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난생처음 듣는 말은 의식에 파문을 일으켰다. 낯선 속삭임이 머리에 울려온 건 그 뒤였다.
‘자장가라도 불러드릴까요?’
아. 그랬지.
저런 멍청한 말을 지껄이는 가이드가 있었다.
“끙, 열이 좀 가라앉아야 할 텐데…….”
그것도 바로 옆에.
찰박, 물을 짜내는 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려왔다. 이마에 올라오는 물수건의 서늘한 온도가 지독히도 생생했다.
‘정말 정신 나갔군.’
이런 헛수고를 하는 것보다는 가이딩을 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다.
그건 제대로 된 가이딩을 받아본 적이 없는 해리스조차 아는 상식이었다.
하지만 저 멍청한 노예는 ‘가이딩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키기라도 하겠다는 듯, 꿋꿋이 직접 접촉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몇 시간이고 헛짓거리하고 있었다.
가이딩을 하지 않는 가이드.
그런 아무런 쓸모도 가치도 없는 것이, 폭주통을 앓는 자신 곁에 있다니.
‘죽고 싶은 건가?’
아니, 해리스는 곧장 부인했다. 바들바들 떨어대는 꼴을 생각하면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런데, 왜.
‘……이상해.’
곁의 노예에게서는 특이한 향이 났다.
지나치게 달콤하고 유혹적인, 마치 누군가를 꾀어내려는 듯한 향.
이 뿌리가 저릿저릿했다. 그의 본능이 당장에라도 흰 살결을 베어 물고 탐하길 원했다.
그러나…….
‘저런 사특한 향이라니.’
해리스는 경계의 날을 세웠다.
저 유혹에 넘어가선 안 된다.
이성이 저 위협적인 존재를 제거하라 경고했다. 그에서 뻗어나간 힘이 공격하려는 듯 무언가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하아.”
아무리 다짐하려 해도 그의 육신은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그 지독하게도 불쾌한 향이, 조곤조곤한 노랫소리가, 열을 식혀오는 물수건이 기어코 자신에게도 스며들었기 때문일까.
과도하다 못해 날뛰는 마력이 점차 사그라들고, 열기가 조금씩 물러나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에 호흡이 한결 편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경계해야 해.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그렇게 날을 세우면서도, 핏줄이 선명하던 주먹이 점차 풀어졌다.
결국 힘을 잃고 늘어졌다.
‘믿으면 안 돼…….’
그렇게 억지로 되새겨도, 가늘게 떨리던 눈꺼풀도 점차 고요해졌다.
해리스의 호흡이 점차 느려졌다.
천천히, 평온함에 감겨들 듯이.
* * *
어쩌지.
“서울 사X버 대학을 다니고.”
큰일 났다.
“나를 찾는 사람 많아졌다~ 빠빠라 빰빰!”
이게 몇 번째지?
나는 몽롱해진 머리로 생각했다. 이젠 더는 자장가가 생각이 안 나. 아니, 애초에 자장가도 뭣도 아니었던 거 같긴 한데.
‘미치겠네, 이번엔 또 뭐 부르지? 에☆윌?’
공인중개사 합격은, 멍하니 흥얼거리는 멜로디는 무의식에 각인된 것들로 끝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러다가 소음 공해라고 화내는 거 아냐?’
같은 노래만 계속 들으면 누구나 짜증 나게 마련이다. 슬슬 레퍼토리도 떨어졌는데 그만둘까 고민하던 순간.
쨍그랑-!
“으악!”
난 화들짝 놀라 뒤돌았다.
등 뒤, 물이 담긴 도기가 바닥 한가운데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뭐야, 저게 왜 저기 떨어져? 난 반사적으로 해리스를 돌아보았다.
나조차 화들짝 놀랐는데, 폭주를 간신히 억누른 초월자의 날카로운 신경엔 얼마나 끔찍한 소리였을까.
“응?”
그러나 놀랍게도 해리스는 얌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깊이 잠이라도 든 것처럼.
어느덧 호흡도 차분히 진정된 이후였다.
“별로 안 시끄러웠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밤새 간호하느라 내가 더 예민해진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간호가 정말로 효과를 보여, 해리스가 제대로 푹 잠들게 된 건…….
짹- 짹짹- 뾰로롱-
……아닌 모양이다. 자야 할 때가 와서 잠든 거였나 봐.
해리스의 지하 감옥 위, 엄청 좁은 반지하 창문의 쇠창살 사이로 새하얀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세상에, 언제 해 뜬 거야?’
나는 눈을 크게 떴다가, 건조한 안구에 엄습해 오는 고통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아악, 마이 아이즈, 마이 아이즈……!’
간신히 일으킨 몸에서는 찌뿌둥한 소리마저 났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우와, 나 밤새 간호한 거야?’
매번 간호받기만 하던 내가 이렇게 직접 간호하기까지 하다니!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과 뿌듯함으로 의기양양한 것도 잠시였다.
“으으~!”
자각과 함께 덮쳐온 피로에 몸이 그대로 축 늘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결국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더듬더듬 해리스의 공간 바깥으로 나갔다.
“……제이드?”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것 같은 이름. 나를 향해 뻗어오는 따뜻한 손이 온기.
‘아, 푹신하다.’
나는 그에 안기자마자 곧장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래서 몰랐다.
내가 누구의 품에 안긴 건지.
“……!”
“도, 돌아왔어!”
그의 품에 안겨 무사히 귀환한 나의 모습이 노예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진 건지도.
“이, 이능력자들은 폭주 후 엄청 난폭해진다던데. 곁에 누가 얼쩡거리기만 해도 죽이려 든대.”
