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새빨간 눈동자가 형형한 안광으로 제이드를 내려다보았다.
“……저는.”
제이드는 멈칫했다. 물론 에이드리안을 구하기 위해, 해주석을 얻기 위해서가 첫 번째다.
하지만…….
‘해리스 님이 영원히 쫓기는 신세로 살아가지 않길 바라요.’
이 또한 진심이었다.
실제로 에이드리안의 1회차 삶에서 해리스는 그런 인생을 살아야 했다.
끝끝내 탈옥한 해리스는 고드윈 공작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그 결과 뒤 그는 전 대륙에 극악무도한 패륜 살인마로 낙인찍히게 된다.
그로써 해리스는 정체를 어둠 속에 숨길 수밖에 없는 흑막의 삶을 살게 된다.
‘해리스가 뭐가 부족하다고 양지에서 못 살아. 해리스보다 더한 놈들도 잘만 얼굴 까고 사는데!’
새삼 떠오르는 기억에 억하심정이 들었지만, 제이드는 심호흡하며 진정했다.
‘해리스는 말해도 믿지 않을 거야.’
아니, 정확히는 신경 쓰지도 않겠지.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니까.
자신을 일생 동안 가두고 핍박한 아버지를 죽일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도 상관없다고 여기니까. 그는 아직 증오에 눈이 먼 복수귀니까…….
그렇다면.
“황제의 관을 원합니다.”
신경 쓸 만한 이유를 말해야 한다.
“뭐?”
“정확히는, 황제의 관 정중앙에 박힌 홍옥이요.”
역대 황제들을 저주와 마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 해주석은 황제의 관에 박혀 있었다.
“……해주석이군.”
역시나 해리스는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 그의 표정도 어느덧 차분해져 있었다.
‘풀 수 없는 마법, 혹은 저주에 걸린 모양이지.’
이전까지 그에게 제이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토록 자신을 위해 나서는 것을 보니 자신의 반려 가이드인 게 분명한데, 좋아한다고도 말하는데, 반려는커녕 가이드도 아니라고 주장하니까.
‘왜?’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럼 대체 뭘 원하는 건데?
그리고 해리스는 무지의 대가로 사지에 수갑이 채여 지하 감옥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맞이한 사람이었다. 이해의 갈구는 그의 본능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너도 나를 이용하기 위해 잘해 주는 거였군.’
당연한 일이다.
미천한 노예 출신의 가이드가 황제의 관까지 도달하려면 자신을 이용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고드윈 공작 가문의 주인이 되라 종용하는 것이고, 그러니 반려 가이드면서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반려라면 이용하는 데 죄책감이 들겠지만, 그게 아니라고 합리화하면 마음이 더 편할 테니.
이건 제이드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논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많은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논리이긴 했다.
“……좋다.”
그리고 해리스는 그녀를 이해하길 원했다.
“네 말대로 고드윈의 후계자가 되겠다.”
“……!”
예상치도 못한 순순한 답변에 제이드의 눈이 커다래졌다.
‘아니, 이렇게 쉽게?’
해주석 가지고 뭘 하려고, 같은 질문 정도는 나올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나 손자나 참 쿨하네. 싸가지랑 같이 내려온 건가.’
그러나 해리스의 표정은 담담했다. 오히려 자신이 더 털어놓기 어색할 정도로.
“그,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제이드는 애써 웃으며 양 주먹을 쥔 채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저도 적극 돕겠습니다!”
“이미 멋대로 후계자 쟁탈전에 밀어 넣었잖아.”
“……더욱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해리스는 피식 웃었다. 제이드와의 대화가 평범하게 돌아왔다.
‘이렇게 쉬운 거였어.’
미소 짓던 입술이 비틀리며 차가운 웃음을 그렸다.
“하지만 그것이 내 손아귀에 들어온 이후엔 곧장 버릴 것이다.”
해리스는 제이드의 턱을 쥔 채 싸늘하게 말했다.
“너와 마찬가지로.”
“…….”
제이드의 눈이 커다래졌다. 방긋 웃던 입술도 얼어붙었다.
그리고 해리스 또한 멈칫했다.
자신을 버린 고드윈 공작 가문을 자신도 버리겠다. 그것을 버리고 짓밟는 것이 복수가 되리라. 그것은 오래전부터 품은 증오였다.
그러나 제이드는…….
‘버릴 건가?’
자신이 버려지는 주체가 아닌데도, 해리스의 몸이 딱딱해졌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굳어버린 아이 같았다.
그때.
“……네, 좋아요”
제이드는 눈가를 찌푸리듯 웃었다.
“그게 바로 ‘선택지를 고른다’는 거죠.”
자신은 괜찮다는 듯이, 상처받지 않았다는 듯이.
“저는 해리스 님에게 속해 있으니까요.”
이런 반응을 원한 게 아니었어. 해리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럼 무엇을 원했지?
해리스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다만 그는 의문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지라 하지 않잖아요?”
어떠한 상황이든, 제이드를 버리는 것은 그의 선택이 될 수 없다고.
그건 처음부터 자신의 선택지에 들어있지 않았다고.
동시에 해리스는 인지했다.
‘그 반대가 너에겐 성립할 수 있구나.’
