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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87화 (87/146)

#87

시현은 그 찰나의 변화에 천천히 팔짱을 끼고 벽에 등을 기댔다.

“하아… 동업자였습니다. 정확히는 초창기 흑접에서 일하던 이들이었지요. 역용술을 썼기 때문에 제 얼굴을 알 수 없을 터지만 목소리는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 알 겁니다.”

“그리고?”

“…조금 원한을 샀습니다.”

그제야 거슬리던 게 풀렸다. 시현은 작게 손을 까딱이며 새로운 정보를 세워 놨던 계획에 추가했다.

일단 사마윤을 데리고 가야 했기에 기척을 숨겨서 단숨에 침투하는 것은 무리였다.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봐선 이 건물들의 내부는 집기 같은 거 하나 없이 네모난 모양을 하고 있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 그자들이 안에 있는 상태라면 몸을 숨길 수 있대도 스킬 사용을 위해 입을 열자마자 사마윤의 정체를 알아차릴 테다. 그러면 거의 백 퍼센트의 확률로 공격을 받을 테지.

“쯧, 하필 위치를 들켜서. 그냥 다 쓸어야 하나.”

“저도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없을 겁니다.”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 얌전히 손을 잡고 서 있던 태운이 한 발짝 더 바짝 붙어서서는 다정하게 말을 해 왔다. 시현은 그런 태운의 말에 다행이라는 듯 화색을 띠는 사마윤을 보며 탐탁지 않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그래도 힘은 최대한 아끼는 쪽으로 가 보자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뭐든지 스승님이 원하는 대로 될 겁니다.”

조금 민망해진 시현은 턱 끝을 긁적대며 시선을 피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결정에도 저렇게 믿음 어린 투명한 눈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얼굴이 화끈대는 것 같았다.

자박.

그 순간, 작은 기척이 일행이 머물고 있던 건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발걸음은 너무나 불규칙하고 거침없었으며 기운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시현은 오히려 긴장을 풀었다.

쾅쾅-

“배급 시간이야!”

까칠한 말투였지만 나름 밥을 챙겨 주려는 배려였기에 딱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시현과 일행은 잠시 시선을 나눈 뒤 완전히 경계를 풀었다는 듯 안심한 얼굴로 밖을 나섰다.

허술하게 달려 있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이렇게 식량까지 나눠 주시다니 진짜 다행이야….”

“언제 구조될 수 있는 걸까?”

“조금만 참아… 우린 절대 안 죽어.”

작게 속삭이는 소리들이 다 같이 겹치자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안개처럼 바닥에 깔렸다. 뭔가 기묘한 분위기였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지만 왠지 모두에게서 공격받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 같은 게 조금씩 비쳐 보이고 있었다.

눈앞에 위협이 닥치면 보통은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상황을 한없이 부정적으로 보며 지레 절망하는 이들과 이상할 정도로 긍정적이라 어떻게든 자신만은 살 거라는 믿음을 가진 자. 그렇기엔 저런 반응도 대충 이해는 갔다.

시현은 조금 들뜬 채 수다를 떨고 있는 이들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털어 내고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는 다시 한번 시야로 들어오고 있는 목표 지점을 확인했다. 어쨌든 제 목표는 사마윤의 황금 주머니를 큰 힘 들이지 않고 털어 오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대체 언제 저기서 떨어지는 거지? 분명 빈틈이 있을 텐데.’

그자들은 교대하지도 않고 5명이 다 같이 움직였다. 계속 다 함께 들어가 있거나 간혹가다 한 명 정도만이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지금도 배식 때문인지 단 한 명만이 나와서 서 있었다.

“자! 이번에도 캡슐입니다. 두 개씩만 챙겨 드릴 겁니다.”

그때 맨 앞에 있던 남자가 어떠한 봉투를 들어 올리며 낯선 말을 내뱉었다. 그게 익숙한 건지 모여들고 있던 사람들도 군말 없이 줄을 설 뿐이었다. 시현과 일행도 눈치를 보며 줄의 끄트머리에 붙어 섰다.

‘캡슐?’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받을 게 고작 손톱만 한 알약 두 알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딴 걸로 배가 차나 의문이 들었지만 다른 이들은 딱히 불만이 없어 보이니 그 또한 신기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며칠간 꽤 효과를 본 듯했다.

“아저씨. 저거 이상해요.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나 그 신기한 마음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시현은 저를 잡아당기고는 작게 속삭인 미첼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 미첼의 시선은 캡슐을 소중한 것이라는 듯 조심스럽게 들고 오는 남자의 손안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 이런 곳에서 멀쩡한 것을 줄 거라는 생각이 이상한 거였다. 어차피 먹을 생각도 아니었지만, 시현은 다른 일행들에게 저걸 받고서 바로 먹지 말라고 전음을 보내며 주변을 좀 더 유심히 살폈다.

받자마자 급하게 입에 털어 넣는 사람,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떠는 사람들, 도망치듯 건물 안으로 바로 돌아가는 사람 등 여러 유형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만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아주 미세하게 느껴지는 위화감이 자꾸 시현의 신경을 툭툭 건드렸다.

“근데 그거 들었어? 로지가 이곳을 떠났다는데?”

“뭐 그럴 수도 있지. 그 얘긴 하지 말자.”

