 응?”
붉은 입술은 웃듯 휘어져 있었지만, 제이드는 알아차렸다.
그는 지금 기분이 몹시 저조하다는 걸.
해리스의 목덜미에는 검은 핏줄이 솟고, 그의 신체 일부분은 미친 드래곤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
그 드래곤처럼?
퍼뜩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제이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해리스의 새까만 힘. 때로는 점액질의 촉수처럼 늘어지던 마력.
죽은 드래곤의 원념체는, 해리스의 이능. 공허와 닮아 있었다!
“내가 싫어?”
“……네?”
당황한 제이드가 한 박자 듣게 대답하자, 해리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
“너도 나를 버릴 거야?”
“네에?!”
아니, 갑자기 그 말이 여기서 왜 나와!
제이드의 ‘네’는 어디까지나 황당함의 발로였으나, 제정신이 아닌 해리스에겐 ‘yes’에 가깝게 들리는 대답이었다.
“하.”
하하. 해리스는 웃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제이드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뭔가 잘못됐어.
그러나 그것을 자각했을 땐 이미 늦은 상태였다.
“하하하-!”
발작적으로 웃던 해리스는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그의 발치에서 솟은 그림자가, 미친 드래곤처럼 허물어져 가던 해리스의 육신이 어둠의 장막처럼 펼쳐지며 제이드를 그대로 삼켰다.
“그래도 소용없어.”
“그, 무슨……!”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거야.”
영원히.
그 속삭임을 마지막으로, 제이드는 의식을 잃었다.
* * *
그리고 깨어났을 때는 온통 암흑이었다.
‘……얼마 만에 깨어난 거지?’
알 수 없었다. 사방은 내 손과 발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눈을 떴는데도 감은 것 같았다.
빛이 존재하지 않는 어둠은 무한히 넓어 보여 현실이라기보다는 꿈 같았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야?’
기억나지 않는다. 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외쳤다.
“해리스! 해리스 님-?”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고, 보이는 것은 암흑뿐이었다.
‘소리가 울리는 것을 보니 무한한 공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무심코 입술을 더듬다가 얼굴을 붉혔다. 부어오른 입술에서 떠오른 기억 덕분이었다.
‘맞아, 해리스가 또 끝내주는 키스를 갈겼지.’
쑥스러움에 쭈그려 앉은 난 배시시 웃었다. 히힛, 우리 해리스 키스 장인이시다. 이쯤 되니까 가이딩을 받는 건 걔가 아니라 나 같아.
‘……그런데 왜 지금은 혼자죠?’
그제야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다.
흑화하기라도 한 것 같던 해리스와 그에게서 뻗어 나오던 새까만 장막. 그리고 그 장막이 나를 삼켜 버린 것까지도.
“-해리스! 해리스 님!!”
나는 벌떡 일어나 그를 불렀지만, 이번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이 망할 자식! 당장 대답 안 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마찬가지였다.
완전한 침묵.
나는 이 어둠 속에 감금당한 것이다.
‘……왜?’
나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털썩 주저앉았다.
“키스만 잘하면 다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우리 분위기 좋지 않았어? 그런데 왜 키스 다음이 감금인 건데? 진도 순서가 너무 이상하지 않아?
‘대체 왜 그런 거지?’
우리 해리스가 미친놈이라서?
아니, 맨날 나보고 또라이라 하면서 자기가 더 돌아버린 건가. 투덜거리는 와중 뇌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듀크.’
심장이 꿰뚫린 채 발견된 그놈.
그 뒤로 이어진 일이 너무 스펙타클해서 깜빡했는데, 생각해 보면 듀크 아인델타쯤 되는 이능력자마저 던전에서 속수무책으로 치명타를 입은 상태였다.
‘그렇다는 건, 해리스도 이 던전에서 어떤 식으로든 공격당한 건가?’
듀크 아인델타는 약점에 당해 아예 꼼짝달싹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해리스의 약점은…….
‘멘탈이지.’
어쩔 수 없다. 우리 해리스는 아버지에게 배신당해 감금당했다고요. PTSD를 겪고 있을 거란 말이다.
‘해리스가 갑자기 돌아버린 게, 던전에서 정신 공격을 당해서구나.’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해리스의 상태가 메롱해 보이긴 했다. 무슨 정신 공격을 당했길래 저렇게 흑화 수준으로 돌아버린 거람?
‘그리고 나는 왜 감금한 거야?’
갸웃거리던 순간 떠오르는 것은 처음 던전에 들어왔을 때 뜬 퀘스트였다.
<무너진 신전에서 탈출하라.>
조건은 던전에서 탈출할 때까지 생존. 페널티는 사망…….
“……잠깐.”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던전에 빠진 내가 맞닥뜨린 것은, 마수가 아닌 듀크와 미친 드래곤이었다.
공교롭게도 둘 다 내 탈출과 생존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칠 뻔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해리스지.’
듀크를 해치운 드래곤을 제거하고, 나를 감금해 버린.
“…….”
그제야 퀘스트의 진짜 의미를 알아차렸다.
내가 탈출해야 하는 대상은, 던전 속 미지의 마수가 아닌 해리스였다!
“해리스-!”
* * *
해리스는 애절하게 자신을 찾는 제이드의 목소리를 듣고 웃었다.
그는 기꺼웠다.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