붉은 눈이 더욱 새빨개졌다. 그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격해진 순간이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 제이드가 문으로 달려가 곧장 열어젖혔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겼습니다.”
문밖에는 선대 공작 곁, 언제나 웃는 낯이던 보좌관이 웃지 않는 얼굴로 서 있었다.
“두로스가 살해당했습니다.”
“……!”
감옥에 갇힌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를 살해한 것은…….
* * *
“미, 미친 자였어요!”
두로스의 죽음을 목격해 끌려온 부상단주, 아넬라가 외쳤다.
“미친놈이라고요!”
상단주인 두로스를 대신해 실질적으로 상단을 이끌던 그녀는 담이 크고 강단이 세서 어지간한 일에도 동요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광경은…….’
성물, ‘검은 인어의 눈물’을 확보한 것은 두로스였다. 정확히는 두로스와 정체가 불분명한 사내 하나였다.
흐릿한 회색 머리카락과 회색 눈동자.
키도 크고 준수한 얼굴인데도, 그는 의아할 정도로 존재감이 옅었다. 특출나기보다는 평범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듀이라고 불러줘.’
의심을 조금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친절하고 다정한 태도, 늘 생글생글 웃는 상인데다가 박학다식한 사내는 금방 상단에 녹아들었다.
하지만 상단주 두로스의 눈에 든 것은, 어느 날 잔뜩 술에 취해 빨개진 듀이가 ‘검은 인어의 눈물’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무심코 흘렸을 때였다.
‘듀이, ‘검은 인어의 눈물’이 실존한다는 게 정말 말인가?!’
‘사, 상단주님. 저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
‘에헤이, 다 같은 식구끼리 왜 이러나? 나한테만 슬쩍 말해 보게, 응?’
오랜 시간의 회유와 설득 끝에 듀이는 발설했다. ‘검은 인어의 눈물’은 어느 지역의 낡은 신전에서 은밀히 보관하고 있다고.
‘신전에서는 자신들이 이 성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공표하면, 황실에 빼앗길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이런 외진 곳에 숨겨둔 것이지요.’
‘오오, 이런 곳에 숨겨두었다니 정말 의심도 못 하겠군.’
비밀을 공유해서일까,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 친밀함은 두로스가 듀이의 인맥을 통해 비밀리에 ‘검은 인어의 눈물’의 실물을 확인하게 되면서 더할 나위 할 수 없이 깊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둘은 그것을 훔쳐서 선대 고드윈 공작에게 판매하겠다는 미친 계획까지 세우게 되었다.
‘상단주님, 위험합니다. 그게 어떤 물건인데-!’
물론 아넬라는 부상단주로서 반대했다.
‘그래, 그게 어떤 물건이야?! 그것만 있으면 우리 상단의 자금난은 해결이라고!’
‘…….’
그러나 뺨만 맞고 쫓겨날 뿐이었다.
로스두 상단은 유서 깊고 튼튼한 상단이었다. 하지만 상단을 이어받은 두로스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무리한 확장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 결과, 현재 로스두 상단은 파산을 앞둘 정도로 크나큰 자금난을 맞이하게 되었다.
‘상단주님, 일이 너무 유리하게 돌아가는 게 수상합니다. 교차 검증해야…….’
‘닥쳐! 네깟 것이 무얼 안다고! 네가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어? 우리 상단이 망하지 않게 자금을 끌어올 수 있냐고!’
이 사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상단주의 자리마저 위태롭다.
그를 아는 두로스는 초조했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운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결국 아넬라는 두로스를 막지 못했고, 어느 밤 듀이와 자리 비운 두로스의 손에는 ‘검은 인어의 눈물’이 쥐어져 있었다.
‘맙소사, 아예야스 황후의 초상화에 그려진 것과 똑같잖아.’
믿기지 않게도, 정말로 성공한 것이다.
노련한 부 상단주의 눈에도 그것은 진품으로 보였다.
특히 시중에 거의 풀릴 일이 없다는 흑진주에서 신성한 광채까지 뿜어나오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멍청한 년. 그러니까 네가 상단주가 못 된 거야.’
‘…….’
‘상인은 자고로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기회를 잡아야 하는 법이지.’
득의양양하게 외쳤던 두로스는 ‘검은 인어의 눈물’을 들고 선대 고드윈 공작을 찾아갔다.
그리고…….
“나, 난 정말 몰랐어! 그게 가짜인 줄 몰랐다고-!”
정신 차렸을 때는 감옥이었다.
먼저 끌려온 두로스는 창살을 쥔 채 악을 쓰고 있었다.
“너!”
상황이 뭐가 어떻게 된 거냐, 묻기도 전에 두로스는 아넬라 곁에 함께 잡혀 온 듀이를 발견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두로스는 미치광이처럼 달려들었다.
건너편 감옥에 갇혀 있던 듀이는 쇠창살 너머 두로스의 팔에 멱살 잡힌 채 흔들렸다.
“네가 진짜라 했잖아, 그런데 왜 ‘검은 인어의 눈물’이, 흑진주가 깨진 건데!”
“……흑진주?”
수수깡 인형처럼 힘없이 흔들리던 듀이가 고개를 든 건 그때였다.
“그걸 알아봤다고?”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