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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11화 (111/146)

#111

그렇다면 떠올릴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 시현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잠시만 기다려 봐. 뭔가 걸리는 게 생각났어.”

“뭐?”

“이거 말이야.”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가슴에 큰 상처를 입은 다크 엘프의 시신이었다. 게이트 안이 아니라서 육체가 금방 사라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시현은 간단히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차가운 바닥을 딛고 뛰어올랐다. 목표는 다프엘프가 숨어 있던 곳이었다. 그곳은 개미굴처럼 사람이 두어 명 들어갈 정도의 구멍을 이곳저곳 파 놓은 공간이었다. 그렇게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직 흙으로 된 벽이 축축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꽤 넓게 조성이 되어 있었는데 만약 저걸 그냥 뒀다면 계속해서 저 반경을 펼쳐 갔을 테고, 그러면 나중에는 더럽게 잡기 힘든 상황이 왔을 게 분명했다. 시현은 이미 죽은 시신을 찾아 떠나면서도 지금이라도 잡은 게 다행이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이동을 위한 게 아니었다면….’

그랬다. 단순히 들키지 않고 이동을 하기 위해 만들어 놨다고 하기엔 너무 공을 들여 놓은 장소였다. 진온전히 이동만을 위한 거였으면 지상의 일정 지점에서만 파고들어 가든가 다른 스킬을 쓰거나 했을 것이다.

자신이라서 은신 스킬 같은 걸 눈치채는 거지 다른 이들은 쉽게 알지 못했을 테니까.

발을 옮기면 옮길수록 점점 확신은 강해졌다.

시현은 어김없이 제 뒤를 따라서 달려오고 있는 태운에게 슬쩍 시선을 돌려 위치를 확인하곤 아까 파고들어 갔던 위치의 바로 앞에 멈추어 섰다.

“어차피 따라올 거 아니까 기다리란 말 안 할게, 대신 조심해야 해. 아직은 무슨 느낌 없지?”

우물처럼, 그러니까 한번 떨어지면 능력 없이는 올라오기 힘든 장소란 말이었다. 지금이야 시현과 태운 둘 다 별문제 없지만, 혹시 모르니 시현은 다시 한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태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하는 말의 의미가 뭔지는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멀쩡한 상태에서도 미묘하게 능력이 안 먹히거나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생겨 왔다. 그러니 이 안에서도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없을 테고 불안한 마음일 거다.

그런 와중에도 몸이 아픈 걸 숨기고 제 고집대로 할 마음은 없었다. 태운은 다시 한번 몸을 점검하며 아직도 불안한 눈을 한 시현에게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심해서 따라와.”

조심하란 말이 몇 번이고 반복됐다. 괜히 심장께가 뻐근하고 입꼬리가 흔들렸다.

‘몸은 둘째 치고 감정이 주체가 안 되는데….’

태운은 이제 아무 말 없이 곧바로 아래로 몸을 던지는 시현의 뒤를 따르면서 당장이라도 잡고 품 안에 가둬 두고 싶은 마음을 애써 갈무리해야만 했다.

또옥.

근처에 작은 수원이 있었던 건지 곳곳에서 물이 새어 나와 축축이 젖어 있었다. 지금 시현이 걷고 있는 통로의 가장자리에도 사람 손바닥 정도 크기의 웅덩이가 그새 만들어져 있어 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모으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금 빠른 것 같긴 하지만….’

다크 엘프를 죽여서 데리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까도 물론 이 흙들이 축축한 건 맞았지만 파낸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거지 물 자체가 새어 나온 느낌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이 공간에 대한 의문점이 늘어났다. 비약일 수도 있었지만 다크 엘프가 죽자마자 급격하게 망가지는 것 같은 공간, 그렇다면 다크 엘프의 존재 덕분에 멀쩡히 유지되고 있었다는 말일 텐데 여기에서 가설이 가로막혔다.

다크 엘프한테는 특이 사항이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시현은 이 공간에 들어와 사체를 찾자마자 물샐틈없이 꼼꼼하게 소지품과 몸을 수색했다. 그리고 결과는 말 그대로 전무. 하다못해 무기 같은 것도 없었기에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던 것이다.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스승님.”

이제 막 그자가 위치해 있던 곳에 발을 디딘 참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태운이 입을 열었다.

“어? 뭐 찾았어?”

“찾았다기보단, 여기에 공간을 억지로 찢은 듯한 흔적이 몇 군데 있습니다.”

시현은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를 세게 맞은 듯 멈추어 섰다. 이자들이 가장 많이 하던 짓이 아닌가, 이상한 공간을 만들어 내거나 단절시키는 것. 물건을 숨기기에 딱 어울리는 능력이기도 했다.

물론 그 흔적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마 태운 말고는 아예 찾기 힘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게 그런 능력이 없다고 해서 이렇게 방심하고 있을 것은 아니었다. 시현은 단순하게 주변만 돌아보고 온 저 자신이 조금 한심해졌다.

