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이전에는 에이드리안이 담당했던. 해리스가 고드윈 공작 성의 모두를 학살하는 것을 막아주던 인간 진정제가 사라졌다!
“으악, 안 돼!”
나는 에이드리안을 밀치고 허둥지둥 감옥 문밖으로 달려갔다.
“제이드?!”
“있어 봐, 이 오빠충아!”
“뭐?!”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 것도 같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해리스를, 그가 저지를 학살을 막아야 했다. 원작의 미래가 흐트러졌다는 문제만이 아니었다.
만약 그를 막지 못한다면…….
‘우린 모두 끝장이야!’
* * *
연회장이라도 열릴 법한 커다란 홀.
그러나 그곳에 모인 것은 연회에 참석한 손님이 아닌, 처참한 꼴의 사용인들이었다.
“괴물, 괴물 새끼-!”
그들은 핏발 어린 눈으로 누군가를 노려보며 무기를 꽉 쥐었다.
“왜! 왜 쳐 나오고 지랄인 거야! 누가 너 같은 걸 반기기라도 한 대?!”
“죽어, 죽어버려!”
탕-!
한 사람에게 겨냥된 총구, 이어지는 방아쇠. 칼과 도끼가 총알을 뒤따랐다.
그러나 그 살기의 끝에 선 해리스는 가만히 그를 응시할 뿐.
“아아악-!”
도리어 비명을 지르는 건 상대였다.
그 앞에 솟구치는 검은 장막. 총알은 반사되고 칼과 도끼는 튕겨 나가 결국 제 주인들을 공격했다.
“너, 너 같은 괴물 새끼를 낳아서 황녀가 죽은 거야!”
“고드윈 공작님이 맞았어, 내가 애비래도 저런 괴물이 내 자식새끼라니, 태어나자마자 죽이고 싶었을 거야!”
“사…… 살려줘. 살려줘!”
“자, 잘못했어, 제발 한 번만 용서를-!”
그 어떤 것도 통하지 않자, 누군가는 저주와 증오를 내뱉었다. 또 다른 사람은 목숨을 구걸하고 용서를 애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해리스에게 닿지 않았다.
[죽여.]
[아파-!]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버려! 다 죽여 버리자! 전부 죽이는 거야!]
[나를 아프게 했어! 다치게 했어! 나를, 나를, 나를!!]
한평생 힘을 억압당한 채 살아온 그였다.
갑작스러운 해방에 되찾은 힘은 너무나 거대했고, 해리스 그 자신마저도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윽.”
해리스는 작게 신음했다.
복부의 상처.
하필이면 코어와 가까운 상흔은 틀어막는 게 한계였다. 움직일수록 상처는 벌어지고 고통에 이성은 더욱 흐려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악쓰는 사용인들과 자신을 죽이려 드는 무기들만 얼핏 보일 뿐.
[죽고 싶지 않으면 죽여야 해.]
[저것들이 먼저 공격했다고!]
[저 악독한 것들이 너를 가뒀어! 감금했어! 너를 짓밟고 무시하고 핍박하고 학대했어!]
[아파, 아파, 아프다고!]
“시끄러워.”
멍하니 중얼거리는 해리스의 창백한 얼굴에는 피가 흘렀다.
그의 힘에 튕겨 나간 총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흔적이었지만, 해리스는 그조차도 인지할 수 없었다.
해리스 자신조차 바닥을 알 수 없는 광대한 힘. 그리고 살의.
그 두 가지만이 선명했다.
죽여야 해. 전부, 전부 다……!
“-해리스!”
광기의 뇌리를 파고드는 목소리. 해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흐릿하던 시선이 무언가에 초점을 맞췄다.
물결치는 연분홍색 머리카락. 푸른 눈동자.
“해리스 님-!”
제이드.
자신을 다른 세계에서 온 예지자라 칭한 노예 소녀.
‘왜 네가 여기에?’
해리스가 일순 정지한 순간.
우웅-!
