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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14화 (14/119)

14화

이거 좀 낯선데? 너 안 어울리게 왜 이래.

이 와중에도 넘쳐나는 덕심과 별개로, 해리스가 날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객관적인 사실 정도는 나도 인지하고 있다.

‘아마 날 성가시고 정신 나간 노예1 정도로만 생각하지 않을까?’

잠시 의아했지만 난 금방 납득했다.

‘이것이 바로 전우애! 전투를 함께하며 쌓이는 우정인가 봐!’

물론 해리스가 일당백이었지만, 나도 총 쏘면서 도와줬잖아?

할 때는 무서웠지만 역시 하길 잘했군. 라이플을 쥔 채 으쓱해 하던 무렵이었다.

“제- 이- 드-!!”

전투의 소음마저도 뚫고 들어오는 고함이 내 뒤통수를 내려친 건.

엄마의 불호령을 들은 듯 심장이 덜컹거리고 식은땀이 줄줄 났다. 겁먹은 고개가 내 의사와 반대로 뒤로 돌아갔다.

“너 미쳤어!”

빽하니 소리 지르는 미려한 얼굴.

“진짜 죽을래?!”

역시나 에이드리안이었다. 극대노한 그를 보자 실감 됐다.

“여기가 어디라고 나대는 거야!!”

이 자식, 찐 오빠다.

이건 찐 가족만이 낼 수 있는 분노 게이지야. 짭 가족은 흉내 낼 수 없는 사자후!

“아, 하, 하하, 그, 그게…….”

나는 어설프게 웃으며 상황을 무마하려 했지만,

“웃어? 너 지금 이게 웃겨?!”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역효과였다.

개빡친 오빠가 떨어지는 불꽃보다도 두려웠다. 필사적으로 에이드리안의 시선을 피하던 난 멈칫했다.

‘눈이 마주쳤어?’

머리 위, 해리스에게 불덩이를 내던지던 마법사.

상대와 나의 거리를 생각하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그와 얼핏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그리고…….

“어째서!”

머나먼 거리에서도 상대의 얼굴이 충격과 놀람으로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우와 제이드 시력 짱이다. 거의 몽골인…… 이 아니라!’

바, 방금 저한테 말씀하셨나요?

저 엄청나게 수상쩍고 위험해 보이는 마법사께서 나를 알아보셨단 말인가요!

쾅! 콰광-!

더 자세한 소리는 연이은 전투의 사운드에 묻혔지만, 그래서 더 무서웠다.

‘갸아아악! 제이드,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이 불길한 떡밥 대체 어디서 오는 겁니까, 출처를 말해줘!

그러나 더 충격받을 겨를은 없었다. 해리스를 상대하던 마법사가 곧장 나를 향해 마법 빔을 쏜 것이다!

“으아아아!”

퍼뜩 고개 숙여 피하자, 빔의 여파로 주변 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제이드, 빨리 달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에이드리안의 손에 붙들려 마구 도망가던 와중이었다.

“헉, 허억, 헉……!”

혼란과 버거움으로 숨이 벅찼다. 정신없이 달리는 발치에도 빔이 빵! 슉! 캉! 하고 계속해서 쏟아졌다.

“악!”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난 억울해서 고함질렀다.

“미친놈아! 그만 쏴! 나한테 왜 이……!”

꽥, 그렇게 욕하자마자 발이 뭔가 밟고 넘어졌다. 아픔을 딛고 고개 들어 내가 뭘 밟았나 확인했는데.

“…….”

그건 내가 떨어뜨린 샹들리에 조각이었다.

새, 생각해보니 나한테 저렇게 화낼 이유가 있었네, 하하.

다시 보니 피로 물든 마법사의 얼굴이 몹시 심상치 않았다.

‘☆발…….’

얼른 일어나 도망쳐야 하는데.

그러나 마법사가 더 빨랐다. 눈앞에 빛이 다가온다 싶던 순간.

“-제이드!”

누군가 팍 밀치는 게 느껴졌다.

빛의 암흑에 빠진 난 한참 눈을 깜빡이고 나서야 깨달았다.

