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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46화 (46/119)

46화

“그야 당연하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가이딩을 넘어설 정도로 대단한 포션이 존재한다면, 가이드가 이 세상에 왜 필요하겠어요?”

“그렇다면 무슨 쓸모가…….”

“에이, 다 알면서 왜 이러세요.”

후려치기 금지. 안 받습니다, 안 받아.

“모든 이능력자들이 당신처럼 가이드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

알루카스는 내 말을 부인하지 못했다.

그 스스로 부인할 수 없을 정도의 효과를 느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용병 길드 ‘아르카이’를 생각해서겠지.’

아르카이 용병 단원 대다수가 이능력자다.

‘즉, 잠재적 고객님들이란 말씀!’

백번 양보해서 알루카스 개인만 따진다면 진정제 포션이 그렇게 쓸모 있진 않다고 부인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휘하의 부하들을 위해서라도 진정제 포션은 필요하다.

‘특히 던전을 돌 때는 더더욱.’

나야 진정제 재료 수급 등의 이유로 자발적으로 동행했다지만, 절대 다수의 가이드는 무력치가 낮은 만큼 던전행을 꺼린다.

던전에 들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양반이고, 진짜 문제는…….

‘이능력자들에게 어떻게 굴려질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

던전이라는 위험하고도 분리된 공간에선 기본적인 인권의 선조차 짓밟히기 일쑤다.

그것이 개개인의 무력을 장담할 수 없는 약자들이라면 더더욱.

‘……이래서 에이드리안이 이능력자들을 혐오하는 거라니까.’

그리고 <시천귀>가 복수물이 된 이유기도 하지.

초기, 이능력자들은 자신들을 거부하지 못하는 가이드들이 편리하다고 던전에 강제로 끌고 가기도 했다고 한다.

운 좋게 레벨을 올리고 신체 강화를 달성한 소수의 가이드도 있지만, 절대다수는 오래 살지 못하고 병사했다.

‘가이드가 부족하면 피해를 보는 건 이능력자들이야.’

결국, 가이드를 던전이나 균열과 같은 위험한 곳에 끌고 가지 말자는 암묵적인 룰이 생겨난다.

그로 인해 가이딩을 받지 못한 이능력자들이 다치고 폭주하다 죽는 것도 부지기수가 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 이능력자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 문제로 취급받게 되었고.

‘이 상황에 일시적으로라도 이능력자의 부작용을 진정시켜 줄 포션이 나타난다면?’

아주 날개 돋친 듯 팔리겠지. 나는 사악하게 웃었다.

‘재벌 여주가 되어주마.’

이전까지 빌빌거리던 노예 출신 가이드는 끝이야!

사실 이 모든 건 아넬라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부터 세운 계획이었다.

파산 직전의 두로스 상단을 인수하고, 아넬라를 비롯한 핵심 인력과 친교 관계를 다진 것도 그 때문이다.

‘나 대신 일해 줄 사람들이니, 최소한 악감정은 없어야 하지 않겠어?’

당장은 부정할지 몰라도, 이능력자들은 절대 진정제를 거부할 수 없다.

시대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바야흐로 진정제 독과점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자, 고객님.”

나는 표정 관리 못 하는 용병왕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계약금부터 논의해볼까요?”

영혼까지 털어주마.

* * *

“……그래서.”

내 말을 다 들은 해리스가 물었다.

“왜 그런 짓을 한 건데?”

“왜냐니요!”

거래는 성립했다.

원래는 최강의 암살자 듀크 아인델타와 거래할 것이 용병왕 알루카스로 바뀌긴 했지만, 오히려 더 나은 결과였다.

‘듀크는 상황이 흥미로워서라도 아넬라를 건들지 않을 거야.’

처음에는 선대 공작의 마음을 사고, 다음은 언노운 던전 행으로 후계권을 얻었으며, 이제는 진정제라는 시장을 열었다.

‘내가 듀크라도 다음 행동이 궁금하고 기다려질 거 같은데.’

꿀잼 라이브 쇼잖아? 뭐, 그렇지 않다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우리의 용병왕, 알루카스가 보호해 줄 테니까!’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거래를 위해서라도 알루카스는 로두스 상단을 보호할 수밖에 없다.

진정제라는 새로운 시장에 일어날 반발이나 공격도 알루카스의 용병단이 지켜줄 것이다.

‘파트너쉽 맺었다고요~’

그리고 로두스 상단의 파산 문제도, 당장 뜯어낸 계약금으로 해결했다.

자잘한 변주가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게 계획대로였다.

“돈을 엄청 벌었죠. 저 이제 부자임!”

비록 당장 수중에 들어온 돈은 없지만, 조만간 백만장자 될 예정이다.

‘차명 계좌도 만들었지!’

후후, 플랜 B도 착착 잘 진행되고 있단 말씀!

앞으로 쌓일 통장 잔고를 떠올리자 기분이 좋아진 난 턱에 브이자를 하며 씩 웃었다.

“후후, 기대하세요. 제가 조만간 한턱 쏘겠…….”

“너 원래 부자잖아.”

“……습니다, 예??”

“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기억 안 나?”

해리스는 턱을 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줬잖아.”

“……!”

생각났다.

해리스가 정식으로 동관으로 머물게 될 무렵, 선대 공작은 해리스 친모의 유산도 함께 넘겼다.

‘리스트가 엄청났지…….’

세계관 알못인 나조차도 기겁할 정도로, 황녀의 부는 엄청났다.

하지만 정작 상속자인 해리스는 대충 훑어보곤 별것도 아닌 양 내게 넘겼다.

‘너 가져.’