사용인들 무리가 일시에 쓰러질 듯 거대한 이명이 울려오고, 그와 동시에 천장에서 빛이 나타났다.
“……!”
천장을 덮어오는 커다란 마법진. 그제야 해리스는 고드윈 공작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이 탈출해도, 언제든지 다시 가둬둘 수 있다던 아버지의 저주가.
* * *
“멈춰! 이능 폭력 멈춰!”
나는 해리스를 발견하자마자 필사적으로 외쳤다.
“미친놈아, 이제 그만 좀 진정……!”
그러나 이미 늦었다.
우웅-!
몸이 휘청일 듯 끔찍한 이명. 그 뒤로 이어진 것은 천장 위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마법진이었다.
“아, 안 돼.”
하나의 마법진이 두 개로 분리되더니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며 서서히 간격을 벌렸다.
‘망했다.’
저건 만에 하나, 해리스가 탈옥했을 때를 대비해 일정 이상의 파괴와 에너지를 탐지하면 자동으로 소환을 진행하는 마법진이었다.
‘그리고 그 소환에 응하는 건…….’
나는 반사적으로 해리스를 보았다.
그 또한 무언가를 깨달은 듯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하, 하하!”
그의 낭패를 발견했다는 듯 사용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 저럴 줄 알았어!”
“고드윈 공작님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괴물의 탈출을 막으실 줄 알았다고!”
“지가 진짜 탈옥할 수 있을 거라 믿은 모양이지? 어딜 감히 괴물 따위가……!”
“제아무리 날뛰어봤자- 크헉!”
마구 조롱하던 사용인 하나가, 갑자기 천공에서 쏘아진 빛에 맞아 풀썩 쓰러졌다.
우드득- 으드득!
천장 위에서 쏘아진 빛에 맞은 몸뚱이는 미친 듯이 증폭하더니 그들이 욕하던 괴물 그 자체로 변해갔다.
“이, 이게 뭐야?!”
“괴, 괴물…… 아악!”
해리스를 적으로 두고 뭉쳐 있던 이들이었지만. 괴물에게 공격당하자 그들은 모두 흩어졌다.
“아아악-!”
어느덧 빛이 사방으로 뻗어졌다.
도망치는 사람들, 도망치다 넘어진 사람들, 이미 쓰러져 시체나 다름없던 이들.
빛은 사방팔방으로 쏟아져 그들 모두 괴물로 만들었다.
“구웨엑- 커허억-!”
괴물로 변한 이들은 인간의 자아를 잊은 듯 모두를 물어뜯고 죽이려 들었다.
“……미, 친.”
끔찍한 풍경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무슨 19금 고어 좀비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내가 비록 호러물도 잘 보는 사람이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라서 그런 건데!
새삼 신체가 온전치는 못했어도 주변은 멀쩡했던 내 세계가 그리워졌다.
재앙 앞에서 절망하며 무너지는 인간이 있다면 반대로 살아남기 위해 강해지는 인간이 있다더니, 난 후자였던 모양이다, 현실 부정하는 마음과 반대로 이성은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이 모든 건, 소환 마법진에서 나타날 마법사의 변이 마법이야.’
제대로 소환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딴 마법을 부리다니, 소환 캐스팅이 끝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지금 당장 캐스팅을 멈춰야 해!’
하지만 어떻게?
이건 <시천귀>에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에이드리안이 해리스를 진정시켜 이 위험천만한 사태를 막았다고 언급되는 게 다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망연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때였다.
* * *
슉- 칼날처럼 압축된 검은 마력이 괴물을 단칼에 반으로 갈랐다.
“크어어-!”
들려오는 괴성. 시야 끝에 닿은 것은 정신 나갈 것 같은 광경이었다.
시체와 마수로 엉망이 된 연회장, 부서진 기둥과 잔해 위로 천장마저 무너져가고 있다.
지옥이 고성에 왕림한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위에 나타난 기이한 마법진으로 인한 결과였다.
‘미친 건가?’
겨우 자신 하나 잡겠다고 이 난리를 치다니.
