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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11화 (11/119)

11화

해리스는 그대로 돌아섰다.

그의 의식에 따라 일어난 거대하고 새까만 힘은, 닫히려던 문을 향해 파도처럼 쏟아졌다.

쿠쾅-!!

닫히려던 문은 새까만 폭격에 박살 났다.

“아아악……!”

문을 닫으려던 사용인들은 파도에 떠밀려 쓰러졌다.

“해리스 님!”

다급한 목소리가 그의 옷깃을 잡아채는 듯했지만, 해리스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제, 복수의 시간이었다.

* * *

“……!”

어깨에 무게가 느껴지자 나는 펄쩍 뛰었다.

“제이드?”

어느덧 익숙해진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에이드리안.”

“왜 그래. 괜찮아?”

“괘, 괜찮아.”

난 괜찮다. 나만 괜찮다는 게 문제다!

‘해리스가, 해리스가 괜찮지 않아!’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맙소사, 해리스가 총에 맞았어!’

그런 건 미드에서나 나오는 일인 줄 알았는데! 총기 개인 보유 금지 국가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총격 라이브는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어떻게 하지?’

이론적으로 총알을 빼내고 지혈한 뒤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러나 당장 내 머릿속은 다친 해리스에게서 쏟아진 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한층 창백해진 얼굴과 붉은 입술이 토해낸 핏줄기만이 선명했다.

“해리스…….”

그리고 정신 차렸을 때, 해리스는 어느덧 감옥의 거대한 문 바깥으로 나가고 있었다.

“……님?!”

살짝 느려진 걸음걸이, 피로 물든 발자국, 그리고 상흔을 감싼 검은 안개와도 같은 힘.

그런 것이 아니라면 해리스가 정말로 총에 맞기는 한 건가, 의심할 정도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해리스 님, 잠시만요!”

뭘 하든 간에 일단 치료부터! 아니, 지혈부터라도!

그러나 내가 해리스에게 다가서기 전에 누군가 불쑥 나를 막아섰다.

“제이드, 너 뭐 하는 거야?”

“지, 지혈을…….”

“그런 괴물에겐 신경 끄고, 너나 신경 써.”

에이드리안의 손이 내 얼굴에 묻은 핏방울을 닦아냈다. 나는 멍하니 그를 응시했다.

눈가를 찌푸리고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에이드리안. 누가 봐도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태도였다.

‘지금 너는, 무슨 생각일까.’

내가 해리스의 탈옥을 도운 것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죽기 싫으니깐.

둘째, 내 최애 해리스가 이 지하 감옥에서 오래 고통받지 않길 바라니까.

‘원래는 탈옥 시기가 이보다 한참 늦었지.’

에이드리안이 회귀하기 전 1회차는 말할 것도 없고, 회귀 후 2회차에서도 탈옥은 그리 빠르게 일어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나와 다르지 않다. 다만 둘의 지하 감금 라이프는 짧지 않았고, 그 시간 속에서 관계를 쌓아가게 된다.

경계. 의심. 기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희망까지…….

사실, 해리스가 여태껏 이 지하 감옥에서 탈출하지 못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가 혼자라는 것.

고드윈 공작 성의 사용인들은 마탑주가 만든 무형의 감옥에 익숙해지고 나태해졌다.

실제로 컨트롤러 하나만 빼앗겨도 끝장나는 일이었음에도, 해리스는 그를 시도할 수 없었다.

‘구속구를 통해 고문당하고, 무형의 결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누구도 이 빌어먹을 밑바닥에 추락한 그에게 손을 뻗어주지 않았기에, 해리스는 그러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조차 인지할 수 없었을 거다.

‘그런 해리스에게 나타난 게 바로 에이드리안……!’

지옥에 처박힌 해리스와 하늘에서 떨어진 듯 나타나 그를 구원하는 에이드리안이라니, 우리는 이런 걸 브로맨스가 아니라 로맨스라 부르기로 했어요!

아무튼, 내가 노력하면 최애가 조금이라도 빨리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데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너야말로 괜찮아?”

세 번째 이유는 에이드리안이었다.

‘왜 에이드리안은 나를 폭주통을 앓는 해리스에게 떠밀었을까.’

처음에는 원한과 제거의 목적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이후 보이는 에이드리안의 행동을 보면 확신할 수 없어졌다.

‘너는 정말로 나를 아끼나?’

의문이었다. 지금의 에이드리안은 몇 회차지?

고구마만 퍼먹다 고통스럽게 죽었던 1회차인가, 회귀 후 시작되는 사이다패스 2회차 삶인가?

<시천귀>에 나온 탈출 계획을 그대로 따라 한 것도 그걸 알기 위해서였다. 2회차의 에이드리안이 미리 세워둔 계획을 복붙한 걸 보면, 어떻게든 반응이 나오리라 여겨서.

하지만.

“너어-?”

정작 반응은 의외의 부분에서 나왔다.

“제이드 리안. 너 지금 오빠한데 ‘너’라고 했어?”

“……응?”

“너 자꾸 까불래? 오빠가 오냐오냐해준다고 계속 이럴 거야?”

에이드리안은 불쾌한 듯 한쪽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보았다.

“…….”

아니, 잠깐만. 이건 예상치 못한 대답인데.

‘오빠?’

에이드리안의 목소리를 메아리치며 두뇌가 일순 정지했다.

‘오빠라니?’

뻣뻣해진 이성은 간신히 상황의 답을 도출해냈다.

‘서, 설마, 에이드리안이 오빠충이라고?’

어떻게 이럴 수가!

나는 피 튀기는 상황도 잊고 휘청였다.

‘내, 내 주인공이 오빠충이라니-!’

