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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77화 (77/119)

77화

“디미, 안 돼-!”

라예르가의 소후작이 피를 토하듯 고함쳤지만, 디뮈아드는 이미 세브릭이 올라탄 비행 괴수에게 낚아채진 지 오래였다.

세브릭이 납치에 합류한 것은, 비행 마법 괴수를 소환해 조종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어차피 고대 마법에 손을 쓰는 건 마탑주님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그리고 고드윈의 피와 함께 준비한, 마탑주가 마법을 불어넣은 마력석은 동관의 고대 흑마법 일부를 훼손하고 디뮈아드 라예르가를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

‘쯧쯔, 그러니까 선대 공작의 힘이라도 끌어 썼어야지.’

아이린 공녀는 자기 자식 지킨다고 친정을 개박살 낼 것 같으니, 아버지는 미리 바깥으로 내보낸 것이다. 고드윈의 가신 중 하나를 이용해서.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쓸 수 있는 패라면 모두 썼어야지. 설사 그것이 해리스 고드윈이라도.

하지만 아이린 공녀는 해리스 고드윈을 조카라기보다는 디뮈아드 라예르가를 노릴 법한 이능력자로만 인식했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과 조카에 대한 경계심, 그리고 동관의 고대 흑마법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 그녀의 패인이 되었다.

물론 지금쯤이면 모두를 쳐 죽였을 아이린 공녀도 그 사실을 깨달았겠지만…….

‘이미 늦었어.’

디뮈아드 라예르가는 이미 세브릭이 조종하는 비행 괴수 위로 올라와 있었다.

고드윈 성이 아무리 강력한 방비를 가졌다 해도, 천공을 이용한 비행 이동은 막을 수 없다.

물론 단점이 없진 않았다.

“공격해!”

디뮈아드를 납치한 이상, 그들 또한 언제까지나 정체를 숨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퍽-!

레노르가 던진 투포환 마도구의 공격에 투명화 마법이 깨졌다.

“저들의 발을 묶어! 디뮈아드를 구해……!”

레노르를 중심으로 한 라예르가의 호위들이 하늘 위로 뜬 비행 괴수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세브릭이 먼저였다.

“메테오.”

마탑주 엘리시어스가 준 두 번째 마력석이 세브릭의 손안에서 반짝였다.

그리고 첫 번째 마력석과 마찬가지로 파사삭 깨지더니 하늘에서 메테오가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으아악-!”

“아, 안 돼……!”

“소후작님을 보호하라!”

쿠웅!

쏟아지는 메테오 속, 라예르가의 호위들은 어쩔 수 없이 디뮈아드를 포기하고 레노르를 보호했다.

그들에겐 둘째 공자인 디뮈아드보다는 후계자인 레노르가 더 중요한 존재였다.

“디뮈아드-!”

레노르는 절규했지만, 이미 사태는 기울어있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공격과 하늘을 통한 도주는 제아무리 힘을 써도 막기 힘든 것이었으니.

‘……해냈다.’

계획은 모두 이루어졌다.

짧은 메테오 시전 시간을 알아 긴장하던 세브릭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비록 희생이 없진 않았지만, 설사 전부 다 죽는다고 해도 디뮈아드 라예르가를 확보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일이었다.

“읍, 읍!”

그렇게 만족하는 세브릭 뒤로, 그의 수하들이 반항하는 디뮈아드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눈을 막고 있었다.

모든 게 완벽하다며 안심하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저 미친 것들이 쌍으로!”

상황을 목격한 제이드가 난입한 것은.

* * *

‘쟤가 왜 저기 있어?!’

밤을 새워서 약간 몽롱하던 제이드의 정신은 뒤통수를 맞기라도 한 듯 충격이 아려왔다.

디뮈아드는 그냥 하늘에 떠 있는 게 아니라, 납치당하고 있었으니까!

‘대, 대낮에 이런 미친 짓을 한다고?’

아이린 공녀의 진짜 목적을 알게 된 이후, 제이드는 의문스러웠다.

디뮈아드의 능력은 대충 짐작이 가지만, 라예르가를 적으로 돌리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미친 것들은 대체 누굴까?

‘황실? 마탑??’

둘 중 어느 쪽일까 고민했는데, 둘의 합작이었잖아-!

“저 미친 것들이 쌍으로!”

당황한 제이드의 몸은 머리가 움직이기도 전에 반응했다.

다짜고짜 달려가, 테라스 너머 비행 괴수에 붙잡힌 디뮈아드에게 몸을 던진 것이다.

“……!”

가만히 듣고 있다 제이드 뒤를 따라간 카밀로는 감탄했다.

“과연 제이드 님! 라예르가의 둘째 공자마저도 확보하시려는 거였군요! 확실히 공자의 능력은……!”

그러나 추락하는 제이드는 뒤따라오는 카밀로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끼야아아악-!’

내가 미쳤나!

구해야겠다 싶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진심은 아니었는데?!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동관에서 나오지 마. 무조건 내 거처에 처박혀 있어.’

던전으로 떠나기 전 해리스는 신신당부했었던 말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무슨 수호 결계 마법이 걸려 있다고 했었지……!’

하지만 그땐 생각이 많고 머리가 복잡해 제대로 말을 못 들었다!

불행히도 후회하긴 이미 늦은 상태였다.

비행 괴수의 소환자와 눈이 마주쳐버렸으니까.

“……너, 너는!”

상대가 당황하는 찰나, 허공으로 추락하던 제이드는 빛과 같은 속도로 총을 꺼내 쏘았다.

탕-!!

* * *

던전 안.

“후…….”

