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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7화 (7/119)

7화

“저는, 가이드가 아니라…….”

가뜩이나 얼굴을 잡힌 터라 발음이 뭉개졌는데, 목소리까지 작아졌다. 해리스가 어디 지껄여 보라는 듯 귀를 가까이했다.

나는 조금만 움직이면 입이라도 맞출 듯 가까운 거리에서 달싹였다.

“예지자, 예요!”

“……뭐?”

투명하고 빨간 눈동자가 커다래지며 입을 누르던 손에서 무게가 덜어졌다.

“다른 세계에서 온, 예언자라고요!”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냐는 얼굴이었다.

‘뭐, 아예 거짓말은 아니잖아.’

사기라서 그렇지.

그리고 사기를 치려면 진실을 섞어야 한다. 나는 그의 손을 붙들며 속삭였다.

“저는 당신을 알아요. 당신이 지금 당장 원하는 것, 가장 열망하는 것, 가장 소원하는 것, 증오하는 것 모두…….”

“웃기지 마!”

해리스의 눈은 불똥이 튄 듯 타올랐다.

“그딴 게 왜, 노예 꼴로……!”

“그러니, 첫 번째 예언을 내리겠습니다.”

나는 그 눈을 피하지 않으며 말했다.

“저는 당신을 이 지옥에서 탈출시킬 거예요.”

“헛소리-”

“바로, 내일.”

“……!”

* * *

뭐, 당연하게도 해리스는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개소리.”

그러나 마냥 거부하지도 않았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하나 드세요.”

해리스는 띠꺼운 얼굴로 나를, 그리고 내가 건넨 빵을 보았다.

“…….”

혹시 독을 탔다고 의심하나? 나는 빵을 반으로 쪼갠 뒤, 남은 반쪽을 베어 먹었다.

“독 없어요.”

“…….”

“맛있당.”

찢어진 빵이 침에 녹아내리며 눈이 저절로 넘어갈 것 같았다. 미뢰에 닿는 식사의 감각이 너무나 반가워 눈물 날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언제 식사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맛과 별개로 어떠한 관리도 없이 이로 음식을 씹고 소화를 시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무아지경으로 흡입하던 난 목이 말라 눈을 떴다.

“마, 마시 거 어이 이디(마실 건 어디 있지)?”

입에 한가득 빵을 문 상태로 나는 사용인들이 두고 간 물자를 기웃기웃 둘러보았다.

“……먹고 말해라.”

해리스는 나를 여전히 노려보고 있었지만, 검은 힘이 물자들 사이에서 마실 것을 불쑥 꺼내주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꼴깍, 빵을 삼키고 인사했다. 퐁, 하고 뚜껑이 열리며 보이는 것은.

‘우유다. 신선한 우유!’

대박, 고소한 냄새! 나는 곧장 꼴깍꼴깍 마셨다.

“햐- 이게 얼마 만이야…….”

유제품 제한당한 지도 한참이었지. 내가 감동의 눈물을 깜빡이며 열심히 먹는 와중이었다.

“……후.”

뒤에서 들려오는 한숨 쉬는 소리. 해리스는 내 손에 있던 빵 반 조각을 가져갔다.

“죽으면 너도 죽일 테다.”

“넵, 알아요.”

나는 싱긋 웃으며 남은 빵조각을 우물거렸다.

‘내가 여기 처박혀 있으니, 등신 머저리인 줄 아나?’

그것이 해리스의 첫 반응이었다.

당연했다. 초월자인 그조차 이 지하 감옥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노예로 잡혀 온 내가 그의 탈출 방법을 어찌 알겠는가.

‘소설로 봐서 알지.’

해리스가 이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다.

첫째로는…….

나는 가만히 해리스를, 정확히는 그의 손목과 발목에 매달린 구속구를 응시했다.

이 구속구는 첫째로 해리스의 힘을 제한시켰고, 둘째로는 그가 일정 영역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억제했다.

‘풀 수 있어요.’

‘퍽이나.’

‘이것뿐만이 아니라, 마법진도.’

‘……!’

내 말에 불신의 기색을 숨기지도 않던 해리스의 얼굴에 놀람이 퍼졌다.

두 번째로 해리스의 탈옥을 막는 건, 이 지하 감옥에 펼쳐진 거대한 마법진이다.

고드윈 공작이 직접 의뢰하고 마탑주가 손수 그렸다는 마법진. 그는 구속구를 차고 있는 대상이 영역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무형의 벽…… 같은 거라고 했었지.’

그가 영역 바깥으로 나가려 시도할 때마다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결계가 벽이 되어 그의 앞을 막고 튕겨낸다.

당연하지만 1급 비밀이다.

구속구와 달리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다 보니 고드윈 공작 성의 사용인들도 소수만 알고 있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그러니 해리스가 그토록 놀랐던 거겠지.

어떻게, 아냐면요. 나는 해리스의 귓가에 속삭일 듯 기울였다.

잘라줄 사람 없어 아무렇게나 자랐다는 검은 머리카락이 사락, 하고 내게도 늘어졌다.

‘탈출하고 나서 알려줄게요.’

‘…….’

아, 그때 해리스의 얼굴이란.

나는 쿡쿡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삼키기 위해 빵을 베어 물었다. 역시 병원식이 아닌 식사는 뭐든 맛있다.

그런 나를 해리스의 붉은 눈이 감시하듯 응시해왔다.

‘내가 가이드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워하는 거겠지.’

에이드리안은 정신이 차린 뒤 파장을 거두었고, 해리스는 사라진 파장에 의구심을 품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파장? 그게 뭔데요. 전 예지자지 가이드는 아닌데요?’ 하고 그의 의문을 풀어주지 않았다.

