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고통과 욕망을 참아내듯 턱 근육이 끊임없이 요동쳤고, 사냥에 몰두한 짐승처럼 거친 숨이 피로 물든 입술에서 내뱉어졌다.
“……!”
포식자 앞의 사냥감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에 반사적으로 뒷걸음친 순간.
‘……웃어?’
해리스의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것을 확인했을 때는 그의 손에 이미 뒤통수가 잡힌 뒤였다.
“제이드…….”
화염처럼 들끓는 적안이 제이드를 내리쬐었다.
오싹했다.
최소한 눈앞의 해리스가 제정신이 아닌 건 확실했다.
“해, 해리스 님, 왜- 읍!”
제이드는 무슨 일이냐 물으려 입술을 달싹였지만, 그러기도 전에 입이 틀어막혔다.
아니, 정확히는 입술이 삼켜졌다.
“……!!”
그리고 더는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 * *
처음은 괜찮았다.
성을 둘러싼 해자 속 늪지대에 마수가 나타나는 건 예상 범위 내였으니.
“……윽.”
그 늪지대에 독 안개가 잔뜩 껴 있었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해리스는 떨리는 눈꺼풀을 눌렀다. 늪지대의 독은 마비 효과를 일으켰는데, 그에 대한 저항으로 몸속의 이능이 도리어 날뛰는 게 문제였다.
[죽여, 죽여!]
[산 채로 찢어버려! 모조리 다 죽여 버리는 거야!]
악다구니를 쓰는 목소리들. 누구인지도 모를 비명이 그의 머릿속을 울려왔다.
‘이건, 환청이다.’
해리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이능을 각성하게 된 이후, 저 저주 어린 목소리들이 함께 깨어났으니까.
처음에는 자신이 인간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게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었다.
해리스에게 죽으라고 악을 쓰고 증오를 내뱉었으니까.
그러나 그의 머릿속 목소리는 해리스 자신만이 아닌 그의 적들에게도 해당되었다.
자살을 충동질하던 목소리가 살인으로 뒤바뀌고, 그 모든 목소리가 혼합되면서 해리스는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은 그가 각성한 이능에서 온 것이며, 그 이능은 피와 살로 비롯된 생명과 죽음을 바란다는 것을.
‘괴물 새끼!’
저 말이 그토록 뇌리에 남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는 정말 괴물이 아니라 자신할 수 있나?
사람들은 언제나 말했다.
저 애는 끔찍한 재앙이라고. 태어나지 말아야 했다고. 어미를 잡아먹고 태어난 저주받은 생명이라고.
죽어 마땅하다고.
“……닥쳐.”
해리스는 이를 악물고 손을 뻗었다. 마디마디가 선명하고 커다란 손에서 검은 마력이 쏟아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은 힘을 조절하지 못하여 늪 마수만 공격하는 게 아닌 늪지대 전체를 들어 올렸다.
쿠궁-!!
그러나 정작 해리스는 그를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머릿속 환청들이 신이나 그를 향해 온갖 저주와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아니 죽여! 죽이자! 모두 죽이는 거야! 전부 죽여 버리자-!]
“닥치라고!”
콰광-!
늪지대 전체를 들어 올리며 소용돌이치던 마력은 버둥거리는 늪 마수에게 쏟아졌고.
[꾸에에에엑……!]
흉포한 힘이 늪 마수를 꿰뚫다 못해 산 채로 갈라 버렸다.
죽음의 괴성조차도 해리스의 청각에 닿진 못했다.
이미 그의 귀에는 너무나도 많은 목소리가, 원한이, 비명과 절규가 울려오고 있었기에.
쿵-!
성문이 부서지고 늪의 해자 위로 길이 부서지듯 떨어졌다. 그 위를 성큼성큼 걸어가면서도 해리스의 표정은 온전치 못했다.
“으읏…….”
고통을 억누르는 신음.
하얀 피부 위로 검은 핏줄이 선명히 돋아나 점차 해리스의 육신을 장악해갔다.
