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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78화 (78/119)

78화

상식적으로, 누군가 비행 괴수에 잡혀 납치당한다고 해서 창문 밖으로 달려 나와 잡으려 하는 가이드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으아아아-!!”

그리고 제이드는, 언제나 상식 외의 존재였다.

물론 그 사실에 대해서 가장 유감스러워하는 건 당사자였다.

‘내가 미쳤나!’

진짜 뒤지려고 작정한 것도 아니고!

피눈물을 흘리는 속과 반대로, 제이드는 세브릭과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번개같이 총을 꺼내 들었다.

정확히는 총을 ‘소환’했다.

‘감사합니다, 언노운 던전! 감사합니다, 돌발 퀘스트!’

새삼 해리스의 광폭화를 해결해내고 얻은 보상에 감사하며, 제이드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체내 마력이 빠르게 소모되는 감각에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지만, 그렇게 생성된 마탄은 일반 총기와 비교도 할 수 없는 파괴력을 자랑했다.

“크아악……!”

디뮈아드에게 재갈을 물리고 눈마저 막으려던 사내의 어깨를 꿰뚫은 것으로 모자라 그를 비행 괴수 아래로 추락시킨 것이다.

봉제 인형 괴수를 단숨에 제거했던 때처럼.

시야가 트인 디뮈아드의 와인색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제이드?”

이 모든 것은 제이드가 추락한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보인 제이드는 아슬아슬하게 비행 괴수 위로 착지하는 데 성공했다.

“허억, 헉, 허억-!”

너무 아슬아슬해!

제이드는 하마터면 미끄러질 뻔해 황급히 괴수에 매달렸다.

‘미친 하이 스펙 바디……!’

개그지 같은 세계에 빙의시킨 건 유감이지만, 그 와중에 이런 몸에 빙의한 것은 정말이지 천운이었다.

헐떡이는 제이드 뒤로 카밀로가 소리 없이 착지했다.

‘제이드 님은 정말 대단하시군!’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목적을 위해 기꺼이 천공에 몸을 던지는 패기, 적을 마주하는 즉시 반응하는 놀라운 반사신경, 그리고 신기에 가까운 사격 실력까지!

‘역시, 그분의 동생다워.’

이렇게 다 생각이 있어서 움직이신 거였어. 무작정 생각 없이 몸을 던진 것처럼 보인 것조차 내 반응을 확인하기 위한 수였겠지……!

카밀로는 감복한 얼굴로 휘청이는 제이드를 뒤에서 받쳐주었다.

“가, 감사…….”

제이드는 헐떡이며 인사했다.

착지에 안도한 것도 찰나, 뒤늦게 몰려온 충격에 쿵, 쿵-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었다.

‘사람을 쐈어.’

그리고 추락시켰다. 아마 죽었겠지.

물론 그러기 위해서 쏜 것이었다.

하지만, 괴수를 상대로 총을 쏜 적은 많았어도 사람을 쏜 것은 처음이었다.

죽음으로 몰아간 것도…….

제이드의 얼굴은 핏기없이 창백해졌다. 모럴리스 세계에 빙의한 지 오래지만, 그래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기엔 너무 큰 일이었기 때문이다.

“……너, 너는!”

그렇게 제이드가 충격에 얼어붙은 찰나, 그녀를 알아본 세브릭은 경악 어린 외침을 뱉었다.

‘어떻게 네가 여기에?!’

설사 해리스 고드윈이 갑자기 튀어나와도 이보다는 놀라지 않을 것이었다.

세브릭은 충격과 혼란, 배신감이 뒤엉킨 얼굴로 손가락질했다.

“너는 분명 마탑주님의……!”

그러나 말이 끝내진 못했다.

으드득-

세브릭의 얼굴이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카밀로는 방심한 마법사의 목을 비틀고 그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누구 앞에서 손가락질이야.”

서늘한 눈빛으로.

갑작스럽게 나타난 두 개의 인영. 그리고 순식간에 사망한 대장.

“이, 이 무슨-!”

