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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74화 (74/146)

#74

“흐어어. 잘, 잘못했습니다! 다신 이런 짓 안 하겠습니다. 살려 주십쇼. 아니, 제 동생만이라도!”

상황이 바뀌자 병찬은 그래도 조금은 인정이 있어 보이는 시현의 앞에 털썩 주저앉아 빌기 시작했다. 자신이 사기를 치려고 한 건 맞았고, 상황이 좋았다면 가지고 있는 아이템도 털려고 하긴 했지만…. 겨우 이 정도로 죽는다니 조금은 억울하기도 했다. 동시에 그동안 자신과 수아가 함께 겪었던 개고생들이 떠올라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마지막으로 물어보는 거니까, 잘 말해.”

“흐읍.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현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어 버린 상황에 기절한 아이를 빠르게 뒤 소파 위에 내려놓고 남은 공간에 털썩 주저앉았다. 괜히 기가 빠져 허탈해졌다.

“이, 일단 제가 쓴 스킬은, 스킬이 걸린 사람의 금전과 물건을 일정 시간 이후에 빼앗는 걸로… 정말 공격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계속 말해 봐.”

병찬은 제 뒤에 서 있는 태운을 한번 흘낏 바라보더니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계속 제 정당성을 피력하기 위해 사정을 줄줄 쏟아 냈다.

사실 병찬은 그저 일하기 위해 미국에 온 노동자였다. 그러나 개벽 이후 얼마 안 가 일반 각성을 하게 됐고 그 당시엔 흔치 않은 B급의 능력자라 미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대우받기 시작했다.

문제는 전투에는 하등 쓸모없는 제 능력 때문에 일어났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자 전투나, 생산 쪽이 아니고서는 헌터라고 해도 큰 필요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당연히 국가에서 보내는 관심도 계속 소홀해졌고 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외부인들에 대한 배척으로 이어졌기에 병찬은 이도 저도 못 하고 여기까지 굴러와 있던 것이었다.

“근데 그때부터 제 동생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때 자선 재단에서 뿌려 준 진통제를 썼었죠….”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동생이 아프기 시작했다. 당연히 병찬은 없는 살림에도 그 원인도 모를 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고, 그 와중에 간단한 진통제인 줄 알았던 것을 의료 단체의 소개로 처방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였고 아무것도 몰랐던 병찬은 제 손으로 동생에게 그걸 먹이게 된 것이었다.

“저, 저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어요. 한 번만 봐주십쇼….”

시현은 병찬의 말이 너무나 참담해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꾸만 제 동생에게로 움직이는 초조한 눈빛이나 당장 울 것 같은 얼굴이 저 말들에 신뢰를 쌓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 약을 구하려고,”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저, 치료제가 필요했어요…. 연합 놈들이 잘 협조하면 싼값에 팔아 준다고 해서….”

“잠깐.”

그때 병찬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시현은 지금 제가 들은 게 맞나 의아함을 담아 다시 한번 반문했다. 그러나 병찬은 그걸 안 좋은 징조로 여긴 건지 다시 몸을 납작 엎드리고 목소리를 덜덜 떨어 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아니, 그거 말고, 연합?”

“예? 예 그… 빌런 연합이요…. 제가 좀 그쪽에 속해 있긴 하거든요….”

순간 시현의 머리가 뱅뱅 꼬여 갔다.

빌런 연합은 사이비 집단이 아니었던가?

지금 제 눈앞의 이자도 빌런 연합의 말단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도 평범한 사기꾼이었다. 그동안 연합이랍시고 만난 말단 놈들이 죄다 머리 한쪽이 맛이 간 신봉자들이었기에 당연하게 다들 신앙에 물들거나 제약에 걸린 이들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간의 가정이 흔들리자 앞으로 하려고 했던 것들도 갈피를 잃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흑접도 불안한데.’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해졌다. 시현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바짝 들어 올리고 저를 간절하게 보고 있는 병찬과 기절해 있는 아이를 번갈아 보다가 작게 혀를 찼다.