해리스의 상태가 어떠하든 ‘시간이 멎은 성’은 외부인을 인지하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화살을 쏘고 창을 휘둘렀고, 누군가는 악귀처럼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침입자다!]
[죽여라-!]
[전하와 왕자님을 지켜!]
그러나 그 무엇도 해리스의 앞을 막지 못했다.
해리스가 인지하기도 전, 그의 주변으로 소용돌이치던 검은 마력은 독의 늪을 흡수해서인지 더욱 질척해지고 불길한 상태가 되어 다가오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집어삼키며 공격했다.
그것은 힘이라기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였다.
[아악, 괴물! 괴물 새끼!]
[죽어-! 죽으란 말이다!]
귀에 공허가 삼킨 이들의 절규이자, 자신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공허의 발악이 들려왔다.
“허억, 헉, 허억……!”
해리스는 헐떡이는 숨을 내뱉었다.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죽이려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니. 이제 와…….
‘해리스 님!’
순간, 낭랑한 목소리가 어둠을 뚫어왔다.
‘제이드.’
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진정되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기둥 뒤. 계단 옆. 난간 뒤에 숨은 놈들 셋.’
찰나이나마 명료해진 머리로 적들의 기척이 인지된다.
해리스는 마력을 총알처럼 응축해 정확히 그들의 대가리에 쏘았다.
퍼억-!
대가리가 터지는 소리. 단말마의 비명.
“허억, 헉…….”
해리스는 그제야 깨달았다.
‘공허가, 나를 잠식하려는 거군.’
그날, 각성의 밤처럼.
그러나 알아도 힘을 거둘 수 없었다. 이능을 막을 수 없었다.
‘……제이드, 제이드가 이 던전 안에 있다…….’
자신에게 떨어져, 어딘지도 모를 위험한 곳에 적을 맞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빨리, 이 던전을 부숴야 해.’
한 톨 남은 이성이 결론을 내리자마자 검은 마력이 성을 부수었다.
콰과광-!!
너덜너덜해진 성의 내부, 가장 맨 꼭대기 층에 최후의 적이 있었다.
[카아아아악-!]
드래곤.
재빠르고 흉악한 드래곤은 해리스의 공격을 번번이 피해 냈다.
해리스는 이를 악물었다.
애초에 억제구로 마력이 제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능을 쓰는 일 자체가 해리스에겐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공허의 힘에 조금씩 잠식되어 가는 것도 그 탓이었다,
“……어떻게, 하지.”
해리스는 헐떡였다. 검은 핏줄이 악문 턱 근육을 타고 관자놀이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마력을 뜻대로 움직이는 건, 지하 감옥에 갇혀 수년간 수련해 온 일이었다.
억제구에 짓눌린 상태에서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수련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허의 힘을 사용하는 건 전혀 달랐다.
‘빌어먹을.’
직감적으로 해리스는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전자의 힘으로도 싸울 수 있었을지 몰라도, 저 흉포한 드래곤을 상대하기 위해선 이능, 공허를 사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 사실을, 자신 안의 공허도 알아차렸다는 것을.
해리스는 눈을 감았다. 그의 세상은 어느덧 새까매졌다.
그리고 암전.
* * *
‘왜, 갑자기, 이게 무슨-!’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거대한 육신이 감겨왔다. 제이드의 몸이 무게 중심을 잃고 주저앉았다.
“으읍, 잠, 잠시……!”
그러나 단단히 달라붙은 몸은 떨어지지 않았다.
뒤통수를 감싸는 손이 고개의 각도를 고정했다.
해리스가 제이드의 입술을 핥았다.
“……!”
목 안쪽에서 앓는 소리가 났지만, 제이드는 인지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인지할 수 없었다.
‘입 맞췄어.’
해리스가, 나에게, 입을 맞췄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성이 마비되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오로지 촉감만이 선명했다. 그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을 과육처럼 삼키고 물었다. 귀가 타오르듯 뜨거웠다.
