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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45화 (45/119)

45화

테라스에서의 가이딩과 그 뒤, 제이드가 먼저 알루카스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는 소식까지.

“……용병 새끼라.”

전부 보고받은 해리스는 제이드가 귀가한 뒤에도 한참 동안 집무실에만 있었다.

‘둘이서 어딜 갔다고?’

심지어 손까지 잡았다니.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너무 뜨거워서 위험하게 느껴졌다.

스카강-!

“죽어라!”

때마침 찾아온 암살자들이 반갑게 여겨질 정도로.

“후…….”

기분 전환 겸 암살자들을 학살한 해리스는 피범벅이 된 꼴을 씻으며 생각했다.

‘S급 이능력자가 들이닥쳤는데, 제이드가 뭘 어쩔 수 있었겠어.’

감정적으로 흥분한 것과 별개로,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연약한 제이드의 입장에선, 그 새끼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고 최대한 빨리 나오는 게 최선이다.

그리고 아르투 백작 영애와 하녀의 일도, 제이드는 자신의 처지를 고려해 현명히 대처했…….

‘빌어먹을 신분 세탁은 언제쯤 마무리되는 거지?’

쾅, 대리석 욕조가 부서지며 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해리스는 욕조의 잔해를 짜증스럽게 짓밟고는 다시 분노가 비집고 들어오는 걸 억누르며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리고 제이드 침실 앞에 도착해 대리석에 비친 자신을 점검하던 해리스는 침착하게 심호흡했다.

우선,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이성적으로 대화…….

“내 새끼 완전 사랑해-!”

쾅-!!

이성이고 나발이고 휘발된 육체는 힘 조절을 잃고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커다랗게 푸른 눈, 장밋빛으로 발그레한 뺨, 이슬비를 맞은 꽃처럼 싱그러운 소녀가 자신을 동그래진 눈으로 바라본다.

“제이드.”

다른 새끼를 가이딩했다면서 팔팔하네.

‘내 가이딩만 그렇게 버겁고 힘든가 봐?’

거기다 사랑? 변명을 들었음에도 몸 깊숙이서 쓴 것이 치밀어 올랐다.

해리스는 자신의 가이드를 당겼다. 더는 참지 않고 가이딩을 받아내려던 순간.

“자, 잠깐-!”

거부의 손길에 해리스가 멈칫했다.

* * *

“잠깐?”

코앞에서 멈춘 해리스의 눈빛은 사람 하나 죽일 듯 살벌했다.

일단 멈추기라도 해줘서 감사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그치만 내가 더 급해!’

난 얼른 손바닥에 ‘햐-!’ 하고 거세게 입김을 불고 그대로 코를 박아 킁킁거렸다.

“…….”

“…….”

잠시 침묵이 오갔다.

나는 해리스가 보낸 무언의 눈빛을 이기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아, 아직 양치를 못 해서…….”

“…….”

아니, 난 비위생적인 사람이 아니야. 잠시 야식을 먹고 있었을 뿐이라고! 자기 전에 다시 이 닦을 거였는데!

‘왜 하필 지금 가이딩을……!’

솔직히 억울했다.

내가 미리 이 닦고 청결하고 산뜻하고 프레쉬한 상태를 준비해 두었던, 그 허다한 기회는 어디다 버리고……. 하필이면 내가 온갖 단짠단짠의 과자를 흡입한 이 타이밍에 하자는 거야!

‘아니, 내가 하루 전에 노티스를 달라 한 것도 아니잖아. 최소한 5분 정도의 시간만이라도 줄 수 없어?’

아무리 엑스트라라도 이 정도의 존엄성은 지켜줄 수 있지 않습니까?

“뭐라고?”

……지켜줄 수 없나 보다.

해리스의 강렬한 눈빛을 마주하고 있자니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야, 양치…….”

하지만 떨리는 입은 다시 진실을 뱉어냈다. 사실 이 와중에도 입 냄새가 나는 게 아닐까 엄청 신경이 쓰인다.

