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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67화 (67/146)

#67

“이만 가 봐야겠구나.”

“예, 들어가세요. 내일 오후쯤에 찾아뵐게요.”

“그래.”

시현은 전음으로 대화하던 걸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이미 자정이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두 명이 빠져나가고 남은 방 안은 캄캄하고 조도 낮은 스탠드만이 유일하게 침대 근처만을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 시현이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규민에게로 다가가 기척을 내비쳤다.

“아, 형님. 오셨어요? 연락하시지 그러셨어요.”

“괜찮아요. 그것보다…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 봐요.”

“아, 들으셨어요? 하하.”

규민은 일이 터졌던 날보다는 훨씬 더 괜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단 그 모든 일이 규환의 고의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런 그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뭐, 그 많은 일을 다 하고 있던 형이 이렇게 누워 있으니까요. 제 생각보다 하는 일이 많았더라고요? 아, 나도 일하기 싫었는데.”

유쾌한 듯한 웃음소리가 이어졌지만, 시현은 그의 어깨를 한번 턱 짚고 옆에 있는 소파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괜찮을 거예요.”

“그럼요! 아직 이렇게 살아 있는걸요. 참, 글로리 길드원들은 대부분 잘 치료됐어요. 빨리는 불가능하겠지만 세뇌도 풀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어진 말들은 얼핏 다 잘 풀릴 것이라는 긍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규환의 세뇌를 풀 수 있을 거라는 말은 들어 있지 않았다. 시현은 그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리고 한 박자를 쉬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이런 일들을 만든 이들을 쫓고 있어요. 아니, 나랑 태운이가요.”

“예?”

“그러니까. 규환 씨를 깨울 수도 있을 거라는 말이에요.”

시현은 억지웃음을 지운 채로 멍하니 있던 규민을 보면 어설프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웬만하면 혼자 처리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자신만큼 저들에게 피해를 본 규민을 그냥 둘 순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규민의 도움까지 끌어와 하루빨리 이들을 찾아내고 소탕하기로 마음을 먹은 참이었다.

제게는 힘이 있었고 규민에게는 자본과 정보력이 있었다.

바보같이 혼자 삽질할 바에는 있는 패는 다 써 보자는 주의였던 시현이기에 이런 선택은 빨랐다. 물론 규민이 그동안 시현에게 준 신뢰감이 꽤 컸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제가 도와 드릴 일이 있을까요?”

그리고 규민 또한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규민은 자잘한 물음 따윈 입에 담지도 않고 바로 도움을 주고 싶다 말을 건네 왔다. 시현은 그제야 짙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주 많이요.”

순간 마냥 순하게만 보였던 규민의 얼굴이 마치 무언가 결단이라도 내린 이처럼 단단하게 굳어 갔다.

규민은 형을 치료할 방도를 찾고 복수하기 위해. 시현은 집의 문제도 그랬지만 자꾸만 제 주변을 어지럽히는 이들의 정체를 알아내고 소탕하기 위해. 그리고 아직은 혼자만 마음에 두고 있는 일이었지만 태운 또한 그들을 찾아 제 능력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돌아오는 현상에 대해 알아내야만 했다.

여기 있는 모든 이의 목적이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자리를 옮기죠. 어차피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자는 누군가를 옆에 두고 떠들긴 그렇잖아요?”

“저기, 저쪽 방이 응접실이에요. 그쪽으로 가시죠.”

행동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시현은 형광등이 켜진 밝은 방 한가운데의 소파에 앉자마자 본론을 꺼냈다.

“알다시피 저와 태운이는 강해요. 그렇지만 아직 헌터들의 체계나 법적인 문제는 잘 모릅니다. 아마 규민 씨도 이제는 눈치채고 있었을 거고요.”

규민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아요….”

사실 처음에는 진짜 드림워커라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현과 같이 지내면 지낼수록 조금 이상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는 정말 몰라도 너무 몰랐다. 아니, 원론적인 내용은 어렴풋이 파악했지만 실제로 움직이고 일어나는 현상들을 몰랐다. 마치 개벽이 있고 난 3년간 아무것도 겪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규민의 상상력은 거기까지였다.

모든 이들은 꿈을 꾸고 하루 만에 깨어났기에 3년간 시현이 사라졌다 나타났다는 가능성을 떠올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물론 시현도 굳이 그 부분에 대해 말하진 않았다.

“그리고 태운이는… 그러니까 신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도움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이곳에서 행동할 때 방해물이 되는 것들이 많다는 게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시현은 제 말이 너무 범죄 같은 것에 연루되어 있는 거로 들리지 않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신분이요… 그 문제는 제가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쉽다고요?”

순간 생각지도 못한 긍정적인 대답에 한 톤 높아진 목소리가 방을 울리고 사라졌다. 시현은 주책스럽게 큰소리를 낸 저 자신을 자책하곤 입을 꾹 다문 채 규민을 바라봤다.

“지금 세상은 무척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저 겉모습뿐이죠…. 지금도 온갖 게이트와 범죄에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어요.”

“아.”

