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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84화 (84/146)

#84

“잠깐.”

그리고 그 이상을 눈치챘다는 듯 심각한 시현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태운은 덜컥 멈춰서서 제 어깨를 짚는 손의 감각을 느꼈다. 언제 한번 이렇게 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고 하필 게이트 안이었다. 순간 입이 빠짝 마르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연태운, 너 왜 그래?”

“….”

태운은 갑자기 드는 오한을 꾹 참고 천천히 시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내공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기에 모른 척도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자신은 방금 시현이 제 등 뒤로 다가오던 것도 두어 걸음 안에 들어와서야 깨달았을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이딴 상태를 당장 모른 척 숨겨 봤자 얼마 가지 않을 테다.

‘그런데 이런 것도 꽤 나쁘지 않지 않나, 이런 내가 미친 걸까.’

저보다 조금은 낮은 곳에서 올려다보는 갈색빛 눈. 그 안엔 저를 향한 걱정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오로지 저를 향하는 시현의 모습에 손이 끝이 저릿했다.

태운은 제가 쓸모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 두려웠지만 그동안 두렵다고 미루어 온 것들이 얼마나 헛것이었나를 최근에 깨달았기에 조금 용기를 냈다.

붉게 물든 입술이 잠시간의 간격을 가지고 열렸다.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시현은 일행들을 그대로 둔 채 조금 거리를 두고 걸어 나왔다. 뭔가 조금 처연해 보이는 태운의 표정 때문에 자리를 옮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해 봐.”

“제게 있던 모든 기운이 사라졌습니다.”

예쁜 입에서 튀어나온 상황은 예상치도 못한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태운의 기운이 사라진 순간, 시현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기겁해서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런 와중에도 공격받은 건가 했지 아예 내공이나 능력치를 잃었을 거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절로 말문이 막혔다.

“…언제부터?”

“이런 일이 생긴 건 조금 됐습니다. 처음은 아닙니다.”

이게 처음이 아니라니.

시현은 여태 이 애의 이런 상태를 눈치를 채지 못한 것에 크나큰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건 조금 다치고 말고 한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 태운의 몸은 조금 수련한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쉽게 목숨이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거다. 순간 피가 싹 식어 내리는 것 같았다.

“해결할 방법은?”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대충 단서는 찾았단 얘기네?”

머리가 팽팽 돌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 머뭇거리는 태운의 말에서 작은 단서가 보였다. 늦게 알았다곤 하지만 이렇게 알게 된 이상 그냥 놔둘 순 없었다.

“연합. 아무래도 그들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그걸 왜 말 안 했어?”

“어차피 목표는 같았고… 무엇보다, 필요 없다고 두고 가실까 두려웠습니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시현의 귓가에 아주 또렷하게 들려왔다. 시현은 순간 핑 도는 머릿속에 고개를 푹 숙였다가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고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내가 널 두고 어딜 가.”

“…이젠 압니다. 두고 가지 않을 거라는 거.”

무언가 울컥하고 목구멍을 타고 치밀어 올랐다.

시현은 이것을 내뱉고 싶었다. 그러나 가느다란 관에 틀어박힌 것은 입까지 튀어나오지 못하고 막혀 버려 저를 답답하고 애타게 했다. 분노 같기도, 또는 슬픔 같기도 했지만, 정확히는 그것들과는 무언가 달랐다.

“음, 스승님. 이젠 진짜 아픈데요.”

그때 태운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제 양 손목으로 시선을 내렸다. 시현이 저도 모르게 조금 세게 움켜쥔 곳이었다. 그곳은 눈에 띌 정도로 푸릇하게 멍이 들어 있는 상태였다.

“미친. 괜찮아??”

시현은 소스라치게 놀라고선 아연한 얼굴을 한 채 푸른 멍 자국을 봤다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태운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멍한 얼굴은 지금 이 상황을 빠릿빠릿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에 차 있다는 걸 알려 왔다.

그런 모습을 재밌다는 듯 보던 태운은 조금 더 짙게 웃고는 고장 난 것처럼 움직이는 시현의 몸을 꽉 껴안았다. 시현은 습관처럼 움찔했지만 차마 태운을 밀어 내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스승님. 밀쳐 내면 저 뼈가 부러질지도 몰라요. 그럼 무척 고통스러워하겠죠.”

“…알아. 안 밀어 낼 거야….”

시현의 목소리는 조금의 체념과 안타까움, 그리고 다정함을 담고 있었다. 태운은 조금 더 그를 꽉 껴안더니 은은하게 붉은빛이 올라온 목덜미에 얼굴을 슬쩍 비비고 기분 좋게 웃었다.

제 선택은 늘 옳았다. 비록 타이밍이 늦더라도 늘 좋은 결과를 가지고 왔기에 태운은 이번에도 솔직하게 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저 추워요.”

“많이 추워?”

시현은 제게 코알라처럼 몸을 꾸겨 안긴 태운이 춥다고 하자마자 반사적으로 양팔을 들어 올려 살살 껴안았다.

이 애는 아이였을 때도 이렇게 약하지 않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기본적으로 성인 한 명 정도는 이길 힘이 있었단 뜻이었다. 그러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손끝만 스쳐도 터질 그것같이 불안정해 보였다. 이런 상태는 시현에게도 처음이라 선뜻 손을 대기가 무서웠다.