나는 어떻게든 냄새가 흩어지게끔 거리를 벌리려 움찔거렸지만, 해리스의 팔이 내 진로를 막았다.

“뭐?”

“바, 방금, 이것저것 뭐 많이 먹어서…….”

커다란 체고가 머리 위에서 나를 짓누르듯 자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이 엄청났다.

“양치만 하고 돌아오면 안 될까요……? 빠, 빨리할게요! 꼼꼼하게! 프레쉬하고 쿨한 민트향으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꺼낸 말은 갈수록 횡설수설이 되었다.

‘아아, 죽고 싶…… 은 건 아니고, 그 정도로 쪽팔린다.’

최애에게 내 구취 사정을 호소해야 하는 이 상황, 실환가.

“…….”

침묵이 길어졌다.

아무래도 내 구취 사정이고 나발이고 당장에라도 손을 치워야 하는 모양이다.

또 시궁창 맛 키스…… 아니, 가이딩을 하게 생겼구나.

‘젠장, 나도 모르겠다.’

나는 눈물을 삼키며 손을 내렸다.

괜찮을 거야. 방금 입 냄새를 체크했을 때 과자 향만 났잖아?

물론 내가 과자를 너무 많이 처먹어서 손에 과자 냄새만 실컷 묻은 걸 수도 있겠지만…….

“……큽.”

바람 빠진 소리?

내가 살며시 눈을 뜨자, 고개 숙인 해리스의 등허리가 들썩이는 게 보였다.

‘큭, 큽-!’ 웃음이라도 삼켜내는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왜?’

진짜 웃긴 건 아닐 거고, 뭐가 문제지?

지난번 나와의 키스- 아니, 가이딩이 별로여서 나한테 얼굴도 안 보여줬던 거 아냐? 그래서 서비스 정신 갖춰서 대해주려는데…….

“……그래서.”

그러나 묻기도 전에 해리스는 다시 멀쩡해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다른 새끼 가이딩하니까 좋았냐고.”

아무래도 방금 나의 격렬한 양치 호소는 아예 뇌 내에서 생략해 버린 모양이다.

“아니, 안 했어요.”

“야외 테라스다, 제이드. 목격자가 수두룩한데 어딜 거짓말을 하지?”

“거짓말이 아니라-”

“그럼 그 새끼가 너한테 가이딩을 취하지도 않고 순순히 말을 들어줬단 말이냐?”

“아, 진짜 제가 가이딩한 게 아니라고요!”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에이드리안이 한 거지! 나는 에이드리안(돌멩이)을 꼭 쥐고 당당하게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오리발을 내밀 만한 근거도 미리 준비해 둔 뒤였다.

“정말이에요. 오늘 알루카스가 제게 얌전했던 건…….”

“벌써 이름으로 부르는 사이야, 제이드?”

“……용병왕님이 얌전하셨던 건.”

“그 새끼한테 왜 존칭 붙여.”

“…….”

정작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태클이 붙는다.

“그 망할 용병왕 놈이 가만있었던 건, 저거 때문이에요.”

나는 쭈욱, 침대 옆 탁상의 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리치가 짧아서 닿지 않았다.

내 위에서 한쪽 팔로 몸을 받치던 해리스가 대신 잡더니, 커다란 손 혼자 그를 열었다.

“……이건.”

“네, 생각하시는 그거 맞아요.”

해리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능력자 전용 진정제.”

내가 던전에 직접 들어가서 채취한 재료들로 만든 진정제 포션.

그것이 가이딩에 눈 돌아간 알루카스가 나를 순순히 놓아준 이유였다.

* * *

몇 시간 전, 오후.

“여기예요.”

내가 알루카스를 끌고 간 것은 아넬라가 머무는 로두스 상단이었다.

“제, 제이드 님?!”

