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신의 광산. 그 안에서 나온 물건들은 순식간에 세상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아이템도 아이템이지만 마석이 생활 전반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었다.
배터리, 전기발전, 그에 따라오는 환경 문제의 완화, 그러면서도 눈에 보이는 부작용은 없는 신물질이라고 각광을 받았으니까. 이건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특별한 기물이었다.
“저희 쪽에선 신의 광산을 피뢰침이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외부 존재들의 영향력을 모아 이 땅에 푸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신의 광산으로 넘어갔다. 결국 제가 직접 공략해야 하는 것은 량차오샤가 거느린 단체가 아니라 신의 광산이었기에 조금 더 주의가 집중됐다.
“마석은 쓰면 쓸수록 이곳에 마력 농도를 높입니다. 한마디로 저들이 움직이기 쉽게 변한단 뜻이지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야 사람들이 드림워크 없이 바로 각성을 하게 되고 량차오샤가 점점 직접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이유입니다.”
이것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시현은 조금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마석을 못 쓰게 하면 되지 않았냐 읊조렸지만 문장을 다 맺기도 전에 입을 다물었다.
“이미 시도해 봤었군요.”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쉽게 이득을 내놓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런 큰 이득은 말이죠.”
맞다. 그렇게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이득을 위해 협력은커녕 전쟁부터 일으키려고 했다니까.
시현은 체념한 듯한 신류하의 표정에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계속 자조적으로 한탄하는 그를 보다 보니 그냥 차라리 예전처럼 능글맞게 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개의 피뢰침은 전 세계에 퍼져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한국에도 하나가 있죠. 그것들은 각국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만큼 보안도 강력하죠. 문제는 그 보안에 사기업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겁니다.”
갑자기 튀는 듯한 설명에 시현은 고개를 갸웃하고 기울였다. 그러나 곧이어 이전에 겪었던 경험들과 유추가 결합해 하나의 해답을 만들어 냈다.
“그 기업들이 다 량차오샤에게 감화된 자들이라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마석을 유통하고 현금을 끌어모으는 수단으로 쓰였죠.”
마침 아직도 병원에 누워 목숨줄만 부여잡고 있을 규민의 형, 이규환의 상태가 떠올랐다. 맹목적인 모습과 상반되게 아무런 상태 이상도 없었던 사람. 이제는 소용없었지만 하나의 조각이 다시금 맞춰졌다.
“그렇다면 지금 그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뜻입니까.”
“예, 그들이 지금 피뢰침 주변을 점거하고 출입을 막고 있습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생긴 일입니다.”
아직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일반, 또는 폭발 게이트의 수는 여전했다. 그런데 그 거대한 게이트마저 문제가 생긴다면 정말 지금의 각성자들로는 막아 내기 힘들 것이다. 시현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움직여야 하지만 그러기엔 처음에 말했던 대로 제 몸은 하나라 결국 악수만 될 게 뻔할 텐데….”
그때 얌전히 신류하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레이첼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주의를 환기하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움직이려고 합니다.”
“레이첼 님!”
의외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신류하도 마찬가지였는지 득달같이 당황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물론 시현의 입장으로는 딱 봐도 강해 보이던 레이첼이 참전한다면 꽤 힘이 될 것 같아 거절할 필요도 없는 말이었다. 레이첼이 부리던 그 초절정의 꼭두각시 7개와 신류하의 힘이라면 어느 정도 시간을 끌어 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신류하의 반응을 보니 마냥 그 말을 환영하기에 여간 찝찝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시현의 기분을 한 번 더 바닥으로 처박았다.
“레이첼 님! 그 상태로 참전하시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잠깐, 잠시만요. 저도 설명을 좀 듣고 싶습니다만.”
격앙된 목소리로 반대를 외쳤던 신류하는 결국 눈을 꾹 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레이첼은 그와 반대로 여전히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와 같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 말 또한 추가 옆에서 걱정하는 이가 이상해 보일 정도로 평온했다.
“괜찮습니다. 류하 씨의 괜한 걱정일 뿐입니다.”
“아니, 제가 설명하지요.”
물론 신류하는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예의가 없다는 걸 알지만 이대로 레이첼이 목숨을 내던지게 놔둘 순 없었다.
“신의 광산을 부수려면 당신의 힘도 필요하지만, 그에 따른 매개도 필요합니다.”
“설마.”
순간 갑자기 터졌던 S급 게이트에서 겪었던 일이 순식간에 필름 지나가듯 펼쳐졌다. 그 모든 일의 시발점은 제가 남자의 목에 붙어 있던 그 응집석을 떼어 냈을 때부터였으니까. 어떻게 그게 깨졌고 제힘이 어떻게 작용하여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매개라고 불릴 만한 건 그게 다였다.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여기 와서 몇 번 보셨겠지요. 초록색 돌 말입니다. 그건 그들이 쓰던 노란색 응집석과 거의 같은 겁니다. 다른 거라곤 그것을 채운 생명력의 출처겠지요.”
