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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32화 (32/119)

32화

한편, 일주일은커녕 하루도 다 지나지 않은 던전에서는.

“허억, 헉-”

토할 듯이 숨 쉬는 내가 있었다. 수풀 속에 숨어, 마수를 염탐하면서.

‘힘들다.’

심장이 터질 듯 부풀었다. 나는 한 손에 라이플, 다른 손에 화염병을 쥔 채 헐떡였다.

‘이놈의 기름 쩐내, 진짜 죽겠네.’

토할 거 같아.

하지만 뭐라 생각하건 몸은 기계적으로 화염병을 던졌다.

화르륵-

불꽃이 유려한 선을 그리고 허공에 날아가다 정확히 마수의 대가리에 적중했다.

퍼억!

“크웨어어-!”

그리고 괴성이 들리자마자 곧장 총구를 겨누었다.

불과 기름이 마수의 피부를 녹이고 태워야 총알이 마수의 핵에 더 잘 닿기 때문이다.

탕-!!

철컥. 레버 액션으로 총을 쏘자마자 탄창을 비운 뒤 탄환을 재장전했다.

허공을 유영하는 금빛 탄창과 함께 시스템의 알림창이 나타났다.

[식인 식물, ‘다넬쿠스’를 처치했습니다!]

[현재 처치 단계 (19/20)]

하, 아직도 한 마리 남았다고?

“진짜 토할 거 같아…….”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누가 봐도 가냘픈 몸에는 지나치게 버거워 보이는 커다란 라이플이 쥐어져 있고. 얼굴은 과로로 파리해진 상태였다.

객관적으로, 부서질 듯 연약한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을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내 힘겨운 신음을 들은 주변에서 온정 어린 위로가 쏟아졌다.

“토하지 마, 제이드! 삼켜!”

“맞아, 토할 기력으로 이 새끼나 쏴요!”

“진짜 뒤질 거 같아-!”

“…….”

열화와 같은 응원에 눈물이 난다. 나는 토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삼키며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크워어어-!”

쿵, 쿵!

화염병을 던져 놓은 마수가 이리저리 몸을 뒤틀며 머리를 바닥에 박아댔다. 어떻게든 불을 끄려 발악하는 것 같았다.

움직이는 과녁은 어렵다. 저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놈은 더더욱.

“크아아, 아아-!”

그러나 영혼 빠질 정도로 반복적으로 총을 쏴 갈긴 난 본능적으로 궤도를 읽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식인 식물, ‘다넬쿠스’를 모두 처치했습니다!]

[퀘스트를 달성하였습니다.]

“……!!”

나는 눈앞에 뜬 알림창을 보자마자 라이플을 내던지며 외쳤다.

“끼야아아악!”

흡사 익룡의 포효와도 같은 비명에 아넬라 일행은 깜짝 놀랐다.

“우왁?!”

“뭐, 뭐예요, 마수 새끼들 다 죽었어?”

“이젠 끝?!”

“……떠, 떴다! 클리어 떴어! 진짜 끝났어, 끝났다고!”

그러나 내 눈엔 당황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아예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내가 못 해낼 줄 알았지?! 하지만 해냈다! 기어코 성공했다고!”

바로 제대로 된 보상을 주지 않으면서 조건은 까다롭고, 실패하면 죽이겠다는 악랄하고 비열한 퀘스트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파티원은 아무도 안 죽었지! 난 해냈어! 내가 해냈다고!”

허공을 향해 삿대질하며 펄쩍펄쩍 뛰는 내의 모습은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약 오르지 이 새끼야! 크하하하-!”

아니었지만…….

“끝났다! 끝났어!”

“으아아아!”

“끼요오오옷!”

제정신이 아닌 건 아넬라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너희도 고생했지.’

물론 내가 선두로 마수를 죽이긴 했지만, 저들이라 해서 갈려 나가지 않은 건 아니었다.

‘탄창, 탄창 여분 어딨어! 총알 다 달았다-!’

‘여기요!’

‘화염병에 불 안 붙었어!’

‘으아악! 병 다 깨진다! 저것들 누가 좀 지켜!’

흐름이 끊기지 않게 탄창과 화염병을 건네고 적절한 타이밍에 불을 붙이는 등의 기초적인 일은 물론이요, 마수들이 공격의 선두인 날 해치지 않게끔 탱킹하거나 시선도 끌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와아악-! 마수 새끼야! 이것 봐라!’

‘여기, 여길 보라고! 제이드 님 보지 말고 날 봐-!’

‘그래도 안 닿죠? 못 잡죠? 약 오르죠? 재수 없죠? 빡치죠?’

[크웨어어어-!!]

사실상 날 중심으로 몸빵하던 아넬라 일행은 죽지 않은 게 천운이었다.

“우리가 해냈다고오오-!!”

진짜 죽도록 굴려진 사람들은 제각기 발광했다.

“허억, 헉…….”

“켁, 죽겠다.”

그리고 지쳐 나가떨어졌다.

털썩, 가장 먼저 쓰러진 것은 나였다.

“흐윽, 해내따…….”

마수의 사체와 흙먼지가 진동하는 바닥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정신없이 쏴갈기느라 바빠서 그렇지, 나라고 해서 식인 마수가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다.

‘공포 역치가 높아서 망정이지.’

아니면 총을 쏘기도 전에 굳어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위기에 강한 타입이라 천만다행이었다.

쓰러진 누군가 중얼거렸다.

“하필이면 뿌리 식물이어서…….”

그러니까. 난 속으로 동의했다.

다넬쿠스는 한 뿌리에서 솟아난 식물 마수라, 한 마리가 공격당하면 다들 알아챘다.