정확히는 던전 부산물로 진정제를 제조 중이던 네이트의 실험실,

“안녕, 네이트. 기별도 없이 찾아와 미안. 다음에 뭐라도 사 올게.”

“아닙니다. 제이드 님은 언제라도 환영…….”

“그래? 다행이네. 이전에 말한 거 지금 좀 준비해 줄 수 있을까?”

“네? 아, 네!”

네이트가 나를 상대하는 사이, 페드로가 재빨리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아넬라 님!”

파산 직전의 로두스 상단을 살린, 실질적인 상단주나 다름없는 제이드가 외부인과 함께 극비의 실험실에 들어섰다.

“뭐?!”

보고를 듣고 달려온 아넬라는 내가 데려온 외부인이 누군지 알아보고 굳었다.

“요, 용병왕……?!”

그것이 알루카스라서 더.

나는 긴장 풀라고 아넬라의 어깨를 도닥거려주며 말했다.

“응, 맞아.”

“저, 저분을 왜…….”

“소개지. 용병왕께선 앞으로 우리 주요 거래처가 되어주실 거야.”

“누구 맘대로?”

알루카스는 코웃음 쳤다.

로두스 상단까지 오는 내내, 그는 ‘가이드의 가이딩 외 이능력자들을 진정시켜줄 포션이 있다’는 내 말을 비웃었다.

‘뭐, 그럴 만도 해.’

시중에 이능력자들을 위한 진정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정신 착란, 신체 마비 같은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오히려 그걸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를테면 해리스의 개쓰레기 애비 새끼라든지. 현 고드윈 공작이라든지, 패륜아 노먼 고드윈이라든지.

그놈처럼 이능력자에 강력한 거부감을 가지고 통제하고자 하는 이들이 주로 시중의 ‘진정제’를 사용하곤 했다.

알루카스가 거부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 여기 있습니다.”

던전 이후 연구에만 미친 듯이 매달리던 네이트의 결과물이다.

“하, 지금 나보고 저딴 걸 먹으라고?”

“정답.”

“내가 왜?”

진정제의 효력을 반도 믿지 않던 알루카스는 ‘이상 생기면 가이딩 1회 추가권’을 내게서 약속받고 나서야 포션을 입에 대었다.

“약속, 지키는 게 좋을 거야.”

“누가 할 소릴. 효과 보고 나서도 오리발 내밀지나 말아요.”

“이게 만약 독이라면-”

“아, 우리 다 죽겠죠! 여기 쩌리들만 모여 있는 거 안 보여요?! 최강자 S급이면서 왜 이렇게 쩨쩨하게 굴어! 그냥 좀 먹어요!”

“…….”

날 한참이고 희한한 생물 보듯 하던 알루카스는 결국 포션 병을 입에 대었다.

“…….”

“…….”

가뜩이나 알루카스라는 포식자 때문에 긴장하던 공기는, 침 하나 삼킬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해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난 원재료만 구해 줬지, 제대로 된 시약 레시피는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 천재 포션 메이커 네이트 님, 믿습니다-!’

그렇게 꿀꺽, 목울대가 움직이고 맛에 인상을 찌푸리던 얼굴은…….

“……!”

서서히 굳어졌다. 알루카스 주변, 후끈하게 가열되던 공기마저도 일순 청량하고 시원해진 것만 같았다.

‘성공했어!’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어때요?”

너무 확실한 효과를 본 알루카스는 마지못해 답했다.

“……네 가이딩보단 못해.”

효과가 있다는 것만큼은 끝내 부정하지 못하는군요.

‘애초에 세계관 최강 가이드의 가이딩과 비교되는 것부터 대단한 거지.’

털썩, 가장 긴장하고 있던 네이트는 자리에서 주저앉았고 아넬라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 다행이다……!”

“하지만.”

주변을 힐끗 돌아보며, 알루카스는 더욱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

“일반적인 가이드보다도 떨어진다. 그거와 비교할 제품은 아니야.”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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