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어제 오후 3시경 서울 창경동 LK가에서 대규모 폭발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사고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규모로 봐서 단순 사고가 아니라고 규명, 뒤늦게 헌터 협회에서 수사에 나섰지만 사건 경위를 규명할 만한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헌터 협회는 긴급 브리핑을 갖고 “폭발의 원인은 미확인 아이템의 연쇄 폭발로 추정된다. 만약 시민들도 그런 아이템을 발견하시게 된다면 신속한 신고를 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달칵.
[어제 LK가에서 폭발이 일었죠? 그로 인해 입은 추정 피해액이 수천억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로 인해….]
“하아….”
시현은 계속 채널을 돌려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제가 벌인 행동에 대한 여파를 보며 진지하게 얼굴을 굳혔다. 동시에 이규환과의 일을 떠올리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머릿속으로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빌런 연합이라고 퉁치고 있던 무리가 사실은 두 무리였다는 것. 그리고 그 둘은 사이가 좋지 않음에도 함께 제집을 박살 냈다는 것. 그리고 아마 그 원인은 제게 있다는 것.
그들은 인간들은 잡아다가 제사를 지내는, 즉 사이비에 가까웠다. 게다가 자신도 알 수 없는 능력을 쓰며 제게 제법 타격을 입혔다. 꽤 위험을 느낄 정도로.
아직도 왜 제게 접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몇 달 사이에 일이 무척이나 커진 걸 느끼며 여전히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텔레비전을 꺼 버렸다.
“땅 꺼지겠다. 인마.”
“미안….”
하정은 들고 있던 몇 장의 서류를 테이블 위로 올려놓고서는 누가 봐도 저 일에 연관 있어요. 외치고 있는 시현의 얼굴을 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게 좋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지금 저 일 때문에 협회 안도 온통 비상이야. 그래서 네 보고서도 완전 뒷전으로 밀렸고.”
“그래,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
누가 들어도 무관심해 보일 정도의 대충 터져 나온 대답이었지만 하정은 익숙하단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집도 복원 들어갔으니 금방 떠돌이 생활 청산할 수 있을 거다. 물론 이런저런 장치가 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시현은 그게 편히 쉬는 집이냐 싶었지만, 어차피 그런 게 있어도 자신과 태운이 쉽게 노출될 만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일단 미국 갔다 오고 나서 생각해 보지 뭐.”
“아. 참 이거 읽어 봐.”
“헌터 전용… 비자 발급?”
그때 하정이 마침 말 잘 꺼냈다는 표정으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어리둥절하게 대답하는 시현을 무시하고 그의 손에 들린 종이의 중간쯤을 손가락으로 콕 찍고는 읽어 보라는 듯 눈빛을 보냈다.
“개인 프리랜서 헌터가 출국하기 위해선 비자가 필요하고. 그 비자의 발급에는 삼 개월… 무, 뭐? 이게 뭐야?”
“뭐긴 뭐야. 니 좆 됐다는 거지.”
“아니. 대체 왜? 일주일 전에 비자 받으면 되는 거 아니었어?”
“…이 새끼는 진짜 어디 다른 세상이라도 갔다 왔나? 지금 이거 바뀐 지가 언젠데.”
시현은 하정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의도하고 꺼낸 말은 아니었겠지만, 심히 찔렸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하정은 그럴 줄 알았다며 천천히 설명을 이어 갔다.
현재 각국의 무력은 핵 따위로 좌지우지되지 않았다. 최초의 게이트 사태 ‘개벽’이 터진 이후는 오로지 헌터들의 수와 무력으로 측정이 되었고 줄 세워졌다.
물론 땅덩이와 인구로 인해 헌터들의 절대적 수도 많아지는 특성상 예전과 국가적 파워가 크게 달라진 것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이 기회를 통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 하는 욕심 많은 권력자는 많았다. 결국 각국은 헌터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법을 뜯어고치거나 만들어 냈고 또한 다른 나라의 헌터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전으로 치면 개나 소나 틈새를 노리고 무기들을 대놓고 반입하고 뺏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각국에 전운이 돌기 시작했다.
