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이상하다? 무엇이?”
저 반짝이는 눈빛에, 잘난 체하고 싶어 하는 사내들처럼 입을 털어버리고 말았다.
“라예르가 후작 부인. 너희 식으로 부르자면 아이린 공녀.”
“……!”
이어진 말에 제이드는 눈이 커졌다. 알루카스는 우쭐해진 자신이 기분 나빠져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의뢰인은 라예르가 후작이 아닌 그녀였지. 그리고 우린 의뢰대로 그자를 가져다줬어. 그런데…….”
정작 아이린 공녀는, 알루카스가 가져온 결과를 보고서도 조금도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제이드는 놀라지 않았다.
아이린 공녀를 의심하게 되면서, 라예르가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는 알아둔 상태였다.
십여 년 전 과거, 라예르가에서 일어난 역병은 그야말로 참사였다. 영지민들도 피해가 컸지만,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라예르가 후작 가문이었다.
‘현 후작을 제외한 라예르가는 다 죽었으니까.’
선대 라예르가 후작은 후손이 많기로 유명했다.
일찍이 첫째 부인과는 적장녀와 장남을, 그녀가 죽은 뒤 혼인한 둘째 부인과는 1남 3녀를 또 보았다고 한다.
즉, 본디 아이린 공녀의 남편이었던 라예르가의 나비 공자는 그 둘째 부인의 자식이었고, 계승 서열로 따지면 열 번째도 되지 못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선대 고드윈 공작이 더 발작했던 것도 있지.’
라예르가의 후계자인 적장녀와 나비 공자는 열두 살 넘게 차이 났다.
나비 공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적장녀와 장남은 이미 혼인하고 자식들도 여럿 본 상태였고.
‘즉, 아이린 공녀와 그녀의 자식들은 라예르가의 방계로 전락할 운명이었던 건데…….’
그러나 운명은 그들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버렸다.
어느 날 라예르가를 덮쳐온 강력한 역병.
알루카스의 말에 따르면, 역병을 퍼뜨린 새끼는 선대 라예르가 후작의 누이 쪽 후손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몰살당하면 자신에게 계승 서열이 올 걸 기대했나?’
다만 범인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이린 공녀가 라예르가를 잠시 비운 상태였고, 나비 공자와 어린 레노르 역시 동행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참사를 듣자마자 돌아온 부부는 급히 가문을 계승하고 라예르가를 수습해 역병을 빠르게 진압했다.
“라예르가 일족을 몰살시킨 증오스러운 상대니,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던 거겠죠.”
“아니, 그래서만은 아니었어.”
표정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지만, 감각에 예리한 알루카스는 알아차렸다.
아이린 공녀는 절망하고 있었다.
“……!”
알루카스에게 전해 들은 정보를 머릿속으로 바쁘게 짜 맞추던 제이드는 흠칫했다.
‘이건…… 예상보다 더 안 좋은 결과잖아!’
알루카스 앞이라고 관리하던 제이드의 얼굴이 속수무책으로 어두워지던 차였다.
“끝내주는군.”
“……네, 네?”
뭐, 뭐가? 설마 들켰…….
“아이린 공녀 말이야.”
용병왕은 씩 웃으며 말했다.
“패륜아 동생의 배반으로 소공작 자리에서 내쫓겨 방계의 아내로 전락할 뻔했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국 가문의 주인 자리로 올라왔잖아.”
“…….”
“그리고 악행이 들킬 때가 되어 재빨리 아이들을 데리고 고드윈으로 도망쳐, 이젠 고드윈의 후계권까지 노리다니……. 역시 보통 여자가 아니라니까.”
딱 루켄이 좋아할 막장이군.
그렇게 감상을 늘어놓으려던 알루카스는…….
“……그래요.”
마주한 제이드의 모습에 멈칫했다.
속수무책으로 어두워지던 얼굴이 순간 밝아지고, 암울하게 흐리던 눈빛이 반짝였다.
