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그런 마음으로 제이드의 주변을 좌시했지만.
‘제이드 님, 좋은 아침이에요!’
‘갓 구운 사과파이 어떠세요? 끝이 아주 바삭바삭하고 윤기가 좔좔 흐르는데, 한 입만 먹어 보세요!’
‘오늘의 차는 어떠세요? 베르가못 가향 홍차를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놀랍게도 본성 사용인들은 제이드를 진실로 공경히 대했다.
‘우리를 위해 각하를 직접 찾아가 선처를 구했다고?’
‘이전에도 주인을 위해 각하 앞에 나서서 그 목걸이가 위조품임을 밝혀냈잖아.’
‘하이고, 그 또한 우리 고드윈 가문을 위한 게 아니던가.’
‘아가 순둥하게 생겼는데, 속은 진국이구먼.’
만만히 보일 거란 해리스의 짐작과 달리, 제이드의 행동은 그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낳았다.
삭막한 본성에서 터지는 맑은 웃음소리가 터지면, 보지 않아도 제이드가 그곳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기했다.
이상했다.
어째서일까? 호의를 내비치면 약하게 보고, 약하게 보이면 짓밟히는 것이 인간의 생리일 텐데.
그런데 제이드는 왜…….
“해리스 님.”
제이드가 불쑥 고개를 내민 건 그때였다.
“아~!”
자신도 모르게 따라 한 해리스는 입 안에 퍼져오는 낯선 단맛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초콜릿이에요. 맛있죠?”
“…….”
제이드는 해리스의 입에 초콜릿을 하나 더 밀어 넣으며 조잘거렸다.
하녀 언니들이 챙겨줬다, 내가 먼저 먹어봤는데 맛있더라, 이런 열량 높은 디저트가 이럴 때 좋다 등등.
아, 해리스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지나치게 긴장했다는 걸.
그리고 제이드가 그걸 진정시켜 주려 했다는 것도.
“다시 아, 해요.”
넣어줄게. 제이드가 방긋 웃었다. 해리스는 입 안에 들어오는 것이 약인지 독인지 생각도 하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제이드.”
그러나 더 말을 잇지는 못했다. 귀청을 찢을 듯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왔기 때문이다.
“꺄아악-!”
* * *
던전으로 가던 길.
‘무섭다.’
제이드의 뒤통수를 뚫어지게 보던 아넬라는 해리스의 붉은 눈이 닿자 퍼뜩 고개 숙였다.
당연하지만 아넬라는 해리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고드윈 공작은 대놓고 ‘내 아들 병신이라 지하 감옥에 가뒀소’ 하고 선언하는 등신이 아니었고, 현재 공식적으로 해리스가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건 ‘병약하다’는 사유였기 때문이다.
람서스 제국의 3대 가문에서 작정하고 묻은 이를, 일개 상단주에 불과한 아넬라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나 정작 그녀가 맞닥뜨리게 된 고드윈 소공작, 해리스 고드윈은…….
‘……병약은 개뿔, 눈빛만으로 사람 죽이고 남겠네.’
거기다 자신과 같은 이능력자이기까지 하다니.
던전의 발발이 잦아지며 새로운 자원이 퍼져나가는 시대였다. 이능력자와 가이드의 존재도.
‘심지어 공격계잖아.’
위협적인 이능이라는 것은 기운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절대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엮이기 싫은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해리스의 던전행에 자원하게 된 이유는 하나였다.
‘제, 제이드 님.’
선대 공작의 집무실에서 쫓겨난 아넬라는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고, 생존을 갈구하는 본능은 끝내 미친 짓마저 저질렀다.
‘무슨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바라시는 무엇이라도 바치겠습니다.’
그길로 제이드를 찾아가 무릎 꿇고 간청한 것이다.
‘듀크 아인델타의 비밀까지 아는 이가, 괜히 내게 모든 것을 알려주었을 리는 없어.’
목숨을 건 도박.
제이드는 난데없이 찾아온 아넬라를 가만히 보다가 싱긋 웃었다.
‘무슨 일이라도?’
낭랑한 목소리와 상큼한 미소.
그건 원하는 게 있는 사람의 얼굴이라, 아넬라는 성공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언노운 던전에 따라오라고?’
던전에도 급이 있다.
그리고 현재 고드윈 공작령에 발생한, 선대 공작이 쉬쉬하는 던전은 전형적인 언노운 던전이었다.
등급이 밝혀지지도 않고 마수의 수와 종류도 알 수 없다. 게다가 고드윈 공작 가문의 기사단마저 실패한 전적이 있다.
그런 곳에 들어오게 되었다니!
속이 탔다. 더 빠른 죽음을 원하는 거냐 따져 묻지 못한 건, 제이드 또한 함께 왔기 때문이다.
‘자살 특공대를 모집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제이드가 요구한 준비물을 떠올리면 불안해졌다.
나무 상자 가득 채운 술병들. 그리고 그 위에 꽂힌 천 쪼가리.
화염병.
‘……던전 내부에 어떤 마수가 있는지 알기라도 하는 건가?’
그렇다면 어떻게 아는 거지? 의문을 품던 아넬라의 눈이 커진 건 그때였다.
“……!”
고산 지대에 올라온 듯 호흡이 어려워졌고, 걸음걸음 하나마저 힘겹게 느껴질 정도로 몸이 무겁다.
‘던전이다.’
어느덧 그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때.
“까아악-!”
귀청을 찢을 듯 강렬한 비명이 울려왔다. 아넬라는 반사적으로 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으아아악?!”