가족이라곤 엄마와 언니밖에 없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오빠충 혐오론자로서, 지금 이 모먼트는 엄청난 탈덕 위기였다.

그가 날 폭주통 앓는 해리스에게 내던졌을 때보다 더!

‘십이지장까지 싸늘해지는 기분이다…….’

주인공의 오빠충 모먼트를 접한 덕후의 반응, 그 첫 번째는 부정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제, 제이드?”

앞에서 당황한 에이드리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지만 내 귀엔 들려오지 않았다.

‘우리 에이드리안이 오빠충일 리가 없잖아? 여캐들이 숱하게 나와도 하렘은커녕 히로인 여주 하나 제대로 없는 주인공인데! 고자라는 애칭까지 있는 놈이라고!’

이런 캐붕, 현실일 리가 없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두 번째는 분노였다.

‘이런 ‘오빠’라는 우리나라 호칭 문화가 제일 문제야. 고작 몇 년 더 살았다고 위계 서열 만들고 대우받으려 한다? 완전 쓔렉……!’

세 번째는 타협이었다.

‘에이드리안은 가족을 잃었잖아. 고아나 다름없다고. 이런 디스토피아 세계에 고아로 외롭고 힘들게 살았을 테니 애착 관계가 생기면 얼마나 귀하겠어? 가족 놀이도 하고 싶고 그럴 수도 있지!’

네 번째는 우울이었다.

‘에이드리안이 오빠충이라니……. 내가 여태껏 덕질한 놈은 대체 누구야? 최애는 아니라도 차애로 사랑하고 아꼈는데……. 내 하나뿐인 주인공인데……. 탈덕할까?’

마지막은 수용이었다.

‘하하, 그래. 오빠충 될 수도 있지. 그런 판무 남주가 어디 한둘이라고? 에이드리안도 거기 추가되라 그래~ 하렘물만 아니면 됐지!’

흐흑, 나는 눈물을 닦으며 합리화를 마쳤다. 내 차애 기준 언제부터 이렇게 낮아졌지.

“왜? 무슨 생각하는 거야.”

“오빠충 싫다는 생각…….”

“뭐?”

“어이, 거기 둘!”

에이드리안이 더 묻기도 전에 누군가 우리를 불러왔다. 노예 동지들이었다.

어느덧 모든 짐을 싼-탈옥을 돕는 대가로 해리스는 우리가 지하 물자에 손대는 것을 허락했다-그들은 지하 감옥의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서 가자, 시간이 없어!”

“그래. 그 괴물…… 아니, 고드윈 소공작이 날뛰고 있을 때 튀어야 해. 아니면 사용인들에게 다시 잡힐 거라고!”

아, 맞다. 얘네들은 해리스가 지하 감옥에서 탈출하자마자 튄다고 했지.

“미안하지만…….”

“그래, 가자.”

내가 사양을 말하기도 전, 옆에서 에이드리안이 내 손목을 잡아 들었다.

“우리도 준비 끝났어.”

“뭐?”

나는 노예들과 같이 도망치려는 에이드리안의 손목을 붙들었다.

아니, 님이 가면 어떻게 해요. 시한부 천재의 S급 회귀 생활해야지!

‘해리스 곁에서 책사로서 보좌하며 신분 세탁도 하고, 권력자와 인맥을 쌓고, 시한부 병 고칠 약재를 만들 겸 돈도 벌고, 길드도 만드는 등 여러 가지로 할 거 많잖아……!’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

“왜?”

에이드리안이 나를 돌아보았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보랏빛 눈동자. 그러나 유리처럼 무감정한 눈빛. 그를 마주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의 에이드리안은 내가 아는 <시천귀>의 주인공이 아니다.

‘회귀 전이야.’

그는 과거 회상으로 언급만 되는, 약하고 무지해 죽도록 구르던 1회차의 에이드리안이다!

깨달음이 벼락처럼 내려쳤다.

해리스를 이대로 두고 가는 것에 어떠한 염려도 관심도 없는 것도 당연하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염려와 관심을 쌓을 만한 관계는 고단한 감옥 생활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세월 속에서 우정이라는 이름을 남용하는 브로맨스가 쌓이게 된다.

‘근데, 내가 그걸 완전 짧게 단축해 버렸잖아……?’

쿵, 심장에 석탑이 떨어진 듯 충격이 가해졌다.

전개가 틀어졌다.

‘나 때문에?’

즉각적으로 변명이 치솟았다.

아니,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 나도 살아야지. 꼭 운명대로 해리스의 폭주에 죽는 엑스트라1로 끝나야만 해?

‘……혹시, 그렇게 끝나지 않아서.’

그래서 일이 이렇게 틀어진 건가?

인과율. 억지력. 무엇이라고 해도 좋을, 빙의물에서 원작의 미래가 어긋났을 때 돌아오는 페널티.

그것이 지금 이런 형태로 찾아온 건가?

내가 너무나 좋아하던 에이드리안과 해리스의 브로맨스가 시작도 되기 전에 끝나는, 아니, <시천귀>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도 전에 흐지부지되는 것으로?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제이드, 왜 이래?”

휘청이던 내 몸을 붙든 건 에이드리안이었다. 보랏빛 눈동자에는 투명한 걱정이 비쳤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 눈동자는 지금, 나를 향하는 게 아니라 해리스를 찾아야 하는데. 내 곁이 아니라 해리스의 곁에서 그를…….

‘자, 잠깐.’

멍하니 이어지던 사고 회로가 정지했다.

원래 해리스와 에이드리안, 두 사람의 브로맨스 서사가 모조리 생략되었다.

그 상태로 해리스가 탈옥했다. 그렇다는 건,

‘지금 탈옥한 해리스에겐, 그의 폭주를 막아줄 제어 장치가 없다는 거잖아……?’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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