해리스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어쩌면 정확한 예측일지도 모른다. 이 정도로 준비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진작 모든 걸 끝내고 탈출했겠지.
“……윽.”
해리스는 무심코 배를 눌렀다. 더러워진 손에 피가 흠뻑 배어 나왔다.
제대로 지혈이 되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총알은 빼내었으나, 이능으로 틀어막은 지혈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으윽……!”
이성을 되찾자 돌아온 통증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머리가 미친 듯이 지끈거렸다. 신경이 과도하게 예민해져서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부서진 기둥 뒤 숨은 인간은 둘. 그 뒤를 노리는 마수 하나. 그리고…….’
자신의 뒤편에서 공격해 오는 마수가 셋.
오감은 지나치게 예리해졌다. 정신이 짓눌린 채 힘을 과도하게 사용한 결과일까, 통제 불능의 예민함 때문일까.
그러나 행동은 빨랐다.
해리스는 본능적으로 바닥에 떨어진 무기들을 띄워 올려 그 마수들의 뇌리에 내리꽂았다.
“크웨어, 어억-!”
괴물들이 일시에 쓰러졌다.
“하아, 하, 하아…….”
해리스는 숨을 몰아쉬었다.
차라리 감각이 과도하게 섬세해진 게 나았다.
그 뒤, 아예 모든 오감이 끊어진 듯 둔해져 오는 순간도 함께 찾아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왜 이러는 거지?’
이렇게까지 힘을 써본 적이 없어서일까.
여태껏 해리스는 자신 안의 이능을 반강제적으로 억누르며 지내왔기에, 과도한 이능 사용으로 인한 반작용이 낯설었다.
“살, 살려줘!”
“도련님, 구해주세요!”
그 이상으로 낯선 건 사용인들의 반응이었다.
자신을 수년간 감금하고 끝내 죽이려고 했던 주제에, 지금은 그에게 구해 달라 손을 뻗다니.
‘미쳤군.’
확실히 미칠 법한 상황이긴 했다.
여태껏 저들은 인간이자 동료였고, 자신은 괴물이자 물리쳐야 할 적이었다.
그러나 적 앞에서 하나라고 믿었던 사용인 동료들이 일순 괴이한 마물로 변해 버렸고, 자신들을 죽이려 공격한다.
이런 정신 나갈 것 같은 상황에서 차라리 인간의 외형을 가진, 저 괴물들을 썰어버리는 해리스가 도리어 구원자로 보일 법했다.
“해리스 도련님, 제발-!”
물론 해리스가 알 바는 아니었다.
“살……!”
퍼억!
구해 달라 애걸하던 사용인이 괴수의 손에 죽었다.
그리고 해리스는 마수의 몸이 구부려진 틈을 타 바닥에 떨어진 도끼를 던졌다.
푸슉-!
괴수는 단말마도 뱉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는 사용인들에게 어떠한 동정심도 없었다. 구해 줄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생과 사의 현장에서, 그가 굳이 마음이 쓰이는 대상은…….
“……?”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를 찾아 헤매던 시선이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쟨 또 뭘 하는 거야?”
* * *
나는 장총, 라이플을 발견했다.
아마 사용인들이 해리스를 죽이려 쏘아댄, 그러나 무용지물이 되어 떨어뜨린 무기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그걸 해볼까?’
라이플을 보자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라 나는 곧장 총을 주워 들었지만.
‘잠깐, 총 어떻게 쏘지?’
내가 총을 게임으로밖에 안 쏴본 민간인이라는 게 문제였다. 자세를 어떻게 잡는지조차 모르는…….
‘……몰라야 하는데?’
왜인지 몸은 머리가 반응하기도 전에 움직였다.
본능적으로 라이플의 자세를 잡은 몸은 곧장 내가 원하는 방향에 총구를 겨누었고, 가늘어진 눈이 목표를 겨냥했다.
‘어라?’
그리고 내가 더 생각하기도 전에 방아쇠를 당겼다.
탕-!!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