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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41화 (41/119)

41화

“제 말이 틀렸나요?”

고드윈 공작 가문의 가신 가문이자 방계이기도 한 아르투 백작가의 영애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저 X년이.’

아미아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적의와 경계심은 숨겨지지도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아미아는 아르투 백작 영애, 퍼넬로피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아미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하녀로 분장하고 있다는 건 둘째치고, 현재 퍼넬로피는 현 고드윈 공작, 노먼 고드윈의 이름으로 성을 방문한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글쎄. 누굴 말하는지 모르겠구나.”

아르투 백작 영애, 퍼넬로피는 하녀의 질문에 모른 척 부채를 펴들었다.

그러나 부채 아래엔 은밀한 미소가 피어 있었다.

주인의 반응에 하녀는 더욱 목청 높여 수다를 빙자한 앞담을 깠다.

“하여간, 그분도 딱하시지요. 병약하게 갇혀 세월을 보내시다 보니, 어떤 게 진주고 어떤 게 생선 눈알인지도 구분하지 못하게 되셨으니…….”

“보나.”

퍼넬로피는 자중하라는 듯 하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사실상 하녀의 말이 사실상 아르투 백작 영애, 퍼넬로피의 뜻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형식상 발 빼기 위함일 뿐이지.’

아미아는 이를 부득 갈았다.

후에 이 일을 추궁해도, 퍼넬로피는 ‘어머, 제 하녀가 무지하고 어리석은 탓입니다’ 하고 모르쇠 할 것이다.

기껏 해봐야 하녀를 처벌하는 척이 다겠지.

모두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나서는 사람은 없다.’

아르투르 백작 영애, 퍼넬로피는 부채 아래에서 입꼬리를 더욱 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 고드윈 공작은 선대 고드윈 공작의 아들이지만 적이요, 그와 맞먹거나 더 강력한 세력의 소유자다.

아무리 적대한다 한들, 신 고드윈 세력의 수장이 직접 보낸 손님을 한낱 아랫것들이 무어라 입 댈 순 없는 것이다.

“아휴, 아가씨는 너무 착하셔서 탈입니다. 제가 어디 틀린 말을 했습니까?”

보나는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아무도 그들을 말리지 않고 있다는 것에 힘입은 까닭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고드윈의 공자께서 어디서 굴러온지도 모르는, 노예 출신일지도 모르는 비천한 계집을 곁에 두시겠어요?”

보나의 시선은 정확히 제이드를 향해 있었다.

“…….”

가만히 퍼넬로피와 보나를 보던 제이드는 아미아에게 무어라 속삭인 뒤 그들 앞에 나섰다.

‘계획대로.’

퍼넬로피는 부채를 촤륵, 접어 손에 얹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더는 요리할 것도 없다.

“아르투 백작 영애.”

너무 계획대로 움직여 줘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넌 누구냐.”

제이드의 말에 퍼넬로피는 말없이 고개를 쳐들었고, 나선 건 보나였다.

“어딜 감히 아르투 백작 영애에게 말을 꺼내는 거지? 자고로 천한 자가 먼저 말을 꺼낼 순 없는 법이다!”

“괜찮아, 보나. 비천한 것이 예법을 알기는 하겠니. 어차피-”

“저 하녀는 누구입니까?”

“…….”

퍼넬로피는 부채를 꽉 쥐었다.

‘감히 내 말에 끼어들다니.’

보나를 쌩까는 모습도 자신의 하녀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건방져 더욱 불쾌했다.

“누구길래, 이렇게 고드윈 성에 함부로-”

“이년이!”

주인의 언짢은 심정을 알아차린 듯 보나가 손을 휘둘렀다. 그걸 막아선 건 조안나였다.

“천한 하녀 따위가 우리 제이드 님에게 어딜……!”

“닥쳐라! 어딜 감히 내 앞에서 소리를 질러!”

퍼넬로피의 고함에 조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끝내 보나의 손을 놔주지 않았다.

“하, 건방진 것. 네가 무엇이라고 이 아르투 백작 영애의 명령을 거스르는 거지? 당장 내 직속 하녀의 손을 놓아라!”

