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그래서요?”
제이드가 입을 연 것은.
“제가 다른 목적이 있으면, 안 되나요?”
맑게 울려오는 목소리.
돌이 던져진 수면처럼 파문이 일던 제이드의 얼굴은 어느덧 차분해지다 못해 뚱해진 뒤였다.
‘뭐 어쩌라고.’
듀크의 말에 놀랐던 것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걸 들켜서가 아니었다.
‘그것까지 알아차릴 정도로 밀접 스토킹했단 말이야?’
사실 제이드는 감시에 둔감한 편이었다.
언제 어떻게 악화될지 모르는 희귀병 환자로서, 항시 간병인이나 간호사, 의사나 가족들의 시야 밖을 벗어나지 않았으니까.
불만은 없었다. 힘들다고 병원 밖으로 도망쳤다가, 뭐 하나 잘못 먹고 진짜로 죽을 뻔한 이후에는.
‘그땐 이미 면역 체계가 망가진 상태였지.’
철없이 햄버거 먹고 싶다고 나댄 대가를 톡톡 치른 셈이었다.
그러고 나서 반쯤 죽었다 깨어난 자신의 침대 머리맡에 창백해진 얼굴로 기다리던 언니와 엄마의 얼굴을 보게 되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은 부스러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러니 고드윈의 본성에서 숱한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면서도 태연했다.
하지만,
“저기요.”
그런 제이드조차 불쾌감을 느낄 정도의 감시였다.
‘으, 뭐 이런 미친 관음증 변태 새끼가 다 있어.’
순간 치밀어오른 불쾌함에 일시적으로 겁대가리를 상실한 제이드가 따져 물었다.
“제가 해리스 님을 배신하듯 말씀하시는데, 그건 그분께서도 아시는 일이거든요? 방금 저한테 도움도 받으시고 먹을 것도 얻어먹으셨으면서 그딴 식으로 말씀하시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
듀크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빤히 알면서 저렇게 윽박지르는 가이드는 또 처음이었다.
“생각할수록 빡치네. 작작 스토킹해야 할 거 아니냐고. 했으면 티라도 내지 말든가!”
이렇게 대놓고 성질부리는 것도…….
“앞으로 작작 스토킹하세요, 개인 프라이버시는 지켜줘야 할 거 아냐!”
“…….”
무슨 멸종한 희귀 동물을 보는 것 같았다. 애는 생존 감각이 없나?
“알겠냐고요!!”
“아, 알았어.”
신기해하던 듀크는 자신도 모르게 기세에 눌려 대답했다.
‘내가 기세에 눌려?’
속으로 놀란 듀크에게 제이드는 싱긋 웃어 보였다.
듀크의 잿빛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자, 그럼 같이 탈출해 봅시다!”
환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손이 당겨졌기 때문이다.
“……!”
듀크는 처음부터 제이드가 자신을 알아봤다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 자신을 보자마자 그토록 두려워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심장이 뚫린 걸 보고서도 안색이 파리해질 뿐 멀쩡히 대화를 나눈 걸 보면, 내 능력에 대해서도 아는 거야.’
검은 인어의 눈물 사건 때부터의 의심은 확신으로 굳혀졌다. 제이드는 그가 누구인지 안다.
누구보다도 잘.
그런데도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고, 당겼다.
그 손이 닭 목을 부러뜨리듯 간단히 그녀의 목도 꺾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왜지?’
듀크의 정체를 아는 이들은 대체로 그를 무서워하고 멀리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자신에 대한 공포를 인정하지 못하듯 허세 부렸고, 어떤 이들은 자신을 얕잡아보고 거만 떨곤 했다.
어느 쪽이든 살아남진 못했다.
‘하지만.’
듀크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 요정족 혼혈 가이드는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다.
“…….”
그럼, 무엇이지?
마탑주를 움직이게 하고 용병왕을 세 치 혀로 조종하며 고드윈의 괴물을 길들인 저 가이드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바라보고 바라보아도 알 수 없다. 그래서일까, 이 순간에도 시선을 떼어낼 수 없는 것은.
제이드를 응시하는 듀크의 눈빛이 점점 더 짙어졌다. 산 채로 집어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다행인지 앞서 나가는 제이드는 지나치게 진득한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 한쪽 손이라도 무력화시켜야 해.’
새삼 집 나간 겁대가리가 귀가한 까닭이었다.
‘내가 미쳤나, 왜 저 자식한테 소리 질렀지?’
하지만 이제 와 무서워하는 티를 내면 더 X되리라. 직감의 경고에 제이드는 억지로 활기차게 말했다.
“자~ 이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심장이 불길하게 두근두근 뛰었다.
기왕 손을 잡은 김에 흡성대법 스킬이라도 써보려 했는데, 분신체라 그런지 심장 부근이 휑해서인지 잘 되지도 않았다.
‘약해서 그런가? 더 강하게 해봐? 아냐, 그랬다가 들키면 어떻게 해.’
알루카스 때 들통날 뻔했던 기억을 떠올린 제이드는 반대편 손으로 언제라도 총을 소환할 준비를 했다.
‘여차하면 대가리를 쏘는 거야.’
그럼 저 미친 쾌락 살인마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겠지? 하하, 그 강을 안 건너려고 온갖 염병을 떨었는데 기어코 강 앞까지 와버렸구나.
“……몰라.”
“몰라요?”
의외의 대답에 제이드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듀크는 재빨리 평소의 얼굴로 갈아 끼우며 답했다.
“응, 난 그냥 너 따라 걷고 있었는걸?”
“…….”
나는 여태껏 너 따라 걷고 있었단 말이다, 이 자식아…….
