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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68화 (68/146)

#68

“혹시 보유하신 기술이 어떻게 되죠? 지원서에는 자세히 쓰여 있지 않아서.”

“아, 지금 보여 드릴까요?”

“예? 아, 네… 괜찮으시다면.”

남자는 제 기술을 보여 줄 기회에 한껏 들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시현은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테스티니 온 마이 월드! 샷!”

그 순간 남자의 입에서 주문이 튀어나왔다.

‘뭐지? 서포트라며 원딜인가?’

시현은 팔 위로 얕게 돋는 소름에 팔짱을 끼며 요동치는 에너지를 감지했다.

파앗.

그때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더니 남자의 옷이 오색 빛을 내뿜고 휘황찬란한 반짝이 가루들이 천장에서부터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시현은 어리벙벙하게 주변을 휘휘 돌아보다가 기이한 불안감을 느끼며 천천히 빛이 사그라들고 있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주아주 빵실하고 원단을 아끼지 않고 쓴 것 같은 분홍색 레이스였다. 그 뒤에는 하얀색 스타킹과 족히 290mm는 될 것 같은 크기의 구두가 눈에 천천히 틀어박혔다.

정말 귀여운 마법 소녀, 아니, 무서운 마법 아저씨였다. 얼핏 보면 마법이나 서포트가 아니라 물리로 악의 무리를 정화할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시현은 제 머리 위에 소복이 쌓인 반짝이들을 털어 내지도 못하고 입을 꾹 다문 채 잠시간 요동치는 마음을 다스려야만 했다.

“큭.”

그러나 옆에서 아주아주 작게 튀어나온 웃음소리에 시현은 이어지는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 서포트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맞아요…. 제 스킬들은 이렇게 요술봉을 먼저 소환해 내야 하거든요!”

“알겠습니다. 잘 봤고요. 결과는 문자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아앗. 끝인가요?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조금 아쉬워하는 듯했으나 복장과 잘 어울리는 활기찬 대답이었다.

시현은 남자가 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 침묵을 지키다가 달칵 하고 문이 다시 닫히는 순간 머리 위에 쌓인 반짝이들을 그러모아 삼매 진화로 단번에 태워 버리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젠장.

그저 길드원 수만 맞춰 주면 될 거란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진행했던 면접이었건만 이 사람은 정말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그냥 다신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기엔 그 비주얼은 시현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스승님, 아직 두 명이나 더 남지 않았습니까. 실망하긴 이르니 너무 상심치 마십시오.”

“그래…. 그렇지 두 명이 더 남았지….”

그 와중에도 태운이 열심히 기운을 북돋아 주려 노력했지만 좀처럼 사라진 의욕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현은 나름 열심히 해 보겠다고 프린트해 놓은 지원서를 몽땅 태웠다. 아무것도 제대로 쓰여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똑똑.

그때 호텔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첫 번째 면접의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시현은 힘없이 손을 휘둘러 문손잡이를 열었다.

“아, 저… 앞에 분이 나갔는데 안 부르시길래.”

아, 내 눈. 내 시신경.

시현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분홍 쫄쫄이를 입고 머리에는 이상한 뚝배기를 쓴 남자를 보며 초조한 손길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냥 여기서 이 면접을 끝내고 침대 위에 드러눕고 싶었다.

“앉…으세요.”

“예에.”

그러나 제가 오라고 해 놓고 그냥 보내면 아주 예의에 어긋나지 않나. 시현은 태운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줘선 안 된다는 일념하에 바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겨우 끌어 올렸다.

“그, 변신 같은 스킬인가 보죠?”

“예? 아, 아니요! 그냥 입은 건데…. 주문 제작 한 겁니다!”

아니, 씨발. 왜 죄다 핑크색이야?

시현은 속으로 욕설을 읊조리면서 겉으로는 포커페이스를 애써 유지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도 시선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다해 조절해야만 했다.

“그렇…군요.”

“간지나지 않나요?”

“예, 안 나요.”

“네?”

“아니, 아닙니다.”

시현은 저도 모르게 작게 속삭였다가 급히 손을 내저으며 얼버무렸다. 그리고는 대충 형식적인 질문을 몇 개 하곤 두 번째 지원자마저 빠르게 되돌려보냈다. 정말 어느 때보다도 심력 소모가 컸다.

“태운아, 더 봐야 할까…?”

“으음… 그만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안마라도,”

그때 익숙한 기운이 깜빡하고 제 기감에 걸려들었다. 마치 공간을 찢고 나타난 것 같은 갑작스러움이었다. 시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철컥. 쿵.

그리고 그 타이밍에 맞춰 문이 벌컥 열렸다. 넘치는 힘에 벽을 쿵 치고 다시 닫히던 문이 누군가의 손에 덥석 잡혔다.

여느 때와 같이 한 톨 먼지도 앉지 않은 새하얀 옷을 입은 자였다. 신류하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저벅저벅 보무도 당당하게 시현과 태운이 앉아 있는 호텔 내부로 걸어 들어왔다.

“아, 씨발.”

“앗, 상처.”

가뜩이나 피곤한 오늘이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짓을 하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는데 반갑지 않은 놈이 나타나자 시현은 결국 참지 못하고 욕설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참자. 참자, 정시현.

“우리 시현 씨 저 안 보고 싶었어요?”

죽일까?

안 그래도 옆에 달라붙어 있던 태운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아마 당장 가서 저놈의 목을 베어 오거라 하면 망설임 없이 튀어 나갈 게 분명했다.