“…….”

좌중이 싸해졌다.

아미아가 안절부절못한 채 눈치를 보고, 신분제의 압박받은 조안나가 어쩔 수 없이 보나의 손을 놓으려던 순간이었다.

“직속 하녀라고요?”

제이드가 끼어든 것은.

“그럼, 아르투 백작 영애는 직속 하녀를 시켜 제 험담을 큰 소리로 내뱉게 하셨다는 거군요.”

“……!”

모두가 아는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다니.

“……정말이지 천박하구나. 예법을 모르는 건 둘째치고서라도, 뭐가 옳은지 그른지조차 몰라.”

“제 말이 맞나요?”

“닥쳐라, 천한 것! 네깟 것이 무어라고 내 의도를 추측하느냐?”

“맞나 보네.”

“하……!”

퍼넬로피는 기가 막힌다는 듯 부채를 접어 제이드의 뺨을 툭툭 쳤다.

“보나가 무어라 불손한 말을 지껄이건, 그녀는 어릴 적부터 내 곁에서 일한 나의 직속 하녀다.”

모욕적인 손길, 조소하는 목소리.

“처벌의 권한도, 책임도 모두 내게 있다는 뜻이지.”

“…….”

“네깟 것이 나댈 게 아니란 말이다!”

아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해리스가 고드윈 소공작이 될 예정이라지만, 그의 반려 가이드라는 제이드는 신분이 아직 불분명한 상태였다.

그러니 퍼넬로피가 직접 모욕을 가했다 한들 무어라 사죄를 요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렇군요. 놀랍네요.”

제이드는 부채를 손끝으로 밀어내며 웃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은 상큼한 웃음에 좌중 모두 놀라 멍해졌다.

‘무슨 생각이지?’

설마, 지금은 넘어가고 해리스 고드윈에게 이르겠다는 건가?

‘그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솔직히 아미아는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미천한 출신이라도, 이런 상황 하나 대처해내지 못하다니.

물론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도 없겠지만…….

“아르투 백작 영애가 데려온 직속 하녀가 이능력자라니.”

“……?!”

제이드의 말에 좌중의 공기가 경직되었다. 아르투 백작 영애와 보나의 안색이 변했다.

“뭐? 이능력자?”

“이능력자가 어떻게 서관에 들어와?”

“아르투 백작 영애가 이능력자를 반입시켰다고……?!”

보나가 움직인 것은 사람들이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죽어!”

보나는 재빨리 조안나의 손을 풀곤 순식간에 제이드에게 단검을 휘둘렀다.

“꺄악-!”

“읏, 으헉……!”

첫 번째 비명은 퍼넬로피였고, 두 번째는 아미아였다.

보나의 정강이를 후려치고 팔을 꺾어 단검을 떨어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힘이 부족했던 것이다.

‘젠장! 이능을 각성한 자들은 기본적으로 민간인 이상의 신체 능력을 갖추게 된다고 했지……!’

이래서 제이드가 방금 조심하라고 했던 건가? 아미아는 더 생각하기도 전에 보나의 역공에 금방 뒤집혀 내던져졌다.

“커헉!”

“제, 제이드 님-!”

조안나와 메이가 제이드를 보호하려 나섰지만 보나가 먼저였다. 단검을 잃은 손이 제이드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저런.”

제이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털썩- 곧이어 보나가 쓰러졌다.

“바, 방금…… 무슨 일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고, 종료된 일에 좌중이 굳어졌다.

“보나가 이능력자였어. 그리고 날 노렸지.”

유일하게 멀쩡한 제이드가 간단히 상황을 정리했다.

“아르투 백작 영애가 직속 하녀라고 속여 들여온 이능력자가, 고드윈 소공작의 가이드를 노렸단 말씀입니까?”

“……!”

그리고 그것을, 상황을 듣고 달려온 레디안 소백작 야니스가 해석했다.

“아, 아니! 나는 몰랐어! 정말로……!”

퍼넬로피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변호했다.

“아르투 백작 영애, 조사가 필요할 것 같군요.”

