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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77화 (77/146)

#77

시현은 지금 예상치 못한 상황에 깊은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살수를 펼쳤지만 결국 최후의 한 수를 거두고 질문을 던졌다.

“지, 진짜, 진짜 혈천마검!!!”

그러나 젊은 남자는 제가 한 질문에 대답은커녕 저 듣기 싫은 별호를 다시 한번 읊어 대고 있었다.

씨발. 그놈의 오글거리는 칭호는 당장 집어치우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시현은 동요하지 않는 척을 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남자는 연신 바짝 말라 가는 입 안에도 꼴딱꼴딱 침을 삼키며 다가오는 시현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동시에 그 소름 돋았던 1년간의 기억을 떠올렸다. 정보 처리를 배우기 위해 미친 듯이 굴러야 했던 제 처지와 그리고 제가 속한 단체에서 암암리에 퍼져 있던 그 소문들을 말이다.

‘그, 그럼 뒤에 저자가. 천마!’

만약 그게 맞다면 제게는 이제 어떠한 방법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처, 천마천세 만마앙복!!!”

납작 엎드려서 자비를 바랄 수밖에.

“하아….”

시현은 일의 앞뒤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내기도 전에 쏟아지는 수치심 폭격에 정말 기절해 죽고 싶었다.

“입 좀… 다물어.”

“예, 옙!”

“스승님, 수상한 자입니다. 죽일까요?”

“너도 가만히 있어 봐….”

머리가 아파져 왔다. 그리고 지금 이 모든 상황을 의아하단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하정도 문제였다. 자신은 복잡하게 꼬인 걸 풀어 보려 정보를 찾으러 온 거지 복잡한 일을 더 공고하게 쌓아 올리려고 온 게 아니었다.

고작 작은 규모의 전투 정도만 상상해 봤지 제 과거를 아는 사람을 만난다니, 상상도 못 해 본 일이었다. 시현은 결국 뒤에 있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서 이마를 감싸 쥘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네가 사마윤이었다?”

처음의 기 싸움은 온데간데없이 입장이 바뀌고 말았다. 터질 듯 긴장감이 가득 차 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시현은 소파에 앉아 흑접의 주인이라는 남자가 바닥에 냅다 엎드려 있는 걸 보고 있었다.

땅에 머리를 박고 있던 사마윤은 눈앞의 푹신한 카펫을 노려보며 대체 왜 이 재앙들을 제 앞으로 보낸 건가 량차오샤에게 원망과 분노를 쏟아 냈다. 초반부터 좋은 맘으로 거래를 해 오긴 했지만, 그것도 끝이라며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아 댔다.

“예, 예….”

먼발치에서 혈천마검을 한번 본 적이 있었다. 지금과는 꽤 다른 인상이라 단번에 알아차리진 못했지만, 쉬이 잊힐 만한 얼굴은 아니기에 저도 모르게 이름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자가 저와 같이 드림워크를 겪은 사람이라니 예측이나 할 수 있었겠나. 지금도 이 모든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걸 다 제치고 일단 지금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네가 흑접을 만든 장본인이고….”

“눈을 떠 보니 헌터가 되어 있었고 정보를 관리하는 스킬이 생겼습죠… 헤헤.”

“말단 녀석이 횡재했군.”

윤은 말단이 아니라 그 마뇌 사마천의 후계자라는, 어마어마한 위치였다고 정정해 주고 싶은 걸 꾸욱 참고 멍청하게 웃어 보였다.

그곳에서 저자의 눈 밖에 난 자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제가 꿈을 꾸게 된 시기는 이미 전쟁이 끝날 때쯤이였고 저자가 얼마간 그곳에 있었는지는 몰랐지만 떠도는 소문의 절반만 믿는다고 하더라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웠다. 그리고 자신은 이 호화스러운 생활을 두고 죽고 싶은 맘은 한 톨도 없었다.

“그, 그렇습죠.”

사마윤은 바짝 몸을 움츠리면서 비굴하게 웃음을 흘려 댔다.

시현은 조금의 반항도 없이 흘러나오는 사실에 이마를 쥐어 잡았다.

