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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33화 (33/119)

33화

스킬란 또한 하나같이 완전하지 않아서, 글자 한두 개씩 빠져있었다. 스킬 등급 또한 확인할 수 없었다.

“이…… 졸렬하고 치졸하고 치사한 시스템 놈이!”

빡친 제이드는 씩씩거렸다.

“너 진짜 나한테 이럴 거야?!”

그러면서도 행여나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기타 보상을 확인하려던 때였다.

“제이드 님?”

“아, 아넬라.”

제이드는 얼른 상태창을 치우고 자신을 향한 시선을 돌아보았다.

사람은 적 앞에서 뭉치고 고생 앞에서 친해진다고 했다.

“그리고 돌로레스, 페드로, 페레스, 네이트.”

그들은 모두 제이드를 도와 식인 마수라는 끔찍한 적 앞에서 싸운 아넬라 일행이었다.

“모두 괜찮아요? 어디 크게 다친 곳은 없어요? 다들 무사하죠?”

제대로 된 통성명도 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죽음의 위기를 함께한 끈끈한 전우애로 누구보다 친밀한 우정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아니, 하나도 안 무사해요…….”

“무시하세요. 제일 멀쩡한 앱니다.”

“저, 저 레벨 올랐어요!”

“나도. 퀘스트를 달성해서인가?”

찡찡거리는 돌로레스와 침착한 페레스, 어린 페드로와 차분한 네이트.

“저희 모두 무사해요.”

마지막으로 우두머리인 아넬라는 제이드에게 포션을 건네며 물었다.

“제이드 님은……?”

“멀쩡해. 그래도 고마워.”

제이드는 포션을 품에 넣으며 윙크한 뒤, 자리에서 일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퀘스트를 인지하고 레벨 업할 수 있는 이들은 이능력자나 가이드로 한정된다.

‘그러면 여기 구성 인원이 어떻게 되는 거지?’

사실상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나눠야 했던 정보지만, 아넬라 일행은 끌려온 탓에 경계가 심했고 제이드 또한 해리스에게 붙잡혀 있느라 제대로 대화를 나눌 새가 없었다.

“전 마법사예요.”

제이드의 의문을 읽기라도 한 듯, 포션을 쪽쪽 빨던 돌로레스가 답했다.

“저 페드로 놈은 몸빵 용병이고요. 옛날에 기사였는데 잘렸대요~!”

“막내는 이능력자입니다.”

깔깔 비웃는 돌로레스를 무시하며 페레스는 페드로를 소개했다.

“오, 그래서 빨랐구나.”

“네, 네! 그쪽 이능을 각성해서…….”

“……!”

이어진 도란도란한 수다에 아넬라는 눈을 크게 떴다.

이능력자들을 향한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지만, 그래도 어지간해선 밝히지 않는 것이 낫다. 이능에 대해선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솔직히 다 까발리다니.

‘하긴, 제이드는 우리를 구해 줬지.’

식인 마수 다넬쿠스를 모두 처치하는 게 퀘스트라는 건 알지만, 세세한 조건은 제이드에게만 열렸다.

즉, 아넬라 일행들은 자신들의 생존이 퀘스트 달성 조건이라는 걸 몰랐다.

‘혼자서 생존하는 게 더 쉬웠을 텐데…….’

그러나 제이드는 죽도록 뛰어다니며 마수를 학살하고 그들을 지켜주었다.

잘 생각해보면 그들을 이곳에 끌고 온 것도 제이드니, 사실상 병 주고 약 주는 거지만…….

‘아니, 모든 건 그놈의 고드윈 공자 놈이 시킨 걸 거야.’

자연스레 그 원한은 자리에 없는 해리스에게 쏠렸다.

당연했다. 솜사탕처럼 몽글몽글한 색감에 요정처럼 자그마하고 어여쁜 소녀와 처음부터 자신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위압적이고 퇴폐적인 외형의 미청년.

