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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29화 (129/146)

#129

“이거 그냥 들어가면 안 되겠죠?”

“아무래도 그렇지…?”

규민과 유준은 이제 여실하게 제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막 앞을 서성이며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실 유준도 몰라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시현이 전해 온 연락에도 자신과 태운 말고는 모두 힘을 다 잃고 쓰러졌다고 했으니 절대 그냥 들어갈 생각도 아니었다.

그저 어느 정도 투명해 저 너머가 눈앞에 아른거리는데도 고작 이거 하날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게 답답할 뿐이었다.

규민은 그런 유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고는 슬쩍 시선을 돌려 기존 협회의 헌터들이 만들어 놓은 기지 쪽을 바라봤다. 당연하게도 한곳 차지하고 들어가 있는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분명 처음에는 아주 강렬했건만 지금은 그것이 착각이라는 듯 흐릿하게 느껴지는 존재감이 천하의 규민도 쉽게 말을 붙이지 못하게 만들던 사람이었다.

‘들어갈 방법은 곧 생겨날 겁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기에 지시하듯 내려진 말에도 딱히 별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친절한 말투였지만 방법을 찾을 때까지 괜히 허튼짓해서 일을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규민도 유준도 그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계속 막 앞에 서서 이런 시답잖은 얘기만 하고 있던 것이었다.

“대체 시현이 형한테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걸까요?”

“그러게. 우리가 조금 더 강했으면 도움이 됐을까….”

주변이 순식간에 적막해졌다.

아무리 어느 정도 설명을 들어 왔고 같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행동을 해 왔다지만 시현의 행보에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사건들도 말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것들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아직도 시현이 속내를 털어놓지 못할 정도로 제게 큰 믿음이 없구나 하는 사실에 조금 서운할 뿐이었다. 고작 몇 달 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금방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목적과 나름 화기애애했던 일상이 하루하루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의 자신에게 지금의 상황을 얘기한다면 절대 믿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규민은 허탈감을 작은 한숨에 담아 비식 미소를 짓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유준도 슬쩍 눈치를 보다가 옆에 털썩 주저앉아 손안으로 몇 가지 물건을 구현화한 뒤 허공으로 던져 올리며 울적한 얼굴을 숨기려 애썼다.

“후우….”

마치 자신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불안감과 작은 자괴감,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신류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작은 막사 입구에 비스듬히 서서 보다가 다시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츠츠츠츠-

레이첼의 이마에 아슬아슬하게 맺혀 있던 땀방울이 결국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 아래에 위치한 테이블에 닿기도 전에 그 위를 채우고 있던 마나에 의해 순식간에 증발했다.

작은 막사에는 레이첼과 나무로 만든 탁자뿐이었다. 별거 없어 보이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저 탁자에서 일어나는 일이 꽉 막힌 지금의 상황을 타개해 줄 아주 중요한 키가 될 것이었다.

그러니 제 마음이 어떻고 자시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신류하는 마나의 응집 한가운데에 둥둥 떠서 빛을 발하고 있는 작은 조각과 덜덜 떨리고 있는 두 손을 죽일 듯 노려보며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삼켰다.

“됐다.”

그때 괴롭다는 듯 미간의 주름이 깊어져 가고만 있던 레이첼의 입에서 오랜만에 음성이 튀어나왔다.

“핵심 종류를 찾았습니까?”

“이동, 그리고 보호.”

“역시 단순하네요.”

“그래서 더 헷갈렸어요. 핵심이 단순하기 때문에 그걸 가려 보겠다고 장난질을 많이 쳐 놨더라고요. 뭐, 그 거대한 것을 이동시킨다는 것만으로도 벅차긴 할 테니까요.”

아까와는 달리 속 시원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던 레이첼의 눈이 반짝였다. 신류하는 그런 레이첼을 보며 결국 미소를 입에 걸고 고개를 끄덕여 보일 수밖에 없었다.

***

“이거 실환가.”

온통 이미 봤던 정보들뿐이었다. 다시 보기도 싫던 숫자들의 나열들로 빼곡한 종이들을 몇 번이나 둘러보던 시현은 이마를 턱 부여잡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히 기대했다. 세 번째로 나타난 게이트 쪽 관련자들이 뭐라도 가지고 있을 거라 기대했단 말이다. 그러나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서류들은 열심히 달려온 시현을 무척이나 허탈하게 만들어 주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숨겨진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더 찾아볼까요?”

태운은 그런 시현을 보다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지만 이미 이 공간을 세 번째 뒤집은 참이었기에 무언가 더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던 상태였다. 물론 시현도 그게 태운의 배려라는 걸 알았기에 더 짜증을 내고 싶지 않았다.

“아니야. 몇 번을 찾아봐도 똑같았으니까. 진짜 뭐가 없나 보다.”

“사련백혼술이라도 펼쳐 볼까요?”

“음? 아니야, 괜찮아.”