저자가 말한 이름을 듣고 단번에 왜 저런 능력이 생겼는지 눈치챘다. 마교에는 천마 아래로 여러 단체가 있었지만 그중 유일하게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단체가 하나 있었다. 바로 마뇌 사마천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보를 수집하고 전략을 만드는 단체였다.

군사의 역할을 하는 그 단체는 제갈가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정보 처리와 꾐에 아주 능한 단체였다. 그리고 그 사마천은 시현과 태운의 계획을 꽤 적극적으로 돕던 사내였고.

그럼에도 시현은 사마윤이라는 이름을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거짓말? 그렇다기엔 저 모든 걸 알고 있을 리가 없어. 게다가 내 머릿속을 파헤쳐서 알아냈다기엔 내게 온 영향도 없고….’

“야, 뭔데. 나도 좀 설명을 해 줘야겠는데.”

그때 얌전히 흘러가던 상황을 보고 있던 하정이 팔짱을 끼면서 불만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동안 시현이 왠지 사정을 회피하는 듯해 자세히 물어보진 않았지만 지금 이건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그 흑접이었다. 그런데 오자마자 공격을 퍼붓더니 사실은 아는 사이였다? 이게 무슨 영화도 아니고 선뜻 이해가 안 갔다.

“아…. 하아.”

풀어야 할 문제가 사방으로 쌓여 시현은 결국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

“일단, 나는 드림 워커야. 뭐, 태운이도.”

“알아, 그 정도야 대충 예상했으니까.”

“그래 그리고…. 아무래도 저 남자와 우리가 같은 꿈을 꾼 것 같아.”

시현은 제가 내뱉고도 이해할 수가 없어 말끝이 흐려졌다.

저는 게임을 하려다 그 안에 빨려들어 갔다 왔고, 다른 이들이 꿈을 꾼 것과는 다르게 아예 몸까지 사라져 그곳에 있다가 왔다. 그런데 드림 워커인 사마윤과 같은 곳에 있었다고?

이게 말이 되나?

시현은 지금의 상황이 참 기묘하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그중 가장 이상한 존재인 태운을 흘깃 보다가 조금씩 고개를 들려는 의아함에 눈을 꾹 감았다 떴다.

“흐음…. 일단 그게 아예 없는 일은 아니야.”

“뭐?”

그때 하정이 생각보다 침착한 상태로 의외의 말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알려진 건 총 세 건. 전 세계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긴 했지만 같은 곳에 대해 꿈을 꾼 자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꽤나 화제가 되기도 했었고.

시현은 사실 같은 꿈을 꾸었다 정도가 아니라 더 복잡한 상황이란 걸 알았지만, 하정이 대충 이해하고 넘어간 듯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셋이나 있었다는 건 나도 처음 보는 거지만. 사실 우리가 이 사태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얼마나 되겠어. 10퍼센트도 안 될 거 아니야. 뭐 그래도 잘된 거 아니야?”

“잘됐다니?”

“저 사람 말이야. 네 아랫사람이었다며. 능력도 한참 아래고.”

그 순간 시현의 머릿속에 깨달음이 탁 켜졌다.

“아, 그러네. 잘됐군. 너 빌런 연합에 대해 아는 걸 다 털어놔라.”

“예… 네?”

“귓구멍이 막혔나? 뚫어 주랴?”

물론 하정은 그걸 휘둘러서 협박하라는 거라기보단 좋게 잘 의논을 해 보라는 의도였지만 시현은 다시 슥 손을 올렸다. 일종의 습관이었지만 사실 마교인들이 대부분 실력을 보여 주기 전까지는 늘 박박 기어올랐기에 어쩔 수 없이 생긴 습관이기도 했다.

당연히 사마윤은 저를 빤히 보는 시현의 얼굴에 급히 양 귀를 틀어막았다가 덜덜 떨면서 손을 가지런히 내렸다. 귀가 아니라 머리까지 뚫어 버리겠다는 협박처럼 들렸다.

“이, 이 스킬이 다 좋은데… 제가 눈과 귀를 뿌린 곳이 아니면 정보를 잘 수집할 수 없습니다….”