그제야 단번에 이해가 됐다.

죽어 나가는 사람이 많다. 한마디로 갈아치울 신분도 무척 많다는 뜻이었다. 현재 각국은 어떻게든 이런 것들을 타파하고 싶어 했지만, 게이트가 터진 후 고작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람의 적응력이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하나 유기적으로 얼기설기 엮인 이 사회를 다 정상으로 되돌리기엔 시간이 무척 짧았다.

“그러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또 없나요?”

시현은 예상치 못하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풀려 버리자 잠시 머뭇댔다.

아니, 이렇게 일이 쉽게 풀려도 되는 거야?

제 인생에 무언가 쉽게 풀렸던 전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너무나 익숙지 않았지만, 시현은 에라 모르겠다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길드가 필요합니다.”

튀어나온 것은 바로 길드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실 아까 시간이 남을 때 나름 구인 광고 같은 걸 올려 봤던 시현이었다.

이 시대가 되어도 알바헤븐 같은 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기에 조금 기대감을 안고 구인 글을 올렸다. 대단한 능력자를 뽑는 게 아니니 금방 해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시현의 구인 글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음. 조금만 빨리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왜요?”

“글로리 길드요.”

아.

시현은 간단히 튀어나온 규민의 말에 탄식 어린 한숨을 내뱉었다.

“길드에서는 온갖 혜택을 받는 대신 일정 기간 정해진 게이트를 처리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요. 그건 아실 거예요.”

그러나 글로리 길드는 그런 걸 이행할 수 있는 길드원들이 죄다 병실에 누워 있었고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바로 운영 임시 중단 상태로 서류가 들어간 것이었다.

물론 LK그룹 아래에 하나의 길드가 더 있긴 했지만, 이곳은 규민이 맡아서 운영하는 곳도 아니었기에 아무런 지위도 없었던 차남이 쉽게 영향력을 펼치기도 어려웠다. 규민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요즘 협회 일 처리가 늦어진다니 금세 철회할 수 있을 겁니다. 급히 필요하신 건가요?”

“아까 말했다시피 그 자식들에 대해 정보를 알 만한 인물과 접선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장소는 미국이고요.”

“그 비자가 필요하다는 말이군요.”

“맞아요.”

규민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시간이 너무나 아슬아슬했다. 만약 서류가 처리되기 전이라면 간단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꽤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시현은 조금 심각해 보이는 규민의 얼굴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안 그래도 심적으로 힘들 텐데 당장 내일부터 일을 해야 한다고 하던 그의 아버지와 다를 게 뭔가 싶었다.

“그래도 이번에 나갔다 오면 제대로 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흑접’이라면 뭔가를 알고 있겠죠.”

“흑접이라니. 그러니까 더 부담되는데요?”

그러나 이어지는 규민의 밝은 목소리에 시현은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아무 방도도 없이 손 놓고 있어야만 하는 자의 절망감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무거운 감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에서 벗어난 규민은 그래도 예전의 모습을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저도 방법을 알아보는 중이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 마세요. 어떻게든 될 겁니다.”

시현은 조금 기운차게 말을 이으며 벌떡 일어나서 규민의 어깨를 몇 번 도닥였다.

그리고는 짧은 바늘이 12시를 넘어가고 있는 걸 확인하고 발길을 돌렸다. 당장 내일부터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때 입을 꾹 붙이고 조용히 있던 태운이 입을 열었다.

“…이곳에도 기운을 보하는 약 같은 것이 있겠지. 주기적으로 섭취시키든 해야 할 것이다. 기력이 잘 돌고 있지 않을 테니.”

동시에 시현과 규민의 시선이 돌아갔다.

규민은 그새 감격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시현은 눈 안 가득 기특하단 감정을 줄줄 뿜어내고 있었다. 태운은 지나가던 행인이 보더라도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거라 생각하며 속으로 짧게 웃었다.

“좋아! 그럼 바로바로 일이 진행되면 연락하는 걸로 합시다.”

시현은 아니나 다를까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조언을 주고 있는 태운이 아주 기특해 조금 기분이 상기된 상태였다. 얼마간은 말도 안 듣고 이리저리 튀는 것 같더니 괜찮아진 듯했다.

저절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왠지 앞으로도 일이 마냥 잘 풀릴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현재의 시현은 며칠 뒤에 다시 한번 혈압을 조심해야 할 일이 터질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채였다.

“그러니까… 지원하시고자 하는 포지션이 서포트라는 거죠?”

“네에….”

정확히 3일 뒤. 시현은 알바헤븐에 올린 구인 글로 들어온 지원자들의 면접을 보는 중이었다.

글로리 길드 쪽으로 규민이 힘을 쓰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렇다고 그냥 결과가 떨어질 때까지 놀고만 있을 성격도 안됐다. 시현은 차선책으로 생각해 놨던 일도 함께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아주아주 커다란 벽에 막혀서 제 머리털을 뜯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시현은 제 앞에 앉은 삭발을 하고 턱수염을 기른 우락부락한 남자의 몸을 뜯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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