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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33화 (133/146)

#133

전투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진 않았지만 그만큼 격렬했다. 몰려드는 몬스터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시현은 정말 온갖 방법을 다 써서 움직여야만 했다.

검을 휘두르다가도 사방으로 장을 뿌려 댔고, 거대한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위해 허공으로 뛰어올랐을 땐 보법에 집중하며 스피드를 더욱 끌어올려 재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후우….”

앞으로 나아가면서 그 앞을 막은 것들을 베고, 또 조금 나아가며 겁 없이 몰려드는 것들을 가르고. 시현이라고 할지라도 조금은 기운이 빠질 만큼 전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렇기에 지금 이 공터에 깔린 광경은 무척이나 참담한 것이었다.

시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거의 학살에 가까운 제 행보가 후회스럽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기쁜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죽어 널브러진 채 수없이 쌓여 있는 것들을 보며 감상에 빠질 시간은 없었다.

슈욱-

시현의 검이 다시 한번 빠르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러자 겹겹이 쌓인 몸뚱이들 사이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몬스터가 몸이 두 개로 반듯하게 갈라져 바닥을 나뒹굴며 밀려오는 몬스터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것이 마치 신경에라도 거슬린다는 듯 몬스터들은 시현의 귀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고함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치 그것이 신호라는 듯 분위기가 더욱 고취되기 시작했다. 조금 골치 아파지는 변화였다.

시현은 작게 혀를 차곤 저 멀리에서 아우성거리는 것들을 보다가 다 같이 몰려들 기미가 보이자 재빨리 땅을 박찼다.

“지겹게도 몰려드네.”

그래, 이게 문제였다. 이렇게 계속 몰려드는 적들을 눈앞에 보고 있다면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는 건 저희 쪽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시현은 잔뜩 굳은 얼굴로 처음보다는 확연하게 빛이 줄어들어 희미하기만 한 흔적들을 살피다가 앞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다.

길을 막는 것들을 베어 낸다. 그리고 계속 앞으로 발을 옮긴다. 동시에 빠르게 상황을 확인한다.

분명 태운이 향한 곳에서 왔을 그였다. 그렇다면 태운의 행방은? 어떻게 따돌리고 여기로 먼저 온 것인가. 그는 대체 뭘 위해 자리를 이탈해 움직인 것인가. 수많은 상념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의식적으로 지워 내려 애썼다.

믿어야만 했다. 시현은 이를 힘주어 악물었다가 눈을 세게 감았다 떴다. 얼굴 위에 남아 있던 혼란스러운 감정이 흐려졌다.

그렇게 생각을 비우고 기계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그에 보답하듯 조금은 익숙한 형태가 점점 가까워져 눈 안 가득 들어오기 시작했다.

깎아지르듯 아찔한 절벽, 그 돌벽을 조금 파고들어 가 동굴처럼 보이는 짧은 통로와 그 안에 자리한 아주 이질적인 문.

그때는 이 앞을 경비하는 조금의 인력이 있을 뿐이었는데 지금은 낯선 컨테이너와 막사, 그리고 몬스터들이 죽어 흘린 다양한 색의 피 웅덩이들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콰앙!

시현의 손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동시에 옆에 있던 컨테이너 하나가 절반이 반파되면 안에 들어 있던 작은 집기와 종이 서류들을 쏟아 냈다.

시현의 눈동자가 아주 빠르게 움직이며 허공에 휘날리고 있는 서류들의 내용을 확인했다.

“역시 여길 먼저 왔어야 했네.”

비슷하지만 달랐다. 단어 한두 개의 아주 조그마한 단서들이었지만 시현은 단번에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선정된 위치, 필요한 생명력. 그리고 주어를 알 수 없는 순서의 나열.’

시현의 시선이 서류들을 훑고 다시 한번 빛이 새어 나오는 땅으로 향했다. 그리고 전투에 온통 집중하고 있던 신경을 조금 나누어 이 모든 상황을 전반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

장소가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었어.

그래, 생각해 보면 고정되어 있으면 안 됐다. 그러면 그렇게 다양한 곳에서 분포되고 사방에서 쏟아져 나올 순 없을 테니까.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다는 상식들에 가려져 어딘가에서 나올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바닥에서 소환이 될지는 순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게임 같은 세상에서 가장 어울릴 만한 방법인데 말이다.

시현은 필요한 것을 확인하고선 쉴 틈도 없이 신의 광산 입구가 자리한 절벽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다시금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던 몬스터들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슬슬 이 몬스터 러시가 멎어 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길게 유지가 안 돼서 당황한 거야, 특히 내 앞에선.”

