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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05화 (105/146)

#105

“넌 뭐지?”

제가 이 사술을 처음 써 본다지만 이런 식으로 발현되지 않는다는 건 알았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도 단번에 깨달을 수가 있었다.

-저는 ‘의지의 파편’입니다.

대답은 아주 간략했다. 그리고 그만큼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의 나열이었다. 태운은 미간을 조금 좁혔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제야 나타난 이유는?”

-의지의 발현자가 죽어 가기 때문입니다. 제 목적은 은신과 발전. 이것을 수행하기 위해 의지의 계승을 필요로 합니다.

“계승이라, 한마디로 내게 기생하겠다.”

-그런 하급 기능이 아닙니다.

“됐다. 그렇게 해서 내가 얻을 이득은?”

태운의 얼굴을 아까보다 조금 더 일그러져 있었다. 기억을 읽어 들여 방법을 찾아보고자 했건만 기억은커녕 이상한 것이 기생하겠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기체든 뭐든 형체가 있다면 잡아 없애겠다만 이건 형체도 찾을 수가 없어 무척 곤란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그때까지 했던 태운의 생각을 싹 다 뒤집어엎었다.

-파편인 제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의지를 표명하신다면 이루어질 겁니다.

그때 저 죽어 가는 존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제가 시현을 되돌려 보냈고 그게 힘들었다고 악을 쓰던 것 말이다. 태운은 저도 모르게 차오르는 희망에 천천히 바라는 바를 털어놨다.

“…날 다른 차원으로 보낼 수도 있나?”

-원하신다면. 하지만 그것을 이룬 뒤엔 제 힘은 거의 다 소진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의심한다거나 이것저것 재 본다거나 하는 건 불필요했다. 어차피 제게 남은 건 이것 하나뿐이었기에. 마침 저것도 차원을 한 번 정도 이동할 힘밖에 없다지 않나.

태운은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그 ‘의지’라는 것에 따라 움직였다. 처음은 겨우 머리만 남은 것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온몸을 채우는 고양감과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단편적인 자식들에 몸이 덜덜 떨려 왔다.

굳게 다물려 있던 입이 슬쩍 벌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커다란 웃음소리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이제 하얗던 공간은 없었다. 그 공간은 이제 흐릿해지며 원래 있던 공간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태운은 실성한 것처럼 웃어 젖히며 이제는 사라져 거의 남지 않은 이가 마지막까지 꿈틀대던 곳에 계속해서 시선을 고정했다.

그 모든 게 우연이 겹치고 겹친 것이었다. 하지만 우연도 세 번이라면 운명이라지 않나.

“그를 끌고 와 줘서 고맙다.”

태운은 여전히 웃는 낯을 하고 마지막 말을 남기듯 작게 중얼거렸다. 비록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좆같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아주 마음에 들었으니까.

이제는 빠르게 움직일 일만 남아 있었다. 태운은 방 한쪽 구석에 자리한 탁자 위에 올려진 작은 종잇조각을 들어 올렸다.

첫 번째는 찾아갈 차원의 흔적이 남은 것. 물건이어도, 감정이어도, 강한 의지여도 좋았다.

[꼭 행복하게 지내야 해. 이제 나 없으니까 몸 좀 아끼고. 다치지 말고.- 사랑하는 제자 태운이에게]

짧은 내용이었지만 충분했다. 태운은 그 종이를 성배라도 되는 양 조심스럽게 손안에 쥐었다가 다시 내려놨다. 그러자 종이가 그 예의 푸른 빛에 휩싸여 사라지기 시작했다.

“제가 갈게요, 거두셨으니 끝까지 책임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일은 예상했던 것만큼 빠르게 이뤄지지 않았다. 두 번째 조건이었던 파편의 힘이 생각보다 더 온전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태운은 또 제 선천지기를 잘라서 사용해야만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몇 개월을 부정적으로 흐르는 정신머리를 붙잡고 기다렸다.

‘그리고 이렇게 만났지.’

태운은 그동안의 일들을 차례차례 더듬었다. 그리고는 제가 그간의 일을 털어놓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시현을 바라보면 처연하게 웃었다.

막상 생각을 해 보니 다 털어놓지는 못할 것 같았다. 당신이 없어져 있는 동안 마교를 깽판 놨다거나 선천지기를 사용해 생명력이 조금 줄었다든가 하는 것들은 특히나 더욱 숨겨야 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겠지만 나쁘게 보일 만한 것들을 다 골라내고 최대한 예쁘게 포장해 털어놓고 싶었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말은 조금의 간격을 가지고 더듬더듬 흘러나왔다.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골라낸다고 하더라도 그 1년여간의 일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간의 사연이 이어지고 중간쯤이 되자 제 머리를 폭 감싸고 작게 떠는 시현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올라가는 입꼬리를 힘겹게 가라앉혀야만 했다.

“너… 그간 얼마나 힘들었던 거야. 대체 내가 뭐라고….”

시현은 말도 안 되는 사연에 울컥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애를 써야 했다. 분명 자신도 헤어짐을 겪고 무척이나 슬펐다. 분명 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아마 끝까지 그 기억을 잊지 못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다 걸고 그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그걸로 둘의 연은 끝이라 생각했고 그 애가 잘 산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고 여겼으니까.

물론 정말 그랬을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그런 안일한 생각을 했다는 거 자체가 시현의 자책감을 툭툭 건드렸다.

“하지만 뭐가 됐든 이렇게 만났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이제 떨어지지 말아요. 네?”

태운의 목소리는 아주 간절했다. 당연히 시현은 그런 태운의 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 그러자….”

