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아주 오래전부터. 너를 만나고 싶었어.”
송곳니가 도드라진 입술은 기쁘다는 듯 보기 좋은 호선을 그렸다.
‘으악! 으악! 으아악-!’
머릿속에서 비명을 내지르는 것과 반대로, 몸은 침착했다.
아니, 정확히는 침착한 척 굳어 있었다.
‘이거 뭐야! 이거 뭐야! 이거 뭐야아악-!’
삐용삐용- 사이렌이 머리에 끝없이 울려왔다. 내게 폰이 있었더라면 당장 119를 불렀을 법한 모습이었다.
“이런, 놀랐어?”
그러나 정작 심장이 꿰뚫린 사내는 태연했다.
‘대체 왜?!’
와이, 뭣 때문에 저렇게 태연하단 말입니까.
지금 심장이 박살이 났잖아.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미안, 미안.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 꼴로 놀라게 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진짜 놀라게 할 생각이 있을 때는 대체 무슨 꼴이실까요.
“괘…… 괜찮아요?”
나는 충격적인 광경에 넋이 빠져 물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심장이 석상에 꿰뚫린 사내가 괜찮을 리가 없는데, 내 입과 머리는 동기화되지 않은 지 오래였다.
‘잠깐,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듀크 아인델타는 S급 이능력자다.
일반인이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자기 치유력의 소유자란 말이다.
저렇게 심장이 꿰뚫리고도 멀쩡히 말하는 것만 봐도 뻔하지 않은가!
‘그게 아니더라도, 원작 전개상 여기서 죽을 리가 없는데.’
근데 왜 난 구해줘야 한다는 인류애의 정신으로 다가가고 있단 말인가.
정작 저 암살자 자식은 그런 인류애 따위 우적우적 씹어먹은 지 오래일 텐데.
“도, 도와드릴까요?”
왜 내 아가리는 이런 말을 털어버린 거지? 저 자식 나 스토킹하는 변태 사이코패스 살인마잖아!
‘젠장, 환자라서 그래. 환자라서…….’
전직 환자로서 같은 환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가끔 지나칠 정도로 발휘되곤 했다.
이를테면 내가 빙의 1일 차, 폭주하던 해리스에게 그랬듯이.
“……날 도와주겠다고?”
회색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신기하다는 기색이었다.
“네가?”
“…….”
하긴 듀크는 S급 이능력자다.
맨날 양민학살하고 다니는 듀크 놈에겐, 내가 아무리 총이 있어도 쪼렙에 불과하겠지.
‘이래 봬도 천재 사격수거든!’
……그래봤자 듀크에겐 쩌리겠지만.
‘난 대체 왜 나선 거야.’
충격적인 등장에 가출했던 정신이 후회와 함께 돌아왔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뒤돌아서 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이미 늦었어, 흑흑…….’
듀크가 먼저 나를 알아봤다. 듀크의 살인 법칙을 떠올리지 않아도 이 자리에서 도망치는 건 위험했다.
“……그럼 도와줘.”
“뭐, 뭔데요?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이거.”
듀크 아인델타는 손을 들어 자신의 심장에 박힌 자그마한 석상을 가리켰다.
“이거 좀 뽑아줘.”
“…….”
아니, 역시 못할 거 같은데.
내 짜게 식은 얼굴을 보며 그는 싱긋 웃었다.
“아니, 아니야. 무거운 거 아니야.”
“무거운 것만이 문제인 건 아니거든요……?”
“괜찮아, 괜찮아. 빼주기만 하면 남은 건 내가 알아서 할게.”
뭐가 괜찮아! 뭘 알아서 해!
그렇게 속으로 비명 지르는 것과 반대로, 몸은 그의 말대로 움직였다. 벌벌 떨리는 손이 석상을 잡고…….
‘……어라?’
이거, 진짜 가볍잖아. 돌로 만들었으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는데?
나는 멍하니 석상을 보았다. 듀크 아인델타를 꿰뚫은 석상은…….
“……!!”
