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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36화 (136/146)

#136

그 순간 분명히 제가 알던 태운과 비교했을 땐 약해 보인다고 판단 내렸던 태운의 주변으로 알 수 없는 검은색 기운이 새어 나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아주 낯선 건 아니었다 이전에도 몇 번인가 본적은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태운의 경지가 크게 뛰어올라 얻게 된 무언가라고 생각했기에 눈앞에 있는 이 태운이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때 하나의 깨달음이 밀려왔다.

‘봐준 거였구나. 그 와중에도.’

제가 말로 설명하기 전까진 진심으로 저를 해하기 위해 공격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와중에도 힘 조절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시현은 제게 등을 돌린 채 힘을 끌어모으고 있는 태운의 등을 보다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눈꺼풀을 몇 번 세게 문질러야 했다.

쿠웅.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앞쪽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내딛고 싶지 않은 공간이 생성되어 갔다. 분명 저 앞으로 한 발짝 나간다면 아무리 자신이라 할지라도 먼지 한 톨 남기지 못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제 눈앞의 광경은 압도적인 것이었다.

그 기운에 못 이겨 태운이 서 있는 흙바닥이 점점 삭제가 되어 가고 있었다. 말 그대로 삭제였다.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증발하고 있었으니까.

검은색의 기운이 처음엔 반투명한 게 꿈틀대더니 이제는 진해지고 진해져서 이질적으로 보일 정도로 새까맣게 변해 한 지점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검은색으로 만들어진 검의 첨단이었다.

“제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그러니 꼭, 약속 지키십시오.”

“…고마워.”

시현은 여전히 제게 뒷모습만을 보이고 있던 태운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입술을 꾹 말아 물고는 작게 감사를 표했다. 별다른 말이 오갈 필요는 없었다. 그만해도 어떤 감정인지 어떤 심정이지 얼추 알 수 있었으니까.

태운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별다른 말 없이 앞을 향해 내밀고 있던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원래는 은빛으로 빛나고 있어야 했던 검날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그 외에는 검강도, 어떠한 다른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검은 그렇게 고요하게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지루할 정도로 느릿하고 고요함 움직임이었다.

하나 그런 나비의 날갯짓 같은 움직임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현상이 그 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츠측.

내려그어진 검날에서부터 조금씩 튀기 시작하던 스파크는 처음엔 티 나지 않을 정도로 작았지만, 이제는 마치 번개라도 치는 것처럼 사방을 태우고 부수기 시작했다.

스파크가 한번 치면 연쇄적으로 자연물들을 튀기고 튀겨 나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던 나무에 틀어박혔다. 나무는 그렇게 소멸하고 조금의 흔적만 남긴 채 사라졌다.

그 아비규환의 가운데, 허공이 찢어지며 새카만 내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니, 내부가 아니라 밖일 테다. 내부는 이곳일 테니.

“가십시오.”

태운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 있었다. 산발이 된 머리가 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덜미 쪽으로 땀방울이 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시현은 그런 태운에 잠시 멈칫했다가 눈을 꾹 감았다 뜨곤 발을 옮겼다.

무저갱처럼 시커멓게 만들어진 저 공간을 넘어가야 하는 거겠지. 저 앞이 어떨지 알 수 없었지만 길은 이것뿐이었다. 마냥 이 안에서 계속 살아갈 순 없었다. 말 그대로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그때 세 걸음 정도 그 중심에 가까이 오자 허벅지에서 미세한 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현의 시선이 저절로 아래를 향해 뚝 떨어졌다.

면직물을 뚫고 나오는 작은 빛.

시현은 급히 주머니를 뒤져 그 원인을 들어 올렸다.

“응집석이….”

그 순간 밖으로 꺼내어진 응집석의 변화가 속도를 더하기 시작했다. 보석 같았던 돌멩이는 점점 가진 빛을 점점 잃어 갔지만, 온 세상에 뿜어내겠다는 듯 빛을 뿌려 대고 있었다. 그 빛은 겨우 손 하나를 안 보이게 할 정도의 범위에서 급격하게 커지며 주변을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이 닿는 부분부터 세상이 분리가 되어 가기 시작했다.

마치 나란히 결합되어 있던 레이어가 점점 두 개로 벌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 말은 당연하게 눈앞의 태운도 흐려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분명 제 눈앞에 있는데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인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빛이 조금 더 커졌다. 이제는 시야를 방해할 정도였다. 주변 풍경은 거의 멀어지고 제게 가장 가까운 것, 그러니까 태운의 표정만이 얼추 보일 뿐이었다. 그때 태운의 입이 작게 움직였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찾을게요.

시현은 결국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제 손에 있을 응집석을 쥐어 느꼈다.

