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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31화 (131/146)

131.

중구난방으로 떠 있던 단검의 검날이 한 지점을 향해 돌아서기 시작했다.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조용한 움직임이었지만 그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그극.

공간이 쪼그라드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운은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단검 하나를 휙 하고 날려 보낼 뿐이었다. 보통이라면 그 단검에 수십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지만, 그 단검은 어느 지점에 도달하자 마치 바짝 마른 모래에 물이 스며들 듯 힘없이 사라졌다.

다시 한번 단검이 날아갔다. 허나 이 또한 결과는 같았다. 그런데도 태운의 만면에 걸린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흐음, 꽤나.”

다신 그 목소리가 들려오진 않았지만, 태운은 작게 말소리를 내곤 허리춤에 걸린 검을 슥 쓸어내렸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라는 듯 그와 함께 태운이 만들어 낸 단검의 장막이 가지런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곳으로 모여든 단검들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검처럼 보였다. 태운의 몸의 몇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검은 위협적인 검은색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태양 빛마저도 지워 버린 듯 시꺼먼 존재감을 흩뿌리고 있던 흑색의 검. 태운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앞으로 날려 보냈다.

자연검. 절삭.

의아할 정도로 느린 속도였다. 하지만 검 끝은 아주 착실하게 이 공간을 찢어 내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질기고 단단한 공간인 탓에 조금 힘이 들어가곤 있었지만 그 또한 금방 끝이 날 것이다.

태운은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찢어져 너덜너덜하고 있는 공간의 벽 너머를 보며 입꼬리를 쓱 밀어 올렸다. 그러나 미소를 유지하고 있던 얼굴이 순간 무섭도록 표정을 잃어 갔다.

“하.”

찢어진 틈을 기준으로 점점 사라지던 공간이 이제는 반쯤 날아갔을 때, 진정한 밖의 환경이 태운을 덮쳤다. 하얗고 차가운 눈이 온 주변을 뒤덮고 그 아래 앙상해진 나무들이 덜덜 떨고 있는 곳.

완전한 겨울의 모습을 한 이곳의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호수가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하나의 메시지 말고는 아무런 기척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당신의 약점. 잘 확인했습니다. 그럼.]

태운은 두꺼운 얼음으로 덮인 호수의 가장자리, 덩그러니 놓여 있는 컨테이너를 무감한 눈으로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곧장 수십 발의 강기를 날려 컨테이너를 한꺼번에 고철덩이로 만들고는 몸을 돌렸다.

“도망을 갔다고. 이런 걸 남기고.”

무감하고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이는 표정과 달리 발걸음은 조금씩 급해지기 시작했다. 빨리 시현에게 돌아가야만 했다. 그 새끼가 말한 응집석 어쩌고 했던 건 그 공간에 영향을 주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갈 때마다 그 감정이 표출되듯 발바닥에 닿는 쌓인 눈들이 파헤쳐지고 휘날렸다. 평소라면 조금의 흔적도 남지 않게 움직였을 태운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그것을 신경 쓸 겨를 같은 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

‘가능하다면 저들이 만들어 놓은 방법까지 죄다 부숴 놔야겠지.’

시현은 제가 달려가고 있는 앞길을 방해하는 나무를 빠르게 타고 올라 가지 끝을 밟고 다시 한번 도약했다. 마치 하나의 선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던 시현은 지금 제가 목표로 하고 있던 장소를 떠올리며 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일단 최대한 은밀하게 잠입해서 상황을 파악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렇지만 여유가 된다면 조금은 무리를 해서라도 저들을 방해할 생각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운에게 무리하지 말라 몇 번이고 잔소리를 해 대던 시현이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제가 먼저 무리할 생각만 하는 중이었다.

‘몇 시간 정도 걸릴 거랬지.’

시현은 순간적으로 앞에 보이는 나뭇가지에 멈춰 섰다가 핸드폰으로 시간만 확인하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곧 얼마 안 있으면 목적지 근방에 다다를 듯했다. 시현은 속도만 내어서 달리던 걸음을 늦추고 은밀함에 더욱 집중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슈욱.

한순간, 멈칫한 시현이 달려가던 방향의 허공에 내기를 쏘았다. 추진력을 잃은 몸은 곧장 아래로 추락하듯 떨어져 내렸으나, 익숙하게 착지한 시현은 미간을 좁히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피 냄새.”