그렇게 비행 괴수 위에 올라탄 무리가 일시 정지한 순간, 카밀로는 빠르게 움직였다.

‘제이드 님께서 먼저 실력을 보여주셨으니, 나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겠지.’

충격에 얼어붙은 제이드의 모습을 ‘자, 이제 네 솜씨를 보여라’라는 것으로 착각한 카밀로는 검을 들었다.

방심하고 굳어진 적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카밀로의 검은 그들의 목을 베고 목숨을 앗아갔다.

“으헉……!”

“컥-!!”

비명과 함께 사람과 시체가 떨어졌고, 비행 괴수 위의 인영들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하아, 하…….”

간신히 충격에서 벗어난 제이드는 어느덧 사태가 마무리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디…… 디뮈아드를 찾았어.’

저 애가 납치당하지 않게 막았다. 그래, 그러면 된다. 그것을 위해 자신이 이렇게 정신 나간 것처럼 몸을 던졌으니까…….

하지만 안도는 일렀다.

[끼에에에-!]

조종자, 세브릭이 죽어버리면 비행 괴수가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세브릭의 사망으로 조종자를 잃은 비행 괴수는 혼란스러워하며 방황했다.

“으악!”

“으갸갸갹-?!”

그 위에 올라탄 디뮈아드와 제이드는 더욱더!

소환 마수가 천공에서 날뛰며 마구 난동을 피우자, 얼어 있던 제이드의 몸이 순식간에 미끄러졌다.

“제이드 님-!”

다행히 카밀로가 제이드를 잡아주었지만.

“카, 카밀로?!”

제이드의 동공이 흔들렸다. 충격의 여파로 카밀로가 대신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 괜찮으니 중심을 잡으십시오-!”

정작 카밀로는 추락하며 제이드에게 외쳤다.

제이드는 추락하는 와중에도 순식간에 또 다른 외형으로 탈피하는 카밀로를 보며 입을 쩍 벌렸다.

‘무…… 무사하겠지?!’

일단 외형이 바뀌어서 어디로 떨어졌는지조차 이젠 못 찾겠다.

그리고 더 찾아볼 여력도 없었다.

“으아악!”

“디뮈아드?!”

폭주하는 비행 괴수 때문에 이젠 디뮈아드마저 떨어질 위기였기 때문이다!

제이드는 황급히 떼굴떼굴 굴러떨어질 법한 디뮈아드를 몸으로 받쳤다.

“으헠!”

신음이 절로 나왔다.

이 자식, 무거워……!

조종자를 잃은 비행 괴수가 미쳐 발광하며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거기에 쌀 0.65가마니(대략 50kg)를 정통으로 얻어맞기까지!

아무리 공포 저항이 있고 위기에 강한 제이드라도 타격이 컸다.

‘사, 사람 살려-!’

진짜 죽을 거 같아! 해리스, 내 만능 S급 이능력자 어디 있어! 니 가짜 가이드 다 죽어간다……!

디뮈아드를 꼭 끌어안은 제이드는 속으로 울며불며 필사적으로 비행 괴수에게 매달렸다.

“디뮈아드 님!”

“리안 남작-!”

“잡아!”

아래에서 실상을 파악한 사람들은 제이드와 디뮈아드를 구하기 위해 비행 괴수를 공격했지만…….

[꾸에엑-! 뀨익!]

도리어 독이 되었다.

공격당해 한층 난폭해진 비행 괴수가 동관을 넘어 북관으로, 북관 뒤편의 스산한 숲 쪽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안 돼, 저기는!’

패닉에 빠진 제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한층 더 강하게 디뮈아드를 끌어안았다.

“……!”

디뮈아드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자신을 꼭 감싸 안는 제이드를 바라보았다.

‘떨고 있어.’

얇은 선의 몸이 겁을 먹은 듯 바들바들 떨려오는 게 맞닿은 신체로 느껴졌다.

그런데도 놓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을 구하겠다는 듯이.

‘왜?’

디뮈아드의 자주색 눈동자가 떨려왔다. 너는 대체 왜,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디뮈아드, 안 돼!’

