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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23화 (123/146)

123.

지금은 안 먹힐 테지만 예전에 저들의 기술이 제게 영향을 준 적이 있었다. 물론 죽었고 딱히 큰 손해를 입은 건 아니었지만 그자가 남긴 응집석이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됐기에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남겨진 텅 빈 응집석은 아직도 제 짐에 남아 있어질 테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전투에 사용될 만한 응집석이 대체 몇 개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시현은 미간을 구기며 속절없이 흘러가기만 하는 시간에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어떻게 움직여야 가장 좋은 상황을 끌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최대한 피해가 안 가게 처리할 수 있을까.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늘 큰 고민 없이 바로바로 결정을 해 오던 시현으로서는 요즘의 이 모든 선택들이 정말 버겁게만 느껴졌다.

‘아,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다.’

한숨을 푹 내쉬며 실제로 실행하지도 못할 푸념이나 중얼거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그때 그런 시현에게 빛이라도 내리듯 아주 작은 진동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왔다.

핸드폰이었다. 알파 지역에 들어서면서부터 급격하게 부식되는 탓에 결국 고장 난 채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현대 화기들 탓에 멀쩡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던 물건이었다.

시현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여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받았을 때 이 비서가 얘기했던 특수 사항이 떠올랐다.

“이건 단순한 스마트폰이 아닙니다. 다른 보급기들처럼 단순히 배터리 용량만 늘린 게 아니라 내부 칩에 레이첼 님이 만들어 낸 응집석이 작게 들어가 있습니다.”

그 응집석이 이 기계의 연산을 도맡아 하고 의지로 인해 잘 부서지지 않는다고 했지.

시현은 짧게 한 번 울리고 사라진 진동에 급히 화면을 켜 도착해 있는 메시지를 읽어 내렸다.

[안녕하십니까. 시현 님. 이규민 씨와 서유준 군에게 사정을 들었고 방법을 찾다가 이렇게라도 소식을 전합니다. 일단 응집석은 오늘 아침에 완성이 되었습니다. 돌아오면 드리려고 했으나 지금 안쪽 상황이 어떤지를 몰라 넓어진 경계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회신 부탁드립니다.]

누가 봐도 이 비서의 정중한 말투였다. 시현은 그 와중에도 작게 비식거리고는 곧바로 답장을 보내기 위해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일단 밖으로 빠져나갈 수는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내부는 저와 태운이 말고는 힘을 제대로 쓸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경계를 먼저 파괴하려 했으나 안쪽에 대량의 인원들과 몬스터들이 대기를 하고 있는 걸 발견, 상황을 파악 중입니다. 이것 또한 예상에 들어 있던 것인지 안내 부탁드립니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았다. 너네도 이미 알고 있던 건지 이렇게 대량의 인원이 움직이는데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다던 그 무명에서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했던 건지. 이제 정말 그 응집석만 있으면 이 모든 게 해결이 될 수 있는 건지. 하지만 시현은 그 많은 말들을 꾹꾹 눌러 담고 지금 필요한 말들만 정리해서 전송을 눌렀다.

답장은 생각보다 빠르게 돌아왔다. 내용은 길었지만, 그 말들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당혹감에 한숨이 튀어나왔다.

“정말 팀을 잘못 선택했어…. 차라리 제대로 발을 집어넣던가 해야 했는데.”

물론 저 사이비들의 기세는 너무 커다랗고 그에 비해 이쪽은 한정된 인원들로만 운영하려니 당연히 힘이 벅차, 가면 갈수록 상대가 안 됐을 거라는 걸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시현은 짧은 대답만이 담긴 메시지에 대충 답장을 보내고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지이잉-

그러나 다시 진동이 울리자 시현은 투덜대던 것도 잊고 곧바로 돌아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렇다면 일단 저희 쪽에서 알아낸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시현 님이 찾아오셨던 그 조각들. 아무래도 이 공간을 만들고 무언가를 이동시키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걸로 어쩌면 밖에서 어떠한 조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시현 님이 내부 상황을 더 자세히 파악해 주셨으면 합니다.]

원래는 각 신의 광산에 들어가 응집석을 터트려 그 공간들을 박살 내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지만 일단 그 때에 가정했던 전제 조건이 박살 났으니 빠르게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게 맞았다.

순간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속으로 뭐라고 하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이쪽은 유일하게 큰 타격을 입힐 방법을 가지고 있는 단체. 그리고 인원이 없다 뿐이지 고집 있는 멍청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의 방향을 빠르게 수정되어 갔다.

사실 이 알파 구역을 박살 내고서 나타날 부작용이 걱정되던 것도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이 사람들과 몬스터가 그때도 가만히 모여만 있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지금이야 은밀하게 움직이지 그때는? 은밀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으니 각각 산개해서 이 반도에 퍼져나가 숨어든다면 그건 아무리 시현이나 태운이라도 빠르게 소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이 알파 공간의 열쇠라고 할 수 있는 게 손안에 있으니 돌리는 방법만 알아내면 될 테니까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시현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알겠다. 답장을 보내고 핸드폰을 꾹 쥐었다 폈다.