사실상 스무 마리가 전부 하나였던 셈이다.

‘그걸 미리 말해주면 덧나니, 시스템 자식아?’

속으로 분노를 표했지만 당연하게도 답이 없었다. 난 지친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휴……. 그나저나 정말로 그 던전인가?’

본래보다 2년 더 빠르게 탈옥했기에, 지금의 언노운 던전에 대한 정보는 떠올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짐작되는 게 하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던전은 용병왕 알루카스가 파괴했을 거야.’

<시천귀>에서 알루카스가 제국 어느 지방의 언노운 던전을 파괴했다는 구절이 있었다.

‘아무리 알루카스가 S급 이능력자라 해도 상성이라는 게 있어. 알루카스의 이능, 화염이 그 던전과 잘 맞았던 거겠지.’

그것을 가정해, 난 아넬라에게 화염병을 잔뜩 준비하라고 해두었다. 정 쓸모없으면 버려도 그만이니까.

“진짜 천만다행…….”

화염병 없으면 어쩔 뻔했어. 나는 늘어져 있다 퍼뜩 눈을 떴다.

잠깐, 그럼 내 가정이 맞았던 거잖아? 이 던전이, 정말 그 알루카스가 파괴했다는 언노운 던전이라면…….

‘그렇다면, 진짜 해주석까지 갈 것도 없지 않나?’

여기서 ‘그 아이템’이 보상으로 나올 테니까 말이다. 물론 해리스가 열일했다는 가정하에.

쿵, 쿵- 귓가에 심장 소리가 크게 울렸다.

어쩌면, 황제의 관까지 가지 않아도 에이드리안을 마법에서부터 풀어줄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다.

어쩌면…….

[퀘스트를 무사히 달성하여 레벨이 오릅니다.]

“……응?”

희망에 취한 와중 나타난 글자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레벨?’

피로한 두뇌가 제대로 글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와중, 너덜너덜해졌던 육신이 고속충전되듯 빠르게 회복되었다.

“……!?”

직접 경험하고서도 믿기지 않는 현상에 나는 눈만 깜빡였다.

‘아, 맞다. 던전에서는 이렇게 강화할 수 있었지.’

<시천귀>의 설정에 따르면, 하나의 세계가 순환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충분치 않으면 파괴된다.

‘역시 온갖 설정이 버무려진 <시천귀>! 다중 우주 세계관도 빼놓지 않지!’

그리하여, 에너지 부족의 위기로 멸망을 앞둔 각기의 세계들은 서로 죽지 않기 위해 약한 세계의 에너지를 탈취하려 한다.

‘균열을 통해서.’

그리고 균열을 제때 막지 못하면 던전으로 부패하게 된다.

끝내주는 약육강식이다. 이능력자 같은 인성과 모랄 없이 강력하기만 한 존재들이 태어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무튼 이 사태를 막기 위해, 우리 <시천귀>의 세계는 부족한 에너지를 쥐어짜 밸런스 패치를 했다.

‘시스템과 레벨업, 던전 부속품 같은 것들을 던져준 거지.’

던전 부속품으로 얻게 될 부, 던전으로부터 세상을 구했다는 명예,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벨업으로 얻게 되는 힘.

‘셋 중 하나라도 얻고 싶어 미치는 놈들이 태반일 텐데, 셋 다 얻을 수 있으니…… 누구라도 도전해 보고 싶겠지.’

상태창과 퀘스트, 레벨업 등의 강화가 던전 안에서만 나타나는 시스템의 마법이라는 걸 생각하면, 던전은 더더욱 거부할 수 없는 기회가 된다.

그리고 난 그 기회를 얻은 소수의 사람 중 하나에 당첨된 것이다. 이능력자 or 가이드에게만 해당되는 설정이니까.

‘퀘스트 안 떴어도, 마수를 전부 죽이지 않았다면 벗어날 수 없었을 거야.’

정신력은 체력에서 온다.

체력이 완충된 되다가 극한의 상황에서 뿜어져 나오는 엔도르핀이 곁들어지자, 나의 긍정 회로는 돌아오다 못해 360도로 돌아버렸다.

‘모든 게 퀘스트, 아니, 시스템 님 덕분이다!’

역시 난 운이 좋다. 그냥 쩌리 엑스트라로 안 죽고 여기까지 왔어! 시스템의 선택도 받았고!

어느덧 충실한 시스템의 신도로 입덕한 난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 위대하신 시스템 님께서 주신 보상을 한번 봐보실까.”

드디어 제이드 리안, 우리 몸주인님의 정체를 알아볼 기회가 왔다.

‘보상이…… 잠금된 스탯 해제, 라고 했지.’

고생에 비해 지나치게 쪼잔한 보상이었다.

신앙심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뭐, 일단 확인해 보자.’

상태창을 확인해 보자, 온통 ‘???’투성이였던 글자들 군데군데 사이 읽을 수 있는 것들이 조금 보였다.

보였지만…….

“……졸렬해!”

글자 중간중간 ‘??’나 깨진 글자가 들어가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아, 진짜! 이딴 식으로 찔끔찔끔 보여주기야?”

오늘도 몸주인님의 비밀을 밝혀내는 데 실패했다. 제이드 리안, 이 비밀스러운 엑스트라 같으니!

‘오, 그나마 스킬은 좀 보이네.’

기쁨의 콧김을 뿜으며 얼른 스킬란을 확대했지만…….

[???의 백발백중]

[스며드는 ??]

[흡성?법]

[??의 축복]

“…….”

지금 장난하냐?

시스템, 이 새끼가 지금 이딴 걸 보상이라고 줘?

설상가상으로 이게 다가 아니었다.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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