아주 익숙한 냄새이자 헷갈릴 수 없는 지독한 냄새였다. 시현은 아주 미세하게 풍겨 오는 피 냄새에 긴장감을 더욱 끌어올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진 모르겠으나 이건 두어 명이 죽어 나갔다고 날 수 있는 냄새가 아니었다. 오래된 피에 새로운 피가 고여 생기는, 진득하고 묵직한 냄새였으니까.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허나 시현이 고민에 빠지기도 전에 다시 한번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스스슥.

눈에 보일 정도로 짙은 노란빛 기운이었다. 마치 드라이아이스가 녹으면서 연기를 뿌리듯 그 기운 또한 뭉글뭉글대며 사방으로 뻗어 가는 중이었다. 시현은 다시 나무 위로 올라서며 그것이 시작된 방향을 확인했다.

저 색과 기운 또한 아주 익숙했다. 시현은 제가 느꼈던 불길함이 점점 확실해지는 걸 느꼈다.

설마.

시현은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함에 급히 가지와 가지를 뛰어넘으며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꾸만 숨이 가쁘게 오르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힘들고 지치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꾸만 진해지는 이 노란 기운과 피 냄새 때문에 그 불길함의 실체가 선명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기만 지나면!’

눈앞에 보이는 작은 언덕. 얼마 전 태운과 제가 동태를 확인하기 위해 올라갔던 곳이었다. 시현은 급히 그곳을 향했고 곧이어 보이는 광경에 결국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저들은 계속 몬스터를 대량으로 소환하는 방법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한마디로 말도 잘 듣고 먹을 것도 필요하지 않으며 죽으라면 아무런 의심도 없이 목숨을 내놓는 병사들을 끊임없이 뽑아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자칫하며 적에게 투항하여 배신할 수도 있는 인간들을 병사로 쓰기 위해 모아 둔다니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씨발!”

마치 피로 이루어진 작은 호수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쩐지 전략적으로도 좋지 않은 이런 분지에 왜 병사들을 몰아넣어 놓았나 의아했던 참이었다. 그런데 저들은 병사가 아니었던 거다. 저들이 말하던 ‘연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거다.

화가 났다.

각자의 신념이나 생각 같은 것들이 달라서 서로 적으로 만나고 그런 이유로 전투하게 된다면 그런 건 괜찮았다. 죽어 나가든 이기든 지든 본인의 선택으로 그렇게 된 것이니까. 하지만 이런 속임수에 의한 의미 없는 죽음과 학살은 정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각자가 바라는 미래를 떠들며 노닥거리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생각에 분노하긴 했지만 칠공에서 모두 피를 쏟아 내며 누워 있는 꼴을 보자 그 모든 감정이 허무해졌다.

그때 피로 가득 찬 바닥에서부터 미세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바닥으로 조금씩 흡수가 되어 가고 있는 피로 인한 것이었다. 역겹고도 역겨운 장면이었다. 시현은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몇 마디의 욕설로 바꾸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저 멀리 이제는 익숙하다면 익숙한 강원도 신의 광산의 입구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훤칠하게 큰 키와 단정한 외모, 그리고 단정하며 편안하게 차려입은 옷과 운동화까지.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어디서 연예인 같은 거나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시현은 저 얼굴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량.”

그 순간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것이 착각이 아니란 듯 그자의 한쪽 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시현은 몸을 조금 굳히며 검병을 콱 움켜잡았지만 그대로 살랑살랑 움직이는 손에 결국 다시 한번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저 개새끼가….”

“할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아주 중요한 내용이 될 겁니다.”

마치 시현이 제 입 모양을 다 읽고 있다는 걸 안다는 듯 남자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천천히 말을 읊었다. 당연히 시현은 그의 입 모양을 알아볼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걸 읽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 상황에, 특히 혀를 놀려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 낸 놈이 눈앞에 있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의 말과 행동을 모조리 무시해야 하는 게 올바른 일이지 않나.

그러나 덧붙여 이어지는 말에 시현은 자동으로 멈칫하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파트너. 외부에서 온 인간이더군요.”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시현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무표정을 유지했지만 등 뒤로 돌린 손은 마치 피라도 날 듯 꽉 쥐어진 채였다.

“외부인들은 이곳에서 살지 못하죠. 하지만 제게 확실한 방법이 있답니다. 어때요? 이제 들어 보고 싶어졌죠?”

“이… 좆같은 새끼.”

시현은 저 말에 제대로 된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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