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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37화 (137/146)

#137

형형색색의 피가 튀며 사방을 수놓았다. 한 번에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목숨을 잃고 나동그라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헌터들의 완전한 승리였다.

그러나 그 자리의 누구도 기쁨에 찬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은 겁에 질린, 저 앞에서 칼춤을 추는 자가 제 편이라는 게 너무나 다행이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저 미친놈….”

신류하는 존댓말마저 내팽개치고는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뿐이었다.

연태운은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몬스터들을 척살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온몸을 조각조각 분리해 가면서 말이다.

당연히 자신과 전투를 위해 각오하고 달려온 일행들은 뻘쭘할 정도로 멍하니 그 모습을 구경만 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의 검로 앞에선 몬스터뿐만 아니라 자연물도 가차 없이 갈려 나갔다. 얼마 없던 나무들도 이미 산산이 조각나 흩날리고 있었고 평평했던 분지 안은 여기저기 파이고 무너진 돌로 인해 처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 일의 발단은 시현과 한 이야기를 전하고 나고부터였다. 예상은 했었다. 연태운이 시현을 많이 따른다는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이건 제가 예상한 범위를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말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점잖은 편이라고 생각했단 말이다.

‘그런데 저 망나니는 뭐냐고.’

이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많은 걱정이 있었다. 분명 많은 희생이 뒤따르겠지. 다 하나 이상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량차오샤와 그 무리들을 소탕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것도 알았다. 안타까웠지만 모두의 의지였기에 희생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현재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오면서 당한 조금의 부상만 있었을 뿐 이곳에 와서는 그저 영화 보듯 이 비현실적인 광경을 감상할 뿐이었다.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멀게 느껴졌다.

저 힘도, 가차 없이 몬스터들을 살육하는 저 태도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이만큼 멀리 떨어져 나와 있는데도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좋은 거지요.”

“레이첼 님.”

혼자 중얼거렸던 말에 대답이 돌아왔다 신류하는 슬슬 정리되어 가는 앞의 광경에서 눈을 돌려 뒤를 바라봤다.

“저긴 곧 정리가 되겠군요.”

“예, 거참… 생각했던 계획이 다 망가졌는데 기분은 나쁘지 않은 게 이상하네요.”

“하하. 결과만 옳으면 상관없지 않을까요. 우리 일행들은 다 멀쩡하고 몬스터 러시도 막아 냈으니 좋은 거죠.”

“예… 그렇죠….”

태운이 저렇게 움직이는 것의 원인이 반쯤은 괴로움이라는 걸 알았기에 이게 맞는 걸까 싶었지만 신류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첼에게는 과정보단 결과가 중요하단 걸 잘 알았으니까.

“그건 그렇고 시현 씨가 혼자서 다 해 보겠다고 했다지요?”

“맞습니다.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고 하더군요.”

“참… 이렇게 모두 잘해 줄 줄이야. 정말….”

레이첼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빙긋 휘어졌다. 신류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조금 쓸쓸하게, 하지만 티 나진 않게 마주 웃어 보인 뒤 뒤에서 사그라지는 거대한 기운에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그사이에 전투는 끝나 있었다. 태운은 한 놈도 빠짐없이 갈기갈기 찢어 놓았음에도 단 하나의 개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수백 개의 탄지강을 뿌려 댔다. 적이었고 어차피 죽여야만 했던 것들이었지만 도를 넘는 처참함에 혀가 내둘러졌다.

태운은 이 개 같은 것들의 마지막 소리가 멎자마자 깔끔하게 검 면의 핏물을 증발시키고 검집 안으로 집어넣었다.

분명 꼭 오겠다고, 그렇게 약속한다고 말을 남겼다고 했다. 그러니 믿었다. 스승님은 올 것이다. 그러나 이 어디에서부터 발생하는지도 모를 뜨거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정말 제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위험이 감지될 만큼 말이다.

그렇기에 주변에 널린 샌드백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힘을 사용했다.

사실 왜 또 혼자 움직였냐 서운하다 따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 일이 틀어지게 된 이유엔 자신의 실책도 있었으니까.

‘응집석이 다 똑같은 응집석이 아니란 걸 순간 잊었어.’

그랬다. 만약 자신이 그것을 진지하게 머리에 박아 두고 계속 경계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량차오샤를 그곳에서 놓치지 않았을 거다.

오히려 단번에 일을 해결했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런 가정들은 쓸모가 없었다. 자신은 실수했고 량차오샤를 놓쳤으며 그가 만들어 둔 이상한 것에 걸려 한참이나 시간을 허비해야 했으니까.