흑접의 정보도 완전하게 믿을 수 없었고 조금이나마 다른 쪽의 정보가 필요했다.

“너 나를 도와야겠다.”

“예?”

“적당히 협조하면 나도 도와줄 테니 네가 알고 있는 걸 다 털어놓으란 말이다.”

병찬은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작게 머뭇거렸다. 지금 제 상황이 나쁘다곤 해도 차근히 돈을 모아 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체도 알 수 없는 이들에게 또 말려들어 가라니.

무엇보다 너무 두려웠다. 늘 자신을 괴롭히는 연합의 양아치들과 비교해도 이자들은 진짜 위험해 보였다.

“대답은?”

그러나 제게 무슨 선택권이 있단 말인가. 죽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제발 제가 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는 명령만 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예, 예.”

“저 애한테 있는 독은 내가 빼 주지.”

“스승님!!”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병찬이 이해를 하기도 전에 뒤에서 튀어나온 외침에 섞여 뭉개졌다.

“그것은 너무 과합니다! 스승님의 내공을 사용하시겠다니요! 치료제가 있다질 않습니까!”

“아니… 내기는 운기 조직만 하면 돌아올 건데 뭘….”

“그래도… 그래도 안 됩니다.”

“연태운. 자꾸 그럴래?”

그때 멍청하게 고개를 돌려 대며 대화를 듣고 있던 병찬이 그제야 시현의 말이 어떤 건지 이해하고서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쿵, 쿵. 그리고는 머리를 나무 바닥에 거칠게 찧어 가며 읍소하기 시작했다.

“독, 그러니까 약 성분을 빼 주시겠다는 거죠?! 제가 진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하라는 대로 할게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제발 부탁드려요….”

지금 그에게는 차갑게 타들어 가는 태운의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제 앞에 떨어진 기회에 마지막 남은 동아줄 잡듯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게이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이런 식으로 사기나 치고 도박장이나 돌면서 지내는 일상이 답답했다. 그러나 목표로 한 치료제를 얻는 데에는 수억이 필요했고 제 신분증이며 뭐며 죄다 연합에 저당 잡혀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방법도 없었다.

빚도 조금만 있으면 다 채워 간다는 추가 말에 의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건 썩은 동아줄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매달려 있었지만 지금 드리운 게 황금 동아줄이라면 뭘 해서든 붙잡아야만 했다.

“그, 알겠으니까 제발 그러지 좀 말지….”

시현은 어쨌든 이자의 자세한 생각까지 알아낼 순 없으니 갑자기 과장되게 변한 태도에 손을 휘저어 움직이는 몸을 고정할 뿐이었다.

사실 아이의 목숨을 걸고 이런 짓을 시킨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자에겐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해 보였고 어느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제 말을 따를 것이라 여겼다. 제게 목표가 뚜렷하게 세워진 만큼 다른 이들의 사정까지 봐주면서 움직이는 여유는 이제 끝이었다. 가능한 한 할 수 있는 부분은 다 시도해 봐야 했다.

“스승님….”

공격하려고 했던 놈들을 봐주려 하는 낌새에 태운은 이를 꽉 내리 물고는 작게 속삭였다. 시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얼핏 알 것 같았지만 그냥 싫었다.

내공을 익혀 기의 흐름을 아는 자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어린아이에게 외부의 기를 주입해 독을 다 선별한 다음 빼내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시현도 꽤 힘들 것이란 말이었다.

정보를 빼내는 거라면 방법은 많았다. 마교에도, 그 정의롭다던 정파에서도 온몸을 뒤틀어 고통을 주거나 고문해서 사실을 털어놓게 하는 방법은 많았으니까.

그것은 무척이나 간단하고 힘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내기까지 부어 가며 저 어린것을 살리려고 하시는 겁니까.’