그리고 난 그 말대로 리스트를 가지고 실컷 구경…….

“잠깐, 그게 준 거였어요?!”

난 구경하라는 소린 줄 알았지! 확실히 눈 호강은 했…….

“아니, 그보다 유산을 제가 어떻게 받아요!”

“잘.”

“…….”

“내가 줬으니, 이젠 네 것이지.”

“하, 하지만 그 유산은…….”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받기나 해.”

나는 입을 쩍 벌렸다. 정신 차리니 순식간에 백만장자를 넘어 억만장자가 되다니.

‘이 무슨 패륜이야-!’

* * *

콰르릉- 쾅!

벼락과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

알루카스는 최고급 여관의 아늑한 침실에 누워 있었다.

“단장님,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보좌, 루켄은 진심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는 알루카스와 마찬가지로 사막 이민족 출신이었고, 같은 이능력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이능력자처럼 루켄 또한 지극히 이능 중심적인 가치관을 따르고 있었다.

강자는 무엇이든 해도 되고, 약자는 무엇이든 복종해야 한다.

전형적인 약육강식, 강자 독식의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 루켄으로선 알루카스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순순히 계약하셨던 거예요?”

물론 루켄 또한 알루카스가 흥미를 보였던 가이드 소녀, 제이드에 대해 호기심이 있긴 했다.

‘일단 예쁘니까.’

복숭아처럼 말랑말랑해 보이는 볼때기와 풍성하게 늘어뜨린 분홍빛 곱슬머리.

동그랗고 투명한 청안은 크고 아름다웠고, 봉긋한 입술은 꽃잎을 물고 있는 것 같았다.

‘요정족 혼혈이겠지.’

그쪽 핏줄은 유독 미인이 많았다. 독특한 체모와 특유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인상도……. 아, 그 앤 아직 귀염상이긴 했지만.

알루카스 곁에서 쫑알거리는 모습이 작은 카나리아 같았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쉽게 날개를 꺾어버리면 되는 무해한 존재.

“왜 계약했냐니, 루켄. 너도 진정제 포션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않느냐. 그러니-”

“뺏으면 그만이잖아요.”

루켄은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

알루카스는 잠시 하늘을 보았다. ‘내가 애를 잘못 키웠어……’ 같은 중얼거림이 들려오는 듯도 했지만, 루켄은 더욱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인명 존중 사상이 있으셨다고?’

루켄은 용병이었다.

그리고 용병이란, 기본적으로 무력을 갖춘 범죄자 집단이었다.

돈만 되면 어떤 의뢰건 받고, 수지에 맞지 않으면 의뢰인이 그대로 죽더라도 그냥 가버리는 쓰레기들.

그들과 같은 폐기물들은 철저히 돈과 권력의 논리로 움직였다. 정의와 도덕, 신의 같은 건 그들과 관계없는 단어였다.

알루카스의 용병단, 아르카이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사실 우리야말로 더 하지.’

아르카이 용병단의 초기 멤버는 사막 이민족 출신이었고, 람서스 제국에서 외국인이란 등쳐먹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호구 노예와 동의어였으니까.

의뢰비를 받지 못하고 팽당하는 것 정도는 예삿일이었다.

전쟁 도중 미끼로 빼돌려져 용병단이 전체가 전멸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처형당할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얼마나 많이 배신당하고 다채롭게 뒤통수를 처맞았는지 기억할 수도 없었다. 그 과정에서 죽은 동료들도…….

그러나 그들의 주인, 알루카스는 끝내 아르카이 용병단을 최정상에 올려놓았고, 그 자신은 용병들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이제야 우리도 제국에서도 인간 흉내라도 낼 수 있게 된 거지.’

루켄은 비소했다.

그렇다 한들, 뼛속 깊이 새겨진 제국민에 대한 악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르카이 용병단은 그들이 제국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써먹어 주며 최강, 최악의 용병단으로 자리 잡았다.

힘이 있으면, 기다린다.

힘이 없으면, 빼앗는다. 짓밟아 굴복시키고 길들여 복종시킨다.

그리고 로두스 상단은 정형적인 후자였다.

파산 위기의 상단, 불명예스럽게 죽은 전 상단주, 그를 대신해 급히 올라간 밑바닥 출신 상단주와 그녀를 따르지 않는 기존의 상단 임원들…….

‘좋네. 그냥 필요한 것들만 가져오면 되겠어.’

납치하고 협박한 뒤 차차 잘 길들이면 되겠지.

알루카스 다음으로 진정제 포션의 효과를 본 루켄은 평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좋아, 계약하지.’

‘……?!’

단장이 갑자기 답지 않게 신사적으로 구는 것이다.

‘뭐 잘못 드셨나? 아니면 설마, 저 가이드한테 잘 보이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우리 단장님, 여자한테 간도 쓸개도 빼줄 것처럼 굴면서 실제로는 다 빼먹고 다니는 쌍놈이신데.

‘왜 안 어울리게 정상적이고 평범한 계약서를 쓰고 그러시지?’

지키실 생각도 없으시면서…… 아, 대충 맞춰주는 척하고 뒤에서 새로 계약서 쓰려는 건가?

‘그럴 수 있지.’

가이딩이 마음에 드셨나 보다.

하긴, 테라스 밖에서 엄호하던 자신도 잠깐 파장을 느꼈는데 장난 아니었다.

‘취향인데다가 가이딩도 잘하는 가이드? 이건 못 참지.’

그래, 기분 맞춰줄 수도 있어. 그래야 납치할 타이밍도 재보지.

루켄은 자연스럽게 아넬라를 확보해 협박할 준비를 했다.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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