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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85화 (85/146)

#85

사마윤이 그 아지트의 위치를 아직 확신하고 있었으니 털린 건 아닐 테고 우연치 않게 그 근처를 누군가 먼저 선점한 자가 있는 거 같았다.

‘강한 건 아니지만 꽤 복잡한 진법이야. 저렇게 기척도 새어 나오지 않을 정도면 완전히 숨고 버티겠다는 의사일 거고….’

진법 펼치는 법을 딱히 제대로 습득한 건 아니었다 보니 이런 낯선 진법을 파훼하는 데에 자신도 없었고 그렇다고 저 안으로 들어갔을 때의 상황을 확신할 수도 없었다. 비록 신교 앞에 깔린 그런 진법만큼은 물론 아니겠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 무턱대고 들어간다는 건 혼자도 아니고 역시나 조금 망설여졌다.

그때, 마치 맞추기라도 한 듯 세 명 정도의 인원이 진법을 뚫고 걸어 나왔다.

시현은 빠르게 기척을 죽이고 일행들에게 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요동치던 분위기가 훅 꺼지듯 가라앉았다. 짧게 저들의 전력을 파악했을 땐 이곳이 들킬 확률은 없었지만 어떤 기상천외한 스킬이 있을지 몰랐기에 조심해야 했다.

“시발, 맨날 우리만 일하냐.”

“어쩔 수 없잖아. 저 새끼들 뭔가 수틀리면 우리라도 죽일 기세라고.”

“하 씨. 왜 사람들을 찾아오라는 거야. 무서워 죽겠네. 빨리 돌아보고 가자.”

저들은 헌터인지 나름 마나 같은 걸 몸 안에 지니고 있는 것 같았지만 다행히 대단한 능력을 갖춘 자들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현은 경계를 멈추지 않고 짧게 이어졌던 대화에서 작은 단서를 끄집어냈다.

‘이상한 놈들이라고 했으니 평범한 헌터는 아닐 거고 여러 명이 지휘 체계를 휘어잡고 있는 것 같은데. 그리고 우리만이라 했으니 아래로 다른 사람들도 꽤나 있단 얘길 테고….’

아무래도 꽤 큰 인원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왜 사람들을 모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 예상되는 부분은 있었다.

어떻게 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사람이 많으면 생존 확률을 높일 순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대단한 탐색 능력을 갖춘 자가 있다면 사마윤의 스킬을 파악했을 수도 있을 테고.

“일단 저 진법 안에서 세 명 정도가 나왔어. 사람들을 찾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할래.”

시현은 마음속으로는 들어가겠다고 결정을 마치긴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맘에 의견을 물었다.

“뭐가 됐든 들어는 가 봐야지.”

“빨리, 늦기 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에 성격 급한 하정은 빨리 움직이길 원했고 이중 가장 아지트가 간절할 사마윤도 득달같이 찬성을 해 왔다. 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쟤네들을 잡아 올 테니.”

“뭐? 혼자? 그건 좀 위험하지 않겠어? 태운 씨랑 같이 가.”

그러나 하정은 시현이 혼자 움직이겠다고 하자 미간을 찌푸리며 은근히 반대를 표출했다. 물론 시현은 절대 들어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태운을 저기로 같이 데리고 가라니 절대 안 될 말이었다. 대신 화력이 강력한 하정의 곁에 태운을 두고 싶었다.

“스승님….”

안 그래도 말을 꺼내자마자 태운의 얼굴빛이 어두워져 엄청나게 신경이 쓰이는 중이었다. 맘 같아선 놔두고 가고 싶진 않았지만, 저 애를 데리고 여포처럼 무턱대고 저 안으로 쳐들어갈 수도 없었고 딱 봐도 쉬운 방법이 있는데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아니야… 일단 나 혼자 빨리 갔다 오는 게 편할 것 같아. 하정아, 부탁 좀 할게.”

평소처럼 태운이 아니라 하정에게 일행을 부탁한다는 말이 조금 이상해 보였겠지만 다들 긴장을 하고 있는지 딱히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시현은 다시 한번 진법에서 튀어나온 이들을 확인했다.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최대한 조용히 몸 숨기고 있어.”

시현은 다시 한번 일행에게 단호하게 말을 건네고 둔탁한 철검을 하정에게 건넨 뒤 기척을 죽인 채 저들의 뒤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현은 미로같이 뻗어 있는 골목을 가로지르며 세 명이 움직이는 방향 뒤쪽에 소리 없이 멈추어 섰다.

“대충 돌아보고 가자. 나머지는 뒤에 팀이 알아서 하겠지.”

“하, 근데 식량이….”

“후우… 씨발. 그 식량에 우리 것도 있을 텐데. 억울해 미치겠네.”

잠시 몸을 숨기고 엿들은 대화는 하기 싫은 일을 도맡은 직장인들의 전형적인 수다 같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충 내부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일단, 빌런 연합은 아니겠고….’

설령 빌런 연합이라고 하더라도 제가 찾던 수뇌부들은 아닐 거란 확신이 들었다.

저곳을 점거하고 있는 자들이 제일 껄끄러운 적인 빌런 연합의 사이비 새끼들이 아니라는 걸 알자 시현은 굳이 전투하지 않기로 완전히 결정을 내렸다. 저 진법을 푸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몰랐고 언제 또 그 개 같은 ‘경고’가 나타날지 모르니 시간과 내공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했다.

