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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79화 (79/119)

79화

인간 혐오숲 같은 게 따로 있나, 싶겠지만 동자공도 존재하는 <시천귀>에는 없는 게 없었다.

람서스 제국이 건국되고 고드윈의 본성이 지어지기 전, 사실 이 숲은 옛 왕국의 신전이었다고 한다.

세계 구성원의 기본 베이스가 인간인 지금과 달리, 옛 왕국의 시절에는 다양한 종족이 공존하며 살았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고 했지.’

나중에 <시천귀>에서 나오지만, 실제론 그냥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학살당했다고 한다.

‘옛 왕국의 주인에게.’

<시천귀>에서 말하기를, 옛 왕국은 최초로 건국된 인간의 왕국이라고 했다.

그리고 온갖 죄를 지어 멸망을 불러일으킨 악의 축이기도 했다.

이종족과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 당연히 신비의 힘이 깃든 숲에도 자아가 있었다.

자아를 가진 신비한 숲은 다른 종족들을 학살하는 인간에게 격노하여, 극심한 인간 혐오숲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들이 자신의 영역 내에 들어오려 하면 목숨을 앗아갈 기세로 공격한다고…….

‘이해합니다. 그렇게 혐오감을 느끼실 법도 하지요.’

하지만 그게 언제적 일인데!

옛 왕국 시절 일은 아예 <시천귀>에서도 잘 안 나와. 람서스 제국이 대륙 최강국 된 지가 언젠데 지금쯤이면 대충 넘어가 주면 안 될까요?

‘지금은 이제 람서스 제국도 망하기 직전이거든요?’

한 번만 용서해 줘, 아니, 최소한 모른 척이라도 해줘!

제이드가 이렇게 간절하게 빌게 된 것은 주인 잃은 비행 괴수가 아예 숲 쪽으로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을 거야…….”

그래서 필사적으로 R=VD하던 제이드는 디뮈아드가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괜찮, 아아아악-?!”

알 순간도 찾아오지 않았다.

가뜩이나 인간들의 공격으로 다쳐서 흥분한 채 도망치던 비행 괴수가 갑작스레 퍼억! 하고 공격당해 휘청인 것이다.

[끼에에엑!]

“으아아아악-!”

비행 괴수의 추락과 함께 제이드는 비명을 질렀다.

비행 괴수를 후려친 것은 숲 한복판, 거대하게 솟아오른 나무의 펀치…… 펀치?

‘나무가 펀치 같은 건 왜 있어-!’

미친 인간 혐오숲 같으니!

디뮈아드를 꼭 붙든 채 추락하던 제이드는 속으로 절규했다.

이 또한 디뮈아드를 구해야겠다는 희생정신이 아닌, 그냥 공포에 미쳐서 주변에 잡힌 아무거나 꼭 움켜쥐는 본능에 가까웠지만.

‘나 때문에……!’

디뮈아드는 역시나 알지 못하고 자신을 위한 거라 착각했다.

그렇게 착각과 오해가 풀어질 일 없이 단단해지던 와중.

퍼억!

다시 숲의 펀치가 비행 괴수를 갈겨 이번엔 아예 날려버렸다.

[꾸웨에엑-!]

마수와 달리 제이드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별로 든든하지 않던 비행 괴수지만, 아예 그것도 없이 맨 허공에 떨어지는 감각은 정말이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품 안의 소년을 끌어안는 것뿐.

숲의 나뭇가지와 잎사귀가 빠른 속도로 추락하는 제이드의 여린 피부를 스치고 할퀴고 제이드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바로 그때였다.

[……요정의 아이?]

제이드의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 * *

ⓑⓐⓞ

제이드는 몰랐겠지만, 사실 비행 괴수가 숲으로 도망친 것은 최악의 선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소, 소환진입니다-!”

비행 괴수에 매달린 디뮈아드가 숲으로 날아가며 납치가 실패한 뒤, 고드윈 본성을 좌표로 적들이 미친 듯이 꾸역꾸역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억, 헉, 허억……!”

레노르는 이를 악물고 대검을 휘둘렀다.

[크어어- 컥!]

마수의 목이 날아가며 검붉은 피가 솟았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 버둥거리는 사지를 걷어차며 레노르는 피를 퉤, 뱉었다.

비밀 통로에서 갑자기 내뱉어지고 동생이 납치당하는 걸 무력하게 목격만 하던 그때보단 나았다.

나았지만…….

“……끝이 없습니다!”

라예르가의 기사가 절망적으로 고함쳤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적들의 모습은 절로 숨을 턱 막히게 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디뮈아드가 납치되던 순간이 오히려 적의 수가 적었었다.

‘그들의 입장에선 디뮈아드를 납치해가면서 볼일이 끝난 거였을 테니, 더 부를 필요가 없었겠지.’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갑자기 제이드가 비행 괴수 위로 몸을 날리고, 그 위에서 적들의 시체가 마구 떨어졌다.

‘납치 실패!’

레노르가 신께 감사하며 안도한 것도 잠시, 세브릭의 사망으로 폭주한 비행 괴수가 디뮈아드를 태우고 숲으로 날아가 버렸다.

옛 왕국의 죄 이후 봉인된 것이나 다름없는 사악한 숲으로!

“안 돼-!”

고드윈의 주인이 북관에 머무는 이유가 바로 그 숲으로부터 영지민들을 보호하기 위함인 것을 아는 레노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래도 적들에게 납치당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자위하던 것도 순간.

“죽여라!”