자신을 잡아 둘 수 있는 진과 결계는 없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자만이었다. 잠시간이었지만 그 신의 광산 주변에 얽매어 헤맸고 겨우 공간을 찢고 나왔을 땐 꽤나 시간이 지체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 뒤로 급히 달려왔지만 역시나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이미 끝까지 난 상태. 자신은 결국 제대로 해낸 게 아무것도 없었다.

“씨발… 후우.”

하도 움직이느라 가지런히 묶었던 머리카락이 산발이 되어 여기저기 삐져나오고 끝은 핏물에 절어 무겁게 늘어져 두피를 당기고 있었다.

태운은 욕설을 되뇌며 머리끝을 풀어 주머니 안으로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묶여 있던 검은 머리가 주르르 풀려 어깨와 팔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자 옷 위에 묻어 있던 핏물을 뭉개며 더욱 엉망으로 만들어 놨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은 태운의 안중에 없었다.

그 수많은 몬스터들을 썰어 댔고 여기를 마무리 지을 동안에도 돌아오지 않는 시현만이 머릿속에 꽉 차 있을 뿐이었다.

‘분명 기다리라고 했지.’

태운은 시현이 남겼다는 말을 몇 번이고 중얼대면서 그 말을 전해 주었던 자가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이전에도 거의 열 번이나 다시 확인하면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정통으로 받아야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나 채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이상 현상이 감지됐다.

낯설지만은 않은 이 기묘한 감각. 공기가 마치 숨이라도 죽이듯 착 가라앉았다.

그 뒤에는 번개가 내려앉겠지.

역시나 생각의 흐름대로 광경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반투명한 막으로 둘러쳐져 있던 이 알파 구역 안으로 스파크가 튀듯 전기들이 파직대며 옮겨붙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잔 스파크들이 합쳐지고 합쳐졌다.

합쳐진 것들은 무게를 못 이기겠다는 듯 아래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고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번개가 되었다.

그다음은 반복이었다. 그러나 몇 번의 번개가 지면을 강타하고 난 뒤엔 얌전히 떠돌던 마력들이 요동을 치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아직 남아 있던 이 차원의 자연지기 말이다.

태운은 시현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량차오샤가 함께한 신의 광산에 오자마자 이 구역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눈치채고 있었다. 그렇기에 왜 자신의 힘이 돌아왔는지도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진 줄은 모른다. 하지만 이 공간은 점점 지금의 차원과 동떨어진 환경을 만들고 있었다. 한마디로 원래 무공이고 마력도 없던 이쪽 세계와는 달리 무공을 사용하던 자기 세계처럼 이 일부나마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신의 광산이 다 모여야만 이런 환경이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예상이 조금 빗겨 나가고 있었다.

‘저들은 직접 이곳에 발을 딛으려고 하는 거다.’

설명처럼 이곳에 촉수를 박고 기운만 조금씩 빨아가려고 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레이첼과 그 이상한 존재는 이 사실을 알고 지금의 계획을 세운 건가? 하지만 그에 대한 태운의 생각은 ‘아니오’였다.

다시금 상황이 바뀌고 있었다. 그렇기엔 태운은 시현과의 만남이 더욱 급했다. 그리고 시현이 남겼다는 ‘새로운 방법’에 대한 것도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힘과 전투에 관해서라면 자신 있었다. 솔직히 질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전투에서 이기면 끝인 상황이 아니었다. 조금만 삐끗하면 모든 상황이 바뀌었고 그것이 짧은 시간에 몇 번이고 이루어지고 있었다.

‘잘하면, 스승님과 함께 도망쳐야 할 수도 있다.’

자신은 정말 애매한 존재였다.

인간이었지만 이 세계의 인물들과는 다르게 무공이라는 능력을 썼고, 세네아즈들의 육신을 흡수해 저들의 능력을 조금이나마 가지게 됐다.

그렇기에 이곳으로 이동해 올 수 있었지만 오래 버틸 순 없는.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래서 시현이 그걸 바꿔 보겠다고 이리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벼락같은 깨달음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아….’

벼락이 내리치고 자연지기들이 괴롭게 요동치는 와중 태운의 시선이 아주 느리게 레이첼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걸 직감했다는 듯 돌리자마자 저를 보고 있던 레이첼과 정통으로 눈이 마주쳤다.

[당신과 시현 씨의 힘이 모두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였구나. 단순히 둘이서 고생 좀 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여태 제 목숨을 쥐고 시현을 움직이게 만든 줄 알았더니 그 반대였다. 레이첼이 빙긋 웃었다.

“시현 씨를 살려야지요. 시현 씨는 마지막까지 살아야 한답니다.”

“제기랄….”

절로 욕설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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