“에이드리안!”

“……오빠! 오빠라고 부르라 했지!”

버럭 소리 지르는 성깔. 영락없이 성격 까칠한 우리의 주인공 에이드리안이었지만.

문제는 그가 마법 빛에 잡혀 허공에 끌려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끝까지 오빠 말 안 듣고 이럴래! 정신 안 차려?!”

납치당하는 와중에도 오빠충의 정신을 잃지 않는다니. 너는 <진짜>구나…… 가 아니라!

“안 돼!”

난 벌떡 일어났다.

이런 망할, 저 마법사 새끼가 잡으려던 게 내가 아니었구나!

‘그래, 에이드리안은 본래 마탑의 실험체로 잡혀있었지!’

그리고 간신히 탈출하다 다시 노예로 잡혀 감옥의 해리스 앞에 내던져진 것이다.

거기서부터 <시천귀>가 시작하지.

그러니까 에이드리안이 마탑의 실험체인 건 기본 베이스 설정으로 박고 출발한다는 말이다.

새삼 박복하고 기구한 에이드리안이 점점 내 시야에서 작아져 가고 있었다.

“안 돼, 멈춰!”

난 퍼뜩 계속 쥐고 있던 라이플을 들어 쐈다. 그러나…….

“……?”

철컥-

들려온 건 탄환 부족의 소리뿐이었다.

‘젠장, 총알 다 썼구나!’

황급히 여분 탄환을 주우려 둘러봤지만, 사방은 난투와 괴물들의 시체로 엉망이었다.

“제발, 제발, 제발……!”

나는 바닥을 기듯이 돌아다니며 샅샅이 훑었다.

그러나 미친 강자들의 전투 속, 멀쩡한 무기는 찾기 어려웠다.

보이는 족족 공격의 여파로 박살 나거나 똑바로 보기 싫은 무언가에 깔린 것들만…….

“차, 찾았다!”

그나마 발견한 것이 산탄총이었다. 더블배럴이었는데 한 발은 이미 쐈는지 탄환이 하나뿐인!

‘이대로 에이드리안이 잡혀가게 둬선 안 돼.’

그러나 마법 빛에 납치당하는 에이드리안은 점점 더 멀어져가고만 있었다.

“가만히…… 제발 좀 가만히…….”

자세를 잡고 조준점을 겨누었지만, 마법사는 해리스와의 전투로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개자식아, 가만히 있어! 에이드리안이 다치게 생겼잖아!’

부서지는 성의 파편에 내 주인공님이 맞기라도 하면 너네가 책임질 거야?!

불안함에 심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해리스의 폭주에 죽어갈 엑스트라 1에 빙의한 걸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차라리 그게 양반이었다.

이젠 못된 사용인들이 괴물로 변하질 않나, 갑작스레 등장한 마법사에 에이드리안이 납치당하지 않나…….

쿠콰광-!

그걸로도 모자라 이젠 마법사와 해리스의 전투로 성이 박살 나고 있었다.

“이딴 극한 빙의 어디 있어!”

진짜 울고 싶었다. 내 머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에도 한계가 있단 말이다!

‘내가 본 빙의물은 일단 쩌리 악역 하녀부터 퇴치하면서 시작하던데.’

왜 전 처음부터 최종 보스와 파이널 그라운드에 떨어진 것만 같죠? 나도 그쪽 장르에 넣어줘! 애초에 난 로판이 본진이라고!

‘덕질 한 번 잘못 잡았다고 이러기냐!’

서러웠다.

무서웠다.

분노와 혼란, 슬픔과 불안으로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나 진정해야 했다. 총구가 떨리지 않도록.

눈물도 삼켜야 했다. 시야가 흐려지지 않도록.

나는 심호흡하며 눈을 부릅떴다. 기다려야 해. 침착하자,

내가 쏠 기회는 오직 한 번.

쾅-!!

바로 그때, 검은 파도처럼 치솟은 해리스의 이능이 마법사를 내리찍었다.

“……!”

마법사는 재빨리 그 공격을 피했지만, 해리스의 계산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콰콰광-!