“확실히 아이린 공녀는 여간 대단한 사람이 아니죠.”
안도하듯이.
‘왜? 무엇을?’
알루카스는 되묻자마자 깨달았다. 제이드가 안도한 것은 자신의 얄팍한 추론 때문이라는 것을.
‘흐음?’
알루카스는 자신이 너무나 표면적인, 그리고 뻔한 추측을 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사실 그리 진지한 추리를 한 것도 아니었다. 라예르가나 고드윈이나 그에게는 남 일이었고, 두 대단한 가문이 어떻게 되건 간에 제 알 바는 아니니까.
그러니 알 바가 아닌 일들에 대한 정보에 알루카스가 신경을 기울일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혹시라도 있다면?’
자신이 놓친, 그리하여 제이드가 저렇게 바짝 긴장하고 얼어붙을 정도의 무언가가 있다면. 그렇다면…….
“제이드?”
좋게 말할 때 까라. 알루카스는 그런 의미를 담아 싱긋 웃었다.
“……큼, 일단 저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알루카스에게 속내가 들켰다는 것을 인지한 제이드는 입을 열었다.
“왜?”
“백번 양보해서 아이린 공녀가 라예르가를 집어삼킬 야심이 있었다 해도, 전염병을 퍼뜨린 건 아닐 거 같아요”
“어째서?”
“전염병이잖아요.”
그건 통제가 되지 않는 변수다. 심지어 라예르가를 자신의 것으로 삼키려는 이라면 더더욱 시도하기 어려운 수다.
‘라예르가는 교역지잖아. 잘못하면 걍 다 쫑나는 거라고.’
차라리 그냥 욕먹을 각오 하고 깔끔하게 독살하는 게 낫지, 전염병은 까딱 잘못했다간 일이 너무 커진다.
‘아마 진짜 범인은, ‘내가 안 된다면 다 죽여버리겠어!’ 같은 마음으로 한 게 아닐까…….’
실제로 그 정도로 가능성이 없지 않으면 시도하기 어려운 수다.
“그리고 아이린 공녀가 라예르가를 비운 것도 정말로 우연일 거예요.”
“그건 어떻게 확신하지?”
“시기적으로, 라예르가 둘째 공자의 나이를 생각하면…… 아이린 공녀는 그때쯤 임신 중이었을 테니까요.”
“……!”
임신한 상태에서는 제아무리 권력에 미친 사람이라도 홈그라운드에서 ‘전염병’ 같은 도박은 쓸 수 없다.
아이는 물론 자신마저도 죽을 수도 있는 위험 아닌가.
“아마 임신이나 다른 신체적 문제로 갑작스럽게 라예르가를 비웠던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남편과 아이가 따라온 것도 자연스럽고.”
“……하긴, 가족이 임산부를 돌봐줘야지.”
알루카스는 그제야 납득한 기색이었다.
제이드는 솔직히 약간 어이가 없었다.
‘아니, 디뮈아드한테는 얼마나 무관심한 거야.’
대충 나이 보면 말이 안 된다는 걸 파악했을 텐데.
하지만 원래도 알루카스는 자신이 흥미 없는 일이나 대상에겐 지독히도 무관심한 편이다.
‘그리고 지금은 차라리 그게 다행이지. 만약 정말로 내가 추측한 대로라면…….’
지금 알루카스가 약간이나마 호기심을 가지게 한 것 자체가 문제다.
‘더는 알루카스가 이 일에 관심 가지게 둬선 안 돼.’
그리고 난 알루카스의 신경을 돌릴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제이드는 손을 뻗었다.
“……?!”
그래도 뭔가 놓친 것 같은데, 하고 생각에 빠져있던 알루카스는 순간 굳었다.
제이드가 그의 손을 당기더니 손바닥을 펼쳐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접촉 가이딩인가, 고드윈 소공작이 지랄하지 않나?”
“쉿, 정보료예요.”