실금이 가고 있었고 온도는 더욱 올라 꽤 뜨겁다 느낄 정도로 달아올라 가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시현의 기운을 빨아 가기 시작했다.

기운이라고 뭄뚱 그려 말했지만 이건 뭔가 더 세밀한 느낌이었다. 마치 선천지기, 그러니까 생명력이라도 빨리는 듯한.

‘하, 결국 시스템은 똑같다는 건가.’

후우웅-

마치 시현의 생명력에 반응하는 것마냥 빛만 내뿜어 주변을 밝히던 빛에 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들고 있던 시현마저 섬뜩함을 느낄 정도였다.

‘4개 더 남았었나.’

급격하게 피곤함이 몰려왔다. 시현은 점점 사방이 뭉개져 가는 감각을 느끼며 눈을 꾹 내리깔았다.

***

“제기랄.”

량차오샤는 급히 발을 움직이면서도 제 눈앞에 떠 있는 지도를 보며 연신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자리를 지키며 융합을 주도해야 했던 이들의 흔적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분명 이틀 전만 해도 하나의 부재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정도는 자신이 준비해 온 것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맞닥뜨릴 예상치 못한 전개에 제대로 바뀌어 버린 상황을 채 파악하지도 못하고 움직여야 했으며 그 이후 도착한 곳에서도 또 개 같은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처음에는 누구든지 조종할 수 있는 제 능력이 만족스러웠다. 허나 레이첼과 직접적으로 부딪히게 되면서 이 힘의 한계를 깨달았다. 결국 본체인 제 힘이 딸려 주변을 지키고 있던 것을 잃는다면 꽤 곤란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아무리 해도 제 육체적인 능력은 발전이란 게 없었다. 아무래도 그들의 힘으로 받게 된 능력이 원인이 되었을 게 분명했다.

“머저리 같은 새끼들 줄 거면 제대로 주든가.”

량차오샤는 그렇기에 몇 번을 더 강한 힘을 주지 않는 그들을 원망하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원망과 분노가 더욱더 강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응집석과 온갖 스킬들로 무장하고 있던 건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새까맣고 붉은빛을 발하는 그자를 보고 단번에 알았다. 제가 가져온 응집석이 다 떨어지면 자신은 분명 목숨을 잃을 거란 걸.

그러나 그렇게 쉽게 죽어 주기 위해 이렇게 악착같이 버텨 온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제 주변을 다 버리고 움직였다. 어차피 그들 말고도 부릴 건 많았다.

그러나 또 상황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동안 뭐든지 제 생각대로만 움직이었던 것과는 말도 안 되게 상반되는 상황이었다.

분명히 이 힘이라면 어느 사람도 방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도착해 온 곳에서 그 사실들이 처참하게 부서졌다.

여태까지 모아 온 정보를 통해 충분히 경계를 하고 있었다. 정시현이라는 존재는 자꾸 제 계획에 이상한 균열을 만들어 내 머리를 조금 골치 아프게 만들곤 했으니까. 그러나 그 충분한 대비가 사실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 또한 제 분석과 동떨어진 결과였다.

“그래도 처리했으니 다시 차근히 하면 돼.”

하지만 결국 우여곡절이 있었어도 결과는 제가 원한 대로 이루어졌다. 가장 방해가 될 것 같은 세 명 중 한 명을 처리한 것이다.

량차오샤는 빠르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진저리 치듯 손을 툭툭 털었다.

이 알파 공간은 사실 이 지구 차원에서 아주 조금 떠 있는 공간이었다. 한마디로 조금의 계기만 생긴다면 외부의 힘이 아주 손쉽게 자리 잡을 수 있는 좋은 환경이었고 반대로 이곳의 인물들은 제대로 힘을 쓰기 힘들다는 말이다. 여태까지의 모든 일은 이것을 위해 움직인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알파 구역에서 또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반쯤 붕 떠 있는 만큼 다른 연결된 다른 차원과의 중간을 비집고 열어 아예 차원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은 공허였다. 차원과 차원의 사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 그곳으로 이동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인간이 절대 살 수 없을 거란 건 알았다.

물론 큰 범위는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생할 일도 없지. 하지만 고작 한 사람 정도라면.

“나는 심지에 불만 붙이면 돼. 그러면 연쇄적으로 이벤트가 일어나겠지.”

량은 제 한쪽 팔에 그물처럼 자리 잡은 새파란 핏줄을 보고선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곧 있으면 마지막 하나 남은 신의 광산이 도착할 것이다.

그곳으로 먼저 가서 빨리 하나를 활성화하고 차근차근 해 나가면 된다. 고작 한두 명에 의해서 망가질 정도로 계획을 허접하게 짠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제정신만 차리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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