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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26화 (126/146)

126.

얼마 전 S급 게이트가 터지며 일행이 갈라졌던 때가 있었다. 그때 이상한 현상이 발견되었는데, 어느 지점, 정확히 말하자면 그 게이트가 펼쳐져 공간이 이상하게 분리되어 보이던 곳 가까이 가면 작동되지 말아야 할 아이템이 작동되었다.

가령 라이프 워치 탐지기 같은 것이나 아이템 탐지기 같은, 게이트 안에서만 쓰던 아이템들 말이다. 나름 길드의 길드장으로서 당연하게 가지고 다니던 거긴 했지만 신경도 써 본 적 없던 물건이었다.

이 워치는 무조건 게이트에 들어가야지만 활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현실에서 써 봤자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던 물건이란 말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도 외부에서 이걸 써 본 건 처음이었다. 가뜩이나 갑작스러운 게이트의 출현에 혼비백산한 상태라 이상함보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것이 작동되자 패닉에 가까울 정도로 혼란스럽던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건 유준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서 표시된 시현의 마크는 너무나 선명했기 때문이었다.

시현은 라이프 워치, 그러니까 그 얇고 작은 카드를 늘 지갑에 넣어 지니고 다녔다. 딱히 불편하지 않았고 혹시 모르니까 부적처럼 가지고 다닌다며 씩 웃었던 게 기억이 났다.

유준은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점점 가까워지는 어떤 무리에 시선을 고정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레이첼입니다.”

누가 봐도 남달라 보이는 사람이었다. 존재감이 흐릿한데 또 강렬했다. 마치 저 사람의 가장자리가 물에 푼 물감처럼 흐릿했는데 다시 보면 멀쩡했고, 웃고 있는데 괜히 위압감이 들어 저절로 몸이 위축되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이 레이첼이 맞구나.’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왜 시현이 레이첼을 찾아가서 몸을 의탁하라고 했는지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강한 사람이었다. 나름 거대 기업의 자제로서 모르는 헌터들이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시현을 만난 뒤로는 그 생각에 금이 갔고 지금은 파스스 부서져 내렸다.

사실 그 대단한 헌터 길드 1위 셰어 길드의 길드장인 신류하가 처음 보는 얼굴로 공손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서부터 저자의 신분은 확인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유준은 오면서도 놓지 못했던 의심을 바로 걷어 내고 입을 열었다.

“사실 시현이 형님은 이후에 어떻게 하라고 계획을 말씀해 주시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이 너무 급했거든요.”

“급박했다고요?”

따로 인사를 하거나 하지 않았지만,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곳이 있는 이들 모두 인사치레 따윈 필요 없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저 경계가 갑자기 팽창하기 시작했고, 태운 님한테 무슨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 같았어요. 형님은 그런 태운 님한테 가려고 하다가 먹혀들어 갔고요.”

“이상한 일이요…….”

레이첼은 작게 중얼거리고는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아무렇지 않다는 것보단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얼굴에 조금 더 가까웠다. 하지만 아무도 그 차이점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형님이 남긴 말은 크게 없어요.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에요. 형님은 멀쩡하고 저 안에서 무언갈 하고 있다는 겁니다.”

순간 주변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레이첼조차 눈 안 가득 의아함을 담고 있었으니 다른 이들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죠?”

“라이프 워치. 형님한테 저희 길드 라이프 워치가 있어요. 그리고 경계 근처에 가면 이 탐지기가 작동합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안경을 쓰고 차갑게 생긴 남자가 티가 나도록 크게 움찔하더니 유준이 내민 탐지기를 급히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바쁘게 손을 움직여 탐지기를 확인하더니 레이첼에게 잠시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를 이탈해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방향은 경계가 있는 곳이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규민은 조금 당황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텅 빈 손을 내리며 천천히 움켜쥐었다.

“미안합니다. 연호 씨가 조금 성격이 급해서 말입니다.”

“아닙니다……. 어차피 이걸 알리고 저 안에 들어갈 방법이 있진 않을까, 형님을 구해 올 수 있지 않을까 여쭤보려고 했던 거니까요”

그랬다, 어쨌든 목적은 시현이 무사한지 눈으로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무척이나 위험해 보이는 저 안에서 구해 오는 것이었다. 늘 구해지기만 하고 도움만 받았다. 자신도 가능하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레이첼 님.”

그때 떠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급히 사라졌던 남자가 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발을 움직여 다가왔다. 표정 또한 나쁘지 않아 절로 기대감이 들 정도였다.

“연호 씨. 무언가를 찾았나요?”

“아무래도 당장 저 안으로는 들어가서 시현 씨를 구해 온다든가 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저걸 이루고 있는 의지가 너무 강력해서 시간이 필요해요.”

