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쨍-
봉제 인형의 팔과 함께 날아간 칼날이 바닥에 퍽! 하고 꽂혔다.
그와 동시에 디뮈아드의 무릎은 힘이 빠진 듯 털썩, 주저앉았다.
너무 놀란 소년의 어린 흉곽이 크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하아, 하…….”
심장이 시뻘겋게 펄떡였다.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디뮈아드는 제이드에게서 시선을 떼어내지 못했다.
이 심장 박동이, 단순히 공포나 두려움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도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제이드의 옆얼굴. 디뮈아드는 섬세한 이목구비의 선과 촘촘한 속눈썹 하나하나까지 뚫어지게 바라보다 퍼뜩 놀랐다.
“괜찮, 아……?”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커다랗고 파란, 너무나 아름다운 눈동자.
그 어떤 사파이어라도 이보다 투명하진 못하겠지.
“어디 다친 곳은 없어?”
헐떡이는 와중에도 제이드의 목소리는 맑게 울려왔다.
멍하니 제이드를 응시하던 디뮈아드의 와인빛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미려한 소년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풀어지던 순간이었다.
[뀨익…….]
죽어가는 봉제 인형의 단말마가 귀청에 울려왔다. 디뮈아드는 갑작스러운 환상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거칠게 고개를 돌렸다.
“……머, 멀쩡하거든?”
크게 들썩이던 가슴을 억지로 누르듯 심호흡하며, 디뮈아드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듯 더욱 사납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너, 은근슬쩍 말 놓지 마!”
“……아, 예.”
목숨을 살려줬는데도 꼰대질이라니, 진짜 성격하곤.
제이드는 거친 호흡을 고르며 생각했다.
‘일단 멀쩡한 모양이네.’
안 멀쩡했으면 말투 같은 게 귀에 들어오긴 했겠는가? 하여간 진짜 큰일 날 뻔했다.
‘아니, 사실 진짜 큰일 난 건 나지.’
제이드는 권총을 보며 한숨을 삼켰다. 몰래 들고 다니는 거라서 최대한 안 꺼내려 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 죽게 둘 순 없으니까.’
그 사람이 비록 저렇게 싸가지 없는 애새끼 디뮈아드라도…….
제이드는 한숨을 삼키며 눈빛을 바로 했다.
‘그리고 아직 안 끝났어.’
철컥, 탄환이 채워지는 소리와 함께 제이드는 곧장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총을 쐈다.
탕-!
“……?!”
다 끝난 줄 알았던 디뮈아드는 펄쩍 뛰었다. 분명 허공을 쏜 것처럼 보였는데, ‘윽!!’ 하는 비명이 들려왔던 것이다.
‘역시!’
외형만 봤을 때부터 의심한 거지만, 저 봉제 인형 괴수는 자연적인 마수처럼 보이지 않았단 말이지.
‘공격에 고통을 전혀 입지 않았어.’
즉, 생명체가 아니라 조종당하는 인형에 가깝다는 것.
그렇다면 조종자 또한 자신들을 지켜보고 어떻게 공격할지 조종해야 할 테니, 근처에 있을 수밖에 없다.
‘사각지대에 몰고 갔음에도, 시야가 막히지 않고 정확히 공격해왔었지.’
그렇다는 건 두 가지다.
상대가 이 봉제 인형의 의식에 빙의했다거나, 아니면 사각지대에서도 막히지 않는 시야 내 빤히 지켜보고 있거나!
제이드는 후자에 가능성을 두고 공격했고.
“으윽-!”
그 추측은 정확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던 공간 속, 공기가 일렁이더니 어떠한 그림자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제이드는 한 손으로는 철컥, 총을 겨누고 다른 손으로는 후방의 디뮈아드를 보호한 채 다가갔다.
“뭐 하는 놈이냐.”
맑게 울리면서도 단호한 목소리.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발걸음에는 긴장이 깃들여 있었다.
“당장 나와!”
갑작스럽게 등장한 인형 괴수의 습격.
닥친 상황에 맞춰 몸은 즉각적으로 공격 모드로 전환되었으나, 사실 제이드의 머릿속은 거의 패닉 상태였다.
‘이거 뭐야! 이거 뭐야! 이거 뭐야-!’
이렇게 고드윈 본성 내에서 공격당해도 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안전지대 하나 없는 건 너무 하지 않아?!
속으로 찔끔 눈물이 나왔다.
진짜 선대 공작님, 보안을 대체 어떻게 하는 거…….
“……흐음.”
귓가에서 들려오는 나붓한 목소리.
“생각보다 잘 싸우네?”
“으갸가악-!!”
제이드는 소금 맞은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올랐다.
싱긋, 눈이 마주치자 웃어 보이는 깊은 자주색 눈동자의 주인은.
“아, 아이린 공녀님?!”
“그래, 나다.”
총구를 코앞에 두고서도 아이린 공녀는 조금의 두렵지 않다는 듯 느긋하게 미소 지었다.
“어, 어떻게…….”
댁이 여기서 왜 나와?!
그제야 제이드는 자신이 후방에 두며 보호하던 디뮈아드가 사라지고, 어느덧 아이린 공녀가 다가와 있음을 깨달았다.
“…….”
먼발치의 디뮈아드는 창백하고도 무표정했다. 그리고 아이린 공녀 뒤편, 무수한 라예르가의 경호 인력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
이게 다 뭔 일이야.
아이린 공녀는 당혹하면서도 재빠르게 상황을 훑어보는 제이드를 웃는 낯 그대로 빤히 지켜보았다.