둘 중 누구에게 더 호의를 품게 되는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저는 창고지기입니다.”

돌로레스와 페레스, 페드로에 이은 진실 고백 타임은 아넬라의 입도 열었다.

“제 이능은 물건을 담고 옮기는 데 유용하죠. 인벤토리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맞아, 그거 상단주로서 꼭 필요한 능력이지. 그래서 마법 스크롤이 끝도 없이 나왔구나.”

“제 개인 사제예요, 흐윽.”

자연스레 시선은 마지막, 네이트에게 닿았다. 금발의 미소년은 안경을 닦으며 답했다.

“저, 저는 약제사입니다.”

알고 있다.

‘네이트는 중요 인물이니까.’

<시천귀>의 천재 치료사, 네이트 핀.

지금은 갓 각성한 귀여운 솜털 부스러기 포션 메이커지만, 훗날 그는 세상에 비견할 자 없는 의술사로 등극하게 된다.

‘1회차엔 비참하게 가족을 잃고, 노예처럼 부려지다 흑화하여 약보다 독에 치중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되지만…….’

다행히 2회차 땐 에이드리안에게 구원받아 그런 일 없어진다.

대신 그는 시한부인 에이드리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의술에 전념하고, 그로서 신전을 뛰어넘는 천재 치료사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다!

‘아, 위대하신 네이트 님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었다니…….’

제이드의 눈이 감격으로 촉촉해졌다.

그토록 유능한 네이트지만, 사실 그는 <시천귀>의 팬들에겐 좀 다른 이유로 유명했다.

‘특히 나처럼 썩은 독자들에겐 정말 여러 가지 이유로 유명하지.’

덕분에 감사했습니다, 후후후…….

므흣한 2차 창작물을 떠올린 제이드는 불건전한 생각을 하는 사람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

아무것도 모르는 아넬라는 조카의 소개를 이어갔다.

“방금 제가 드린 포션도 네이트가 만든 거예요.”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여러모로 신세를 많이 진 분(?)이라 제이드는 반사적으로 공손해졌다.

“벼, 별로 대단한 건 아닙니다. 겨, 겨우 C급 회복 포션에 불과한 걸요.”

후한 칭찬 덕분인지 반짝이는 제이드의 눈빛 때문인지 네이트는 어쩔 줄 몰라 손을 내저었다.

“나이도 어린데 벌써 C급 포션을 만들어요? 대단하네요!”

그러니 2차에선 그렇고 그런 포션도 만드는 거겠지……. 당신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우후후훗~!

제이드의 미소는 불건전 지수에 정비례하듯 발그레해졌다.

‘나, 나를 이렇게 높이 평가해 주시다니……!’

왜인지 모를 제이드의 깊은 신뢰에 네이트의 가슴이 펄떡거렸다.

‘기대를 실망시켜 드려선 안 돼.’

아넬라 이모는 자기 할 일 잘하는 남자가 제일 멋지댔어! 네이트는 얼른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그, 그럼 이제 다 쉰 거 같으니, 채집으로 넘어가죠.”

“뭐어~?”

“아, 제발 잊어버리길 기도했는데.”

“네이트, 넌 너무 성실해…….”

사람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일어섰다. 사실 애초에 아넬라 일행이 던전에 따라온 것도 이를 위해서였다.

던전 내 부산물 채집!

‘드디어 본론이다.’

이게 목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본말 전도되었다.

“연보라색, 분홍색, 하늘색……. 누가 봐도 이상하고 이질적인 색감의 이끼를 찾으세요. 아, 이것처럼!”

제이드는 던전 바닥, 연분홍색의 이끼를 찾아 가리켰다.

“호, 이런 것도 있었나.”

“몰랐네.”

던전 유경험자들은 신기해했다.

‘확실히, 의식하지 않으면 안 보이지.’

던전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이 세계에 끼어든 것이다.

