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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22화 (122/146)

122.

고생스러울 거라고?

시현은 단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그 말을 철회해야 했다.

촤악-

눈앞으로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태운이 날린 작은 강기 조각에 목이 터져 나간 몬스터가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여러 종류의 몬스터들이 도미노 쓰러지듯 우르르 바닥을 향해 고꾸라졌다.

숫자를 세기도 힘들었다. 안쪽으로 움직일수록 종류고 숫자고 셀 수 없이 뒤엉켜서 나타나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것들은 그냥 눈에 보인다 싶으면 가까이 다가올 새도 없이 펑펑 터져 나갔다.

시현은 출발하면서 꺼낸 뒤 줄곧 손에 들고 있던 검을 얌전히 검집 안으로 집어넣었다. 뭔가 검이 불만을 토로하듯 떨리는 것 같았지만 개무시했다.

‘내가 움직이기도 전에 다 끝나는데 뭘 하라고.’

아까 각오를 다졌던 저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질 정도로 신의 광산으로 향하는 길은 끊김이 없고 편안했다. 제가 걱정을 해 줄 필요도 없었다. 태운은 너무 강했다. 솔직히 맞붙으면 수초 안에 질 자신이 있을 정도였다. 자신은 이제 저 내공이 움직이는 흐름 속도 동작 무엇하나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괜히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다고 질투라든가 하는 마음이 생긴 건 아니었다. 그냥 언제 이렇게 강해졌나 무슨 수련을 한 건가, 그저 궁금할 따름이었다.

“…뭐, 덕분에 편하긴 하네.”

“예?”

“아니야.”

거의 입 모양만 보일 정도로 작게 중얼거린 말이었지만 태운은 단번에 눈치채고 다시 물어왔다. 시현은 곧바로 손을 내저으며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된 거 진짜 뒤통수 때리는 정도에서 끝날 게 아니라 잘하면 완전히 토벌할 수 있지 않을까.

시현은 슥슥 손만 움직이며 수백의 몬스터를 쓸어 버리는 태운을 뒤로하고 잠시 생각에 잠겨 앞으로의 일을 가늠해 보기 시작했다. 물론 이 안의 환경이 어떻고 뭐가 있는지 완전하게 파악한 건 아니었지만 제 예상보다 태운의 힘이 너무 강력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위기는 없다고 쳐도 될 테니 조금 더 활발하게 움직여 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계속 윙윙대며 거슬리는 소리를 내던 경계 막이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있었다. 마치 열심히 돌아가던 기계의 전원 버튼이 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거.”

“예, 팽창이 멈췄군요.”

그랬다. 경계 안으로 먹혀 들어오고 나서도 경계의 팽창은 멈추지 않았었다. 그것 때문에 조금 더 빨리 움직이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조차 멈추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물론 그렇다고 놀고 있을 시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구해 내지 못했던 몇몇 부상당한 헌터들이 같이 휘말렸고 저와 태운과는 다르게 급격하게 힘의 상실을 호소하며 기절해 있는 상태였다. 죽지 않은 건 다행이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어쨌든 이 경계 자체를 풀어야 하는 문제도 급했다.

‘게다가 또 이상하게 규민씨와 유준이랑도 떨어져 버렸고….’

분명 또 호들갑을 떨며 어떡하냐고 방방 뛰고 있을 테다. 시현은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이고 힘차게 달리고 있는 발에 속도를 붙였다. 아무래도 더 빨리 움직여야만 할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몬스터들이 펑펑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시현은 한숨을 삼키고는 기막을 씌워 앞으로 쏟아지는 액체들을 가로막으며 앞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

어차피 제 무공의 기반은 천마신공이었고, 그래서 보법이나 경공도 대부분이 천마신공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전투를 하며 쓰는 발걸음에는 무시무시한 기세가 담겨 상대방을 옭아맸고 빠르게 달려 나갈 때는 그 속도가 무색하게 기운이 훅훅 사라지며 신출귀몰한 모습을 보여 주곤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경공을 쓰고 거기에 기운까지 내리누르며 잠입해 온 시현의 인기척은 어느 사람도 알아챌 수가 없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시현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마른침을 삼키며 더욱 기척을 숨기고 제 주먹을 꾹 움켜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딱 한 번 봤던 장소였지만 절대 잊을 수가 없는 장소였다.

산이었지만 문이 생김으로 인해서 나무들이 깎여져 나가 주변으로 넓은 공터를 가지고 있었고 그곳을 관리하는 헌터들에 의해 칼같이 통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우뚝 자리 잡고 있던 문이 돌산 벽에 박혀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대한 건 아니었지만 저기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위압적이어서 저도 모르게 긴장감이 드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그랬던 곳이 지금은 아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너무 많아.’

수없이 많은 인간이 벌써 이곳에 포진해 아주 단단히 전투태세를 갖춘 채 몬스터들과 섞여 저 멀리 보이는 문을 수호하듯 감싸고 있었다. 문에 가장 가까운 곳에는 컨테이너 같은 건물들이 꽤 많이 설치가 되어 있었고 이것저것 물자로 보이는 것들이 그 주변으로 많이도 쌓여 있었다. 그것보다 더 안쪽엔 무언가를 하고 있는 듯했으나 인의 장벽이 너무나 두터워 자세하게 보이지 않았다.