‘일단 이들을 따라서 들어가 볼까.’

결론이 나자 발걸음엔 거침이 없었다. 시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수상해 보이지 않도록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일부러 낸 작은 발소리가 고요한 복도를 타고 울려 퍼졌다. 조금만 가까워지면 이 소리를 저들도 들을 수 있을 거다. 시현은 다시 한번 보폭을 불규칙하게 바꾸고 일반인처럼, 조심하며 주변을 경계하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빨리 좀 와라.’

저들은 제대로 농땡이를 피우려고 마음을 먹었는지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시현은 그마저도 조금 답답해 그들의 움직임을 보며 속으로 재촉했다. 그 순간 세 명이 멈칫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서는 게 느껴졌다. 시현은 한쪽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내리고선 헤매는 척 그쪽으로 더 천천히 걸어 나갔다.

잠시 후 저들이 멈춰선 지점에서 세 갈래로 갈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아예 멍청이들은 아니군.’

시현의 상태는 여전히 겁에 질린 일반인 같은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우쭐대며 앞에서 나타나는 게 아니라 경계하듯 사방에서 조여든다는 건 그나마 상황을 파악할 머리는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시현은 조금 더 초조한 모양새로 움직이며 주변을 수색하는 척을 했다.

타닥.

웬만한 사람이라면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발소리였다. 시현은 아주 가까이서 들리는 발소리를 모른 척했다.

“멈춰라.”

그 순간 목 옆으로 금속성의 서늘함이 느껴졌다.

“누, 누구세요?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봐주십쇼!”

시현은 주변에서 가장 비굴한 사마윤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의 말투를 모사했다. 이 와중에도 조금 웃음이 나올 뻔한 걸 애써 참아야만 했다.

“이 마당에 혼자일 리는 없고 일행이 있겠지. 당장 앞장서라.”

“제발 살려 주세요! 대체 왜, 왜 그러시는 건지!”

“죽이려고 하는 거 아니니까 당장 말해.”

계속해서 대화가 이어졌다. 시현이 덜덜 떨면서도 계속 일행의 위치를 말하지 않고 머뭇거리자 이들도 슬슬 열이 받아 가는 것 같았다. 한 명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럼에도 답답하다는 듯 칼등으로 어깨나 등을 쿡쿡 찌르기만 하지 살의는 전혀 내보이지 않고 있었다.

“저, 정말 죽이지 않으실 거죠…?”

“아, 그렇다니까! 너네한테 오히려 좋으면 좋았지, 나쁜 것도 없다고!”

“예, 예….”

좋다라….

시현은 고개를 푹 숙이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행 모두에게 전음을 날렸다.

{모두 놀란 척하고 저한테 장단 맞추세요.}

답변은 듣지 못했지만, 곧 일행들의 연기력을 확인할 시간이 가까워져 왔다.

“시현아!”

코너를 돌자마자 하정이 멈칫하더니 시현과 남자 셋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시현은 보통 야라고 불리던 호칭이 몰라보게 다정해지자 어색해서 슬쩍 팔뚝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러나 일이 잘 풀릴 거라 생각한게 무색하게도 제 등 뒤에 손을 대고 있던 남자가 다시 경계를 끌어 올렸다.

“뭐야, 빨간 머리? 헌터가 있었잖아.”

그들은 너무나 비굴했던 시현의 태도에 헌터가 일행으로 있을지 예상하지 못한 듯 조금 당황한 상태인 것 같았다.

‘아.’

시현 또한 머리카락 색까지 생각하지 못했기에 순간적으로 잘만 나오던 말이 입 안에서 콱 막혔다. 그러나 아주 찰나의 침묵을 가르고 하정이 흐릿하게 미소 지으며 당연하단 듯 대답을 해 왔다.

“아… 맞습니다. 근데 D급이라서….”

순간 남자 셋이 의미심장하게 시선을 나누었다. 그 모습을 기민하게 알아차린 시현은 다시 연기를 재개했다.

“저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대. 우리도 데려가 주신다고 하셨어. 금방 안전해질 수 있을 거야. 우린 이제 살았어!”

“진짜?!”

소식을 들은 일행은 잔뜩 경계하는 듯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얼굴을 꾸며 내며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긍정의 표시를 해 왔다. 시현의 비굴한 연기가 잘 통한 건지 그들도 일행의 작은 표정 변화에 딱히 관심이 없어 보였다. 시현은 작게 숨을 내쉬고 다시 전음을 보냈다.

{머리까진 생각 못 했다. 미안.}

하정은 딱히 전음처럼 음성을 전달할 수 있는 스킬을 가진 게 아닌지 따로 답을 해 오진 않았지만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시현은 제 실수에 속으로 혀를 찼다. 하마터면 쉽게 들어갈 방법이 다 틀어질 뻔했다.

{들어가기 전까지 알아낸 거 공유할 테니 각자 머릿속에 잘 기억해 두는 걸로 합시다.}

그래도 대충 일이 풀린 듯 남자들이 일행을 인도하려 했다. 이제 저 진법 안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어차피 사마윤의 창고만 털어 온다면 여기에서 볼일은 끝이었다. 시현은 저들의 말을 통해 추측해 놨던 걸 일행들 머리로 속으로 전달하며 천천히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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