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두로스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에 의심과 분노가 깃들었다.
“두 번째로 제가 의심한 건, 그가 거짓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 무슨! 저는 결코-!”
“저자는 신전도 진품이 없고, 가품을 가졌다고 말했으나…… 사실 신전엔 진품이 있습니다.”
나는 슬쩍 함정을 놓았다.
“……!”
두로스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내가 뭔갈 알고 있긴 하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역시.
“그렇다면 왜 밝히지 않았지?”
“황후 아예야스의 목걸이는 성녀의 축복까지 받은, 값을 따질 수 없는 귀중품입니다.”
나는 안심하고 말했다.
“신전에 있다는 게 알려지면 황실에서는 소유권을 주장할 테지요. 하지만 신전에서는 성녀의 축복이 깃든 성물을 내어줄 수 없는 일입니다.”
알력 다툼을 피해 차라 짭을 가졌다는 소문을 감수했다는 뜻이다.
“좋다. 여기까진 그럴싸하구나.”
선대 공작은 피식 웃었다. 그는 깍지낀 손에 턱을 얹고 나를 보았다.
“그러나 네 모든 말은 그저 추측에 불과하다.”
“그, 그렇습니다! 각하, 저는 상단에 맹세코 절대……!”
아니, 내 말에 증거가 필요하다는 거랑 댁이 결백하다는 건 다른 이야기라니깐.
선대 공작이 턱짓하자 기사들이 그를 다시 포박했다.
“으헉!”
“증거를 보여라.”
때마침 문이 열리며 보좌관이 돌아왔다.
“아무렴요.”
나는 그가 들고 온 상자를 열었다. ‘검은 인어의 눈물’ 못지않게 커다란 흑진주가 광채를 뿜어냈다.
“그건…….”
사람들은 신음했다.
이 안에 든 보석에 놀라고 감탄해서가 아니었다.
“이 흑진주는 제국의 적통 황녀셨던 엘레아스 님께서 보내신 결혼 선물이시지요.”
‘검은 인어의 눈물’의 유명세 덕분에 흑진주는 제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보석이 되었다. 값이 비싼 건 당연하고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귀물.
‘이 시기엔 진주 양식장도 없을 테니까 더 하겠지.’
그냥 진주도 귀한데 흑진주는 얼마나 귀하겠어.
그 정도로 귀한 보석을 황녀는 결혼 선물로 고드윈 공작 가에 보냈다.
그리고 엘레아스 황녀의 결혼 상대는 현 고드윈 공작, 즉 그녀가 바로 해리스의 친모란 말이다.
‘이런 귀중품을 보낸 고귀한 황녀님의 친아들, 해리스를 이렇게 박대하냐 망할 놈들아?’
신분제는 혈통빨이라는데, 해리스 미만 잡은 다 꿇어!
-라는 메시지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
“…….”
효과가 없진 않았는지 사람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게 어쨌다는 거냐.”
그러나 과연 가주쯤 되는 인물은 얼굴 두께도 보통 이상인 모양이다.
선대 공작의 타박에 나는 보좌관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그런 말이 있지요. 가짜는, 진짜와 가까워질 때 드러나는 법이라는.”
“그게 무슨…….”
보좌관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흑진주를 집었다. 장갑을 낀 손은 미약하게 떨리며 ‘검은 인어의 눈물’에게 다가갔다.
“……!!”
팅, 진짜 흑진주에 닿은 ‘검은 인어의 눈물’은 산산이 조각나 모래처럼 부스러졌다.
내 예상대로.
‘역시, 가짜였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이유로 내 얼굴이 굳어졌다. 심지어 이건 일반적인 가품도 아니다.
‘듀크 아인델타.’
이 세계관 내 몇 없는 S급 이능력자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진짜에 닿으면 부서지는 가짜, 이건 분명 그의 솜씨다.
흑진주는 시중에 거의 풀리지 않으니, 귀한 ‘검은 인어의 눈물’에만 이능을 사용한 거겠지.
‘하지만 그가 왜?’
나는 선대 공작의 시선이 닿기 전 헤실 웃었다.
“확실히 옛말이 틀리지 않나 봐요. 이렇게 드러나는 걸 보면 말이에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으, 으아아아-!”
패닉에 빠진 두로스는 도망치려고 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는 문고리를 쥐기도 전에 집무실에 대기한 기사들에게 잡혔다.
그리고 그가 원하던 대로, 하지만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집무실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가, 각하! 저는 억울합니다! 저는 그저-!”
비명이 복도에 울렸지만, 문이 닫히며 집무실은 다시 고요해졌다.
* * *
“그럼.”
제이드는 끌려가는 두로스를 보다가 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원하는 것을 말해 보아라.”
중후하고 깊은 목소리. 선대 공작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제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왜 가짜인지는 증명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는 또 다른 이야기다.
‘솔직히 그것부터 물어볼 줄 알았는데.’
선대 고드윈 공작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물으면 답해 줄 것이냐?”
계속 자신을 인간 취급하지도 않던 노인네가 웃다니.
그것도 놀라웠지만 웃는 얼굴이 해리스를 약간 닮아서 더 신기했다. 내내 긴장하던 제이드는 일순 진심으로 헤헷 웃었다.
“못할 것도 없지요.”
“또 거래하려고? 건방진 것.”
선대 공작은 혀를 찼다.