“이젠 허리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그때 태운이 미간을 슬쩍 좁히며 작게 속삭였다. 시현은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생각할 겨를 도 없이 태운의 허리 부근이 베이거나 삔 건 아닌가 급하게 허리춤을 조심스럽게 더듬으며 확인했다.

“…여기? 아니면 여기?”

“아, 가슴팍이 아픈가.”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시현은 손을 올리려다가 덜컥 멈춰서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는 제게 꼭 달라붙어 있는 태운을 곁눈질로 노려보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너… 꾀병이지.”

“스승님 눈치가 빨라지셨네요.”

“이게 진짜.”

“아야.”

시현은 이 와중에도 그러고 싶냐 면박을 주며 밀어 내려 했지만 금세 고통을 호소하는 태운에 다시 또 멈춰 서야 했다. 그것은 거의 마법의 단어 같았다. 태운이 조금만 엄살을 부리면 마치 정지버튼이라도 누른 듯 시현이 행동이 덜컥 멈추었다.

“하아….”

그냥 에라 모르겠다 싶었다. 시현은 허탈하게 웃음을 흘리며 그렇게 태운을 안아 줄 수밖에 없었다.

“아, 이것들 대체 어디 간 거야?”

아직 그렇게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건만 멀리에서 하정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시현은 당장이라도 찾아 나서려고 하는 하정의 기세에 번뜩 정신을 차리고 태운을 손쉽게 떨어트렸다.

“너 이제 내 옆에 바짝 붙어 있어. 알았지?”

“그럴게요.”

시현은 제가 붙잡은 곳이 또 멍이 들진 않았을까 조심조심 살펴보고는 빠르게 발을 옮겼다. 그리고는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 답답해져 가는 표정을 숨기고 마른침을 삼켰다.

현재 비전투 인원은 둘, 하정은 그 아귀 때문에 제대로 온전한 힘을 쓸 수 없었고, 태운마저 힘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땐 금방 다시 돌아온다곤 했지만, 체감상 십여 분이 지났는데도 이런 상태라는 건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차라리 아이템을 습득하기로 하고 움직인 게 다행인가.’

시현은 주변으로 기감을 펼쳐 상황을 확인하곤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발을 옮겼다. 지금도 멀리에서 생명 반응이 간헐적으로 사라지고 있었기에 벌써 걱정만 하며 멈춰 있을 순 없었다.

일행과 다시 합류한 후, 시현은 자신이 앞장서는 걸로 하며 일행의 순서를 바꾸었다. 핑계는 하정이 맨 뒤에 서 있어야 스킬을 써도 그림자가 앞에서 생겨 전투에 수월하다는 것이었다. 시현은 이 어설픈 핑계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주는 일행에 약한 죄책감을 느끼며 내기를 끌어 올렸다.

붉은 내기가 둘러싸인 철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자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 세 개가 소음을 내며 단숨에 부서져 내렸다.

“이제 이쪽으로 직진하면 된다는 거지?”

“예, 맞습니다! 아마 쭉 가시다 보면 스킬의 기운이 느껴지실 겁니다.”

시현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화색을 띠어 가는 사마윤의 얼굴을 보고는 아주 가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태운을 살폈다.

물론 이 애의 상태를 공유하며 천천히 움직일 수야 있겠지만 현재 이 그룹은 하정 말고는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런 이들에게 제 약점이나 다름없는 태운의 상태를 털어놓을 순 없었다.

시현은 제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태운의 손을 잡고 내기를 흘려보냈다. 그러나 그 내기는 마치 그물을 통과하듯 손쉽게 빠져나가 허공에서 흩어지고 말았다. 시현은 저도 모르게 어두워지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안에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밖에서도 안에서도 저걸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마치 환상 같잖아.’

그러나 태운은 그 와중에도 뭐가 좋다고 시현의 손을 더 세게 잡으면서 슬쩍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현은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운 부정적인 생각을 밀어 내고 마주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뭘 웃어.”

“좋아서 그렇지요.”

괜히 민망해진 시현은 반 장난, 반 핀잔의 의미를 담아 말을 꺼냈지만 돌아오는 순한 대답에 결국 한쪽 눈을 찡그렸다. 괜히 심장이 울렁거리고 닿아 있는 손이 간지러웠다.

그렇게 큰 문제 없이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는 골목길을 움직이고 있던 것도 잠시 저 앞으로 너무도 익숙한 느낌의 기운이 느껴졌다.

‘진법?’

시현은 손을 들어 올려 일행을 멈춰 세웠다.

“잠깐, 네가 말한 스킬의 기운이라는 게 저 진법을 말한 건가?”

“예? 진법이요?”

이 길을 따라 직선으로 향하면 그 스킬로 만든 아지트라는 곳이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그쪽으로 향하는 곳에 있는 진법을 사마윤은 처음 들어 본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또 다른 변수를 뜻했다. 시현은 급히 등 뒤에 걸어 둔 검을 쥐어 잡았다.

“저 앞에 진법이 펼쳐져 있는데.”

“그럴 리가…!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어, 어떡하죠?”

시현은 작게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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