해리스는 짜증스럽게 대장 마수의 목을 부러뜨렸다.

[꾸웨에에엑-!]

비통한 단말마.

그의 수족들은 제이드와 떨어진 이후 급격히 기분이 저조해진 해리스가 두려워 황급히 시선을 깔고 다른 마수들을 처리했다.

[꾸익- 케헥!]

연이은 괴성들이 점차 잦아지며, 해리스는 눈앞에 뜬 반투명한 계시를 대충 날려버렸다.

‘끝났나.’

허물어지는 던전을 바라보던 해리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라예르가의 둘째 애새끼, 디뮈아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애새끼 때문이겠지.’

던전으로 오기 전, 제이드와 대화하던 순간 해리스는 깨달았다.

아이린 공녀는 디뮈아드를 구하기 위해 라예르가를 떠나 고드윈으로 도망쳐 왔다는 사실을.

‘본성의 보호 마법 때문이군.’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초대 고드윈의 아내는 강력한 마법사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들의 안전을 걱정한 그녀는 가족들의 거처에 사멸해가던 고대 수호 마법을 걸었다.

자신의 피로 손수 그려서.

피의 마법이라는 것에서 알겠지만 흑마법이었다.

고대 마수 ‘공허’ 덕분에 흑마법은 대륙에서 가장 사악하고 불길한 마법으로 취급당하고 있었다.

물론 마법사의 탑에서는 그들 또한 받아주었으나, 세간의 인식 개선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이는 고드윈의 직계 혈족들에게만 대대로 전해지는 비밀이 되었다.

‘고드윈의 직계 혈족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마법.’

직계의 기준은 고드윈 공작 가문의 가보로 정해진다. 해당 가보의 소유자 직계 자손들에게만 영향이 가는 것.

그로써 노먼 고드윈이 가보를 물려받지 못한 지금, 아이린 공녀의 자식인 레노르와 디뮈아드 또한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아이린 공녀는 그를 노리고 후계권 핑계로 고드윈에 들이닥친 것이다.

‘제이드는 몰랐겠지만.’

방문할 이유는 무엇이건 상관없었을 거다.

그런데도 후계권을 운운한 것은, 라예르가의 둘째 공자 디뮈아드가 고드윈의 동관에 최대한 오래 머물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핑계였기 때문이었던 거고.

‘그리고, 그 여파로 벌어질 피해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을 테지.’

해리스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는 아이린 공녀에게 별 유감이 없었다. 그라도 자신을 배신한 동생의 아들을 위해 나서진 않았을 테니까.

이해한다.

그러니, 자신이 나서줄 이유가 없다는 것 정도는 상대도 이해하겠지.

‘……아무래도 제이드는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제이드는 정말로 아이린 공녀와 라예르가의 둘째 공자를 도와주고 싶어 했으니까.

“제이드, 제이드…….”

선량하고 순진한, 나의 제이드.

무너지는 던전 속, 해리스는 나른히 그 이름을 읊조렸다.

어쩔 수 없다. 그토록 다정하고 무구한 성품이 아니었으면, 자신에게도 다가오지 않았겠지.

그러니 이해했다.

제이드는 정말로 그가 아이린 공녀와 라예르가의 잡것을 도울 거라 믿고 있으리라는 것도.

‘그럴 리가 없잖아.’

어리석은 착각이 사랑스러워 해리스의 붉은 입꼬리가 휘어졌다.

후계자로 인정받는 것? 그를 위한 축하 연회? 해리스는 그 모두에 별달리 기대하진 않았다.

연회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었으며 후계자로 인정받는 것 또한 당연한 자신의 권리였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망쳐져도 좋다는 것은 아니었다.

제이드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편을 들고, 완벽한 후계자 축하 연회를 만들려 애썼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 애에겐 첫 연회였겠지.’

축하 연회가 기대된다며 반짝이던 눈동자가 지금도 선했다.

아이린 공녀의 등장으로 당황하고, 이어진 공격으로 얼어붙던 것까지도.

‘가만둘 수 없어.’

자신에 대한 모욕은 괜찮다. 아이린 공녀는 원한을 가질 권리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제이드는 아니었다.

정말로 진심으로 후계권을 빼앗으려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리하여 해리스는 동관의 보호 마법에 손을 더했다.

[고드윈의 혈족을 지켜라.]

-라는 수호의 명제에,

[하지만 고드윈의 혈족 중, 후계자가 거주하는 거처를 최우선적으로 지켜라.]

새로운 조건을 더한 것이었다.

흑마법의 근원, ‘공허’의 반신인 해리스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 뒤 해리스는 제이드에게 자신의 거처에 머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던전에 들어서기 전까지도 ‘영역’으로 지정된 자신의 거처에서 제이드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갔다 오는 동안 일이 터지는 게 제일 좋을 텐데…….’

해리스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선대 공작에게 이 던전을 해결해 달라 애걸한 가신은 아이린 공녀의 충성적인 수하이며, 던전이 터진 것은 그가 말한 시점보다 한참 전이라는 것도.

그런데도 굳이 지금 해결해 달라 요청한 게 아이린 공녀가 자신을 경계해 내쫓기 위해서라는 것도.

알고도 넘어가 주었다.

그러면 제이드가 도와달라고 했어도 자신은 공교롭게도 막 터진 던전을 해결하느라 자리를 비워 어쩔 수 없이 돕지 못한 것이 될 테니까.

자신으로 인해 제이드가 실망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납득할 테니까.

그리 예상하던 해리스는, B급 던전을 홀로 파괴하고 나와 ‘영역’을 확인하다가 굳어졌다.

“……제이드?”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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