그렇다면 이제 제가 해야 할 일은 뭘까.

사실 저기 모여 있는 이들의 전력 파악은 이미 아까 둘러본 것에서 끝났다. 아무리 인원이 많다고 하나 그것도 빠르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과거 10년의 세월이 억울할 정도일 테니까.

강한 몬스터들도 많았다. 처음 본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위압감을 숨기지 않고 뿌리고 있으니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강한 헌터들도 역시나 많았다. 인간들은 대부분 조용히 자신을 숨기고 있었으니 그 정도의 허접한 운용을 시현이 파악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스승님.”

“응.”

주 무기인 응집석도 다 마련됐고 이 앞에 대기를 하고 있다고 하니 건네받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다. 그렇다면 지금 더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그렇다면 저 옆에 있는 곳을 수색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 안 그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제 뒤에 바짝 붙어서 열심히 화면을 바라보던 태운이었다. 자신보다 머리도 오성도 비교가 안 되게 대단한 녀석이었으니 금방 상황을 파악했으리라.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무척이나 마음에 걸리던 방향이었다. 지금 제 눈앞에 보이는 신의 광산만큼은 아니었지만, 그에 준할 정도의 음산한 기운을 미세하게 뿌리고 있는 장소. 그곳으로 향하는 길목은 온통 산이었고 개발도 되지 않아 길도 없는 곳이었다.

시현은 제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위치한 깊은 숲을 보다가 목을 뚝뚝 꺾고는 이내 태운을 바라봤다.

“너 눈에도 안 보여?”

“보이긴 하나 주변이 마치 엉망이 된 것처럼 흐립니다. 그러니까… 공간이 이상하게 엮인 것처럼요.”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운까지 안 보인다면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저것이 제발 제게, 그리고 우리에게 좋은 방향으로 물꼬를 틀 수 있는 단서가 되어 주길 바라며 시현은 태운의 어깨를 한 번 꽉 쥐고 땅을 박찼다.

몸이 앞으로 쏘아져 나가자 희망찬 얼굴을 한 사람들이 빠르게 멀어졌다. 시현은 조금 더 다리에 내공을 불어넣으며 앞으로 보이는 나무들을 두세 개씩 휙휙 뛰어넘었다.

***

그 이상한 장소는 가까운 듯하면서도 멀었다. 그러다가도 금방이라도 도착할 듯 눈앞에 아른거렸다. 당연히 기분이 더러웠다. 마치 누군가가 저를 가지고 장난질을 하는 것 같지 않나.

하지만 그 이상한 현상도 지치지 않고 빠르게 이동하는 시현과 태운을 막을 순 없었다. 순간 눈앞으로 다가온 이상한 공간을 한꺼번에 확 뛰어넘었을 때. 시현은 그제야 진짜 이곳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신전?”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신전이었다.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기둥과 그 기둥들이 짊어지고 있는 예술적인 지붕. 온통 흰색으로 만들어져 위용을 뽐내고 있는 이 건물은 나무로 가득한 이 숲과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시현은 이 뜬금없는 거대한 구조물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현은 숨을 최대한으로 죽인 채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다가갔다.

“일단 유럽 쪽에 있는 신의 광산은 이동이 거의 끝나 가는 것 같습니다. 그다음은 어디죠?”

“남미입니다. 아마존에 있는 광산은 조각들을 재배치하는 것에 시간이 조금 걸려서 지체되고 있습니다만 그것도 일주일 정도면 끝날 겁니다.”

“그렇군요. 세 개째 신의 광산이 모였을 때 량차오샤 님도 오신다고 하셨으니 준비 단단히 해 놓으시길 바랍니다.”

“네!”

잠깐, 이게 무슨 말이야? 신의 광산? 저게 신의 광산이라고? 저걸 이쪽으로 이동시킨 거라고?

시현은 부드럽게 기둥을 쓰다듬으며 흐뭇한 얼굴을 하는 여자의 말에 황당해하며 몇 번이나 같은 단어를 되뇌어야만 했다.

사실 시현은 각 나라에 퍼져 있다던 5개의 신의 광산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제일 처음 본 신의 광산인 돌산에 박혀 있는 문을 신의 광산 형태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신의 광산은 처음 나타날 때부터 주변의 환경을 흉내 내거나 아주 이질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형태 또한 아예 처음 보는 형태의 건물이거나, 자연 일부이거나. 기존에 있던 유적지가 신의 광산으로 바뀐 것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건물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형태에 놀란 것도 잠시 시현의 생각은 ‘이동’이라는 단어에 머물러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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