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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15화 (15/119)

15화

몇 분 전. 해리스는 제이드가 마법사의 손목을 날려 버린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을 몰아붙였다.

쾅, 쿠콰과강-!

그 공격으로 성의 천장은 완전히 무너졌고, 마법사는 절명했다는 듯 쓰려졌다.

“……후우.”

해리스는 가슴을 움켜쥔 채 헐떡였다.

갑작스럽게 차오른 힘을 너무 급격하게 써버렸다.

심장은 터질 듯 벌떡였고 흥분의 열기는 모든 게 끝났음에도 가라앉지 않았다.

너무나 날카로워진 신경은 그의 시야가 닿지 않은 사방까지도 뻗어나가 먼지 하나까지도 탐지해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없다.’

죽었다면 시체가 남아야 할 텐데, 마력의 흔적마저도 끊어졌다. 아예 사라진 것이다.

‘본체가 아니야.’

예상한 바였다. 그의 이능을 탐지해서 소환하기에는 자아를 가진 지적생명체보다는 분신에 가까운 인형이 더 소환하기 적합했다.

본체가 아닌 분신 인형.

그것도 온전하지 못한 소환으로 나타난 주제에 감히 자신에게 덤벼들 수 있는 마법사.

해리스가 알기론 그 정도의 마법사는 단 한 명이다.

마탑의 주인, 엘리시어스.

반드시 죽여 버려야 하는 대상 중 하나.

‘아쉽군.’

본체를 죽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은 차디찬 증오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증오의 끝에는 언제나 한 사람이 있었다.

고드윈 공작.

노먼 헨드릭스 고드윈.

해리스의 친아비이자, 친아들을 죽이기 위해 이토록 공들여 성을 쌓은 사내.

박살이 난 성체 위로 새벽의 검푸른 하늘이, 희게 흩뿌려진 별들이 보였다.

감옥에 갇힌 수년간 보지 못한.

그러나 해리스의 붉은 눈동자는 그를 오래 담지 못했다.

“……크윽.”

억제구를 달고 있을 때, 상시로 느꼈던 두통이 이젠 머리를 도끼로 깨버리고 싶을 정도로 강렬해졌다. 눈의 가장 깊숙한 부분에서 가시가 찔러오는 것만 같았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그 사람 때문이야. 그 새끼 때문이야!]

[고드윈 공작.]

[그 씹어 죽여도 성치 않을 새끼!]

[죽여 버려!]

그래, 죽여야겠다.

해리스는 입꼬리를 올렸다. 새빨간 홍채를 감싸는 흰자에 붉은 핏줄마저 선명히 돋아 올랐다.

섬뜩한 미소였다.

고드윈 공작. 그가 바로 자신이 취한 자유의 첫 번째 공물이 되리라.

그렇게 발을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제이드?”

그녀를 발견한 것은.

정확히는 암석의 부스러기가 제이드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한 거였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그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듯,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그 순간 살의에 물든 광기가 흩어졌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뻗어진 손에서 검은 마력이 쏟아져 그 암석을 밀쳐냈다.

정신없이 달려 나간 다리가 어느덧 그를 그녀 앞에 데려다 놓았다.

“너 미쳤어?!”

고함이 터져나가고 나서야 해리스는 자신의 머리가 끓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알아서 뽈뽈 잘만 피하고 다니던 것이, 지금 이렇게 넋을 놓고 있다니!’

제정신이야? 죽고 싶어! 윽박지르려던 입은 멈칫했다.

마주한 눈동자는 초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처럼 발그레하던 제이드의 뺨에는 눈물이 시냇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짓밟힌 꽃처럼 애처롭고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이번에도 해리스는 자신의 손이 움직인다는 걸 손끝에 눈물이 닿고 나서야 깨달았다.

서늘한 새벽의 공기, 시린 뺨에 눈물은 금방 차가워졌다. 그 위로 뜨거운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해리스, 님.”

그 무렵이었다.

제이드의 길 잃은 눈동자가 그를 발견한 것은.

길고 촘촘한 눈썹은 눈물에 젖어 왕관처럼 반짝였고, 그 왕관이 장식하는 푸른 눈동자는 별처럼 빛났다.

“제 말대로, 됐죠……?”

뭐가, 하고 묻기도 전에 제이드가 휘청였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잡아챈 해리스는 누군가와 닿는다는 본능적인 거부감에 눈살을 찌푸렸으나…….

“……!”

피부에 닿아오는 온도는 정상이 아니었다.

‘뜨거워.’

감옥 탈출하고 괴물을 총으로 쏴 갈길 때는 멀쩡하던데, 갑자기 왜.

혼란스럽게 튀어나온 의문은 곧장 답을 찾았다.

“나를, 가이딩해서……?”

가이딩이 가이드에게도 지장을 준다는 것 정도는 해리스도 알고 있었다.

그것이 그와 같은 강력한 이능력자일 경우 더더욱 힘겨워한다는 것도.

“……!”

가이딩, 그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해리스는 사방이 고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쉴 새 없이 그에게 저주와 증오를 속삭이던 심연의 목소리들이 물에 끼얹어진 촛불처럼 꺼진 것이다.

두통도 마찬가지였다.

머리를 쪼개고 싶을 정도로 강렬하던 통증이 언제 존재했냐는 듯 싹 가셔 있었고, 지나치게 예민하여 드넓게 뻗어져 있던 신경은 오직 품속 제이드의 숨결에만 쏠려 있었다.

과열하듯 끓어오르던 마력이 사그라든 것이다.

“하…….”

난생처음 맛보는 평온이었다. 그리고 해리스는 그 평온의 출처가 누구인지 알았다.

“……제이드.”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제이드가 왜 갑자기 쓰러졌는지.