[축하드립니다! S급 아이템 <천사의 심장>을 획득하셨습니다!]
‘맙소사, 진짜잖아!’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다 못해 투박한 솜씨로 만들어진 작은 조각상.
이 조각상은 용사였던 성녀가 손수 깎은 것으로, 천사의 심장 부근에는 성녀가 세계를 구하고 받은 성물이 박혀 있었다.
‘있다, 있어. 심장에 푸른 돌이 보여!’
죽어라 구하기 힘든 해주석과 달리 이상하게 다른 용사의 돌들은 만나기 쉬운 거 같은…… 잠깐.
‘이게 왜 저 자식한테 꽂혀 있지?’
그리고 왜 듀크 아인델타는 이걸 뽑아내지 못한 거야?
의문은 많았지만, 나는 말을 삼킨 채 최대한 포커페이스로 조각상을 빼냈다.
“아, 고마워.”
그와 동시에 듀크는 벌떡 일어났다.
나를 향해 생글생글 웃는 얼굴은 몹시 멀쩡해 보였지만, 심장은 여전히 휑하니 비어 있었다.
나는 멍하니 뻥 뚫린 구멍을 보다가 물었다.
“괘…… 괜찮아요?”
보통 저러면 죽지 않나?
“괜찮아, 괜찮아. 곧 멀쩡해질 거야.”
“…….”
내가 구해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왜 살아 있는 거야?
‘능력 덕분인가.’
듀크의 능력은 복제다. 아마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는 복제된 분신인 거겠지.
“걸을 수는 있겠어요?”
“응.”
“그럼 일단 출구를 찾아보죠.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나랑 같이 가게?”
“뭐,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속으로 빈정거렸다.
‘웃기고 있네, 나 혼자 가겠다고 해도 안 놔줄 거면서.’
저 관음증 변태 자식. 네가 나 스토킹하던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보나 마나 놔주는 척하면서 뒤에서 엄청나게 염탐하겠지.
그러느니 차라리 곁에 두고 안전하게(?) 상호 염탐하는 게 낫다.
게다가 듀크 아인델타는 S급 이능력자였다.
‘나 같은 일반인…… 아니, 일반 요정보단 길을 더 잘 찾지 않겠어?’
내가 너 구해줬는데, 설마하니 해칠 건 아니겠지? 은혜를 받았으면 도와줘야겠지?
듀크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배시시 웃었다.
“히힛, 좋아. 같이 다닐래.”
다 큰 성인의 몸을 가진 주제에, 아이처럼 웃으며 듀크는 내게 달라붙었다.
우리는 그렇게 무너진 신전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어둠은 짙었고 신전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넓었다.
‘젠장, 이대로 여기 갇히는 건 아니겠지…….’
듀크 아인델타, 이 S급 놈아! 데려왔으면 뭐라도 해봐!
몰래 힐끗 곁눈질하는데, 놀랍게도 회색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제이드.”
“네, 넷.”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왜인지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었다.
“나, 너 보고 싶었어.”
쾌락 살인마님, 왜 이렇게 친한 척 대하시는 겁니까. 너무 친근하게 달라붙는 말투는 좀 아닌 거 같은데요.
“저번에는 다른 놈 때문에 멀리서밖에 못 봤는데, 가까이서 보니 좋다.”
듀크 아인델타는 히죽, 나를 향해 웃었다.
분명 친근감 넘치는 미소인데도 순간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왜?’
혹시 저거 살인 예고인가? 온갖 시련과 위기를 겪은 내 육감이 본능적으로 위험을 경고하는 건……!
“구해줘서 고마워.”
……아니었나.
‘맞아. 내가 방금 쟤 구해줬었지!’
짐승도 은혜를 안다고 했으니까, 제아무리 쾌락 살인마라도 나를 지금 바로 죽이진 않을 거다.
같은 고등급 이능력자인 카밀로만 봐도 목숨 구해준 에이드리안에게 충성 맹세를 하지 않았는가.
‘물론 이 던전을 나간 뒤에도 듀크가 나를 봐줄 거라곤 보장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당장은 괜찮을 거다.