“맨날 안 된다는 말만 들어서 그런가… 좋다.”

창밖으론 벌써 해가 떠오르고 있는지 조금씩 빛이 내부로 스며들어 오고 있었다. 시현은 제 품 안에 얌전히 안겨 있는 태운의 머리통을 살살 쓰다듬으며 눈을 빛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까 태운이가 말한 대로 최대한 빨리 일을 마무리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여전히 적아를 확실히 알 수 없는 이들은 사방 천지에 널려 있었다. 그리고 이 단체가 배신자 없이 백 프로 깨끗하단 확신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기존의 방식대로는 길어지는 일정 안에 당연히 변수가 일어날 확률도 커질 것이다.

‘차라리 단단히 준비해 단번에 몰아치는 게 더 나은 선택일 될 수도 있어.’

그래. 이 또한 태운이를 위한 건데 이 애를 아프게 하고 슬프게 만들어 내 맘대로 일을 강행한다면 그것 또한 내 욕심이었다. 태운이는 이제 더 이상 애도 아니고, 자신보다 더 주체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나가는 어른이었다.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꼭 이거 하나만은 당부해야 했다. 시현은 온몸에 힘을 빼고 나른하게 안겨 있는 커다란 덩치를 도닥이며 입을 열었다.

“대신 하나만 약속해. 위험해지면 꼭 도망치기로.”

“응, 그렇게 할게요.”

“…내 말은 내가 위험해도 도망치란 뜻이야.”

그 순간 겨우 풀려 가던 분위기가 조금 경직됐다. 이렇게 될 건 알았지만 차마 물러설 수 없었다. 시현은 얌전히 안겨 있던 태운이 천천히 떨어져 나와 저를 바라보는 눈을 피하지 않고 주시했다.

“스승님.”

“너 능력이 다 굳어 버린댔지.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징조가 나타나니까 미리 알 수도 있다고도 했어. 그러니까 그땐 어떤 상황이든 뭘 하고 있든 그게 느껴지면 넌 후방으로 가. 이게 약속이야.”

어쩐지 결정을 내리면 잘 번복하지 않았던 스승님이 왜 고집을 꺾고 저를 전투의 한가운데로 데려간다는 선택을 이리 쉽게 내렸나 싶었다.

태운은 본능적으로 이 선이 마지노선이란 걸 느꼈다. 저 말에 확실한 답을 해 주고 싶지 않았지만 해야 했다. 어느 때보다 단호한 말투, 그만큼 이 한마디로 여태 얻어 온 걸 다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뭐, 일단은….’

그러니 이제는 납득하고 물러서야 할 때였다. 사실 이 정도만으로 만족스러웠다. 어차피 제 능력이 맛이 가기 전에 아주 빠르게, 전심전력으로 저 모든 걸 지워 버릴 생각이었으니까.

물론 태어날 때부터 넘치던 선천지기가 이제는 꽤나 소모되어 더 이상 사용하면 위험했으나 이제 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찌 됐든 만족스러운 등가교환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태운은 괜히 입술을 쭉 내밀며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는 미동도 없이 저를 빤히 보고 있을 시현의 앞에서 보란 듯이 상심한 척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투박한 손길이 제 머리를 쓰다듬는 게 느껴졌다. 제가 뭘 할 때마다 잘했다고 칭찬해 주던, 순종적인 제자를 향한 그런 손길이었다.

“그런 거 말고요.”

“어?”

태운은 그런 시현의 손을 잡아 내리고선 부끄럽다는 얼굴로 제 입술을 톡톡 쳤다. 그 행동이 알리는 바는 매우 명확했다. 그러자 엄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시현이 멈칫하며 상체를 조금 뒤로 물렸다.

지금이야 저렇게 부끄러운 척을 하고 있지만 그다음부터 어떻게 하는지 제가 가장 잘 알았다. 분명 또 손을 가만두지 못하고 은근히 건들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안 해 주면 절대 저를 놓아 주지 않을 게 분명했고.

“빨리요.”

그때 시현이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길 바라듯 금세 재촉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현은 괜히 급해지는 맘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조금만이다.”

그사이에 벌써 가슴팍과 목덜미는 조금 붉어져 있었다. 시현은 주변에 아무도 없음에도 괜히 눈치를 봤다. 그리곤 얌전히 눈을 내리감고 입술을 내밀고있는 태운의 얼굴을 보다가 그의 집중이 조금 흐트러진 틈을 타서 입술 위로 제 입술을 꾹 붙였다 뗐다.

쪽 소리와 함께 빠르게 몸이 얼굴이 떨어졌지만, 그 순간 태운의 손이 순식간에 움직여 시현의 양 볼을 꽉 붙잡았다. 시현의 손이 그 동작을 막기 위해 반쯤 들어 올려져 있는 찰나였다. 태운은 방어에 실패한 시현에게 예쁘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선 양 볼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시현의 입이 오리처럼 쭉 튀어나왔다. 동시에 미간도 좁아 들었다.

“아! 해 줬잔하! 아무리 글해도 무공을 흐냐!!”

“쑥스러워하시는 거 귀여워요. 근데 제가 조금 급해서.”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입술이 꼭 맞물렸다. 잔뜩 힘을 주고 있던 몸이 점점 흐물흐물하게 풀려 갔다. 태운은 눈을 꾹 감고 있는 시현을 바라보다가 슬금슬금 손을 움직여 티셔츠 끝을 찾았다.

똑똑.

그때 예상치도 못한 인기척이 문가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곧 그 인기척의 범인이 이제 그만 떨어지라는 듯 거침없이 노크를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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