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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10화 (10/119)

10화

해리스의 무시무시한 힘에 얼어 있던 것도 순간, 발치에 구속구가 보이자 머리에 경종이 울렸다.

‘잠깐. 저 구속구 저대로 두면 안 되는데.’

해리스의 사지에 달린 구속구는 일종의 생체 신호 전송 작용도 했다.

즉, 최악의 경우 마탑에선 벌써 상황을 알아차렸을 수도 있는 소리다.

‘안 돼!’

머릿속으로 에이드리안이 회귀하기 전 1회차 스포가 떠올랐다.

누구에게도 구원받지 못한 해리스가 1회차 삶에서 겪게 되는 최악의 인생 루트가.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해봐야 해. 시간을 벌려면…….’

나는 얼른 구속구를 쥐고, 지하 감옥의 총관리인이자 내가 체어샷을 갈겨 아직도 기절한 에릭에게 다가갔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동료들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었는데, 가장 먼저 쓰러진 그만은 살아남았다니.

‘이렇게 쓰기 위해선가.’

나는 그의 옷깃을 걷어내고 드러난 손목에다 구속구를 철컥- 매달았다. 그리고 남은 손목과 발목에도 구속구를 철컥, 철컥 매달던 와중이었다.

“뭐 하는 거지?”

“……!”

어느덧 다가온 해리스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살의가 깃든 얼굴은 무표정하여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나, 나쁜 놈은 이렇게 해야죠!”

“이렇게?”

내 말을 똑같이 따라 하는 나지막한 목소리는 차분하여 더욱 이질적이었다.

나를 의심하는 거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해리스는 모든 게 내가 말한 계획대로 진행되어, 더더욱 나를 경계하게 되었다.

해리스는 나를 믿지 않으니까.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예언자는 그 누구보다도 위협적인 적이 될 수 있으니까.

해리스의 붉은 눈이 가만히 나를 응시하던 순간.

“으읏……!?”

쓰러진 에릭에게서 고통 어린 신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우웅-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구속구의 마석에서 빛이 반짝였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컨트롤러는 기본적으로 마력이 있는 사람만 다룰 수 있다. 즉, 마력이 있는 자에게 반응하여 작동한다는 소리다.

‘뭐, 불이 들어왔으니 마탑에도 다시 신호가 전해졌겠지.’

마탑에서는 우왕좌왕할 것이다.

계속 신호가 깜빡이지 않고 꺼졌다면 ‘설마 해리스 고드윈이 탈옥했나?’ 하고 의심하겠지만, 이제 다시 불이 들어왔을 테니까.

‘잠깐 오류가 생긴 건가? 하고 혼란스러워할 거야.’

그러니 고드윈 공작에게 바로 ‘해리스 그놈이 탈출했소!!’ 하고 보고하기보다는, ‘고드윈 공작, 댁께서 아들 잘 가둬두셨지요?’ 하고 은근히 돌려 물어보겠지. 관리 소홀로 책임지긴 싫을 테니까.

‘그만큼의 시간을 벌었다.’

감옥을 막 탈출한 해리스에겐 너무나 필요한, 그 시간을.

나는 안도로 활짝 웃으며 답했다.

“네. 이 나쁜 놈, 해리스 님이 당하신 고통의 만분의 일이라도 겪어봐야 하지 않겠어요?”

저놈도 너처럼 고통받게 만들려고 했지! 아, 감시 기능? 그런 것도 있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히 눈을 깜빡였고, 해리스의 한쪽 눈썹이 위로 솟았다.

‘뭐, 아주 거짓말은 아니니까.’

<시천귀> 초반부에서 감옥의 총관리인이 제일 악질적으로 해리스를 괴롭혔다고 나와 있었지. 이 자식도 당해 봐야 해!

“아, 혹시 저놈들처럼 바로 잿더미로 만들려고 하셨던 거예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눈을 크게 뜨고 갸웃거렸다.

해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붉은 눈이 나를 가늠하듯 가늘어졌다.

“그치만, 단숨에 죽이는 건 너무 자비로운 처사 같은데…….”

“내가 자비롭다고?”

하, 해리스가 조소했다.

확실히 방금 해리스 모습은 그 단어를 쓰기에 적절하지 않긴 하지.

“다, 다소 그런 면이 있으시죠, 하핫!”

하지만 난 입술에 침 발랐어! 양심 없어!

“제게도 이렇게 잘해 주시잖아요?”

나는 턱 끝에 양손으로 꽃받침 하며 윙크했다.

꽃말은 바로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설마 죽일 건 아니지?’랍니다.

“하…….”

해리스의 입매가 피식 웃듯 휘어진 순간이었다.

탕-!

그 불길한 파열음이 감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 *

당시 해리스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굳은 상태였다.

‘잘해줘? 내가?’

저 이상한 노예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정신 나갔나?’

해리스는 노예 시장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제이드가 평범한 노예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요정족을 연상시키는, 기다랗게 물결치는 연분홍빛 머리카락. 투명하고 푸르른 눈동자.

희고 고운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노예는 자신의 건방진 사용인들이 목숨값 대용으로 사 오기엔 지나치게 값비싸 보였다.

‘정녕 미친 것이라 저가에 팔린 건가?’

아니면, 자신에게 따로 원하는 게 있어 계산적으로 저리 구는 걸까.

‘……그런 거겠지.’

해리스의 적안이 가라앉았다.

그는 고드윈 공작이 자신을 왜 이곳에 가두었는지 알고 있었다.

‘나를 죽여 없애 버리고 싶었던 거잖아.’