그러나 기대감은 푹 꺼지고 얼굴은 저절로 어두워졌다. 유준과 규민은 더욱더 그랬다.

“하지만 바로 연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비서, 아니 연호는 조금 힘을 주어 말을 이었다. 게이트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작동된다는 말은 저 근처에서만은 공간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뜻. 한마디로 제가 준 비상 핸드폰을 통해 연락을 할 수 있을 거란 말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시현의 부재는 아주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행동은 시현과 태운이 움직여 줘야 했고 그러려면 자신들이 준비해 온 것을 전달해야만 했으니까. 상대방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파악이 잘 안되는 마당에 이것조차 막혀 버린 상황은 큰 위기였다.

그랬기에 소통이 된다는 소식은 한 줄기 빛이었다.

다들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을 것이다. 저 공간이 아주 심상치 않다는걸. 잘하면 정말 마지막 자리가 이곳이 될 수도 있다는걸. 그렇기에 조금 더 많은 정보와 선택지가 필요했다. 어차피 이 경계를 뚫을 만한 방법도 있었고 모든 게 준비되어 있었다. 정시현과의 소통은 도화선에 불을 붙여 줄 것이다.

연호는 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딱 하나 있는 번호로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새하얀 신전 옆, 작은 컨테이너는 아주 초라해 보였지만 안에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정보가 가득 차 있었다.

물론 그 정보들이 다 지금의 시현에게 소용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들어 올린 이것은 아주 유용할 것 같았다.

“게이트가 이동해 올 장소라…….”

그 연구원이 남겼던 말과 이곳에 있는 정보들을 몇 가지 종합해 보면 금세 결론이 나왔다. 곧 일주일 안으로 전 세계에 뿌려져 있던 게이트들이 다 이곳으로 이동되어 올 거고 마지막 하나가 오기 전에, 그러니까 대략 사흘 정도 뒤에 량차오샤가 이곳에 올 거다.

그러기 위해 사용된 것은 그 응집석 조각들. 제 예상과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진짜로 자신 때문에 저들의 계획이 틀어져 이곳으로 급하게 장소를 옮겼단 뜻이었다.

시현은 의도치 않았지만, 저들에게 한 방 먹여 주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뿌듯했다.

“스승님. 어떻게 할까요?”

태운은 얌전히 다른 서류들을 만지작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서류는 태운이 먼저 찾아서 건넨 것이기에 태운도 이미 지금의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저 말에 선뜻 대답을 해 주기 힘들었다.

어떻게 할까라.

지금 할 수 있는 건 많았다. 비록 레이첼의 응집석이 없었기에 당장 이동해 올 게이트들을 없앨 수는 없었지만, 그건 다시 말하면 그것 외에는 다 가능하다는 뜻이었으니까.

저 멀리 무더기로 대기하고 있는 몬스터들과 사람들? 시간만 있다면 게릴라전을 펼쳐 다 제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한 것처럼 게이트와 함께 이동해 올 연구원들을 다 처리한다? 이 또한 완전히 일을 마무리할 순 없겠지만 아주 충분히 엉망으로 만들 수 있을 거다. 아까 그자의 말로는 자신들이 꽤 많은 걸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또 다른 방법으로는 시간을 두고 량차오샤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자를 암살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량차오샤가 얼마나 많은 응집석을 짊어지고 와서 계속 써 댈지 알 순 없었지만, 그 또한 한계가 있는 물건이었으니 언젠간 끝이 날 테니까.

아니 차라리 다른 신의 광산이 있는 곳으로 사람을 보낼 수도 있을 테다. 물론 사람을 보낸다고 해서 제대로 된 영향을 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니, 그건 안 되겠다.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들 수도 있지.’

시현은 잡고 있는 서류 끝을 손끝으로 톡톡 치다가 뒤에서 날아온 불씨에 문득 시선을 돌렸다.

인체 실험을 해서 받아 낸 결과 보고서들과 여태까지 희생된 이들의 인적 사항들. 이곳에 밀어 넣으려고 예정했던 결과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크게 불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것 또한 시현이 만들어 낸 광경이었다.

사실 이것도 량차오샤가 와서 확인했을 경우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일이 될 수 있었지만, 시현은 이미 타고 없어진 서류에서 확인한 걸 다시 한번 떠올리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애초에 이들은 이 일의 실패를 가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동해 온 뒤에 돌아가는 것 따위는 계획해 놓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한번 이 안으로 이동해 오면 못 떠난다는 말이지.’

저들도 나름 모든 걸 이 일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시현도 이걸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이 상황을 확인한대도 물러서서 숨거나 하지 않을 거란 말이었다. 결국 이 일주일 안에 모든 게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저와 태운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저들의 전력을 알고 있지만 저들은 자신과 태운이 이곳에서 힘을 회복하고 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조차도 모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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