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제이드.”
나지막한 목소리.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해리스도 알고 있었다. 자신은 혼자다. 홀로 떨어졌다.
원인은 빠르게 도출되었다.
‘던전의 초입에서 들려온 비명.’
그에 반응하지 않은 자신과 곧장 반응한 제이드.
‘그리고 나머지 잡것들도 반응했지.’
그것이 던전의 분류 방식이었는지, 자신과 제이드가 떨어졌다.
“…….”
그리고 해리스를 마주한 것은 흑백의 세계였다. 아니, 세계가 흑백으로 보일 정도로 어두운 하늘이었다.
시커먼 구름이 달과 별을 가리고 흰 벼락을 내리찍었다. 벼락이 닿는 곳은 어둠에 물든 성이었다.
기이한 것은, 모두 정지해 있다는 것이었다.
벼락도, 구름도, 벼락을 맞아 무너지는 성의 파편들도 그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도, 성벽 위의 병사들도 인형처럼 굳어 있었다.
[<‘시간이 멎은 성’에게 자유를>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퀘스트.”
해리스는 가만히 빛의 글자를 보았다.
그는 이것이 뭔지 알고 있었다.
고성의 지하 감옥 생활 도중, 사용인들은 행여나 해리스가 미쳐 버려 무작위 공격을 할까 봐 고성 서재의 서책들을 한 뭉텅이씩 묶어 지하로 내려보냈다.
그리고 그가 버려진 자식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에는.
<이능의 힘, 황녀를 구하다!>
조롱의 목적으로 일간지를 구해 주었다. 그것도 이능력자를 찬양하는 기사들 위주로.
과거, 어렸던 해리스는 갑자기 자신에게 깃든 낯선 힘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를 괴물이자 짐승이요 같은 인간으로 볼 수 없다며 멸시하고 증오했다.
그러나 해리스가 고성의 지하 감옥에 갇힌 뒤, 그처럼 이능을 타고난 자들은 점차 공개적으로 활약하며 ‘이능력자’라는 이름으로 세간에 인정받게 되었다.
던전 출현 빈도가 늘어나자 더는 기존 세력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최초의 이능력자로 알려진 것은 화염의 이능을 가진 용병, 알루카스였다.
삽화 속 화려한 미형을 자랑하던 그는 황녀를 구해 온 제국의 칭송을 받았다.
물론 알루카스는 고작 칭송 따위를 받기 위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 게 아니었다.
그는 이능력자 집단으로 세력을 형성하고자 했고, 그걸 숨기지도 않고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던전에 대한 정보의 공개 또한 그 일환이었다.
[던전은 균열에서 피어난, 우리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요. 자신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계시하고 그를 충족하기를 요구하지.]
수십, 수백 번도 넘게 읽은 글자는 머릿속에 생생히 떠올랐다.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감흥은 없었다.
머릿속에 꽉 찬 것은 오롯이 하나였다.
“……제이드.”
그녀와 분리되었다. 그녀가 사라졌다.
자신에게서, 자신의 시야와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그것도 던전이라는 위험천만한 곳 안에서!
손이 떨려왔다. 숨 또한 거칠어졌다. 초조와 불안이 뇌리까지 밀려와 똑바로 생각할 수 없었다.
제이드는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온 예지자라 주장했다. 그리고 지금껏 틀리지 않았다.
‘던전행을 그토록 고집했으니, 이 사태에 대한 방안도 마련해 두었겠지.’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지만…….
“다치면?”
사소한 실수로 생채기가 나기라도 하면. 그런데 그 생채기에 독이라도 묻으면. 그렇게 결국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이를 악물고 헐떡이던 해리스는 문득 굳어졌다.
자신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제이드를 걱정해서. 제이드가 없어서.
제이드에게…….
‘의존하고 있어.’
중독자라도 된 것처럼, 빠져들고 있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음에도. 여전히 믿고 있지도 않으면서도.
이토록 비정상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니.
‘……가이드니까.’
의문은 빠르게 합리화되었다.
그래, 제이드는 자신의 반려 가이드 아닌가.
정식으로 반려 가이드가 되려면 ‘각인’을 해야 한다지만.
그리고 그 각인이 무엇인지, 반려라는 것을 어떻게 인지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반려나 다름없는 사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
계약했으니까.
자신이 제이드의 바람을 들어주는 대가로, 제이드 또한 자신의 곁에 머물기로 약속했으니까.
하나뿐인 반려 가이드로서.
그런 제이드와 갈라졌으니, 자신이 정신 나간 것처럼 반응한 것도 당연하다.
빨리 제정신을 회복하려면, 던전이고 나발이고 제이드부터 찾아야 한다.
돌아버린 합리화였다. 그러나 침착하게 돌아버린 해리스는 핏발 선 눈으로 말했다.
“내 가이드 내놔.”
하지만 계시는 그저 반짝일 뿐이었다. 보상이라는 항목을 강조하며.
“……하, 그래.”
해리스는 입술을 비틀었다.
그의 발이 성으로 나아가자, 공기가 파동치듯 아지랑이가 퍼져나가더니 흑백이던 세상에 색이 퍼져갔다.