이를테면 종이를 찢어 그 찢긴 틈새에 풀을 발라 전혀 다른 것을 이어 붙인 것과 같다.

‘그리고 저 이끼가 바로 풀 역할을 대신하지.’

특이한 컬러의 이끼가 틈새를 메워 이질적인 공간이 이 세계와 충돌해 무너지지 않게 막는다. 부조화가 조화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 힘을 다하면 다시 불길하고 어두운, 평범한 던전 이끼 색으로 돌아가지만.

“네, 아니면 이런 것도 좋아요.”

파삭, 제이드는 연분홍 이끼 근처에 열린 형광색 열매를 땄다.

도저히 입에 넣어보고 싶지 않은 색깔.

‘이것들이 진정제의 핵심 재료라는 걸 누가 알겠어.’

바로바로 <시천귀>의 주인공 에이드리안이 안다. 그리고 그걸로 떼돈을 번다.

‘미안, 에이드리안. 그 돈 내가 좀 슥삭해야겠어.’

하지만 이건 모두 너를 구하기 위해서란다. 설마 내가 다 꿀꺽하겠니?

물론 제이드는 꿀꺽할 생각이었다. 차명으로.

‘혹시 모르니까, 선택지는 많을수록 좋지.’

플랜 B를 위해서라도.

플랜 A가 <해리스 잘 키워서 공작 만들고 황제의 해주석 훔치기>라면, 플랜 B는 <여차하면 신분세탁하고 튀기>다.

‘그리고 안 잡히게 잘 튀려면, 나만의 자산 축적이 제일 중요하지.’

돈이 없어 금방 잡히거나 고생하던 도망 여주 선배님들을 떠올리자 눈이 다시 촉촉해졌다.

‘난 절대 그런 개고생 못 해.’

지하 감옥만 해도 충분히 힘들었다……. 물론 튀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플랜 A가 제일이지만.

던전의 시스템 덕분에 제이드는 절반의 이상의 확률로 자신이 가이드가 맞을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만에 하나 가이드가 아니라면…….

‘해리스는 날 버리겠지.’

제 입으로 말했듯이.

어디 버리기만 하겠는가? 자신을 속였다며 미쳐 날뛸지도 모른다.

‘<시천귀>의 중반, 에이드리안의 배신에 흑화했던 것처럼.’

제이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으, 아무리 해리스가 최애라지만 그 모습만큼은 절대 보고 싶지 않…….

[돌발 퀘스트 발생!

<미쳐 날뛰는 S급 이능력자, 해리스 고드윈를 진정시켜라!>]

……은데?

이어 뜨는 퀘스트 조건도 가관이었다.

‘난이도는 상, 제한 시간까지 있고. 페널티는 전원 사망……?’

미쳤습니까, 시스템?

제이드는 가슴팍에 내려온 목걸이의 돌(에이드리안)을 꽉 쥐었다.

두근, 두근- 충격으로 다시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 거지 같은 퀘스트는 보상도 제대로 안 알려주고 있었다!

‘퀘스트 달성 과정을 분석해 가장 적합한 것으로 보상해 주겠다니, 이 무슨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말임? 장난해?’

그러나 장난이라 한들, 자신은 시스템의 요구에 불복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 일단은 내가 해리스의 가이드니까.’

불안하다, 아주 불안해. 내가 정말 가이드가 맞는지도 불확실한데, 이 와중에 해리스가 미쳐 날뛰고 있다니.

‘……혹시, 광폭화(狂暴和) 증상?’

제이드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만약 그거라면 상황은 진짜 심각해진다.

이전의 폭주는 자기 힘을 반강제로 억누르던 해리스가, 넘쳐나던 마력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어 일어나는 사태였다.

‘반면에 광폭화는…….’

제이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폭주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위험하다.

‘설마 이래서 난이도 [상]이냐? 하지만 그거면 [최상] 등급을 줘야 할 텐데,’

희망 회로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래, 최상 난이도는 아니잖아? 광폭화는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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