시현은 이 상황에 조금 허탈해졌다.

자신은 분명 제 사정 때문에 움직이는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나중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 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던 것이다. 어떤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고 노예처럼 기운만 쪽쪽 빨리다가 결국 멸망하는 삶이라니. 이게 대체 일해서 돈 상납하는 노예와 다를 게 뭐란 말인가.

그러나 그런 사실이 무색하게도 사람들은 그 외부 존재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손에 넣길 바라고 있었다.

‘이 사람도 최면 상태가 아니고, 이 사람도.’

시현은 눈에 보이는 모든 이들에서 수없이 성안을 펼치며 상태를 확인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거다. 사실 처음에는 량차오샤가 한다는 그 의지가 담긴 기술에 의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최면에 걸리지 않았다는 흔적들이 기백을 넘어가자 그 가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이 많은 사람이 제 발로 이것을 선택한 거란 말이었다.

가장 선두에 있는 자들은 대부분 쓰고 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잔인한 현실이지만 그랬다. 그런데도 그 가장 선두에 있는 자들부터 무언가 희망에 찬 얼굴들을 하고 있다는 데에서 큰 괴리감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저들끼리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조금만 내공을 더해 귀를 기울이면 저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저들의 희망 어린 말들이 자꾸만 시현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저들은 최면에 걸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 자신들만의 대의를 가지고 있었다.

-분명히 이 전투가 끝나면 우리에게 새로운 공정한 세상이 열릴 거야.

-마석을 독점하는 자들이 처벌받았으면 좋겠어. 곧 좋아지겠지.

-이 세상이 이렇게 환경이 좋아지고 정화되는 것도 다 마정석 때문이잖아. 그걸 주는 존재가 있었다니 내가 믿은 신은 다 거짓이었어.

-몬스터들도 다 사라질 거라며? 이것들이 얌전히 주변에 서 있는 게 신기해.

-후대가 어떻든 일단 지금 사는 사람들은 행복하잖아. 환경도 생활도 모두 다 말이야.

하나의 물건도 보는 면마다 의견이 다르다고 했던가.

시현은 저들의 말에 머리가 조금 띵해졌다. 일단 지금의 환경이 좋다면 내가 알지도 못할 미래의 일 따위 상관없다는 건가.

그때 문득 다른 의문이 혼란스러운 머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런데 너도 만약 너의 지인들과 태운의 안위가 보장된다면 이 싸움을 할 거야?

시현은 잠시 멈칫했다. 왜냐면 그에 대한 답을 아니라고 곧바로 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대체 나는 뭘….”

“스승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허탈감에 작게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당연하게 반문해 오는 목소리에 저절로 시선이 돌아갔다.

하얗고 갸름한 얼굴빛을 받아 반짝이는 속눈썹 붉고 투명한 눈동자 그 안에 담긴 단단한 믿음. 시현은 멍하니 그 얼굴을 보다가 몇 번 눈을 깜빡였다.

그래, 씨발 쓸데없는 가정이 뭐가 중요하냐. 인정하자 나는 이기적이고 내 위기는 코앞이다. 허탈할 필요도 없다. 나는 얘를 살리면 됐다. 애초에 자신이 언제부터 그런 대국적인 목표를 가졌다고.

생각해 보면 자신도 본인과 제 주변인들의 안위만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남들한테 피해를 주지 말자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 사람들이 만약 제게 큰 손해를 끼친다면 냉정하게 잘라 버릴 생각도 있었단 말이었다. 그 마음은 무림에서도 바뀐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머리를 가득 채우던 허탈감이 사라졌다. 어차피 저들도 자신만의 생각으로 저러는 거라면 오히려 좋다. 그냥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니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자 그제야 뒤로 밀어 놨던 위기감이 솟았다.

‘현재 이틀 정도.’

이 근처에서 움직이며, 전투하고, 규민과 유준을 찾기 위해 더 깊은 곳을 향해 달려오고, 그랬던 시간이 이틀이었다. 비록 이 안까지 들어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 넓은 범위의 반대편까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제가 이 많은 인원의 움직임을 모를 정도로 하수는 아니었다. 수십에서 수백도 아니고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었다. 몬스터를 빼고서도 말이다.

그런데 저 많은 인원이 어떠한 기척도 없이 이렇게 모였다? 그렇다는 건 저들에게 따로 이 단체를 이동시킬 수 있는 무언가 방법이 있다는 뜻이었다.

‘응집석?’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응집석의 존재였다. 이제는 응집석을 만들 때 어떤 의지를 불어넣느냐에 따라 능력을 달리한다는 걸 알았다. 특히 저들은 그런 응집석을 제물을 갈아 넣어 공산품 뽑듯 뽑아 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 물건들과 컨테이너, 수천의 사람들과 물자들을 다 옮길 수 있을 정도라고?

가능성은 있지만 아주 확신이 갈 만큼 확실한 것도 아니었다.

시현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차라리 저걸 다 옮기기 위해 저들이 비축해 놨던 응집석을 다 써야 했다면 오히려 호재다. 하지만 다른 방법을 통한 거라면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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