“아, 그렇지….”

때마침 앞에 서 있던 이들의 대화 소리가 조금 잦아들며 순간적으로 시현의 주의를 강하게 끌었다. 딱히 별다른 얘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머릿속에 짧은 대화가 틀어박혔다.

‘이상한데.’

들어오면서 느낀 위화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또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의 모든 말 기저에는 모두가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는 거였다.

이자들이 다 원래부터 일행은 아니었을 텐데 고작 며칠 사이에 이런 정보를 공유한다는 게 조금 의아했다. 그것도 수백 명이 말이다. 전우애라고 하기에도 대부분이 일반인이라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았을 텐데 이렇게 단단히 결속된 느낌을 풍긴다니. 시현은 아직 뭐가 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 받아 가. 오늘은 이게 끝이야.”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배식 또한 시현이 무언가를 알아보기도 전에 끝났고 결국 다른 사람들처럼 알약을 소중한 척 들고 줄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쿠우웅!

그때 벽을 때리는 듯한 아주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가 자신이라는 듯 눈앞으로 예의 그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제물을 바치세요!- 이 공간을 만족시키려면 생명력이 필요합니다. 근처의 인간들을 죽이고 생명력을 채우세요(30032/100000).]

[수급이 원활하지 못합니다. 경고가 시작됩니다!]

퀘스트창은 처음과 다름이 없었지만 딱 하나가 달랐다, 채우라고 했던 숫자가 말도 안 되게 올라가 있던 것이었다.

‘…30000? 미친, 뭐지? 왜 그사이에 이렇게.’

우우웅. 우웅

그러나 시현이 바뀐 숫자에 더 놀라기도 전에 둔탁한 파열음이 일정 간격을 가지고 울리기 시작했다. 쿵쿵거리는 소리는 아무래도 진법을 부수기 위해 몬스터들이 달려들면서 내는 소음 같았다. 그것을 깨달았는지 사마윤은 후다닥 달려와 시현의 뒤에 붙어섰다. 물론 태운에게 눈빛과 전음으로 욕을 한바탕 얻어먹고 한 발짝 떨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하정도 옆에 있던 미첼의 손을 꼭 잡고 끌어당겨 경계를 높였다.

이 와중에도 시현은 이 공간의 위화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람들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하고 조금 두려워했지만 패닉에 빠진 정도는 아니었다. 마치 이 보호막이 무척이나 튼튼하다는 걸 알고 부서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긍정적인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거는 마치 나사라도 하나 빠진 듯한 반응이 아닌가.

‘분명 이건 그렇게 엄청 강력한 진법은 아니었어…. 근데 왜지? 그냥 무턱대고 이게 지켜 줄 거라 믿는 건가?’

내부의 기척을 숨겨 주는 기능이 있는데도 무언갈 안다는 듯 저렇게 때려 대는 걸 보면 몬스터들의 목적도 뚜렷해 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귀와 시체 쥐 수백 마리가 두어 번 덤비면 금세 뚫릴 것 같은 진법이었다.

그러니까 딱히 엄청나게 강력한 보호막은 아니었단 뜻이었다. 시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감싸고 있는 진법의 흔적을 다시 한번 훑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별다른 이상한 점을 찾을 순 없었다.

쾅!

다시 한번 강력한 진동이 느껴질 정도의 소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는 이어서 자잘하게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러는데도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당연히 이곳을 지휘하고 있던 그 5명이 나설 거라 생각했는데 그들 또한 지내는 건물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배식을 위해 몰려 있던 사람들도 그것에 불평불만 하나 없이 뿔뿔이 흩어져 본인들이 임시로 지내고 있던 건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실 공격이 시작될 때 쉽게 침투할 만한 틈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찰나 나긴 했었다. 그렇지만 저들이 정말로 끝까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자 시현은 일행들을 데리고 다시 지내던 건물로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여기 진짜 좀 이상한데? 다들 왜 이렇게 안정적이지?”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지 하정도 이곳의 이상한 점에 대해 조금씩 늘어놓고 있었다. 시현은 그에 동의를 표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다른 일행들의 반응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뿐만 아니야. 아까 미첼이 이거 이상하다고 했거든? 더 자세히 알려 줄 수 있어?”

“보상….”

“뭐?”

“이거 무언가에 대한 보상이에요. 그리고 제가 보통 알고 있던 아이템들과도 뭔가 달라요.”

시현은 순간적으로 성안을 펼쳐 하얀색으로 된 캡슐을 바라봤다.

[포만감 캡슐(-) 포만감을 일정 수치만큼 채운다. 아무런 맛이 없다.]

그러나 미첼이 알려 준 정보는 따라오지 않았다. 어떻게 습득했다든가 하는 것은 없고 늘 그랬듯 아주 1차원적인 정보만이 적혀서 나올 뿐이었다.

‘거짓일 확률은 낮아. 그렇다면 진짜 무언가를 통한 보상으로 받은 게 맞다는 건데. 보상….’

그 순간 무언가 더러운 기분이 머릿속을 찰나 훑고 사라졌다. 그리고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지나가듯 떠올랐던 안내창 하나가 떠올랐다.

“아….”

“왜 뭐 떠오르는 거 있어?”

시현은 제 반응에 득달같이 반응하며 반문해 오는 하정의 물음에도 잠시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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