S급 이능력자라고 믿은 내가 잘못이지. 제이드가 걸음을 멈춘 순간,
부르르-
“!”
치맛단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제이드가 꺼낸 것을 본 듀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건…….”
* * *
“음, 일단은 드래곤의 알이에요.”
“드래곤? 옛 왕국 시절 멸종했다는 그 고대 종족?”
“네.”
듀크는 왜 ‘일단’이냐고 묻지 않았다.
‘온통 깨져 있으니까.’
나는 손에 들린 커다란 알을 보았다. 이전에 언노운 던전에서 개고생하며 나는 여러 가지를 얻었다.
해리스와의 첫 키스, 개거지 같은 시스템의 보상, 근육통, 오늘도 진정제를 가열차게 개발하고 있을 천재 네이트와 기타 아넬라 일행의 신리, 진정제의 원재료인 이끼 등등.
‘거기다 드래곤의 알을 얻게 될 줄이야.’
그건 드래곤의 원념을 풀어주라던 시크릿 퀘스트의 보상품이었다.
하지만 ‘앗! 내게도 판타지 주인공만의 특별한 반려동물, 아기 드래곤이?!’ 하고 기쁘기는 일렀다.
자기 나라 망해서 미친 왕이 부수려 했던 바로 그 알인지, 형태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알에는 온통 금이 가 있었기 때문이다.
‘텄다, 텄어.’
나는 깔끔히 포기했다. 대체 언제적 알인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깨지기까지 했으니 드래곤 유체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미 드래곤도 그렇게 울었겠지.’
그래서 보상으로 받은 뒤에도 창고에 처박아두었다가, 떠날 때가 되어 챙긴 것이다.
어차피 드래곤이 깨어날 일은 없을 테니 힐링 스톤처럼 만지작거릴 셈이었다. 에이드리안(돌멩이) 못지않게 만질 맛이 나더라고.
“그럼 이 넝쿨은 뭐야?”
“그건…….”
뭐라고 말하지.
인간혐오 숲에서 만난 말하는 나무, 다느렌 쿠세트가 선물로 여린 잎사귀가 붙은 가지 하나 주었는데 그게 드래곤의 알에 닿자마자 덩굴처럼 깨진 알 부분을 돌돌 감쌌다고?
‘음, 무슨 소린지 절대 이해 못 하겠군.’
실제로 본 나도 얼이 빠졌는데.
와, 신기해! 하고 생각하며 저대로 곧 깨어날까 기대했지만, 알 자체엔 어떠한 변화도 없이 고요했다.
“저도 몰라요. 원래 이랬어요.”
“원래 이렇게 허공에 떴어?”
“……그건 아니었는데.”
내 품에서 조용하기만 하던 알이, 던전 안에 들어와서인지 부르르 진동하다가 허공에 떠올랐다.
그러고 나서는 어디론가 둥둥 나아가기까지 하자 나는 이해를 포기하기로 했다.
“따라가 볼까요?”
“좋아.”
우리는 터벅터벅 드래곤 알을 따라 걸었다.
듀크의 파격적인 등장에 충격받느라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우리가 거니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신전은 그야말로 개박살이 나 있었다.
그것도 세월이 지나 자연적으로 쇠퇴한 느낌이 아니라, 누군가 지독한 살의와 분노를 담아 하나하나 정성 들여 부순 느낌.
‘엄청 으스스하다.’
그리고 그 으스스함은 신전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거대한 신상(神像) 앞에서 정점을 찍었다.
“……머리가 없네요.”
“사지도 없군.”
거대한 신상은 온통 칼부림이라도 당한 듯 긁혀 있었는데, 머리로 추정되는 부분과 팔다리로 추정되는 부분 모두 바닥에 부서져 있었다.
‘무섭다.’
악에 받친 증오와 원한이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의 내게도 선명히 다가오는 것 같았다.
‘누구일까, 이런 짓을 한 사람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신에게 이토록 강렬한 원한을 품었던 걸까.
나는 멀거니 부서진 신상의 조각들을 보았다.
엉망으로 무너진 신전, 그 아래 참혹히 죽어 나간 인간들, 악의를 담아 부순 신상…….
“……어?”
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엉망으로 망가진 상태라 몰랐는데, 부서진 신상의 머리와 사지는 보통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형태가 아니었다.
‘인외 신상……?’
나는 퍼뜩 몸을 구부려 아래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부서진 조각들 사이 심상찮은 외형이 보였다.
‘발톱? 날개??’
기본적으로 신상은 인간을 바탕으로 만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발톱이라니.
거기다 날개도, 통상적으로 ‘신상의 날개’ 하면 생각되는 희고 풍성한 깃털 날개가 아니었다.
도리어 이것은, 매끈하고 날카로워서…….
“……!”
툭, 손에서 조각이 떨어졌다.
박쥐의 날개. 독수리의 발톱. 둥둥 떠 있는 부서진 드래곤의 알과 인외의 신상.
‘여기는 인간의 신전이 아니야.’
조각조각 나뉜 정보가 하나로 모여들었다. 이곳은 멸망했다는 고대 종족, 드래곤의 신전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파괴와 학살의 주범은…….
“왜, 뭐가 이상해?”
듀크가 내게 고개를 기울였다. 히죽히죽 웃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뭐야, 왜 그런 표정-”
듀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자의가 아닌 타의였다.
퍼억-!
그 뒤로 나타난 거대한 실루엣에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듀크?”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믿기지 않았다.
지금, 세계관 최강자인 S급 이능력자의 대가리가 드래곤의 앞발에 박살 나 버린 거야……?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