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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73화 (73/146)

#73

바스락.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보라색의 알약이 담긴 봉지 몇 개였다. 남자가 그것을 꺼내 보이며 새끼손가락을 까딱이자 시현은 미간을 팍 찌푸렸다.

약이라.

시현의 손이 옆에 있던 태운의 팔을 당겨 제 뒤에 숨겼다. 태운은 한 치의 저항감도 없이 그대로 끌려와 시현의 뒤에 우두커니 섰다.

“그러려고 온 거 아니야.”

저절로 이가 갈려 시현의 발음이 뭉개졌다. 괜히 뒤에 서 있는 태운이 걱정되고 신경 쓰였다.

“어, 그래? 내가 진짜 죽이는 데를 아는데. 여기는 좀 다른 곳이거든.”

“그딴 거 말고 사이코메트리를 하는 곳을 추천해 봐.”

“오! 그것도 잘 알지. 혹시 애인이 바람을 피웠나? 낄낄.”

시현은 질 낮은 손동작을 하며 능글대는 자식의 멱살을 틀어잡고 주먹을 한 대 먹여 주고 싶었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정보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가벼워 보여도 생각보다 착실하게 정보를 뱉어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데는 대부분 가짜야. 그 흔치 않은 능력이 어디 라스베이거스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많겠어? 이곳을 가 봐. 여긴 진짜니까.”

남자의 손이 슬쩍 올라와 입가를 가렸다.

시현은 작게 속삭이는 남자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그리고는 빠르게 대화를 마무리하며 발을 옮겼다. 남자가 다시 한번 약 봉투를 은근히 흔들어 댔던 것이다.

“태운아, 저런 건 진짜 안 좋은 거야. 알지? 뭐, 너한테 저런 게 들 리도 없지만 말이야. 그래도 관심 주면 안 돼. 알았지?”

남자와 헤어져 인파 속에 섞인 채 걷고 있던 시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더니 결국 엄청난 잔소리를 한바탕 쏟아 내고 마무리했다.

솔직히 말하면 저딴 하급 합성 약으로는 저와 태운이에게 아무 영향을 줄 수도 없긴 했다. 그럼에도 무분별하게 쾌락을 좇는 행위 자체를 자제해야 했기 때문에 시현은 미리부터 단속하는 것이었다.

사실 아까부터 한마디 말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게 무척이나 신경 쓰이기도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느릿했지만 그래도 돌아온 대답에 시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 믿지 그럼.”

너는 믿지만, 주변에 꼬여 들 질 나쁜 것들까지는 못 믿지.

저런 것들을 보자 괜히 사회성 없는 태운이가 나쁜 일에 휘말려 들까 봐 앞날이 걱정됐다. 벌써 친구들을 잘 사귀어야 한다 어쩐다 잔소리를 할 순 없었다. 하지만 시현은 앞으로 생길 태운의 지인들 뒤를 싹 다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저 발을 옮길 뿐이었다.

***

-혹시 배우자의 뒤가 궁금하십니까? 물건만 가지고 오세요! 다 알려 드립니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무기를 만들어 주는 곳이 있다?

-복수는 허무하지 않다. 오히려 통쾌할 뿐. 대신 암살해 드립니다.

이게 한국이야 미국이야.

시현은 37번 스트리트를 들어오자마자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입간판에 혀를 내둘렀다.

37번 스트리트. 아까 그 남자가 말했던 그 구역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황폐한 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사라지는 전단지에 시현은 제대로 도착했음을 확신했다.

그러나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예상외였다.

만화나 영화에 묘사된 것처럼 어두운 분위기의 뒷골목을 상상했던 시현은 밝다 못해 발랄한 거리의 분위기에 얼마 걸어 나가지 못하고 주변을 티 나지 않게 두리번대야만 했다.

“스승님, 가시죠.”

“어, 그래.”