“레디안 소백작-!”

퍼넬로피는 비명을 질렀지만, 레디안 소백작이 데려온 기사들은 가차 없이 그녀를 끌고 갔다.

기절한 보나도 마찬가지였다.

“제, 제이드 님.”

악다구니와 발버둥 소리가 점차 멀어지자 아미아는 정신 차렸다.

“설마 처음부터…….”

“응, 보나라는 하녀가 뭔가 수상하더라고.”

“하, 하지만 방금 쓰러졌…….”

“그건 보나가 내 흡성대ㅂ…… 이 아니라 가이딩에 넘어가서 기절한 거야.”

“…….”

아미아는 입을 쩍 벌렸다. 좌중도 마찬가지였다.

“가, 가이드는 저렇게 손쉽게 이능력자를 기절시킬 수 있는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다른 가이드들이 이능력자에게 왜 그렇게…….”

“제이드 님이라서 그런 거야. 소공작님의 가이드인 만큼 보통 가이드가 아닌 거지!”

“최강의 가이드-!”

사방에서 탄성 어린 소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제이드는 그게 들리지 않는 듯 손바닥을 쥐었다 펴는 것을 반복하더니, 레디안 소백작에게 다가가 무어라 속삭였다.

“외출이요? 하지만…….”

아니, 이런 사태가 터졌는데도 외출 하고 싶어?

아미아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양 머리로 시작한 첫인상부터, 하녀들이랑 야한 소설이나 읽던 푼수데기 같던 모습. 그리고 위협적인 이능력자를 순식간에 파악하고 제압한 지금까지.

도무지 이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짐작 가지 않았다.

“……가이드라, 그런 거예요?”

“응?”

아미아는 기어이 외출 허락을 받아낸 제이드에게 물었다.

“가이드라서 이능력자도 한눈에 알아보고…… 단번에 가이딩으로 기절시키고, 그럴 수 있었던 거예요?”

제이드는 ‘흐- 음’ 하고 신음하다 싱긋 웃었다.

“글쎄. 나도 그걸 알아보려고 나가는 거라.”

“네?”

“아무튼, 아미아. 네 할아버지께 말 잘 전달해 드려. 레디안 소백작은 지금 바빠서 정리해드리기 어려울 것 같네.”

“아, 네. 물론…….”

제이드가 건네주는 걸 받으며 멍하니 마차가 떠나는 걸 보던 아미아는 뒤늦게 눈이 커다래졌다.

아니, 잠깐만.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자신이 위장 전입한 하녀라는 걸.

경악한 아미아는 그제야 제이드가 무엇을 건네줬는지 깨달았다.

<내 노예가 이렇게 자랐을 리가 없어!> 2권이었다.

* * *

덜컹, 덜컹.

호위를 이끌고 마차를 탄 난 잠시 눈을 감았다.

‘좋아, 당분간은 못 건들겠지.’

해리스한테 손님이 왔다고 했을 때부터 뭐가 있겠거니 싶었지만, 생각보다 수 쓰는 게 빨랐다.

‘나도 계획을 앞당겨야겠군.’

미리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예상한 사람도 만나게 되기를 바라고 있고.

마차가 멈추었다. 나는 호위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약속한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예약된 테라스의 좌석에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외출 한 번도 쉽지 않네…….”

털썩, 주저앉은 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테라스의 문이 달칵 열리며 공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료 드시겠습니까?”

“그냥 물…… 아니, 괜찮아요.”

만날 상대를 생각하니 무엇이든 입에 들이는 게 위험하게 느껴졌다. 내가 사양하자, 음료를 권하던 직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저는 시원한 아이스티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추천 고맙지만 전 괜찮…….”

손을 저어 사양하려던 난 흠칫했다.

“괜찮다고?”

앞에 선 자는 카페의 직원이 아니었다.

“아닐 텐데.”

얼굴보다도 먼저 보이는 구릿빛 왕가슴…… 아니, 화려한 타투의 문양과 곳곳의 순금 액세서리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용병왕, 알루카스…….”

댁이 여기서 왜 나와?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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