‘데일 거 같아.’
그와 맞닿은 입술이, 당겨오는 뒤통수가, 엄지에 눌린 귓바퀴와 닿아오는 몸까지…….
모든 게 화상처럼 뜨겁고 또렷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해리스의 혀가 자신의 입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진.
“……!”
눈이 마주쳤다.
투명한 홍색의 눈동자가 자신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제이드를, 그리고 제이드의 숨결까지 모두 삼키며 앗아갔다.
마치 이것만이 그의 유일한 숨결이라는 듯이.
“……!”
놀란 제이드는 그의 어깨를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그 반항은 해리스가 제이드의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한 손으로 묶어버리는 데서 끝났다.
경악한 눈빛에 잠시 입술이 떨어졌다.
“-제이드, 제발.”
거부하지 마.
거칠어진 목소리. 간절한 속삭임은 지나치게 낮아 짐승의 그르렁거림과 구분되지 않았다.
온통 새까맣고 어두운 공간, 거친 숨소리와 헐떡임만이 고요한 침묵 위로 울렸다.
몸 위로 커다란 산짐승이 올라타 있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열기 섞인 숨결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그제야 제이드는 시야가 눈물로 흐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헤리스의 붉은 눈이 일그러진 시야 속에서 휘어졌다. 뒤통수를 헤집는 손길에 제이드는 더는 현실을 부정하지 못했다.
해리스와 입을 맞췄다.
충격인지 탄식일지 모르는 숨이 제이드의 부어오른 입술로 새어 나갔다.
그에 잠시 떨어져 있는 것조차 못 참겠다는 듯이 입술이 달라붙었다.
“……!”
절박하게까지 느껴지는 키스였다. 손목이 잡혀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아려올 정도로.
거부할 수 없었다.
몸도, 마음도.
“……해리, 스!”
그러다 정신이 든 것은 한참 뒤였다.
자신도 모르게 휩쓸려 가던 제이드는 산소 부족으로 숨이 막힐 것 같아 바르작거렸다.
‘살려줘!’
진짜 사람 죽겠다는 걸 알았는지 이번엔 해리스도 천천히 밀려나 줬다.
해리스가 입맛을 다시듯 젖은 입술을 훑었다.
“허억, 헉, 해, 해리스 님…….”
님 미치셨어요?
제이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해리스는 숨을 쉴 수 있게 잠시 떨어졌을 뿐이라는 듯, 제이드의 뺨과 코에 입 맞추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응, 제이드.”
나른한 감긴 목소리.
제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다. 눈에 가득 고인 물기가 너무 놀라서인지, 낯선 열기 때문인지 스스로도 분간할 수 없었다.
‘갑자기, 왜.’
해리스가 이렇게 돌아버렸나, 생각하려던 순간 뇌리에 스친 것은 하나였다.
‘가이딩……?!’
이능력자를 진정시켜주는 가이드만의 힘.
그를 떠올리고 나서야 제이드는 해리스의 목에서 턱으로 뻗어져 나온 검은 핏줄을 발견했다.
‘……혹시, 광폭화?!’
그러나 검은 핏줄은 해리스가 자신에게 입을 맞출 때마다 사그라들고 있었다. 어느덧 해리스의 목은 검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해져 갔다.
제이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정말 가이드였어?’
절반의 확률이 맞아떨어졌다! 내가 사기꾼이 아니었다! 그렇게 제이드가 안심하던 찰나였다.
[스킬, ‘흡성?법’이 활성화됩니다.]
해리스와 입을 맞추느라 잊고 있었던 시야 한 편에 박혀 계속 깜빡이던 알림창이 제이드의 눈에 들어온 건.
‘……흡성?법?’
그게 뭔데, 하고 의문을 가지던 제이드는 멈칫했다.
말리느라 해리스의 어깨를 밀던 자신의 손이, 어느덧 새까맣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해리스의 검은 마력을 흡수하기라도 한 것처럼.
‘어라?’
이거, 진짜 가이딩 맞나……?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