그러나 죽일 수 없어서, 눈앞에서라도 영원히 치워버리려 한 것이리라.

사용인들 또한, 초반에는 당황하고 공손히 대하다가도 현실을 깨닫자 그를 정말로 감옥의 죄수처럼 핍박해 왔다.

그렇게 수년을 살아온 해리스가 완전한 타인인 제이드를, 심지어 노예인 그녀의 말 몇 마디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맞아. 우리는 해리스 님을 도와 탈출할 거야.’

지하는 그의 영역이었다.

그러니 노예들이 아무리 해리스의 시선 바깥으로 피해 있어도 모든 말과 행동은 그에게 전달되었다.

탈출을 시도하기 전, 제이드가 노예들에게 하던 설득도.

‘도와? 제이드, 너 미쳤어?! 저 괴물…… 아니, 저 사람이 너를, 아니 우리 모두를 죽일 뻔한 걸 벌써 잊은 거야?!’

‘애초에 저런 이능력자에게 우리 도움이 필요할 리가 없잖아!’

그러나 제이드는 기어이 노예들을 설득해냈다.

‘죽을 뻔했으니 더 잘 알잖아. 우리는 혼자서 이곳을 탈출할 수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그래, 도움이 필요 없어 보이니까 더더욱 돕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는 거야.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

시늉. 그 단어는 유독 해리스의 뇌리에 맴돌았다.

당연한 일이다. 사람은 욕망으로 움직인다. 이 지하 감옥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 자유를 되찾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그라는 괴물에게서 죽지 않고 살아남고자 하는 욕망.

그러한 욕망으로, 저 노예는 자신에게 다정한 척 구는 것이리라.

‘……정말 가이드이긴 할까?’

해리스는 가이드 특유의 파장을 알았다.

그러나 제이드는 어느 순간에는 강렬한 가이드의 파장을 뿜어내었다가, 언제 그랬냐는 양 고요해졌다.

‘이상해.’

여태껏 겪어왔던 가이드들과 다른 느낌이었다. 그가 폭주통을 앓았을 때, 갑작스럽게 풍겨오던 지나치게 매혹적인 향, 가이딩을 강요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해리스 님!’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왜인지 자신에게 애착을 가진 듯 살갑게 대하는 태도까지.

너무 이상했다. 그 목소리가, 눈빛이, 햇살처럼 부서지던 미소가-

‘그만.’

더 생각하지 마. 더는 필요 없어. 해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든 가짜든, 더는 상관없다. 약속대로 저 노예는 그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러니 그는 이제 저 노예에게 더 바라는 게 없었다.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소란스럽게 만들지 말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길 바랄 뿐.

해리스는 멈칫했다.

‘……소란스럽게?’

저깟 노예가 뭐라고, 자신의 마음이 소란스러워진단 말인가.

설마하니 자신이 저런 기만적인 다정함에 속아 넘어갔단 말인가.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당해놓고, 또 당하겠다고?’

해리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손끝까지 굳어진 시점이었다.

탕-!

총알이 그의 몸을 관통한 것은.

“……쿨럭.”

해리스의 붉은 입술이 피 섞인 기침을 토해냈다. 손이 피를 쏟는 복부를 감싸 누르며 붉게 물들었다.

이 성의 사용인들은 총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 사실은 해리스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감옥에 갇힌 그에게 위협 사격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제한된 마력 사용에 따라 해리스는 점점 더 정교하게 이능을 사용했고, 결국 사용인들은 총알 낭비뿐만 아니라 자신들만 역공당한다는 걸 알고 나서야 반항을 그만두었다.

‘……감옥에서 고함과 비명이 오갔어. 위의 사용인들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 공격할 때가 되었지.’

그걸 뻔히 알면서도, 눈앞의 노예에 신경이 팔려 그대로 당해 버렸다니.

‘아무리 등신, 머저리라 해도, 그 정도는 아닐 거라 여겼는데.’

아무래도 자신은 상상 이상으로 멍청했던 모양이다. 해리스는 피식 자조했다.

“이, 이게…….”

피로 물든 입술이 붉게 휘어지는 것과 반대로, 마주한 노예 소녀는 충격으로 얼어붙었다.

“어, 어떻게, 해, 해리스 님, 괜찮, 괜찮으세요?”

피가 튄 얼굴은 창백했고, 푸른 눈동자가 경악과 두려움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지혈하겠답시고 천 쪼가리를 건네는 손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예언자라 그리도 우겨놓고선, 이건 예지하지 못한 모양이지.’

그렇게 비꼬려던 해리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더 말을 섞어서 무얼 하나?

노예들은 탈옥 후 도망갈 거고, 제이드라는 저 노예 소녀도 거기에 합류할 것이다.

이젠 더는 볼 일도 없다.

새처럼 쫑알거리는 목소리도, 이상하게 자신만 보면 반짝거리는 눈동자도, 이유 없이 헤실거리는 입술의 미소도.

더는…….

탕, 타탕-! 탕!!

순간의 망설임을 막아준 건 다시 들려오는 총소리였다.

다행히 이번에는 정신을 멀쩡히 차리고 있었기에, 해리스는 이능을 사용해 쏘아지는 총알들을 모두 막았다.

“제길, 처음 한 방만 맞았잖아!”

“바로 대가리를 쏴야 했는데. 괴물 새끼가 탈출하면 우리도……!”

“다, 닫아! 얼른-!”

황급히 문을 닫으려는 사용인들의 소리, 움직임, 기척.

모든 게 예민해진 감각에 감지되며 멀리서도 인식되었다.

그래, 더는 나와 상관없지.

‘없어야만 해.’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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