‘마지막까지, 나를 가이딩하려고 한 거야.’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자신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버텨냈다가, 자신과 닿자마자 기절했겠는가.

그리고 왜 자신은 제이드와 닿은 직후 이능의 부작용이 사라졌겠는가.

“……왜.”

해리스는 멍하니 되물었다.

“너는 왜, 내게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물론 기절한 사람에게서는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답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반려 가이드.

파장에 닿는 순간,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알아본다는 가이드와 이능력자만의 특수한 관계.

하나였던 조각이 두 개로 나뉘어 오직 서로에게만 맞물린다는, 오롯이 하나가 되는 감각이 반려와 같다 하여 그리 불렸다.

‘네가 정말로 나의 반려 가이드라면.’

그리하여 첫눈에 자신을 알아보았던 거라면, 그래서 잘해 준 거라면.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 다 납득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제이드가 자신을 ‘예언자’ 운운하며 헛소리한 건 둘째 문제였다.

자신처럼 가이드를 거부하다 못해 그들의 파장에 역함까지 느끼는 이능력자들은, ‘가이드 불감증’이라 불리며 그들은 자신만의 반려 가이드를 거의 찾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오래 살지 못하고 통제 불능의 괴물로 죽어버린다고도.

그런데 난데없이 반려 가이드라니.

쿵, 쿵- 누구인지 모를 심장 소리가 크게 울려왔다.

‘설마, 이조차도 반려 가이드에게 닿은 본능적인 환희 때문인가?’

만약 제이드가 기절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의 생각을 알았다면 답해주었을 것이다.

그건 전투 후에도 남은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 때문이라고.

쓰러진 것도 가이딩이 아니라, 오늘 일어난 오만 난리 때문에 죽을 정도로 지쳐서 그런 거라고.

자신은 반려 가이드 같은 게 아니라고. 지금 당신은 어마어마한 착각을 하고 있다고!

그러나 제이드는 의식을 잃었고, 진실은 침묵에 묻혔다.

침묵이 낳은 오해 쏙에 빠진 해리스는 그대로 제이드를 안고 일어섰다.

그의 품속, 제이드의 손아귀에 무언가 반짝이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

* * *

“…….”

엘리시어스는 눈을 떴다.

공들여 만든 인형이 파괴되는 건 본체에도 영향을 주었다.

“쿨럭…….”

엘리시어스는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냈다. 뇌가 시궁창의 물에 헤집어진 느낌이 몹시도 더러웠다.

“쿨럭, 쿨럭……!”

한참을 기침해내던 엘리시어스는 창백한 안색으로 고개를 들었다.

분신이 전해 온 마지막 전언은 짧았다.

[고드윈 공작의 아들, ‘공허’의 이능력자가 탈출했다.]

[도망친 실험체로 의심되는 존재 또한 발견.]

그 전언을 마지막으로 도착한 기억은 더욱 엉망이었다. 이마를 짚던 엘리시어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당연하지만, 압도적으로 전자보다 후자가 중요했다. 고드윈의 새끼 따위 탈출하든 말든 그가 알 바는 아니었다.

‘그 새끼에게서 빼낼 건 다 빼냈어.’

이능, 공허(Void).

그 힘은 몹시 흥미롭긴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자신이 추출하여 무어라도 해볼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자가 알려진다면 고드윈 공작이 자신을 귀찮게 닦달할 게 뻔했다.

-엘리시어스 님, 마탑주님!

유감스럽게도 때마침 마탑 측에서 긴급한 연락이 울려왔다.

‘성가셔.’

그대로 꺼버리려던 손은 피를 토한 여파인지 실수로 응답을 눌러버렸고,

-큰일 났습니다아!

세브릭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왔다. 엘리시어스는 한숨을 삼켰다.

이미 다 짐작하는 소식을 듣는 건 몹시도 지루한 일이었다.

마탑에서 일어난 일을 권태롭게 흘려들은 뒤, 엘리시어스는 물었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빛이 들어오긴 했습니다만, 이전보다 작고 흐릿한 빛입니다…….

‘수작을 부렸군.’

탈옥한 새끼 고드윈이 어떠한 술수를 부린 모양이었다.

이를테면 마력을 보유한 다른 것에게 자신의 구속구를 붙이고 지하 감옥에 처박았다든지.

‘불가능하진 않지. 애초에 컨트롤러 자체가 마력 보유자는 쓸 수 있게 되어 있으니.’

누구 한 마리 잡아서 가뒀으려나.

엘리시어스는 즉각적으로 진실을 추론해 냈지만, 여전히 모른 척 답했다.

“그럼 있는 거겠지. 어디 아픈 거거나. 내버려 둬.”

-네? 하지만……!

“고드윈 공작한테서 소식 들려오기 전까진 귀찮게 굴지 마.”

-마탑주님!

당황한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엘리시어스는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용건이 있었으니까.

‘도망친 실험체.’

전언 속, 시야가 망가진 분신이 보내온 기억에 얼핏 분홍빛의 무언가가 남아있었다.

“…….”

그 꽃잎 색의 머리카락 자체는 아주 드문 게 아니었다.

과거, 요정족의 왕자가 옛 왕국의 공주와 맺어진 후 요정족의 혈통은 인간계에 널리 퍼졌다.

그들은 요정족의 혈통을 드러내듯 꽃잎과도 같은 다채로운 색상의 채모를 가지게 되었으며, 그게 평민들에게까지 전파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실험체라면…….’

권태롭던 엘리시어스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그는 고대 요정족에 관심이 많았다. 확보의 어려움으로 별수 없이 요정족 후예들을 가져와 실험해보았지만, 대부분 오래 버티지 못해 폐기해야 했다.

만약 분신이 찾은 실험체가, 그가 찾고 있던 ‘그것’이라면…….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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