때맞춰 들려오는 태운의 목소리에 금세 정신을 차리고 발을 옮기던 시현은 슬쩍 뺨을 툭툭 치며 정신 차리자 본인을 타일렀다. 이곳이 저쪽 큰 거리보단 사람이 없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헤맬 수도 있을 정도로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현은 저 앞에서 검 하나를 들고 실랑이를 하는 자들을 흘낏했다가 그들의 한참 뒤로 작게 보이는 간판에 더욱 빠르게 발을 놀렸다.

<중고 아이템 거래소. 장물 아님, 확인 완료>

얼마 지나지 않아 흐릿했던 그 간판이 눈 안으로 선명하게 들어왔다. 외관은 무척이나 허름했지만, 간판은 꽤 최근에 단 건지 멀끔해 보였다. 그게 오히려 신뢰도를 조금 떨어트리고 있긴 했지만, 시현은 그래도 아까 그 남자의 말을 한번 믿어 보자며 문손잡이를 쥐었다.

‘여기가 진짜가 아니라면 다른 곳을 들러 보지, 뭐. 진짜 이곳에 있기는 하댔으니.’

끼익.

외관에서부터 예감했듯이 문은 녹이 슬어 찢어질 듯한 소음을 내뱉었다. 시현은 그 소음에 잠시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게 표정을 되돌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도 없습니까?”

내부는 그래도 꽤 관리를 열심히 한 듯 먼지 한 톨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끔했다. 그 의외의 모습에 시현은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카운터 위를 똑똑 노크했다.

“나갑니다! 잠시만요.”

그러자 안쪽에서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들려왔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시현은 당연히 외국인이겠거니 했던 이가 너무나 친근한 생김새를 하고 있자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인사말의 중간에 침묵이 섞였다.

“…이것의 사이코메트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딱히 놀랄 일은 아니지 않나. 시현은 이내 제가 할 일을 떠올리고 유리 조각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한 달 전 태운이 이규환의 방에서 찾아낸 거울이었다. 시일이 꽤 지나 버려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진 확실치 않았으나 지금은 그 조금의 단서조차도 간절한 시점이었다.

“아하, 사이코메트리요. 잠시만요. 음”

“아, 그거 당장 깨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 주십시오.”

“예에…. 그럼요.”

가게 주인의 손이 조심성 없이 움직이다 시현의 말에 속도를 늦췄다. 그리고 그의 손이 닿기 바로 전.

“참, 거래하시겠어요?”

사이코메트리를 하려고 하던 남자가 뒤늦게 거래 수락을 물어 왔다.

촤악.

그리고 그 순간 시현과 태운의 손이 남자의 목과 머리에 겨누어졌다. 같은 내공을 단련했음에도 마그마 같은 시현의 기운은 손을 빈틈없이 감싸고 남자의 목에 겨누어져 실금을 만들어 냈고, 태운은 예의 그 핏물 같은 뻘건 기운을 비도처럼 만들어 관자놀이에 아주 작은 틈만 남긴 채 대고 있었다.

“으아악! 대체 왜, 왜 이러십니까! 이 구역에서 무기를 휘두르면 안 되는 거 모릅니까!”

“지금 나한테 무슨 짓을 했지?”

“예, 예?”

시현은 차게 가라앉은 눈으로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남자가 말을 내뱉는 순간 어떠한 기운이 튀어나와 시현에게 향했다. 딱히 위험성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시현이 내지른 강기에 찢겨 나갔지만 어쨌든 저를 공격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당장, 입을 열지 않으면 죽이겠다.”

“자, 잠깐! 잠깐만요.”

남자는 목과 머리에 공격을 두고 있어서 그런 건지 과하게 시선을 돌리고 벌벌 떨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더욱 행태가 수상해졌다.

지금 제 상황이 딱히 낙관적이지만은 않았기에 혹시나 그 빌런 연합이 여기까지 와서 저를 노리는 건가 의심이 됐다.

“셋, 둘….”

“스, 스킬입니다!”

“알아, 하나.”

“죄송합니다! 살려 주십쇼! 제게는 토끼 같은 동생이 있어서 제가 없으면 안 됩니다! 흐어엉.”