“뭐? 전쟁? 게이트에 사람이 죽어 가는데??”
“뭘 기대한 거야? 인간들의 화합? 게이트를 없애기 위해?”
시현은 이어지는 하정의 말을 가로채고 반문했다. 물론 돌아온 건 차가운 현실이었지만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정말로 전쟁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헌터들은 이지가 없는 무기가 아니었으니까. 그 뒤로 세계 곳곳에 불문율처럼 이민법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다.
‘프리랜서나, 개인 헌터는 출국을 해야 하는 경위서를 작성해야 한다. 기한은 일주일로 한정, 추가로 머물 시에 추가 요청이 필요하다.’
이 조항은 얼핏 보면 헌터들이 들고일어날 법한 법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어차피 거의 모든 헌터들의 길드에 들어가고자 했고 길드나 나라에 등록된 공격대의 헌터들은 여느 때와 절차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안 불편하니까 상관없었다… 이 말이네?”
“응. 뭐 개인이라도 오래 걸릴 뿐 안 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시현은 결국 좌절하듯 머리를 쥐어뜯다가 벌떡 일어나서 하정을 잡고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또한 계속 조용히 있던 태운에게 잡혀 원래 자리로 소환됐지만 말이다.
하정은 시현의 옆에 딱 달라붙어서 좌절하는 그의 허벅지를 토닥대고 위로하고 있는 태운의 웃기지도 않는 모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내가 누구냐. 방법은 있지.”
“뭐?! 그걸 왜 이제야!!”
그러나 이어지는 하정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시현은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점점 차갑게 식어 가는 하정에 눈빛에 다시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좋아, 알려 줄게. 일단 길드를 만들면 돼.”
“길드?”
시현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자 하정은 엄격한 교수처럼 다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핵심은 말 그대로 길드를 창설해서 한 번에 신고하면 되고 길드 창설은 5명만 있어도 된다는 거였다. 비록 길드장이 꽤 경력이 있고 B급 이상의 헌터여야 하는 제한이 있었지만 그게 해결됐다면 최소 이 주 안에도 끝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또 B급! 아, 젠장! 그냥 B급 나오게 조절할걸!!! 아!’
시현은 제 C급의 자격증을 떠올리며 속으로 절규했다.
“그냥 들어가는 건?”
“그것도 생각 안 해 본 건 아냐. 근데 그건 조금 아슬아슬해. 세상이 이 모양인데도 수습 기간은 안 없어졌거든.”
아무리 당장 어딘가에 붙는다고 하더라도 한 달의 수습 기간 때문에 시간이 안 맞을 확률이 높았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경매의 일자는 이제 겨우 한 달여가 남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하 경매가 아니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행사였기에 비행기 표를 구하는 것부터 문제가 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정말 한시가 급했다.
“어쨌든 량차오샤를 만나서 흑접에 대해 직접 소개받을 거니까 늦거나 파투 내면 안 돼.”
“모르겠냐… 하 암담하네 진짜.”
“참, 너 신류하한테 스카우트받았었다며? 차라리 길드를 들어가. 거기면 바로 해 주겠지.”
그때 하정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물론 시현은 그 이름과 동시에 떠오르는 느끼한 말투에 인상을 팍 찌푸렸지만 말이다.
“그건 안 됩니다.”
“엥?”
그리고 시현이 대답도 하기 전에 허스키한 목소리가 대화를 가르고 들어왔다.
태운의 표정은 무언가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하정은 땀을 삐질 흘리면서 급히 손을 내저었다.
이건 무슨 경비견도 아니고. 조금만 낯선 사람 이야기만 나오면 칼 차단을 해 버리는 게 어이가 없었다.