‘하, 정신 차리자.’

그러나 득달같이 따라붙는 얄미운 대답에도 튀어 나가려는 쌍욕 퍼레이드를 힘겹게 내리 삼켜야만 했다. 당장 이 손 저 손 급한 마당이었다. 최후의 방도로 생각해 놨던 인간한테 제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도 만무했고.

시현은 잠시나마 했던 상상에 만족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왔어요.”

“면접을 본다길래~ 저도 참여할까 해서?”

“입에 침이나 바르시죠.”

“하하.”

신류하는 당장이라도 쌍욕을 쏟아 낼 것 같았던 시현의 낯빛이 진정되자 빙긋 웃으며 당당히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대체 왜 절 두고 다른 데 가려고 하는 겁니까?”

“당신이 아니라 셰어 길드겠죠.”

“그게 그거 아니겠습니까.”

무척이나 당연하단 듯 여상한 얼굴을 한 신류하였지만 그것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반박할 말이 없었다. 이후 알아본 셰어 길드는 국내 1위 길드임에도 정말 신류하에서 시작해서 신류하로 끝나는 길드였다. 사실 속한 헌터들도 면면이 화려했지만, 저자가 가지고 있는 화제성이 너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저어… 면접은….”

그때 불청객의 방문으로 인해 잊힌 한 소년이 객실 입구에 서서 작게 노크하며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오늘 오기로 했던 면접자 세 명 중 마지막 남자였다. 시현은 벌써 신류하에게 휘말렸구나 싶어서 남은 한 손으로 이마를 쥐어 잡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머지 한 손은 태운의 손을 수갑 채우듯 단단히 쥐고 있었다.

“일단 그냥 온 거니까 당신 차례는 마지막이에요. 나가세요.”

“너무 칼 같으시네. 일도 너무 잘할 것 같아.”

그러나 곧 이어진 빙글빙글대는 과장된 말투에 순간 욱하고 살심이 치솟았다.

죽여야겠,

“그럼 저는 나가 볼게요. 끝나면 알려 줘요!”

그때 신류하는 마치 그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방긋 웃더니 쌩하니 밖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제 얼굴을 보며 어버버하고 있는 면접자 소년에게 윙크까지 날렸고.

시현은 정말 오늘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시현은 문가에 뻘쭘하게 서 있는 소년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고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 그 미소도 소년의 면접이 시작되자마자 사라졌지만 말이다.

“하, F등급이었어도 멀쩡했으면 뽑았을 텐데…. 사람 구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제 머릿속에 천마가 들어와 있으니 곧 대단한 무인이 될 거라 큰소리치는 소년의 면접을 끝으로 시현은 다신 이런 짓을 안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모든 일에는 괜히 전문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새삼 그냥 셰어 길드에 들어갈까, 노예 계약만 않으면 되지 않나 하는 자포자기 심정의 생각이 막 떠올랐다.

“똑똑. 이제 들어가도 될까요~?”

그리고 때마침 능글대는 느끼한 말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시현은 혹시나 미래의 제 고용주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인 신류하에게 더 이상 짜증을 내지 말자 다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앞에 앉으세요. 진짜로 면접 타령 하시려는 건 아닐 테고. 왜 오셨죠?”

“에이, 너무 빠르시다. 우리 천천히 해요, 천천히. 아, 혹시 여기 커피는 없죠?”

그냥 때려치울까.

시현은 커피 머신이 없다면 캡슐이라도 없냐, 자기가 인스턴트는 못 먹는다 주절대는 남자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하하. 시현 씨 반응이 너무 재밌어요. 정말 매력이,”

“예, 제가 한 매력 합니다. 용건은 그게 다인가요? 그렇다면 이제 자리를 파하도록 하죠.”

“물론 이게 다는 아니죠!”

신류하는 웃는 낯으로 손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당장이라도 일어날 기세의 시현을 가로막았다.

“혹시, 시현 씨. 이규환 씨라고 알아요?”

그 순간 방 안이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소름 끼치도록 고요해졌다.

시현은 한없이 가볍게만 보이던 남자가 허를 찌르듯 생각지 못한 질문을 해 오자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갑자기 이규환에 대한 걸 묻는다는 것에는 대충 세 가지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나는 저 빌런 연합의 관련자. 또 하나는 이규환이 마지막에 말했던 ‘그들’과의 관련성. 마지막 하나는 제가 모르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어찌 됐든 셋 다 제게는 퍽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기 때문에 시현의 긴장감이 저절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알죠. 이규민 씨 형 아닙니까?”

“아하.”

일단은 어느 정도의 진실을 내뱉었다. 처음부터 모른다고 거짓을 내뱉는 건 너무 허접한 방법이었기에 적당히 진실을 말하고 숨기며 신류하의 의중을 파악해 볼 요령이었다.

그러나 신류하는 의뭉스럽게도 빙긋 미소를 짓더니 은근슬쩍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어유, 사고가 크게 났더라고요. 보고서 깜짝 놀랐답니다.”

“…저도 뉴스로 봤습니다. 규민 씨도 정신이 없어 보이더군요.”

“저도 LK와 거래해 둔 게 있었는데 참 곤란하게 됐어요.”

대화가 주제를 관통하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돌았다. 시현은 낯빛을 태연히 하며 의미 없어 보이도록 질문을 하나 던졌다.

“개인적인 거래였나 봐요.”

“아뇨. 늘 하던 거래였죠.”

어찌 보면 굉장히 미묘한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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