해리스의 손은 다시 내게 접촉하여 가이딩을 실험하려는 듯 내게 뻗어졌지만,

“……정말로, 그 계획대로 진행하는 건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손가락을 구부려 주먹을 쥐었다. 그의 경계심은 가이딩에 대한 혐오를 넘어설 정도는 못 되었던 모양이다.

“네, 그럼요.”

나는 발견한 소시지를 꺼내며 외쳤다.

“그치, 애들아?”

“으, 응.”

“무, 물론이지!”

의리 없는 노예 동지들이 이번만큼은 격렬하게 답해 주었다.

‘그래야지. 이만큼 얻어먹었는데.’

이건 해리스를 위한 물자였다. 공작 성의 사용인들이 설마하니 노예들이 굶지 말라고 먹을 걸 같이 보내왔겠는가.

‘사실 사용인들은 해리스도 주기 싫겠지만, 안 주면 자기들이 죽을 테니까.’

해리스는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도 영양을 섭취할 수 있으니.

아무튼 그 물자를 나누는 대신, 나는 노예들도 내 계획에 동참할 걸 요구했다.

물론 그들은 내 계획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건 실질적으로 그들을 위한 탈출 작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배불리 먹어!”

“그, 그럴게.”

“고마워…….”

남의 물건으로 생색내기. 오히려 좋아, 최고당. 너무 즐거워~!

나는 헤헷 웃으며 노예들에게 내가 발견한 건량을 나눠주었다.

노예들은 해리스의 눈치를 보면서도 배가 고픈지, 내게서 음식을 받아 들자마자 도망쳤다. 마치 해리스의 곁에 다가서는 것만으로도 그 기세에 압박당하는 것처럼.

‘에이드리안은 잘 먹고 있나?’

나를 불신하는 해리스가 놓아주질 않아 현재 그가 뭘 하고 있는지 확인이 안 됐다.

“너.”

내가 눈을 굴리며 찾던 와중 해리스는 불쑥 입을 열었다.

“아, 해리스 님도 드실래요? 제일 좋은 부위는 남겨놨…….”

“어떻게 확신하지?”

“네?”

해리스는 눈짓했다. 그의 시선이 거대한 감옥 문에 닿았다.

“오늘, 저 문이 열릴 거라는 건.”

“음, 그건…….”

목소리를 낮추자 해리스가 내게 고개를 기울였다.

보통 이런 곳에 몇 년도 넘게 가둬져 있으면 냄새나고 더러운 꼴이어야 할 것 같은데, 최강 흑막 해리스에겐 그딴 거 없었다.

‘머리카락 컬, 일부러 세팅한 것 같네. 귓바퀴도 진짜 예뻐.’

저 흑백 대비 좀 봐. 흑흑, 여기 사진기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때와 상황을 가리지 않는 주접을 억누르며 그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제가 다른 세계에서 온 예언자기 때문이죠.”

“…….”

“말했잖아요?”

“하.”

해리스는 기가 찬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깊은 눈빛이 의심과 불신의 선홍빛으로 반짝였다.

아름다웠다.

나를 몇 번이고 죽일 뻔한 자인데도 응시하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시선을 마주한 해리스가 입술을 달싹였다.

“넌…….”

크그극- 쿵!

그때, 문이 열리듯 육중한 소리가 울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 * *

“저, 정말 괜찮을까요?”

감옥의 문을 연 건 사용인들이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아직 안전한 시간대가 되기엔 이른 거 같은데…….”

겁에 질린 목소리에 총관리인, 에릭이 고함쳤다.

“정신 차리지 못해?!”

고드윈 공작 가의 후계자와 고드윈 공작 성 지하 감옥 사이에 얽힌 비밀은 절대적 금기였다.

고드윈 공작 성에서도 선택받은 이들만이 전담하는 일.

‘그 괴물만 아니었어도…….’

에릭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오랫동안 감금 생활을, 그것도 홀로 보내게 된다면 미치거나 무기력해진다.

그에게 정기적으로 먹이를 공급해야 하는 사용인들로서는 해리스가 미치게 둘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자신들의 위험 부담만 더 커질 테니까.

그들은 그래서 내려보내는 물자에 성에서 보관하던 서재들이나 수도에서 발생하는 소식지들도 넣었다.

‘하지만 무력감 정도는 익힐 때가 되었을 텐데.’

세상이 이렇게 변해 가는데 나는 여기 갇혀 있다.

내가 무엇을 익혀도 이곳에서 나가지 못한다.

무력감은 ‘극복할 수 없는’ 상태가 끊임없이 반복될 때 뿌리 내리게 된다.

사용인들은 해리스가 무력해지길 간절히 바랐다. 그래야 자신들이 공작 성의 예산을 더욱 손쉽게 착복할 수 있을 테니.

지하 감옥에 갇힌 고귀한 피를 더욱 짓밟는 유희는 덤이었다.

‘저 꼴 좀 보라지. 누가 저 모습을 보고도 그 위대한 고드윈 공작의 후계자라는 걸 알겠어?’

‘하, 후계자라는 말도 과분하지. 못 들었어? 공작님께서 새 후계자를 뽑겠노라 선언하셨잖아.’

‘푸하하, 우리 도련님은 어쩌나~’

지하에 내려갈 때마다 들으란 듯이 비웃어댄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봤자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친아버지조차 버린 자식!

너는 멀쩡한 인간조차 못 되는 괴물이야.

열등한 괴물 새끼-!

그렇게 그들은 지하에 갇힌 고귀한 공자를 조롱하고, 모욕하며, 학대했다.

소년이 그대로 꺾이고 무너지도록. 그들의 유희 거리로 전락하도록.

하지만.

‘우리 안에 갇힌 저 초라한 꼴이라니, 짐승이나 다름없…… 커헉’

유감스럽게도 일은 그들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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