너무나 진부한 핑계에 시현은 빌런 연합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들은 이런 상황에서 악쓰고 달려들려고 하지 들킨 것 같다고 냅다 잘못을 빌어 오며 납작 엎드리는 놈들이 아니었다.

“날 왜 공격한 건지 말해 봐.”

“그, 고, 공격한 게 아닙니다… 아니, 공격이 아닌 것도 아닌데…. 그게….”

“똑바로 말해. 죽고 싶나?”

남자는 그에 비교하면 정말 허술해 보였다. 덜덜 떨면서 이제는 막 눈물마저 흘리려고 하는 게 사기꾼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실소가 튀어나왔다.

‘그냥 이곳에 상주하는 사기꾼인가. 아까 그놈은 결국 유인책이었군.’

시현은 조금 허탈하단 얼굴로 느릿하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아무래도 웬만한 일은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조금 조심성이 사라진 건 맞았다. 그래도 이곳은 제가 모르는 능력들도 많은 이상 조금의 경각심은 느끼고 있어야 했는데 바보 같았다. 시현은 이자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안 돼요!!! 우리 오빠 죽이지 마세요!”

“수아야!”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작은 어린아이 하나가 쪼르르 튀어나왔다. 아이는 남자의 앞에 당당하게 서서 양팔을 벌리곤 시현을 올려다봤다.

한 8~9살은 됐을까, 어쨌든 딱 봐도 어리다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한 작은 아이였다. 시현은 갑자기 급변한 상황에 살기를 거두고 눈을 꾹 감았다 떴다.

미친, 토끼 같은 동생 그거 진짜였냐….

얼굴색이 좋지 않고 병약해 보이긴 했지만, 저를 향한 반항적인 눈빛이 정말로 제 오빠를 해코지하는 불한당을 보는 듯해 괜히 뻘쭘해졌다.

“아니, 죽인다고는 안 했는데….”

남자 아니, 병찬은 ‘죽인다고 하셨었잖아요….’ 하는 말을 가슴속에 묻어 두고 눈물을 삼켰다. 어쩐지 오늘따라 아침부터 재수가 없는 일이 연달아 일어났었다.

그땐 그냥 액땜한다고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더 큰 재수 없는 일을 위한 예고편이었던 거다.

하필 오늘 이곳에서 이런 실력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병찬은 제가 말을 꺼내고 일어난 모든 일을 단 한 순간도 제 눈으로 보지 못했다. 그냥 눈 한번 깜빡였을 뿐인데 목과 머리에 무언가 닿아 있었던 거다. 저 또한 이런 일을 하는 이상 공격받을 상황에 대비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능력을 발휘할 새도 없이 이런 상황에 처하다니 너무 허탈했다.

“수, 수아야! 빨리 들어가. 나오지 마!!”

“흐잉… 오빠! 우리 오빠 안 나빠요!! 다 저 때문이에요!!”

시현은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무척 당황스러웠다. 분명 공격 같은 걸 받았고 자신은 정당하게 받아친 것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마치 일반 양인들을 수탈하는 무도한 녹림인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때 이제는 뭐에 북받친 건지 엉엉 울기 시작하던 아이가 가슴을 움켜쥐고 옆으로 쓰러졌다.

“수아야!!!”

“하아…. 이건 또 뭔데.”

시현은 제 손과 태운의 강기에 옴짝달싹도 못 하고 있던 남자 대신 아이의 몸을 내기로 붙잡았다. 그리고 작게 손짓하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공격 태세를 유지하고 있던 태운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태운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는 듯 멈추어 있었다.

“이자는 스승님을 공격했습니다.”

시현은 낮게 깔린 음성에 잠시 멈칫했다. 요 몇 시간 동안 한 말 중 가장 긴 문장이 이거라니. 조금 섭섭했지만, 시현은 다시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저자는 가진 마력 양도 비루했고 조금의 위험도 되지 못했다.

태운은 그런 시현의 신호에 결국 얕게 배어 나온 핏방울을 털어 내며 천천히 머리에 겨누고 있던 손을 아래로 가지런히 내려트렸다. 허름한 공간 안에 베인 머리카락이 아주 조금 휘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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