‘제이드 리안.’
리안 남작. 해리스의 반려 가이드. 괴팍한 아버지마저도 총애하는 어여쁘고 영특한 소녀.
활자 속 정보로 알아 온 그녀는 정말……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는 인물이었다.
사랑스럽고 무구해 보이는, 조금의 전투력도 없어 보이는 외형과 달리 제이드는 봉제 인형이 나타나자마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 뒤로 이어진 놀라울 정도의 판단력, 그리고 자유롭게 공수 전환을 시도하는 대담함과 용맹한 사격 솜씨까지.
‘근본적으로 전투 센스가 좋아.’
저건 타고난 거다. 아이린 공녀는 감탄했다.
언노운 던전에 해리스와 동행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냥 주인 믿고 얌전히 곁에 달라붙어 있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역시 삶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해준다.
그러나 아이린 공녀가 제일 놀랐던 것은……,
‘디뮈아드를 보호하다니.’
딱히 어떠한 계산이나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제이드는 봉제 인형이 등장하자마자 곧장 디뮈아드 앞에 서서 그를 보호했다.
약자와 어린이를 보호한다는, 일종의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
“…….”
아이린 공녀의 와인색 눈동자가 짙어졌다.
제이드의 행동은 자신의 예상을 너무나 벗어나 있었기에, 그녀는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 일로 제이드의 행동 양식을 분석했으니, 더는 놀랄 게 없…….
“미쳤어요?! 어딜 총 든 사람한테 이렇게 가까이 붙어요!”
……을 거라고 판단했는데.
아이린 공녀는 자기보다 한참 어리고 미천한 소녀가 푸른 눈을 부릅뜨고 자신에게 화를 내는 모습에 잠시 멍해졌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제이드는 아이린 공녀의 반응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으악, 깜짝 놀랐네!’
하마터면 쏴버릴 뻔했잖아-!
심장이 아직도 벌렁벌렁했다. 갑자기 바로 옆에서 아이린 공녀가 튀어나오다니!
순간 너무 놀라서 반사적으로 방아쇠에 얹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었다.
“……다시는.”
다행히 제이드는 아이린 공녀 뒤에 안전한 디뮈아드를 보고 나서야 간신히 정신 차린 상태였다.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다가 아이린 공녀에게 엄격한 표정을 지었다.
“총 든 사람 이렇게 놀라게 하지 마세요.”
난 고드윈 vs 라예르가 전쟁의 시발점 같은 건 될 수 없다고!
“알았어요? 대답하세요!”
“……그, 그래.”
제이드가 뿜어내는 무언의 박력에 자신도 모르게 밀려나 버린 아이린 공녀는 그리 대답했다.
“조심하마.”
“하…….”
대답을 듣자마자 제이드는 긴장을 토해 내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큰일 날 뻔했다.’
총을 넣고 이마를 쓸던 제이드가 멈칫했다.
‘잠깐,’
아이린 공녀, 등장한 타이밍이 너무 좋지 않아? 하필이면 모든 게 다 끝나갈 무렵에 이렇게 나타나다니…….
퍼뜩 고개를 들자, 자신이 총을 쏜 조종자 쪽 방향에서 머쓱한 얼굴의 사내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주인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괜찮다.”
아이린 공녀는 다시 군주의 얼굴로 돌아가 자비롭게 말해주었다.
“리안 남작의 실력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높을 줄 어떻게 알았겠느냐?”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제이드는 기겁하고 아이린 공녀와 봉제 인형을 주섬주섬 줍는 사내를 돌아보았다.
“서, 설마…….”
이게 다 짜고 치는 플레이?
나 하나 테스트할 겸 세트장 만들었다 이거야?!
‘심지어 자기 집도 아니고 아빠 집에서 이런 깽판을?’
그것도 그냥 아빠 집이 아니라 제국의 3대 가문 중 하나인 고드윈 공작 가문의 본성, 심지어 후계자와 직계만 머무는 동관에서?!
‘뭐 이런 미친 인간이……!’
-라는 눈빛으로 아이린 공녀를 보았지만, 이미 그녀의 눈빛은 제이드의 반대편을 향하고 있었다.
“비록, 원래의 목적은 달성하진 못했지만…….”
그녀의 아들, 디뮈아드에게.
입을 꾹 다문 디뮈아드는 주먹을 움켜쥔 채 자줏빛 눈동자를 아래로 깔았다.
‘심지어 쟤도 알고 있었어?!’
제이드는 디뮈아드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제야 그녀는 디뮈아드가 일관적으로 자신에게 도망치라고, 꺼지라고 계속해서 밀어냈던 것을 기억했다.
“하.”
다 알고 짜고 치는 판이었다니. 제이드는 기가 차서 이마를 잡았다.
라예르가, 대체 얼마나 미친 가문인 거야!
* * *
‘진짜 뭐 그런 게 다 있담.’
나는 거처에 들어와서도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안 남작.”
라예르가를 대표해서 나를 내 거처까지 에스코트한 레노르는 멋쩍은 얼굴로 인사했다.
“동생을 지켜주어 진정으로 감사하오. 이번 일은…….”
“짜고 치는 판?”
“……큼.”
나의 불신 어린 눈빛을 받은 레노르는 차마 부정하지 못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총명한 그대라면 이미 짐작했겠지만, 디뮈아드는 적이 많아. 어머니는 그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라도 대처하실 수 있도록 교육하길 원하시오.”
앗, 그렇군요.
“정신 나갔네.”
“……리안 남작, 속의 말이 튀어나왔소.”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