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해리스 님.”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미쳤나.’
그리 생각하면서도 나는 해리스의 이마에 손을 뻗었다.
“앗 뜨.”
“……!”
해리스는 내가 다시 다가올 줄 몰랐는지, 미처 내 손을 피하지 못했다. 홍옥처럼 붉고 투명한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열이 심하시네요.”
어쩌면, 정말 미친 걸지도 모른다.
가이드도 아닌 엑스트라 노예 처지에 해리스를 돕고 싶어 하다니.
아니, 애초에 내가 빙의되었다고 생각하는 이 상황 자체가 미친 것 아닌가.
‘응, 미친 거 맞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말로 미쳐 버린 거라면,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미칠래.
“열이 심한 거 같은데, 온도계 찾아볼게요.”
“……꺼져.”
“네, 네. 제 말이 틀리면, 실제론 제가 냉혈 동물이고 해리스 님의 온도가 별로 안 높으면 바로! 꺼질게요.”
“필요 없어.”
“필요 없다니요! 고열이 얼마나 심각한 증상인데, 자칫 잘못하면 뇌까지…….”
“닥쳐!”
고함이 먼저였을까, 내 옆의 탁자에서 그릇이 급작스럽게 폭발하며 산산이 조각나는 게 먼저였을까.
반사적으로 움츠린 내 머리 위로 으르렁거리듯 분노하는 해리스가 보였다.
“개수작 따위 집어치워.”
그의 주변으로 마구 들끓는 검은 마력까지도.
“네가 무어라 지껄이든, 나는 결코 가이딩을 받지 않아!”
동시에 해리스의 팔다리에 감긴 마력 구속구의 마석이 위험하게 번뜩이는 게 보였다.
저건 본디 구속한 이의 마력을 틀어막는 마도구지만, S급 이능력자인 해리스에겐 다르게 사용되었다.
일정 이상의 힘을 사용할 경우, 구속구가 해리스를 공격하고 다치게 만드는.
한마디로 지금의 해리스는 자해조차 감수할 정도로 분노했다는 뜻이다.
‘왜?’
왜 저렇게까지 가이딩을 거부하는 걸까.
“아.”
그제야 떠올랐다. 고드윈 공작이 ‘짐승처럼 제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들을 어떻게 ‘교정’하려 시도했던 것들이.
처음 해리스가 각성했을 때, 고드윈 공작은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이 혐오스러운 이능력자라는 걸 인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대외적으로 해리스가 와병 중이라 알려놓고, 수도 저택 내에서는 해리스를 ‘정상인’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실험을 자행했다.
‘처음에는 마도구로 힘을 억압하려 했지.’
그다음에는 감옥에 가두고 기력을 잃을 때까지 굶겼다.
이도 저도 제대로 통하지 않자, 마지막에는…….
‘자신이 방방곡곡에서 구한 가이드로 강제 가이딩을 시도했어.’
「“왜 안 된다는 게야! 그게 네놈들, 인간 진정제인 가이드란 것들이 하는 일 아니냐고!”
“송구합니다, 공작님. 하지만 가이드와 이능력자 간에는 상성이라는 게 있어서…….”
“변명 따위 집어치워라! 결국 네깟 것들이 쓸모없다는 소리 아니냐!”
“죄, 죄송합니다, 공작님. 그러나 저희로선 역부족…… 커헉!”」
간신히 찾아낸 가이드들의 거부에, 고드윈 공작은 간단하게 답했다.
탕-!
총을 쓴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진정제라 해도, 결국 이능력자들에게만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뿐. 그들 자체는 평범한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못 하겠다고?”」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가이드들은 삽시간에 고드윈 공작의 총구를 마주하게 되었다.
아무 소용 없는 짓거리지만, 생존 욕구 앞에서 해리스의 거부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도련님.”
“저희라도 살아야지 않겠습니까…….”」
마도구와 억제제로 사지가 결박당한 해리스에게, 가이드들이 하나둘씩 다가갔다.
그리고…….
‘……결국, 해리스는 이성을 잃고 폭주했지.’
그날의 참사 이후, 고드윈 공작마저 더는 해리스에게 가이드를 붙이지 못했다.
그 대신 지하 감옥에 가둬버렸고, 그 후 해리스는 극렬한 가이드 혐오자가 되어버렸다.
“아…… 알겠습니다, 해리스 님.”
그러니 다가서는 내 모든 행동이 가이딩, 그러니까 접촉을 위한 수작질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리라.
“신께 맹세코, 해리스 님이 원치 않는 가이딩을 강제로 시도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두 손을 기도하듯 들며 말했다. 사실 신 같은 거 안 믿지만, 어차피 가이딩할 줄도 모르니까 괜찮아.
“그 대신…….”
“대신이고 나발이고, 얼른 꺼- 우읍?!”
나는 고함치려던 해리스의 목구멍에 약을 던졌다.
“읍, 쿨럭, 컥-!”
“삼켜요, 그거 해열제야!”
부서진 협탁 아래로 쏟아진 물건 들 사이에는 약도 있었다.
‘바닥에 구르며 겸사겸사 주웠지.’
사용인들은 해리스가 아플 때 개입하고 싶지 않지만, 고통으로 난폭해진 그에게 당하고픈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그로써 응급키트가 감옥에 갖춰져 있고, 그걸 에이드리안이 써먹었다는 구절이 있었지…….’
그걸 내가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은 몰랐네.
“쿨럭, 컥!”
약을 잘못 쑤셔 넣어서인지, 아니면 잘못 삼켜버려서인지 해리스는 가슴팍을 부여잡고 다시 기침했다.
그래, 약 잘못 삼키면 진짜 아프지.
“여기 물이요!”