임무에 실패했다는 것을 자각한 적들은 허공에 소환진을 띄워 계속해서 무력 인사들을 불러왔다.

일시적으로라도 고드윈 본성을 점령해 디뮈아드를 잡아가겠다는 듯이.

‘이 미친 것들!’

고드윈과 라예르가 모두를 적으로 두고도 무사할 것 같은가?

‘아니, 그건 아닐 거야.’

하지만 이미 들통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손해만 보고 물러나느니 더 큰 손해를 보더라도 확실하게 무엇이라도 수확하려는 거겠지.

‘디뮈아드가 잡히면 라예르가에선 대응하기 어려우니까!’

안 돼. 기껏 디뮈아드가 납치에서 풀려났는데 그렇게 둘 순 없어!

레노르는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적들을 대검으로 계속해서 썰어냈다.

레노르는 아직 버티고 있었으나 그녀 곁을 둘러싼 라예르가의 호위들은 하나둘씩 무너지고 있었다.

“전형을 바꿔!”

시체를 걷어찬 뒤, 전황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던 레노르는…….

“마탑! 이 개새끼들이!”

자신도 모르게 거친 욕을 내뱉고 말았다. 허공의 소환진은 구울을 넘어 이제는 골렘까지 소환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XX!’

레노르는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고드윈 본성에 걸린 고대 수호 마법은 훼손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마법 소환이 이렇게 마구잡이로 가능할 리가 없었을 테니까!

두두두-!

대지에서부터 진동이 울려왔다. 황급히 고개를 돌린 레노르는 어느덧 익숙해진 고드윈의 문양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레노르! 내 손녀 어디 있느냐-!”

다행히 소식을 듣고 황급히 선대 공작의 기사단들이 달려와 합류한 것이었다.

“XX것들이, 내 하나뿐인 외손녀한테서 안 꺼져?!”

서로 데면데면하고 어색하던 외할아버지와 외손녀의 관계는 죽음의 위기가 닥쳐오자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저, 전 무사합니다! 할아버지, 어머니께선……!”

“아이린은 무사하니 너나 신경 쓰거라!”

버럭 고함을 지른 선대 공작은 말 위에서 창을 휘둘렀다.

“크헉!”

단숨에 마법을 소환하던 이의 목이 날아갔다.

고드윈 기사단과 선대 공작의 무력은 본래도 유명한 것이었기에 전세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으나.

“레, 레디안 백작!”

“전 괜찮…… 컥! 물러나십시오, 각하!”

아무리 그래도 물량 공세를 버텨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어느덧 레노르와 선대 공작은 등을 마주하고, 그들 주변으로 고드윈과 라예르가의 기사단이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포위됐다.’

그제야 레노르는 깨달았다.

디뮈아드를 확보하지 못한 지금, 차라리 아이린 공녀나 자신을 납치해서라도 디뮈아드를 협박하려는 것이다.

두 사람을 살리고 싶으면 제 발로 나와서 복종하라고…….

‘……그렇게 둘까 보냐!’

차라리 죽고 말지, 그딴 식으로 살진 않겠어!

레노르는 투지의 눈빛으로 대검을 휘둘렀지만.

캉-!

뼈와 살을 가르던 대검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투로 날이 망가지다 못해 결국 부러져 버렸다.

“……!”

낭패의 순간, 목이 부러진 구울 뒤로 용병의 손이 그녀의 멱살을 잡아챘다.

“레노르!”

그렇게 끌려갈 뻔한 순간이었다.

싸아아-

피와 살육의 혈기로 뜨겁던 공기가 일시에 서늘해졌다.

발치의 그림자들이 연기처럼 일어나더니 적들의 발목을 잡고 그들 위로 기어 올라갔다.

“이, 이게 뭐야!”

레노르의 멱살을 잡았던 용병이 고함을 질렀지만, 그가 말을 잇기도 전에 목까지 올라온 검은 연기가 그의 턱을 움켜쥐고 비틀었다.

으드득-!

사람의 죽음을 처음 본 것도 아니건만, 레노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어졌다.

기이한 감각이었다.

살육의 광기에 휩쓸려 상대를 무조건적으로 학살하려던 순간보다, 바로 앞에서 일어난 일이 더욱 불길하고 두렵게 느껴졌다.

‘이건…….’

굳어 있던 레노르는 흠칫 떨었다.

자신의 검에 묻어 있던 핏줄기보다도 새빨간 눈동자. 켜켜이 쌓인 그림자보다도 어두운 머리카락. 너무나 희어 인간 같지 않은 얼굴.

“제이드는?”

동굴의 어둠처럼 낮은 목소리.

“해, 해리스 고드윈…….”

그가 귀환했다.

‘왜? 어떻게?’

분명 그가 갔다는 던전은 여기서부터 한참 먼 거리일 텐데-?!

이성적인 의문은 왜인지 모를 위압감에 억눌리며 신경이 곤두섰다.

“……읏!”

고드윈 본성을 머무는 동안, 레노르는 해리스를 관찰하며 ‘조사 결과가 지나치게 흉흉하게 과장된 거 같은데’ 하고 의심했었다.

‘아니야.’

그리고 지금, 레노르는 그게 얼마나 순진한 착각이었는지 깨달았다.

인간적이고 다정하게도 보였던 얼굴은 오직 그의 가이드, 리안 남작에게만 허용되었던 것일 뿐.

“제이드, 어디 있어.”

그녀가 아닌 이들에게는 이토록 비인간적으로 섬뜩한 것이다.

생물이라면 가지는 본능적인 거부감에 레노르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치던 순간이었다.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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