“그런데도 저렇게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니…….”
“저짝이 조용해졌어! 진짜로 진정되었나 벼!”
웅성거리던 목소리는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졌다.
“맙소사, 저 애 정말로 가이드인가 봐.”
“이능력자의 진정제-!”
구명줄이라도 잡은 듯한 목소리. 안도하는 얼굴들.
피식, 제이드를 안고 있던 사내가 조용히 웃었다.
이 상황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 * *
‘제이야.’
풍덩, 수면에 빠져드는 기분.
투명하게 일렁이는 따스한 물 너머,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먹먹하게 들려왔다.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담당 의사의 나지막한 목소리.
‘안 돼, 제이는 안 된다고요!’
‘지금 내 딸을 포기하라는 겁니까?! 제이는 아직……!’
언니는 악을 쓰고, 엄마는 멍한 얼굴이었다.
다들 그러지 말아요. 내가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었잖아요.
‘당신, 아무리 그래도 제이는 당신 딸이야!’
엄마는 병원 복도의 그늘진 곳에 서 있었다.
분홍색 가죽의 낡은 휴대폰 케이스. 내가 입원하기 전에 선물했던 그 케이스는 마음 아플 정도로 너덜너덜했다.
‘어떻게 마지막 가는 길까지……!’
엄마, 그러지 말아요.
내겐 아빠가 필요 없어요. 처음부터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나는 괜찮으니까.
‘미안해, 제이야. 정말 미안해……. 나를 용서하지 마.’
언니의 눈물방울이 투둑 떨어진다.
미안해, 언니. 언제나 고생시켜서. 나 돌보느라 힘들었지. 난 언니가 좋았는데, 언니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미안해. 언니 혼자 엄마 곁에 남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죄인이다. 제이, 우리 딸을 엄마가 처음부터 성하게 낳아야 했는데.’
엄마, 제발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나는 엄마의 잘못이 아니에요.
난…….
* * *
“……제이, 제이드!”
몸이 크게 흔들렸다.
“푸하-!”
나는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화들짝 깨어났다.
“허억, 헉, 커헉…….”
누군가, 나를 잡고 무어라 말하는 게 먹먹하게 울려왔다.
그러나 물에 빠졌다가 간신히 구해진 것처럼, 나는 허겁지겁 숨을 들이켜기에 바빴다.
그때, 나를 향해 사내의 팔이 뻗어졌다.
커다란 손. 뼈가 도드라진 손목에 구속구처럼 생긴 팔찌가 달려 있었고, 그사이에는 피 묻은 붕대가 감겨 있었다.
나는 정신 차릴 새도 없이 그 팔에 매달리다시피 끌어안았다.
“……!”
상대방의 몸이 흠칫 굳는 게 느껴졌다. 그가 나를 떨쳐내듯 밀어내려 하자, 나는 구명줄이라도 빼앗긴 기분에 다시 매달렸다.
“아, 안 돼.”
놓지 마, 나를 놓지 말아줘. 제발, 제발……!
눈물이 투둑 떨어졌다. 나를 밀어내려던 손길이 멈춘 건 그때였다.
“제이드!”
뒤에서 누군가 내 몸을 끌어안아 당겼다. 떨어진 빈틈이 허전해 팔다리가 버둥거렸다.
“헉!”
“히익-!”
주변에선 숨을 들이켜는 소리,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 차려, 갑자기 왜……!”
“어디 아픈가?”
그와 반대로, 머리 위에선 차가울 정도로 침착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나는 벌벌 떨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그냥…….”
“그럼 왜 우는 거지?”
울어? 내가?
나는 멍하니 눈가에 손을 뻗었다. 양 뺨은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나, 정말 죽었구나.’
놀라우면서도 마음 한편은 담담했다.
‘아마 안락사였겠지.’
내 병은 치료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법적으로 안락사는 금지되어 있다지만, 가망이 없는 환자의 보호자에게 병원이 은밀히 권유한다.
의약 없이 호흡할 수조차 없는 환자에게, 점차 호흡 능력을 상실해 사망할 때까지 진통제를 주입하는 것이다.
잘 알고 있었다. 내 옆 병실 애가 그렇게 갔었기에.
울고불고 혼절하기까지 하던 보호자들이 끝내 [병원에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하고 사라지는 모습까지도.
그 애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병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걸까.
“왜 울었지?”
“꿈…… 때문에?”
내 현실을 꿈이라 말하게 되었다니.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악몽?”
“아니.”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고개를 저었다.
“악몽은 아니야.”
조금 힘들긴 했지만,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제이야.’
‘제이, 우리 막내…….’
엄마, 그리고 언니. 먹먹히 수면 너머 들려오는 다정한 목소리들,
“……좋은 꿈이었어.”
그 삶을 후회하지 않아.
“그래?”
살짝 갈라진, 나른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뇌쇄적이었다. 듣는 것만으로 몸이 흐물흐물 풀어져서 그대로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울면서도 좋은 꿈이라…….”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지?’
눈앞에는 커다란 실루엣이. 그 뒤로는 무수히 많은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응?’
나를 버리고 간 노예 동지들, 왜 다들 그런 얼굴이오? 괴물이라도 나타난 듯한 표정이라니.
‘괴물?’
퍼뜩 스치는 생각에 나는 눈에 힘을 줬다. 검고 뿌옇기만 하던 실루엣이 점차 또렷해졌다.
검은 머리카락. 하얀 피부. 새빨간 눈동자. 세 가지 색상이 섬세한 선을 그려냈다.
“해, 해리스?!”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