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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15화 (115/146)

#115

저러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화가 치밀었다. 강하면 더 나서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물론 낯간지러운 기사도 따위의 감정은 아니었다. 그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유준과 규민이 전방에 있다는 말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약자들은 생존을 위해 무리를 이루기 마련이고 그 무리의 물량 공세는 강한 몬스터 한두 마리쯤은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기에 초반에 강한 이들이 센 화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소한 도시나, 이제껏 영위하던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때, 이 추잡한 상황을 보며 미간을 찌그리고 있던 시현의 귀로 점점 더 가관이 되어 가는 대화들이 들려왔다.

“근데 솔직히 그동안은 우리 같은 능력 좋은 헌터들 피 빨면서 살아왔을 텐데 저레벨 길드들은 좀 나서서 앞장서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라고요?”

“거참, 요즘 헌터들은 인생을 너무 쉽게 살려고 하는 것 같아.”

분위기가 점점 과열되어 갔다. 처음엔 눈치만 보느라 쭈뼛거리던 이들도 점점 미간을 찌푸리며 한마디씩 얹고 있었다.

“뭐 원하신다면 앞장서죠. 하지만 그렇다는 건 나오는 마정석들은 모두 저희가 차지해도 된다는 얘기겠지요. 나중에 딴말하기 없깁니다!”

“그건 아니죠!”

“뭐가 아닙니까! 어차피 정식으로 만들어진 게이트도 아니고 필드에서 몰려온다는데 뭐 누가 잡았는지 어떻게 확인할 겁니까. 찾은 사람이 그냥 그 자리에서 습득하는 게 맞습니다.”

게다가 마정석이라는 모두가 민감할 화제가 등장하자 분위기는 한 번 더 살벌해져 갔다.

“허…….”

시현은 결국 입 밖으로 어이없는 한숨을 푹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곳이 당장 있을지도 모를 위기를 위해 모인 놈들이 맞나, 어떻게 저런 놈들 가지고 이렇게 평화롭게 살 수 있었나 허탈감이 몰려들었다.

“자자, 싸우지들 마시고! 어쨌든 지휘 체계는 어느 정도 단일화해야 한다는 데에 다들 동의는 하실 겁니다.”

그때 혼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중년 남자가 손을 슥 올리며 불이 붙고 있던 분위기를 단번에 진화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자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시현 또한 그래도 제정신이 박힌 놈이 하나쯤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는 또다시 얼굴을 팍 찡그리며 작게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길드 연합은 제가 임시로 지휘를 하죠. 지금 상위 길드의 길드장 분들도 안 계신 마당에 누가 더 세냐 유치하게 굴어 봤자 계속 입씨름만 길어질 뿐입니다. 그러니 길드 순위 5위 슬라운드의 장인 제가 그 자리를 맡는 것이 현재로서는 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의 있으신 분?”

아까 저들이 하던 말과 별반 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 말이 예의라는 탈을 썼을 뿐이었다. 이 지지부진한 알력 다툼은 벌써 삼십 분을 잡아먹고 있었다.

사실 여태까지의 지겨운 싸움들이 욱하려는 마음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건 아니기에 모른 척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예의 바른 척 냉큼 자신이 권력을 쥐겠다는 남자의 말을 시작으로 주변에 모여 있던 자들의 표정이 불만으로 가득 차며 웅성거리는 소음이 더욱 늘어나자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저 표정들이 뭘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저것은 분열의 징조였다.

과거 능력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인원도 적었던 저와 태운이가 절대다수의 무리들을 처치하기 위해 한 행동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갈등을 유발해 상잔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저들끼리 티격태격하는 거야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각자 능력이 출중한 이들을 사병처럼 거느리면서 제멋대로 움직여 마정석을 탐내고 힘들다고 냅다 빠져나가는 상황이 생긴다면 전선은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대체 왜 저 사람한테는 대놓고 싫다는 말을 못 하는지 알 순 없지만…….’

그냥 두고 볼 순 없었다.

시현은 손을 단번에 들어 올려 손끝에 단단히 뭉친 내기를 앞으로 쏘아 보냈다. 목표는 마치 뭐라도 된 듯 있어 보이는 단어들로 문장을 치장해 내뱉고 있는 슬라운드 길드장의 아혈이었다.

“다들 저희 산하의 용병소에서 꽤 도움을 받고 계시던 분들 아닙니까? 그렇다는 건 제 도움을 받았다는 거고…. 흠. 거기에서부터 힘의 우위가 정해진, 읍!”

내공이 혈도를 두드리고 틀어막자마자 열심히 말하던 남자가 제 목을 콱 움켜잡았다. 그것은 누가 봐도 외부의 공격을 받거나 큰 이상이 생긴 자의 반응이었다.