빨려 들어갔다.
눈 깜빡할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 * *
이게 바로 청소기를 마주한 먼지의 심정인가.
‘몸이 통째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
진짜 별로다. 난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들고 생각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더라?’
비명.
그래, 어디선가 절박한 비명이 들려왔다. 놀라서 고개를 들었는데, 아넬라와 모두가 동시에 반응했는데…….
‘해리스는 가만히 있었지.’
가늘어진 선홍색 눈동자는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비명조차 자체 뮤트해 버린 것처럼.
투명한 루비처럼 아름다운 눈동자를 마주하자 스친 것은.
‘이거 이래도 되나?’
발을 잘못 내디뎠을 때의 느낌.
무언가 잘못되었다. 어디선가 삐이이- 하는 경고음이 울려오는 것만 같았다.
‘몸이 끌려간 건 그때였지.’
던전에 들어왔기 때문인가? 호흡조차 느낌이 달랐다. 던전이라는 공간 내엔 마나가 과도하게 충만하다던데, 그래서인가.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찰나였다.
[!♠&☜♨→※?]
이상한 글자가 눈앞에 나타난 것은.
‘뭐야?’
기이한 감각이었다.
시야 한가운데에 빛이, 아니, 생소한 글자가 믿기지 않게도 점차 읽혀왔다.
[……관리 시스템 최적화 중.]
[자동 유지 관리 기능 작동…….]
[식별 중.]
그러니까,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낯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처음 내가 이 세계에 들어왔을 때도 그랬다. 분명히 낯선 세계, 낯선 언어인데도 난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 생경한 문자의 말도 스펀지처럼 빨려들었다.
[식별 완료.]
[본명: 안(이) 제이(제이드 리안).]
[환영합니다, 제이 님. 활성화가 완료되었습니다.]
[당사자가 맞으시면 확인을 표시해 주십시오.]
아빠 성을 갈고 엄마 성으로 바꾼 내 본명은 어떻게 아는 건지, 뭘 환영하는 건지, 활성화는 또 무엇인지 물을 틈도 없이 주르륵 무언가 나타났다.
그제야 깨달았다.
‘시스템, 상태창이구나!’
판타지 소설에 자주 나오는 설정!
실물(?)은 처음이지만, 게임에서 자주 봐서 낯설지 않았다.
‘맞아, <시천귀>에서 시스템은 던전에 들어온 뒤에야 활성화되었었지!’
내가 굳이 던전행을 고집한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나 자신, 그러니까 ‘제이드’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상태창을 통해서라도 알아내려 한 건데…… 정말 나타났구나.’
상태창은 <시천귀>에서는 던전을 공략하는 이능력자와 가이드에게만 허용되는 시스템이다.
그게 나타났다니.
“다행이다~!”
난 안도감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이고 가이드가 아니라 해리스에게 말하긴 했지만, 솔직히 나도 흔들리고 있었다.
‘사실 나도 가이드일 수 있잖아? 해리스가 저렇게 굳건히 주장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나한테 뭔가 있긴 하나 보지!
파장은…… 아무래도 에이드리안 같지만.
가이딩도…… 사실 에이드리안이 한 거 같지만.
반려 가이드도…… 원래는 에이드리안이 되어야 할 테지만.
‘그래도 그저 그런 가이드1 정도는 될 수도 있잖아!’
크게 대단하진 않지만, 특이하게도 가이드 불감증인 해리스에겐 먹히는 가이드.
어쩌면 그 정도만이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 기대가 틀리지 않았다고 상태창이 확인시켜 주고 있었…….
“잠깐, 왜 이렇게 물음표가 많아?”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개인 스탯을 확인하려는데 글자가 죄다 깨져 있거나, ‘???’로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드리안도 이런 케이스였지.’
몇몇 스탯은 조건이 충족되면 열람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에이드리안은 가이드와 회귀자라는 것은 처음부터 보였는데.’
나는 왜?
가이드가 맞는지 아닌지는 물론 나이조차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정보를 제공하기로 되어 있는 상태창에서조차 아무것도 알 수 없다니.
‘뭔가 이상한데.’
느낌만 이상한 게 아니었던 건지, 어느새 내 몸은 낯선 곳에 떨어져 있었다.
열대 우림처럼 무성한 수풀. 그늘을 여기저기 드리우는 짱짱한 햇살.
그리고.
“사, 살려줘요! 누구라도, 제발-!”
엉망진창의 꼴로 흐느껴 우는 반나체의 여인까지, 확실히 너무 이상한 곳…….
‘……이 아니라!’
난 퍼뜩 몸을 일으켰다. 아니, 여기서 누드 언니가 왜 나와?!
순간 머릿속에 스친 것은 던전에 휘말려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사람들이었다.
‘던전 안의 시간은 바깥세상의 시간과 다르게 흐른다.’
던전 안에서의 한 달이 바깥세상에서의 하루도 되지 않을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했다.
던전은 이 세계의 모든 법칙을 완전히 위반하고 훼손하는 존재였기에.
‘즉, 생존자일 수도 있어.’
이전에 던전에 들어온, 그리고 빠져나가지 못한 채 먹히고 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생각을 떠올린 건 나 하나만이 아니었다.
“괘, 괜찮아요. 진정하세요.”
아넬라의 목소리.
그제야 난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주변에 쓰러져 있는 아넬라와 무리. 준비해 온 물건들.
“……해리스 님?”
그러나 해리스만큼은 보이지 않았다.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