그리 생각하니 마주한 미소는 순간 경계한 게 민망할 정도로 상큼하고 순수해 보였다.
“뭐, 좋다면 다행이네요.”
물론 보이는 것만 그렇지, 속은 시꺼멓겠지만…… 그래도 긴장한 티 내지 말자.
‘아직 듀크 아인델타는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어.’
괜히 아는 척하며 자극하면 안 돼. 그렇게 내가 소름 돋은 팔뚝을 쓸며 가라앉히던 와중이었다.
“그런데, 제이드.”
목소리는 어느덧 지나치게 가까워져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내 목덜미에 코를 박을 듯 가까워진 듀크는 배시시 웃었다.
“너한테서 달콤한 향이 나.”
히죽, 갈라진 입술에서 날카로운 송곳니가 반짝였다.
* * *
두근, 두근.
가까워진 목덜미에서 맥박 뛰는 소리가 감미롭게 들려왔다.
듀크 아인델타는 정말이지 기분이 좋았다.
제이드 리안, 해리스 고드윈의 반려 가이드.
그의 집착적인 감시 때문에, 자신은 제이드에게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
‘반려 가이드를 얻은 이능력자들은 다들 그렇게 극성맞은 건지.’
쯧- 듀크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약간은 부럽기도 했다.
그가 접한 가이드들은 대체로 그를 가이딩한 후 죽거나 하다가 죽고는 했으니까.
그러니 ‘반려 가이드’ 같은 건 듀크에게 요원한 일이었다.
‘뭐, 별수 없지.’
시작은 마탑주의 의뢰 때문이었지만, 점차 개인적인 흥미와 호기심이 더 커져갔다.
심지어 마탑과 황실의 기습에도 무사히 살아남다니.
‘놀라운걸.’
그런 제이드가 자신 앞에 나타나다니. 그것도 자신이 성물에 공격당한 상황에서 구해주다니.
‘어쩌면,’
듀크는 생각했다.
제이드 리안. 해리스 고드윈의 반려 가이드는 자신과도 상성이 맞을지도 모른다.
듀크는 고등급 이능력자답게 상성이 맞는 가이드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해리스 고드윈처럼 유별난 정도까진 아니었고, 그는 까다로운 도련님이 아니라 입에 들어오는 먹이는 무엇이든 삼키는 주의였다.
‘뭐,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구명의 은혜 따위 모르는 인간 쓰레기 살인마는 씩 웃었다.
해리스 고드윈, 그 머저리는 반려 가이드를 발견해 놓고서도 두 다리를 잘라두지 않았다.
‘최소한 발목 하나 정도는 잘라놨어야지.’
그렇게도 지랄 맞게 집착해 대더니, 정작 이렇게 자유롭게 걸어 다니게 놔두다니. 등신도 이런 상등신이 없었다.
‘덕분에 나야 좋지만.’
일단, 얼마나 자신과 상성이 맞는지부터 파악해 봐야겠지.
듀크 아인델타는 입을 벌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가 상성을 파악하는 방법은 다소 직접적이었는데, 바로 가이드의 피를 맛보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과다출혈로 사망한 가이드도 있어, 듀크 아인델타는 그답지 않게 자제하고 있었지만…….
‘아, 못 참겠어.’
너무 맛있는 냄새였다. 폭력적일 정도로.
거기다 목선마저 먹고 싶게 매끄럽고 우아하다.
‘이쯤 되면 먹어달라는 거지.’
사양 같은 건 모르는 듀크 아인델타가 제이드의 목덜미를 향해 이를 가까이 다가가려던 순간이었다
“아, 정말.”
한숨 섞인 목소리.
휙, 제이드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춰왔다. 커다랗고 푸른 눈동자는 투명하고 맑아, 조금의 공포도 불안도 보이지 않았다.
‘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에 놀란 듀크에게, 제이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뭘 알아?
갸웃거리던 듀크는 이어진 제이드의 행동에 눈이 커다래졌다.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