“자세하게 설명해 봐.”

사마윤의 능력은 조금 특이했는데 제 눈과 귀의 모형을 만들어 일정 범위에 심어 둘 수가 있었다. 현재의 정보뿐 아니라 일정 기간 전에 있었던 과거의 정보들도 비확정적으로 긁어낼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예측은 그 과거와 현재의 수많은 정보를 취합하여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러니 제게는 대단한 정보가 달리 없었다. 시현이 말하는 ‘빌런 연합에 대한 모든 것’은 지금 깡패짓하고 다니는 말단들이 아니라 핵심 인력들에 대한 동향을 묻는 것일 테니. 사마윤은 능력을 부풀리기보단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택했다.

“쯧. 하긴 이렇게 쉽게 잡힐 리는 없겠지.”

시현은 그런 사마윤의 대답에 작게 미간을 구겼다. 중요한 실마리가 눈앞에 다가왔다가 아스라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스승님, 그렇다면 더 볼일이 있겠습니다. 후환을 위해 제거하시죠.”

그때 뒤에 얌전히 앉아 있던 태운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사마윤이 가뜩이나 커다란 눈을 자칫하면 굴러떨어질 정도로 부릅뜨고는 냅다 이마를 쿵 바닥에 내리찧으며 엎드렸다.

“교, 교주님! 비록 제가 긴 시간은 아니나 아래에서 열심히 교주님을 받들며 일하던 교도였습니다! 제발 자비를!!”

그리고는 마교의 가장 정점이라고 하는 천마 태운이 아니라 시현에게 엉금엉금 다가가 잔뜩 불쌍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들이밀었다.

언제 한번 들은 적이 있었다. 천마님과 엮이면 무조건 그 스승인 혈천마검의 마음부터 사야 한다고. 사마윤은 그때에도 제 안위를 위해 마교안의 소문과 유명한 마인들의 리스트를 꼼꼼하게 모아 두고 정리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제 판단을 구명줄처럼 붙잡으며 열심히 빌기 시작했다.

“아니….”

“혈천, 아니! 그, 선생님! 제가 늘 공경하고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그 걸음 하나에 천지가 경천동지하고, 괴로워하니 이 어찌,”

그러나 아무래도 사마윤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았다. 순간 시현의 귀가 벌게지더니 얼굴이 급속도로 구겨지고 태운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 그리고! 워낙 능력도 출중하시고….”

사마윤은 이제 제 피부로도 느껴지는 따끔한 기세에 눈물을 머금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최, 최고의 한 쌍! 두 분이라면 이 세상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을 것입니다!”

이곳은 산이 아닌데도 마치 메아리가 치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고요했다는 말이었다.

“스승님, 이 정도로 하는데 일단 살려 둘까요? 한번 써먹을 순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 시현의 옆에 서서 당장이라도 저 목을 뚫어 버릴까 고민하던 태운이 보기 좋게 붉어진 시현의 귓바퀴를 쓸어내리고 방긋 웃었다.

“야.”

시현은 감지하지도 못한 움직임에 감촉을 느끼자마자 옆으로 한 발 떨어졌다. 그리고는 울컥해서 한마디 하려 입을 열었다.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그러나 태운이 냉큼 모른 척을 하며 울적한 얼굴로 눈을 내리깐 채 상심했다는 티를 팍팍 내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저, 저….

대체 제가 여태 알아 왔던 연태운은 누구였던 건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니, 원래도 애교가 많긴 했지만 이건 좀 다르지 않나. 가뜩이나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이었다.

시현은 순간 떠올리기도 힘든 그 기억이 튀어나오자 급급하게 이어 가려던 생각을 잘라 내고 고개를 다시 홱 돌려 사마윤을 바라봤다.

“어, 어쨌든. 죽일 생각 없었으니까 그만하고 얘기 좀 하지.”

“정말이십니까?!”

됐다. 사마윤은 제 선택이 맞았다는 생각에 역시나 인생은 이렇게 대비하며 살아야 한다고 과거의 저 자신을 끌어안고 뽀뽀라도 잔뜩 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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