“알겠어, 알겠어. 뭐, 그때 말했던 복원사가 셰어 길드 소속이라. 겸사겸사하는 게 좋으니까 말해 본 거지 나는.”
“뭐, 하하.”
아, 진짜 세상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시현은 턱 막히는 말문에 힘겹게 허탈한 웃음을 내뱉고 고개를 푹 숙여 머리통을 쥐어 잡았다.
시현도 사실 처음 설득에 혹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앞으로 들어갈 돈도 많았고 태운이 학교도 보내 주고 집도 장만하려면 이제는 보통 돈 가지고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류하는 계약 전인 지금도 어떻게든 시현에게서 무언가를 뽑아내려고 했다. 그런 의도를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 말인즉슨 계약하자마자 일과 휴식의 균형이 와장창 박살 날 거란 뜻이었다. 그것도 악덕 업주로 보이는 남자에 의해서.
여태 소처럼 굴렀다. 그런데 부탁해서 또 그렇게 굴려질 덜미 잡힐 짓을 하라고?
‘난, 쉴 땐 쉬고 싶다고!’
“…다른 방법은 없냐…?”
“뭐, 길드 문제는 그게 끝이고 복원사야 해외에도 있으니까 돈만 있으면 어려운 건 아니지?”
시현은 속으로 절규를 뱉어 내고 하정의 눈치를 보며 말을 꺼냈다. 그리고 ‘돌고 돌아 돈’이라는 것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게이트 사건을 해결한 뒤 받은 돈이 있으니 이걸로라도 어떻게 해 봐야 했다. 흑접을 만날 때 얼마나 쓰일지 모르니 최대한 아끼고… 그다음엔 복원을 알아보고… 쓸 돈이야, 뭐 또 벌면 되니까.
아무리 그래도 일반인들보다야 헌터가 더 벌 테니 중대형 말고 적당히 작으면서 내실 있는 길드에 들어가서 일과 휴식을 적절히 조절하고 지내는 거다.
‘완벽해.’
시현은 나름 만족스러운 계획을 떠올리며 미세하게 입술 끝을 끌어 올렸다.
“어쨌든 너만 어떻게 해결해. 태운 씨야 뭐 같이 갈 거고 일반인이니까 일주일 내로 비자 나올 거고. 문제없어. 네가 문제야.”
“태운이 비자….”
아, 미친. 큰일 났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잊고 있었다. 태운이는 애초에 이곳에 주민 등록도 안 되어 있는 아이였다. 그러니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시현은 뚫릴 만하다가 다시 턱 막히는 상황에 입술을 짓 뜯었다.
그렇다고 또 몰래 데리고 가면 하정이 이상하게 볼 게 분명했다.
“스승님, 입술이 상하십니다.”
그때 어김없이 태운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현은 반사적으로 열심히 괴롭히던 입술을 단번에 놓아 주고 싹 미소를 지었다.
시현은 정말 하정의 앞에서 입술에라도 손을 들이댈까 봐 옅게 경계하며 태운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그저 순해 보이기만 하는 미소만 떠올라 있을 뿐이었다.
‘하, 태운이한테 아무 데서나 그러면 안 된다는 것도 알려 줘야 하는데. 아악, 머리 아파!!!’
시현은 살면서 이렇게 머리를 팽팽 돌려 본 적이 있나 싶어질 정도로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있었다.
“야, 뭐 해.”
“엉?”
“못 들었어? 그러니까 나가서 빨리 헌터들이나 좀 구해 와. 기한 일주일이다?”
“…네가 길드장 해 주면 안 되냐…?”
그 순간 작지도 크지도 않은 하정의 집 안이 마치 동굴이라도 된 듯 으스스하고 조용해졌다.
“너 돈 많냐?”
“뭔 개소리야. 나 거… 크흠”
그리고 하정의 목소리가 빈집에 드라이아이스 깔리듯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나 돈 없어.}
시현은 하정의 변화에 조금 머뭇거리면 전음을 사용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애 앞에서 거지라고 하는 건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