“…다시 열어서 찾아낼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태운은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조금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라면 몰라도 지금은 저 미소의 의미를 얼핏 알 것 같았다. 그냥 도움이 돼서 기뻐하는 거다 저건. 시현은 자책도 잠시, 결국 픽 하고 작게 웃으면서 태운의 등을 몇 번 도닥였다.

그러자 마치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튀어 나갈 듯 집중한 얼굴을 하고 있던 태운의 상체가 조금 굽혀졌다.

쪽.

그리고 작은 마찰음과 함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시현은 순간 벙한 얼굴을 하다가 도닥이던 손에 힘을 주고 그대로 짝 내려쳤다.

“칭찬이요.”

“아, 알겠으니까 좀 집중해.”

시현은 그새 화끈거리는 얼굴에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물론 태운은 그것마저 좋은지 싱글벙글 기분 좋은 티를 내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표정과는 달리 손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주변을 차지하고 있던 자연지기가 밀려 나고 태운의 내기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시현은 한 발짝 더 뒤로 물러났다.

태운이 제게 해가 될 짓을 하지 않으리란 믿음이 있긴 했지만 이건 조금 달랐다. 위기감이라는 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저 진득하고 위험한 내기가 주변을 잠식하고 영향을 미칠수록 자꾸 식은땀이 났기에 버티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경지를 짐작도 하지 못하겠네.’

시현이 그동안 내내 놀기만 한 건 아니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감에도 매일 운기 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외공훈련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전에 머릿속으로 수련을 하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최대한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상승한 태운의 경지를 보니 조금 허무함이 밀려왔다.

자신은 이곳 지구에 살던 현대인이기도 했지만, 무공을 쓰는, 힘이 최고였던 무협 세계에서도 10년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저 애를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러면서도 말도 안 되게 벌어져 버린 격차에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다.

‘하… 이 와중에도 그러고 싶냐.’

이 마음을 정확히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쾌한 감정은 아니었기에 태운을 보면서 그런 걸 느끼는 저 자신이 조금 싫어지기도 했다. 분명 여기는 적진인데도 이런 잡생각을 하는 것도 말이다.

츠즉.

그때 그 복잡한 상념을 뚫고 작은 스파크 튀는 소리가 파고들어 왔다. 시현은 다시 눈에 초점을 잡고 이제는 검은 안개를 두르고 있는 태운에게 집중했다.

유기물 같기고, 컴퓨터그래픽 같기도 한 무언가가 태운의 손에 모여 있었다. 모습은 단검처럼 짧고 끝이 뾰족했는데 울렁거리는 형상에 예리한 끝이 뭉개졌다 생겼다 하는 중이었다.

저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어둡고 위험한 느낌이었다. 조금만 제게 겨누어진다면 공포감이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태운은 그런 그 위험한 내기를 가지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헤집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 작은 스파크가 피어났다. 스파크는 곧 부서지는 것처럼 잘게 쪼개지더니 파편화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치직!

그리고 몇 번이나 그 비슷한 행위가 반복됐다. 태운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허공이 찢어지고 파편이 튀고 내공들이 요동쳤다.

‘이거 태운이 안 데리고 왔으면 별소용도 없었겠군.’

자신의 능력이 약한 건 아니었다. 솔직히 이곳에 있는 각성자 중 상대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연태운뿐이었다. 괜히 이 모든 상황이 지금 한 순간만을 위해서 흘러온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찝찝해졌다.

“이건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직후였다. 5번째쯤 허공이 찢어졌을 때 그제야 태운의 입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내기도 그에 반응하듯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주변을 잠식하고 있던 검은 안개들은 사라졌고 공포에 질린 듯 마구잡이로 흔들리고 있던 자연지기들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고 있었다.

시현은 작게 마른침을 삼키고서는 빠르게 발을 놀려 태운에게로 다가갔다.

“찾았어?”

“아무래도 이것 같습니다만….”

대답이 조금 미묘했지만, 시현은 순순히 손바닥을 내미는 태운에 시선을 내렸다. 그러나 막상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 뭐가 있다는 거야?”

“여기 자세히 보십시오.”

시현은 다시 한번 눈을 가늘게 뜨고 손바닥을 유심히 봤다. 그러자 손가락과 손가락이 만나는 틈 사이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들어가 있는 게 보였다.

반투명한 그것은 아주 얇았다. 머리카락보단 조금 두꺼웠지만 그래 봤자 바늘만 한 정도였다. 그게 저 틈에 들어가 있으니 안 보일 법도 했다.

“뭐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찢어 낸 틈마다 이게 있었지만 아주 미세한 생명력 말고는 느껴지는 게 없어서 이게 맞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계속 신경이 쓰이긴 했는데 별거 아닌 것 같아서 무시하다가 자꾸 나오니까 이건가 싶다는 거였다.

“그래? 음… 이걸 어떻게 알아내지.”

상황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거란 건 예상했지만 또 쉽지 않은 상황을 당면하자 머리가 아파져 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순간 시도할 만한 방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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