그러나 말투와 달리 얼굴은 크게 언짢은 기색이기보다는 도리어 흥미로운 듯한 반응이었다.
사실, 선대 고드윈 공작은 해리스가 성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다.
해리스가 감금되어 있던 곳이 완전히 무너지고, 그 성의 잔해 아래에는 괴이한 사체가 즐비했으며 거기에 마법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것까지.
그리고 그 끔찍한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오직 둘뿐이었다.
해리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가이드라 주장하는 저 소녀, 제이드.
선대 고드윈 공작은 알고 있었다. 해리스가 어찌하여 후계자 자리에서 박탈당했는지, 그리고 박탈당한 뒤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그 모든 과정에서 선대 고드윈 공작은 철저히 방관의 자세를 유지했다.
물론 그렇게 행동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유가 있다 한들, 해리스가 자신을 이해하고 용서할 거라곤 믿지 않았다.
자신이라도 그러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그는 해리스가 탈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보복’이었다.
‘공격하겠지.’
이날이 언젠가 오리라 짐작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오다니.
착잡한 마음으로 전투태세에 돌입한 선대 고드윈 공작은 예상치 못한 것을 맞이했다.
꾀죄죄하고 낡은 옷을 입은, 그러나 눈빛 하나만큼은 형형한 해리스. 그리고 그의 품에 안긴 기절한 작은 소녀.
조화롭지 않은 모습에 멍해진 것도 잠시, 해리스는 선대 공작을 감싸는 기사 진영을 모조리 무효화시켰다.
‘방심이 죄로다.’
선대 공작이 대검을 쥐고 그와 맞서 싸우려던 순간, 그 앞까지 도달한 해리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방을 내어주십시오. 의사도.’
그리고 말이 끝나자마자 품에 안긴 소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갑작스레 할아버지의 집에 쳐들어와 할 짓은 아니었다. 뻔뻔하다고 내쫓아도 할 말 없을 일지만.
‘알겠다.’
그러나 찌푸려진 짙은 눈썹을 가만히 보던 선대 고드윈 공작은 말없이 몸을 돌렸다.
그렇게 입성한 해리스는 자신의 가이드-라고 주장하는 소녀-를 보살피는 것 외에는 어떠한 것도 하지 않았다.
본인도 다쳐서 치료받은 환자인 주제에, 단지 그것만이 목적이라는 듯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태도에 성의 사람들 모두 놀라 수군거렸다.
하지만 선대 고드윈 공작이 놀란 건 그가 애지중지 제이드를 돌보아서가 아니라, 돌보기만 했다는 점이었다.
‘공격할 줄 알았는데.’
선대 고드윈 공작은 해리스는 자신의 힘과 본능을 통제하지 못하는 어린 짐승일 거라 짐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과거 멀쩡한 인간이었어도 그 오랜 시간 감옥에 갇혀 지내면 미칠 수밖에 없으니.
해리스는 갇히기 전에도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하고 사람을 공격하곤 했다.
그러나 정작, 이렇게 십수 년이 지나 만나게 된 해리스는 자신의 본능보다 목적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을 버리고 방관한 할아버지에게 복수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소중한 가이드의 치유에 전념했던 것이다.
‘저 가이드가 고열을 앓고 있기 때문이고, 열이 가라앉은 뒤에는 다시 공격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선대 공작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열이 내린 뒤에도 해리스는 그저 가이드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보살필 뿐이었다.
‘……혹시 감옥 생활에서 성격이 죽은 건가?’
그런 의심이 잠시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해리스가 잠시 자리 비운 뒤, 가이드의 열이 다시 치솟는 일이 생겼는데…….
‘그 뒤론 쓸데없는 의심을 하진 않게 되었지.’
공격성이 강하고 흉포한 게 그가 들어온 친손자가 맞았다.
확실한 건, 가이드에 대한 정이 깊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다니.
‘아무래도 함께 고생하며 지내 온 세월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군.’
어쨌거나 분별력 있게 군다는 점은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해리스가 그에게 원한이 있으며, 복수할 권리도 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그는 한 세력의 군주였고 그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었다.
증오에 눈먼 손자의 손에 순순히 당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해리스가 자신의 힘과 본능을 목적에 따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면, 협상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선대 공작이 갑작스레 제이드를 부른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그토록 아끼던 가이드 앞에서 멸시받고, 그 가이드도 무시당하면 어떻게 반응할까.
친손자를 대하는 할아버지의 태도라긴 잔혹했지만, S급 이능력자를 대하는 군주의 자세로는 합당한 일이었다.
그가 제 성질 못 이겨 사람들을 공격하고 위협할 존재라면, 본성에 들여놓은 것조차 치명적인 과오가 될 테니.
시험의 결과는 절반 정도였다.
의외로, 해리스는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무시당할 때는 가만히 있었다.
붉은 눈동자의 안광이 심상치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감정을 억누르고 함부로 힘을 써서 위협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이드가 핍박당한다 싶을 때는 조금도 참지 않았다.
‘약점이라는 거지.’
해리스는 그걸 숨기지도 않았다. 아마 그 약점을 건드리는 즉시 망설이지 않고 보복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리라.
어쨌거나, 선대 공작은 그 모습에서 협상의 가능성을 보았다.
해리스와 고난의 세월을 함께 하며 정을 쌓은, 그의 약점이나 다름없는 가이드.
제이드에게 가진 생각은 그게 다였었다.
그랬는데.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