머릿속에 레노르의 비명이 울려왔다. 함께 처절하게 자신에게 손을 뻗던 얼굴도.

디뮈아드는 모든 것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 시야가 자신의 마지막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신을 위해 희생하던 누이.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실질적으로 키워준 보호자.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을, 마지막까지 눈에 새겨넣겠다는 듯 디뮈아드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응시했다.

그대로 천공에 날아오르기 전까지.

언제나 신경질적이고 오만하던 디뮈아드였지만, 입에 재갈이 물리고 눈이 가려지는 순간 질식할 것만 같은 절망이 몰려왔다.

하지만.

‘각성한 순간부터 결심했잖아.’

내 끝은 내가 정하겠다고.

그리고 지금이 내가 정한 그 끝이다.

디뮈아드가 떨리는 눈을 감고 입 안쪽에 숨겨둔 독을 삼키려던 순간이었다.

탕-!!

제이드가 등장한 것은.

머리를 울리는 격발음. 멈칫한 디뮈아드는 그를 억누르던 사내의 기척이 멀어진 것을 인지했다.

눈가를 덮던 천이 바람에 날아가며 시야가 풀려난다.

그리고…….

“디뮈아드!”

천공에 분홍색 곱슬머리를 휘날리는 소녀 하나가 그의 모든 신경을 장악했다.

자신을 납치한, 찢어 죽이지 못해 한이 맺힌 적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 순간에도 디뮈아드는 제이드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윽~!”

시야가 정신없이 흔들리고, 하마터면 굴러떨어질 뻔한 자신을 그녀가 꼭 끌어안는 순간에도.

“……괜찮아.”

특기인 총을 쏘지도 못하고, 비행 괴수에 흔들려 어떻게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매달려 있을 뿐인 제이드가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면서도 자신을 위로하듯이.

‘왜?’

디뮈아드는 죽고 싶었다. 울고 싶었다.

무력한 자신이 비참해서 죽고 싶었고, 그러면서도 제이드가 자신을 구하러 와줬다는 사실에 울고 싶었다.

자결의 각오가 흐트러지자 억누르던 감정이 머리끝까지 터져 올렸다.

왜 하필이면, 당신이.

어째서 당신은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마저 점령해 가는가.

누군가에겐 다정함은 독이었고, 애정은 죽음이었다.

디뮈아드는 제이드를 처음 본 순간부터 직감했다.

저 사람은 자신에게 독이며 죽음이 되리라고.

그리고 이를 안다 해도, 자신은 거부조차 하지 못할 것이라고…….

모를 수가 없었다.

처음 시야가 마주친 순간부터 알았다.

낯설고 시끄러운 연회장, 불쾌한 술 내음과 향이 뒤엉킨 공간. 경계와 적의, 의심이 뒤엉킨 시선들. 자신 때문에 오욕과 수치를 감당하는 어머니…….

차라리 머리 위의 샹들리에가 떨어져 죽어버리길 바라던 순간.

‘해리스 님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태생적으로 예민한 신경이 이상하게도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빨려 나가듯 집중되었다.

그러나 디뮈아드는 운명을 거부하듯 발버둥 쳤다.

제이드를 밀어내고 모욕하며, 그녀가 어떻게든 자신을 미워하게끔 만들려고 했다…….

‘너만큼은.’

그것은 운명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삶에 그녀까지 휩쓸리지 않기를 바라는 뜻이기도 했다.

디뮈아드가 사랑하는 여자들은 언제나 그로 인해 희생되곤 했으니까.

그랬는데, 그렇게도 밀어냈는데. 어째서 당신은…….

금방이라도 울 듯 일그러진 디뮈아드의 얼굴을 보지 못한 제이드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 거야. 어떻게든 괜찮게 될 거야……!!’

디뮈아드가 위로라 착각했지만, 사실은 너무 무서워서 셀프 위로를 되뇌고 있었을 뿐인 제이드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제발 저 숲에서 추락하면 안 되는데!’

저건 인간 혐오숲이란 말이야-!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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