마법사 머리 위의 천장은 검은 파도를 피하지 못했다.

공격의 여파를 그대로 받은 성은 가뜩이나 박살 난 와중에 천장마저 끝장났다.

우르르- 성의 천장이 무너지자, 마법사는 쉴드 마법을 캐스팅하려는 듯 잠시 주춤거렸다.

‘지금이다.’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발사의 반동으로 흔들리는 몸. 커다란 격발음에 먹먹한 귀.

그러나 내 눈은 기다란 총열에서 쏘아진 탄환이 천공을, 흩날리는 바위 조각과 파편 사이로 날아가는 것만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리고…….

“……크아악!!”

총알이 명중했다.

마법사는 비명을 토하며 몸을 웅크렸다.

에이드리안을 붙들던, 그 마법 빛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였다.

“됐다!”

그리고 남은 건 추락뿐.

난 빈 산탄총을 내던진 채 떨어지는 에이드리안을 향해 달려갔다.

“에이드리안-!”

맞다, 오빠라고 부르라 했지.

그 생각은 그를 받기 위해 두 팔 벌리고 달려간 뒤에야 든 생각이었다.

이쪽…… 이쪽이다, 이쪽으로 떨어지고 있…….

“……는 거 맞아?!”

왜…… 점점 작아지죠? 보통 가까워질수록 인영은 커 보여야 정상인데……?

흔들리는 내 시야 끝에 있는 건 에이드리안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에이드리안‘이었던’ 어떠한 실루엣이었다.

그 실루엣은 점점 작아지더니 마침내 새끼 고양이처럼 작고 미약해졌다.

“왜?!”

경악의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몸은 충실히 그 새끼 고양이를 낚았다.

그러나 새끼 고양이 에이드리안은 내 손에 닿을 무렵 손바닥보다도 작은 돌로 변해 있었다.

“…….”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영혼이 잠시 육체를 이탈했다.

아니, 잠깐, 이게 뭐예요. 왜 인간이 아기 고양이, 아니, 아기 돌멩이가 되었죠? 이게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

“아…….”

불행히도 사람이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세계에선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엘리시어스.’

위기에 봉착한 뇌가 빠르게 답을 도출해냈다.

이 소설의 가장 강력한 악역, 마탑주 엘리시어스. 이건 그의 마법이었다.

그는 세상 만물을 자신의 탐구 영역으로 여겼고, 그 탐구의 과정에서 탐구 당하는 대상의 의사와 의지는 썩 존중하지 않았다.

격렬한 반발과 반항을 몇 번 겪은 천재 사이코패스 마법사 엘리시어스는 만사가 성가셔진 나머지 마침내 상대의 자아 의지 자체를 박살 내 버리는 마법을 개발했다.

자신이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을 그 이하의 존재로 전락시켜버리는 마법을!

“미, 미친.”

이쯤 되니 정신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주인공이 예쁜 돌멩이가 되었어요. 이젠 어떻게 하죠?

털썩- 다리가 꺾이며 힘을 잃은 몸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젠 더 생각할 힘도 없었다.

‘죽을 거 같아. 너무 힘들어.’

그래서일까, 머리 위로 떨어지는 성의 조각을 인지하지 못한 건.

쿵-!!

바닥에 진동이 울리고 팔이 잡혔다.

휘청이던 시야에 붉은 눈이 닿고 나서야 나는 상대를 알아보았다.

“-너 미쳤어?!”

산수유 열매처럼 빨간 눈. 화가 난 듯한 얼굴.

“해리스 님…….”

왠지 저 말, 여러 번 듣는 거 같네. 어쩌면 정말 미친 걸지도.

나는 헤실 웃었다.

“……제 말대로, 됐죠?”

“뭐?”

“탈출, 성공했잖아요…….”

저 거짓말쟁이 아니라고요.

그 속삭임을 마지막으로 새까만 암흑이 나를 덮쳐왔다. 나는 드디어 찾아온 블랙아웃을 환영하며 쓰러졌다.

“제이드-!!”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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