진녹색의 잔디, 회색의 성벽과 그 아래 질척한 늪지대.
[……외부인이다!]
인형처럼 굳어져 있던 문지기는 혈색을 찾음과 동시에 창을 휘둘렀고, 성벽에서는 빨간 불길의 화살이 겨누어졌다.
그리고 성의 지붕 위에는 언제 나타난 지 모를 거대한 드래곤이 포효했다.
[크워어-!!]
감히 자신들이 멈추고자 하던 시간을 흐르게 만든 자를 제거하기 위하여.
“자유, 라.”
헤리스는 눈을 전혀 웃지 않은채 입꼬리만 길게 휘었다. 손에서 검은 마력이 휘몰아쳤다.
그래, 그는 이 시간이 멈춘 성에 자유를 줄 생각이었다.
죽음이라는 이름의 자유를.
* * *
“……큼.”
선대 공작은 무의식적으로 창문을 내려다보았다. 누군가에게서 소식을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그러다 보좌관과 눈이 마주치자, 선대 공작은 그런 적 없다는 듯 기침했다.
“곧 일주일이 다 되겠군요.”
언제나 웃는 낯인 보좌관, 레디안 백작이 말했다.
“해리스 님 일행이 던전에 들어가신 지도.”
선대 공작은 무표정한 얼굴로 침묵했다.
그러나 대대로 고드윈 공작 가문을 모시는 보좌관이자, 구 고드윈 세력의 이인자인 레디안 백작은 알 수 있었다.
‘걱정하시는군.’
아무리 그래도 친손자다. 거기다 손자의 가이드라는 소녀, 제이드도 퍽 깜찍했고.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철혈 공작이라 불리던 선대 공작도 예외가 될 순 없었다.
그러나 유능한 보좌관인 레디안 백작은 모른 척 말했다.
“해리스 님께서 대단한 이능을 타고나셨다지만, 아무래도 앓으신 세월이 길어 여타 이능력자들처럼 제대로 수련하신 적은 없으시지요.”
건강 그 자체인 해리스가 앓았다는 건 고성에서의 감금 생활을 돌려 말하는 것이다.
“물론 각하의 손자인 만큼 잘하시겠지만, 그래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본래 선대 공작은 해당 던전을 해결하기 위해 용병왕 알루카스에게 의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네 말대로 내 손자나 되는 아이가 그런 것 하나 못 해낼 리가 있겠느냐?”
선대 공작은 강경했다.
“그러고서도 내게 후계자로 인정받으려 했다면 얼토당토않은 일이지!”
레디안 백작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잘 아시면서 왜 그리 신경을 쓰신단 말입니까.’
통상적으로 가문의 후계자는 수장의 적자가 물려받는 게 관습이다.
그러나 현 고드윈 공작, 노먼은 일방적으로 자기 아들의 후계권을 박탈하고 고성에 처박았다.
하지만 그건, 신 고드윈 세력밖에 장악하지 못한 반쪽짜리 수장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즉, 노먼 고드윈은 선대 공작의 구 고드윈 세력과 협상해야 했다.
그 결과로 노먼 고드윈은 여러 이권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고, 후계자를 임명할 권리 또한 선대 공작의 손에 들어왔다.
이는 선대 공작이 비록 황실의 압박에 강제로 작위에 물러났다지만, 그래도 아직 죽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만한 대가를 거저 얻어서 쓰겠느냐? 나는 말을 번복할 생각이 없다.”
선대 공작은 차갑게 말했다.
해리스, 그 아이를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필연적으로 그의 부모를 떠올리게 되니까.
‘노먼.’
빌어먹을 아들놈이 처음부터 불효자였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노먼은 영리했지만 순했으며, 가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된 순종적인 차자로 자라났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가 후계자를 대신해 황성에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노먼이 엘레아스 황녀를 만난 순간부터.’
그 뒤, 대가리에 총을 맞기라도 한 건지 노먼은 변해 버렸다.
누나를 배신하고 가문에 반역을 일으켰으며 아버지에게서부터 작위를 강탈해 갔다.
오로지 황녀의 남편이 될 자격을 갖추기 위해.
배신과 몰락으로 피어난 희대의 로맨스는 황녀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났다.
‘아니, 미쳐 버린 노먼이 친아들을 박대하는 것으로 이어졌지.’
당연하게도 선대 공작은 고귀한 며느리, 엘레아스 황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인이 된 엘레아스 황녀는 세 가지 이유로 유명했다.
첫째로는 그녀가 라예르가 후작 가문의 적장녀, 플로엘라 황후의 유일한 자식이며, 황제가 눈에 넣어도 아파하지 않을 금지옥엽이라는 것.
둘째로는 황녀가 세상에 다시 없을 절세미인이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황녀가 예언자라는 소문이지.’
물론 선대 공작은 그런 헛소문 따위 믿지 않았다.
그저 황제가 귀여워하는 딸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만든 소문이거나, 수도의 사교계가 황녀에게 아첨하기 위해 허풍을 떤 것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결혼식에도 불참한 선대 공작은, 처음 황녀를 만났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