저를 붙잡는 이성이 흐려지고 머리가 핑 도는 것만 같았다. 그에게 최우선은 제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 불안불안하게 흔들리던 가정이 얼마 전부터 조금씩 금이 가더니 이제는 소리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래, 사실은 이곳에 와서도 느끼지 않았나. 그와 자신의 온도 차이는 여전했다.

당신을 붙잡아 둘 순 없으니 붙잡을 만한 것들을 다 없애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또한 시현이 매번 하던 말로 덮여 눌려 태운을 멈칫하게 했다. 이제는 그런 그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태운아, 아랫사람을 얻을 때는 무력이 전부가 아니야. 마음을 다해야 해.’

그럼 당신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왜 이건 알려 주지 않으신 거예요.

태운은 빛이 사라져 어둡게 내려앉은 눈으로 시현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결국 바로 독을 빼내는 기적은 일어나지 못했다. 아이의 체력이 거의 바닥이 나 있던 것이다.

시현은 약이 돌고 있는 걸 확인하고 몇 가지 혈을 찍어 흐름을 낮춘 뒤 손을 뗐다.

“체력이 너무 약하군. 체력 포션 같은 게 있다면 준비해 놔. 바로 전에 마시고 진행해야 할 것 같으니.”

“예!!”

병찬의 대답은 마치 신병이라도 된 마냥 무척이나 예의 바르고 딱딱해져 있었다. 시현은 그런 그의 모습에 작게 혀를 차고는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렇다고 너를 그냥 놔두겠다는 건 아니야. 금제를 걸지. 허튼짓을 했다간 바로 대가리가 날아가도록.”

“마, 마음껏 하십시오! 아, 아프지만 않으면… 아니, 그냥 다 괜찮습니다!”

잔뜩 납작해진 모습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요구 사항을 자꾸 끼워 넣는 병찬의 뻔뻔함에 시현은 황당해졌다. 그러나 딱히 더 말을 섞고 싶지 않았기에 곧바로 머리에 손을 얹어 내기를 불어 넣었다.

“다음 주쯤에 연락하겠다. 네가 네 입으로 가능하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연합들의 행동 반경과 수상한 점을 정리해서 보고해.”

“최, 최대한 해 보겠습니다….”

오랜만에 내리는 명령에 잠시 옛날 생각이 났지만, 시현은 금방 머리를 털어 내고 일어났다. 비록 유리 조각을 사이코메트리 해 보지 못했지만 괜찮아 보이는 정보통을 찾았으니 나쁘지 않은 산책이었다. 시현은 조각을 알아보는 건 경매 이후로 미뤄 두자 결론을 내리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가자, 태운아.”

시현은 그제야 시선을 돌려 태운을 바라봤다.

무덤덤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저는 알았다. 분명 저건 심기가 안 좋거나 무슨 불만이 있을 때 흘러나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태운이 별말 없이 제 옆에 붙어 움직이자 시현은 슬쩍 미소 짓고는 발을 옮겼다.

“내가 맘대로 해서 서운했어?”

“아니요.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뭐?”

그러나 당연하게도 금방 풀어질 거라 생각했던 태운의 말이 날카로운 가시를 달고 튀어나왔다. 시현은 조금 당황해서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스승님은 참 자애로우십니다. 제가 태어나서부터 늘 불행하게 살았던 게 참 다행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으셨을 테니.”

허스키한 목소리가 시현을 마구 찔렀다. 순간 저릿해진 심장이 고통을 호소했다.

“왜 말을 그렇게 해.”

늘 공고하기만 하던 관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최소한 시현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비록 최근에는 조금 예상치 못한 일이 있기도 했지만, 그 또한 큰 문제는 아니라고 여겼다. 태운이는 늘 저를 공경했고, 자신도 이 애를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제게 모자람이 있어서 못 해 준 건 있어도 제 능력 안에서는 다 해 주었다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다. 어떨 때는 비록 피가 섞이진 않았어도 이런 게 가족이 아닐까 심장이 뛴 적도 있었다.

근데 이제는 모르겠어.

시현은 태운이 다시 한번 낯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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