손을 절레절레 내저은 시현은 어떻게든 해결책을 내 주고 싶어 하는 태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고는 볼을 살짝 꼬집었다. 사실 이제 와서 혼백을 끄집어내 훑는다고 해도 별달리 건질 게 없을 걸 알았다. 이미 전에 한번 실패한 방법이었으니까.

시현은 그저 계속 제 기분을 살피며 뭐라도 잘못한 강아지처럼 눈치를 보고 있는 제 제자의 모습에 방긋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귀엽긴.

물론 조금 틈을 줬다고 냅다 허리에 손을 둘러 바짝 다가서서 붙어 오는 태운에 금세 한 발자국 떨어져야 했지만 말이다.

탁.

“어?”

그때 티격대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던 시현의 발치에 무언가 닿아 왔다.

제 검날에 베어 몸통과 분리되어 나뒹굴고 있는 연구원의 팔 한쪽이었다. 어찌나 칼같이 잘렸는지 피 몇 방울 말곤 깨끗하게 유지되어 있는 팔에는 평범한 옷가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유난히 화려한 반지가 여러 개 자리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물론 남자가 화려한 반지를 낄 수도 있었겠지만 보통은 그러지 않기에 시현은 자꾸만 드는 이상한 기시감에 계속 시선을 고정했다.

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템이야.’

애초에 전투 자체도 검 말고는 아이템에 의존하지 않았던 시현이었다. 그러다 보니 유난히 더 아이템의 존재 자체를 까먹곤 했다. 그 모든 게 이제 와서 이상하다고 느껴진 게 어이없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단 새로운 단서의 가능성에 중점을 둬야만 했다. 그리고 제게는 아주 유용한 능력도 있었고 말이다.

[성안]

입이 작게 달싹였다. 태운은 그 모습을 눈에 담았지만 아무 말 없이 얌전히 시현의 시선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걸 모른 척했다.

[리얼타임 맵(A) - 등록된 모든 것의 실시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하루에 한 번 지도 위에 핑을 찍어 소유자들과 위치를 공유할 수 있다.]

“허.”

이렇게 쉬웠다. 물론 시현이 가진 스킬이 아니라면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어쨌든 시현은 이제야 알게 된 사실에 조금 분했다.

사용 방법은 간단했다. 설명서엔 따로 귀속된다는 안내도 없었고, 단지 ‘소유자’라는 단어로만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현은 망설임 없이 반지를 빼내 들고 태운이 말릴 새도 없이 네 번째 손가락에 쑥 끼워 넣었다.

[소유자가 이전됐습니다. 지도를 확인하시겠습니까?]

“그래.”

시현은 막연한 얼굴을 한 태운의 볼을 한번 쓱 쓰다듬고 눈앞에 떠오른 안내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게임 속 미니맵 같은 홀로그램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들이 그렇게 열심히 계산해서 지정했다는 신의 광산들이 이동해 올 위치, 그리고 어디에 병력을 배치할지 정해 놓은 흔적들과 보급로, 최종 위치 등. 여러 가지 정보들이 눈앞을 가득 어지럽혔다. 하나 시현의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물론 정보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대단한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것들은 여태 파헤쳤던 서류에 대강 적혀 있던 것들이었다. 물론 그보다 더 정확한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계속 병력이 유입될 경로… 그게 필요한 건데.’

시현은 계속해서 미간을 찌푸린 채 수십 가지의 종류로 나뉜 여러 가지 표식들을 다시 차근하게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건 이미 주둔해 있는 장소, 이건 보급품, 이건 전투에 유리한 위치….’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 표식들이 빠르게 시야를 스치고 지나갔다. 신의 광산 표식은 조금 큰 검은색의 원형이었다. 그리고 그 옆 아주 가까운 곳에 노란 별이 있었다. 얼핏 보면 잘 보이지도 않을 그 흐린 표식은 자꾸만 시현의 예감을 강렬하게 건드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냥 표식만으로 남겨져 있는 것은 아주 익숙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강원도 신의 광산. 맨 처음 이곳에 와서 봤던 곳이었다.

‘설마.’

시현은 잠시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반지를 꺼내 들고 태운에게 건넸다.

“우리 맨 처음에 봤던 신의 광산 말이야. 그쪽 봐 봐.”

태운은 그런 시현의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에 반지를 받아 들고는 잠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른 곳과 유난히 다른 점이 있다면, 그곳에 무언가 있다는 말이겠죠.”

“그래, 그렇지?”

시현은 비로소 씩 웃으며 다시 돌아오는 반지를 건네받고 네 번째 손가락에 다시 끼웠다. 목적지가 정해졌다. 아직 핸드폰으로는 간간이 오는 안부 문자와 진행 중이라는 말뿐이었고 하루 이틀 후에는 네 번째 게이트가 이동을 해 올 것이다. 시현은 조금도 여유를 부리고 싶지 않았다.

콰앙!

그때 조금 멀리에서 거대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천둥소리 같은 그것은 이제는 꽤나 익숙한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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