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이게 뭐죠?”
막 날이 밝기 시작한 아침이었다.
지난번 신전 기사들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새벽부터 아델이 준 마법서를 열심히 펼쳐 보고 있던 내 앞에 대뜸 마샤티아 백작 부인이 금색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말간 아침볕을 고스란히 받은 쟁반의 금속 테두리가 반짝 빛났다.
그 위에는 단 한 장의 편지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발신인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편지를 전하는 백작 부인의 표정이 꽤나 난감해 보였다.
혹시 레이샤인가?
봉투를 집어 드니 오른쪽 하단에 적힌 이름이 보였다.
벨리타 엔느 데보니안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었다. 잠자코 있던 벨리타가 내게 왜 편지를 보냈을까.
나는 자리에서 봉투를 열어 그 안에 든 고급지를 꺼내 들었다.
빳빳하게 접힌 종이를 펼치니 길게 써 내린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염치 불고하고 벨리타 엔느 데보니안, 대제국 아벨리움의 황후 폐하께 인사드립니다.
이런 말을 꺼내는 것조차 실례라는 걸 알지만 그간 무탈하게 지내셨는지요. 아무런 일도 없이 평온한 나날만 가득하셨길 저 벨리타는 감히 바라봅니다.
황후 폐하를 뵙고 난 후 흘러간 무수한 날들 동안 저는 스스로를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얼마나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되었죠.
폐하께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르고 반성조차 없이 무작정 용서를 구하던 지난날을 떠올리면 저는 못 견디게 부끄러워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벨리타 엔느 데보니안,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고 또 후회하며 참회의 마음으로 한 가지 부탁을 드리려 이렇게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부디 황후 폐하의 앞에서 그간의 일을 진심으로 무릎 꿇고 사죄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용서를 비는 대신 뉘우친 제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부끄럽게도 저는 그동안 폐하께서 제게 어떠한 처분도 내리지 않으시기에 안심했습니다. 가문을 위해서라면 이대로 침묵하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난날을 반성하면 반성할수록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수는 없다 절실히 느꼈습니다.
부디 넓으신 아량을 베풀어 꼭 자리를 마련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황후 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