그제야 주변에 바글바글 모여 있던 이들이 본인들의 장비를 우르르 뽑아 들고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비록 저기서 어린애들처럼 유치하게 말싸움이나 하고 있던 이들이었지만 그래도 다들 한 길드에서 장을 맡는 등, 꽤 능력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주변을 경계하는 스킬과 내공, 알 수 없는 기운들이 주변을 채우고 퍼지자 주변은 일반인들이 서 있기도 힘든 공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그때 그 촘촘한 포위망을 뚫고 한 인영이 답답한 목을 긁어내리고 있는 남자의 앞에 당도했다. 얼굴을 차갑게 굳히고 있던 시현이었다.

시현은 짓씹듯 말을 내뱉으며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 멈춘 듯 멍하니 저를 바라보는 남자의 어깨를 꽉 쥐었다.

이 세계의 목숨, 아니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당장 태운이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거기다 이제는 규민과 유준, 하정까지.

이제 자신은 신의 광산을 부숴야 하는 일 말고도 그전에 생겼다는 이상 구역에 침투할 방법, 혹시 튀어나올 몬스터들의 웨이브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입장이 되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제 일을 방해할지도 모르는 아군들이라. 그런 건 차라리 해치울 수 있는 적보다도 귀찮은 상대였다.

“누구냐!!!”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런 짓을!!! 당신 대체 어디 쪽 길드원이야?”

세상이 이렇게 됐어도 학연·지연·혈연의 힘은 여전했다. 이 와중에도 혹시나 제게 피해를 줄 수 있을 만한 길드의 일원일까? 떠보는 것이 참 같잖았다.

“정시현이다. 하우스 길드.”

“무, 뭐? 하우스? 그딴 길드 이름은 들어 본 적도 없어! 이 별것도 아닌 것이.”

반응은 지루할 정도로 고리타분했다. 제가 모른다, 고로 별거 아닌 놈이다, 하는 사고의 흐름이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분명 저 수십의 인원을 뚫고 한가운데로 소리 없이 들어왔다면 능력에 대해 경계할 만도 하건만 이들은 금이 간 자존심에 눈이 멀어 제대로 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냉정하게 물러나 한 걸음 뒤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는 제법 눈치 빠른 놈들도 있는 듯했지만.

어쨌든 시현은 계속해서 꽥꽥대는 남자의 입마저 거칠게 틀어막았다. 그리고 조금 더 손을 써서 사지가 마비되도록 혈도를 잡은 채 이마를 툭 쳤다. 조금 퉁퉁하고 튼실한 몸을 가진 남자가 나무토막처럼 기울어져 바닥을 구르자 사방에서 튀어나오던 소리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꽥꽥대며 소리를 치던 사람은 헌터계에서 그래도 꽤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었다. 그런 이가 한 번에 무장해제되자 그제야 위기감을 느낀 게 분명했다.

시현은 그런 대중을 한번 쓱 돌아보고는 작게 혀를 찼다.

“자, 들어 보니 가관이시던데…….”

맨 처음엔 본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알려 주고 싶었다. 힘이 제일 강하거나 영향력이 강하니까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식의 발언이 얼마나 무책임한지 말이다.

그러나 잔뜩 긴장한 채 자신을 향한 경계를 세우고 있는 얼굴을 보자 순식간에 그 마음도 사라졌다.

제가 지금 뭐라고 해 봤자, 아니면 힘을 써서 어떻기든 기강을 잡아 봤자 자신들을 억누르는 힘이 사라지면 금세 헛짓거리할 이들이었다. 그것을 새삼 깨닫자 조금 허무해졌다.

어차피 저들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한 적도 없었고 도움이 될 거라 여기지도 않았건만 그랬다.

“제발 입 닥치고 주어진 대로 합시다. 예? 뒤로 숨고 미뤄 봤자 소용없으니까. 좀.”

그래서 시현은 짓씹듯 이 정도의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

욱하는 감정에 몸을 맡기고 힘을 행사하고 바로잡아 보겠다 노력하던 시절이 자신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다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난 뒤엔 그런 의욕도 전부 사그라든 상태였다.

아무리 자신이 능력이 대단해도 같이 전투에 참여하면 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순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말을 한 것이 하정은 조금 통쾌한 모양이었다.

-하, 진짜 그 새끼들 아주 문제야. 그렇다고 상황을 구구절절 말할 수도 없었거든. 하는 거 봐. 정말 숨김없게 다 얘기했으면 절반쯤은 먼저 빠지겠다고 했을 거야. 못난 놈들.

시현은 조금 기분이 좋아 보이는 하정의 목소리에 씁쓸하게 웃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아까의 소요는 결국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지 않고 끝났다. 시현이 당장 힘을 행사해 본보기라도 만드나 싶었으나 결국 포기하고 몸을 돌린 탓이었다.

게다가 아까, 다시 한번 더 욱하려는 순간 태운의 전음이 머릿속을 울렸다. 그러자 점점 정신이 가라앉고 냉정해지면서 이 상황을 되짚어 볼 수 있게 됐다. 시현은 그제야 느껴지는 위화감에 결국 이마를 짚으며 뒤돌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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