시현은 새삼 량차오샤의 표정 관리가 놀라웠다. 유연하게 놀리는 혀와 말에 당황하고 휘둘렸고 여유가 뚝뚝 떨어지는 태도에 조금의 의심도 하지 못하고 급급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차근히 생각을 더듬자 이 미묘하게 이상했던 상황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유리한 상황의 그였다. 그렇기에 이 자리를 이탈한 이유는 더 좆같은 일을 저지르기 위한 준비를 위함이라 여겼다. 하나 생각이 반전되자 그자가 오기 전에 저질러 놓은 일이 헛짓거리가 아니었다고 하는 묘한 성취감이 들기 시작했다.

‘고작 응집석을 통해 저들이 만든 공간을 비틀고 파괴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동안 실감할 새도 없었고, 그 능력으로 인해 좋은 꼴을 본 적도 없었다. 오히려 피해를 미친 듯이 봤으면 봤지. 그런데 이제 그 알 수 없는 능력이 이제야 좀 쓸 만해지는 것 같았다.

이 힘은 단순히 공간만을 비트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만들어 낸 응집석,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안에 담긴 외부의 존재들의 의지를 흐트러트리는 거였다. 마치 정교하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에 전원이 들어와 움직이려고 할 때 그 틈을 빌어 역으로 바이러스를 먹이는 것과 비슷했다.

여태까지의 경험을 차근히 떠올렸다.

여러 종류의 응집석을 접해 봤지만 이렇게 제 영향을 받았던 것들은 몇 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유추가 빨랐다.

단순히 생명력만 담아 공격이나 방어용으로 쓰는 것들까지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아주 큰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응집석들이 힘을 발휘하려고 할 때 무의식적으로 제힘이 파고들어 갔을 거다. 크든 작든 말이다.

“하아… 그렇다면 뭐 신의 광산을 깨부수는 데 별로 할 건 없겠네.”

신의 광산 자체가 그들의 의지일 테니까.

사실 S급 게이트에서 그러했듯 응집석을 부숴 강한 힘의 폭발을 만들려고 했었다. 비록 위험하겠지만 그런 광경밖에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빠르게 힘을 잃는 소환진과 다가가는 것만으로 흔들렸던 경계를 떠올리자 흐릿하게 세워졌던 가설이 단숨에 힘을 받았다.

레이첼이 만들어 낸 응집석은 자연스럽게 연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신의 광산이 품은 의지가 도화선에 불을 붙여 줄 테고 그대로 제힘은 교묘하게 파고들어 갈 것이다.

시현은 이제 꽤나 가깝게 몰려들고 있는 몬스터들을 무심하게 내려다보다가 절반은 더 남아 있는 절벽을 다시금 타고 올라가며 몬스터들의 무리 뒤 더 먼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키이이이잉-

대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아주 날카롭게 주변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현의 눈에도 꽤나 빠르다고 느껴질 정도로 작은 점처럼 보였던 무언가가 급격하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번 눈을 깜빡이자 그사이에 무언가가 몬스터들의 무리 한가운데로 정확히 내리꽂혔다.

멀리서 봐도 거대한 그것은 빛을 성스럽게 뿌려 대며 수 마리의 몬스터를 짓누르고 땅에 틀어박혔다. 하나 그것이 끝이 아니란 듯 쏴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뿜어내던 빛을 사방으로 뻗어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이 한계에 달한 순간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주변을 휩쓸었다.

빛으로 만들어진 창이라니, 얼핏 보면 성스러워 보인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누구도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녹아내린 빛은 성스러웠지만, 그 안에서 한 줌 핏물이 되어 녹아내리는 피륙을 보면 마치 지옥과 다름없었으니까 말이다.

“너무 늦었잖습니까.”

아무리 힘들 제대로 되찾지 못할 때였지만 한 번에 그 힘을 다 파악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강한 사람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같이 힘을 합치게 되고 계속 그 힘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아군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발밑에서 은은한 빛을 내뿜으면서 하늘을 빠르게 가로질러 날아오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러네요.”

신류하는 꾸며낸 듯한 능글맞은 웃음은 이미 옛적에 집어치운 듯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시현으로선 한층 마음이 편한 태도였기도 했고 말이다.

폭죽을 터뜨리듯 수백 개의 빛의 화살을 사방으로 뿌리며 날아온 신류하는 피식 웃으면서 짧게 고개를 꾸벅였다. 시현 또한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례이첼은?”

“오고 계십니다. 탐지기에 표시된 파장이 심상치 않아 저부터 달려온 겁니다.”

“다 들어온 겁니까?”

“아뇨. 아직 일부만이요. 하지만 핵심 인원들은 어느 정도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규민 씨와 유준 군을 말려 봤지만, 함께 오겠다고 하여 말릴 수 없었습니다.”

시현은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아직 이리저리 산적해 있었다. 예상되긴 했지만 도망쳐 버린 량차오샤의 행방도 문제였고 어딘가에 또 있을지도 모르는 소환진도 문제였다. 그리고 그에 비해 아군은 완전한 전력조차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우선순위는,

“신의 광산을 파괴해야죠.”

“맞습니다.”

시현이 내민 손 위로 작은 주머니가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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