그들은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죽여서 쥐어짜며 공장처럼 응집석을 찍어 냈다. 질적으론 상태가 많이 떨어지겠지만 그걸로도 충분했을 테니까. 하지만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초록색 응집석은 오로지 레이첼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 레이첼의 생명력을 매개로 겨우겨우 짜내고 있을 뿐이었다.
비록 그것을 만들어 낸다고 해서 그녀의 수명이 깎인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을 만들어 내면 최소 한두 달은 몸을 사려야 할 정도로 약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당장 신의 광산, 즉 피뢰침을 박살 내는 데에 쓸 마지막 응집석을 채우고 있는 시기였다.
“2일만 있으면 당신이 쓸 응집석이 다 완성이 될 겁니다. 여태 구구절절 우리의 사정을 설명해 드린 건 이것에 대한 양해를 부탁드리려고 했던 겁니다.”
“못 움직일 정돈 아닙니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스킬을 쓰는 데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요. 다행히 제 스킬은 제가 움직이지 않아도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데 유리하니까요.”
“그렇지만!”
신류하와 레이첼의 의견이 팽팽하게 부딪혔다.
시현은 그런 둘의 신경전에 조금 뻘쭘하게 목덜미를 훑다가 슬쩍 눈을 움직여 태운을 바라봤다. 그새 저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여느 때와 같이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시현은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어찌 보면 외부인인 자신과 태운에게 이렇게 다 털어놨다는 사실 자체가 저들의 간절함을 뜻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그 마음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기도 하고 말이다.
“좋아요. 그러면 일주일이면 되겠습니까?”
“예?”
“응집석을 완성하는 데에 2일, 잠시 몸을 추스르는 데 5일.”
신류하의 표정이 아주 이상하게 구겨졌다. 불만스럽다기보단 놀란 것 같았다.
“…가능하겠습니까?”
“못 할 것도 없죠. 뭐 경계를 올렸다고는 했지만 바로 단단한 방어라인이 생기는 것도 아닐 테고 그런 만큼 저들도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란 뜻일 테니까요.”
처음의 계획과는 많이 달라지겠지만 이미 공조를 하기로 한 상황이었으니 내 맘대로 하겠다고 해 봤자 이렇게 커진 판에선 제대로 힘을 쓰기 어려울 것이다. 그럴 바에 빠르게 계획을 바꾸는 게 오히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았다.
사실 달라진 건 저 사이비들의 반응이었지 일주일이라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에서 아주 크게 틀어질 만한 시간도 아니었다.
“배려 같은 건 아닙니다. 어차피 이 정도의 시간은 걸릴 거로 생각했고 이게 가장 이득이 될 방향이기에 내린 결정입니다.”
제가 한 말은 사실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는 게 조금은 안타까웠지만 그뿐, 배려 따위도 아니었고 다 같이 움직이는 게 최선의 상황이기에 시간을 조율하는 것일 뿐이니까.
그때 얌전히 듣고만 있던 태운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그럼 그동안 우리는 따로 움직이겠다.”
시현은 예상치 못한 태운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휙 돌렸다. 태운의 표정은 분명 입가에 미소를 걸고 있음에도 조금 스산해 보였다.
“이젠 게이트인지 뭔지 자꾸 방해받는 게 조금 짜증이 나서.”
한마디로 당장 방해가 되는 이들을 치워 버릴 순 없으니 게이트에 화풀이라도 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시현은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참고 민망한 얼굴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어차피 가만히 있을 스승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움직일 방향은 정해졌으니 그사이에 이자들이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을 넓혀 주기 위함입니다. 화풀이 아닙니다.]
그때 시현의 표정을 봤는지 곧바로 변명 아닌 변명이 시현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시현은 결국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시 일주일간의 계획을 나눈 네 명은 천천히 자리를 정리했다. 결론이 난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기에 이젠 움직일 차례였다.
“곧바로 움직이실 겁니까?”
“일단 남은 일행에게 말 좀 하고요.”
“알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가능한 한 모두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신류하는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아까처럼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조금은 풀려 있었다. 시현은 그런 그에게 짧게 인사를 하고 태운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레이첼의 조금 흐려진 눈이 떠나는 둘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조금은 굳어져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또 내가 생각지 못했던 변수.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레이첼은, 아니 관리자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앉아 있던 소파의 등받이로 몸을 푹 기대앉았다. 수백 개의 방향성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지만 결국 최적의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그 방법이 뭐가 됐든 저들은 평화를 찾을 것이다.’
작은 한숨과 함께 관리자는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