알루카스와 같은 사람은 그냥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당연히 그 값을 받아낼 자신이 있으니 입을 연 거고, 만일 값을 치르지 않는다면 강제로 치르게 만들겠지.
‘그러느니 선빵!’
제이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던 알루카스는 가만히 자신의 널찍한 손바닥 위로 춤추듯 움직이는 희고 고운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간질간질하고도 찌릿한 감촉.
그러나 그 감각은 손가락이 써 내린 어떠한 글자에 곧장 정지했다.
[알레히드.]
그것은, 그의 하나뿐인 누이의 이름이었다.
“……감히.”
알루카스의 얼굴이 무섭도록 사나워졌다.
그 이름은 이제껏 그녀가 아무렇게나 입에 담았던 라예르가나 고드윈처럼 저렇게 가볍게, 장난치듯 꺼내선 아니 되었다.
처음 만난 카페의 테라스에서처럼, 역린이 건드려진 알루카스는 이전까지의 친근하던 공기를 단숨에 찢어버리고 살의를 뿜어냈다.
쨍-!!
강력한 이능력자의 흉포한 기운에 얇은 도기의 찻잔이 깨져 찻물이 쏟아졌다.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지만, 아는 척하는 거라면……!”
사자후와 같던 포효가 그친 건 그다음으로 이어진 글자 때문이었다.
[황비.]
순간 사납던 기운이 줄어들었다.
“……내 누이가 어떤 처지인지는 나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그뿐.
“설마 네가 내놓을 정보료가 이게 다는 아니겠지?”
아니어야 할 거야. 알루카스의 목소리는 여전히 살벌했다.
‘……확실히 화제는 전환한 거 같은데.’
잘못했다간 진짜 죽겠네.
제이드는 피부가 얼얼해질 정도의 살기를 애써 무시하며 다시금 손가락을 놀렸다.
알루카스가 들인 노력을 생각하면, 그도 누이가 황실에 은밀히 잡혀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을 거다.
‘그래서 더욱 요란하게 자신의 업적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고.’
누이, 내가 왔어.
갇혀 있는 거라면 도망쳐.
내가 지켜줄 수 있어!
-라는, 일종의 메시지를 보내는 거다.
구중궁궐에 갇힌 누이에게 직접적으로 보낼 수 없으니.
‘하지만 누이분께선 수년간의 메시지에도 응답하지 않았을 거고…… 알루카스는 제 누이가 왜 그러는지 아직 모르고 있겠지.’
그럼 알려줘야지. 제이드는 글자를 완성하고 손을 뗐다.
[금제.]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제이드는 손가락으로 목을 슥- 그었다.
“…….”
무형의 죽음 앞에서, 알루카스는 숨도 쉬지 못했다.
* * *
달칵, 문이 닫혔다.
‘정보료는 충분히 받았다.’
언제나처럼 나른하고 능글맞지 않던, 절박하게 굳어 있던 얼굴.
‘수도에서 또 보도록 하지.’
아마 그때쯤 그는 금제를 풀 방법을 구하기 위해 내게 또 찾아오겠지.
‘그래, 차라리 잘 됐어.’
그렇지 않아도 플랜 A에 변화를 줄 생각이었다.
해리스의 도움을 받아 해주석을 탈취하겠다는 계획은 변함없지만, 그 하나만의 독박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힘도 끼워 넣는 게 위험 부담을 줄여주지 않을까.
물론 내 뜻대로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알루카스를 고드윈에서 내보내는 것이다.
‘해리스도 자리를 비운 이상, 제일 위험한 건 알루카스야.’
편집증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의심하고 있었다.
던전이 터졌다는 소식이 최근에 터진 것도, 알루카스와 마찬가지로 해리스를 본성에서 내쫓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그렇다면, 아이린 공녀의 진짜 목적은…….’
급하게 움직이던 내 발이 멈춘 것은 그때였다.
“어머.”
지금까지 내 머리를 장악하던 인영이 눈앞에서 빙긋 미소 짓고 있었다.
“어딜 그리 바쁘게 가시나?”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