다행히 아직 깨지지 않은 물병이 있었다. 얼른 그를 건넸지만, 해리스는 받아주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당장에라도 저를 향해 뻗어진 내 손을 잘라 버릴 듯 선홍빛 눈동자가 흉흉하게 번뜩였다.
“너, 감히……!”
피가 묻은 입술, 충혈된 눈.
폭주는 기본적으로 초월자가 자신의 힘을 컨트롤하지 못할 때 온다.
‘특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기분 탓일지는 몰라도 지금의 해리스는 둘 다 타격 입은 거 같다.
“가, 가이딩 안 했어요! 방금 그건 그냥 약이라고요! 진통 해열제! 그리고…….”
“닥쳐라!”
붉은 눈이 나를 그대로 찔러 죽일 듯 맹렬히 빛났다.
이전에는 나를 성가신 파리처럼 여겼다면, 이번에는 즉각 박멸해야 하는 모기처럼 보는 얼굴이었다.
이번엔 진짜 죽을 거다!
본능의 경고에 나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자, 잘못했어요! 대신……!”
“대신, 뭐!!”
“해리스 님께서 가장 원하는 걸 이루어드릴게요!”
“……?”
해리스의 짙은 눈썹이 씰룩거렸다. 잠깐의 침묵에 약간의 기대가 실렸지만.
“하, 개소리.”
씨알도 안 먹힌 모양이다.
하긴 지금 난 노예 꼴이니 신뢰도가 낮겠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빌어, 먹을…….”
풀썩하고 쓰러지는 소리. 눈을 뜨자 그대로 침대에 쓰러진 해리스가 보였다.
“……하.”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아아-!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침대 앞에 주저앉아 마구 쿵쿵거리는 심장을 꾹 눌렀다.
‘드디어 약효가 돌았구나.’
약이 사실 진통+해열 기능이 첨가된 수면제더라고. 이 야멸찬 사용인들이 해리스 건강하라고 약을 구비했을 리가 없잖아?
‘약 먹고 죽은 듯 뻗으라고 준비한 거지.’
코끼리도 잠들게 하는 초강력 수면제라고 적혀있더라.
‘어쨌거나, 해냈다.’
난폭한 환자를 잠재웠으니 이제 하나만 남은 셈이다.
‘바로 일반 간호!’
해리스의 공간은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져 있었지만, 다행히 나는 적절한 물품을 구할 수 있었다.
개인 욕실 안에는 마력을 불어넣으면 씻을 수 있도록 깨끗한 물이 나오는 세면대와 세숫대야, 그리고 수건까지 갖춰져 있었다.
‘뭐, 아무리 감옥이래도 진짜 해리스를 죄수처럼 대할 수는 없을 테니까.’
다행히 제이드도 이쪽 세계 인간이라 그런지 마력이 없지 않았다.
그렇게 깨끗한 물과 응급키트로 해리스의 구속구 사이 상처 난 손목과 발목을 치료하던 와중이었다.
“……뭐 하는 짓이야.”
감긴 눈 사이,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코끼리도 잠재우는 수면제라며.’
아무리 초월자라지만, 억지로 깨어나는 데 성공하다니.
‘역시 내 최애야. 근성 있어.’
이쯤 되야 흑막 공작도 하는 거지. 나는 속으로 엄지척하며 말했다.
“일단 땀을 빼셔야 할 것 같으니 한숨 주무세요.”
“대답해.”
이 와중에도 날 경계하고 노려보다니, 멋지다. 나는 방긋 웃으며 답했다.
“잠이 안 오세요? 편안히 휴식하기 좋게 노래라도 불러드릴까요?”
“미쳤냐?”
“엄마가 섬 그늘에~”
“…….”
“구울 따러어 가며언~”
“……진짜 돌았군.”
코끼리 수면제까지 이겨낸 해리스가 잠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더는 토 다는 목소리가 이어지진 않았다.
“아기는 혼자 남아~”
나는 이불 위를 토닥이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자암이 드읍니다~”
안녕히 주무시길, 나의 난폭한 최애님.
* * *
부득-
해리스가 뼈를 부술 듯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열기가 그를 발끝에서부터 먹어 치우고 있는 것 같았다.
‘꺄아악!’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지며 동시에, 정신이 아득히 먼 곳으로 빠져들어 갔다.
‘괴물, 괴물이야…….’
‘죽어! 너 같은 건 죽어야 해-!’
누군가의 절망. 누군가의 증오. 해리스는 귀를 막고 싶었다.
그러나 비명과 저주는 끊이지 않고 그의 귓가에 울려댔다.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아.’
‘아무도 너를 원하지 않아.’
‘네겐 그 어떤 쓸모도, 가치도 없어. 인간 폐품, 버러지에 불과하다고!’
그때, 심장 가장 깊숙한 곳의 검게 넘실거리는 어떤 것이 속삭였다.
[그러니까 죽이자.]
산 채로 몸이 뜯기는 것만 같은 이 고통을, 끝나지 않는 절규를 멎는 방법은 오롯이 그 하나뿐이라는 듯이.
[죽여 버리는 거야!]
극도로 날카로워진 감각은 곧장 생명체를 발견했다.
억누르지 못한 힘이 손아귀 밖으로 벗어나며 위협적으로 피어났다.
부들부들- 날카로운 도기가 검은 연기에 휩싸이고, 덜덜 떨리는 소리를 내며 허공이 떠 올랐다.
[모두 죽여 버려. 없애 버려! 전부, 전부 다……!]
이성을 잃은 본능이 마구 소리치고, 막지 못한 힘이 다시 폭주하려던 순간.
“잘~ 자라~”
속삭이듯, 작게 흥얼거리는 목소리.
“우리 아가-”
알 수 없는 소곤거림이 해리스의 이명을 파고들었다.
‘……우리 아가?’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